[경제사상사 여행] "富 축적은 신의 축복"…자본주의 발전 원천 종교서 찾아
(26) 종교경제학의 창시자 막스 베버

어머니는 독실한 개신교 신자였던 반면 아버지는 믿는 종교가 없었던, 권위적인 가정에서 자란 막스 베버(Max Weber)는 법학 철학 경제학으로 학문에 입문했다. 그의 평생에 걸친 학문 주제는 현대 산업사회의 새로운 구조에 대한 의미를 캐내는 것이었다. 그가 이런 문제의식을 갖게 된 배경은 20세기 전환기의 독특한 서구사회의 모습이었다.

당시 독일 오스트리아 미국 등 서구사회의 생활 방식을 지배한 것은 자본주의였다. 예전에 경험하지 못한 경제적 번영으로 시민들의 생활 수준은 크게 향상됐다. 이런 발전은 엄격한 도덕적 기강과 헌신적인 노동, 그리고 장기 투자와 이를 가능하게 한 저축, 기업가적 혁신과 경영기법 개발 때문이라는 게 베버의 설명이다. 이 같은 요소들이 자본주의 경제 발전의 원천이라는 얘기다.

이런 번영의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어머니의 영향으로 종교에 대한 관심이 컸던 베버는 자본주의 초창기 부유 계층으로 떠오른 자본가와 경영자, 장인의 대다수가 개신교도였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자본주의 정신이 등장하기 이전의 전통주의에서는 엄격한 가톨릭 교리에 따라 필요 이상으로 돈을 벌거나 저축해 자본을 축적하는 것 등은 엄격히 제한됐다. 필요한 만큼만 벌고 쓰는 금욕적 생활이 강조됐다.

그러나 17세기 종교개혁으로 프로테스탄트가 등장하면서 모든 게 변했다고 베버는 설명한다. 성실한 노동과 이를 통한 부의 획득은 신의 축복이라고 여겼다. 노동은 금욕을 위한 수단이자 나태를 예방하는 최상의 방법이라는 인식도 생겨났다. 근검절약은 저축으로 이어져 자본 축적을 정당화했다. 흥미롭게도 노동과 절약은 구원의 조건이자 신앙의 진실성을 보여주는 증표로도 평가했다. 베버는 자본주의의 발생이 프로테스탄트의 산물이라고 결론지었다.

베버의 논리는 ‘우아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현실 적합성을 입증하는 역사적 사례도 많다. 청교도의 집단 이주로 탄생한 국가인 미국의 번영이 대표적이다. 프로테스탄트 국가인 영국도 기계와 자본재에 가장 많이 투자하고 산업화에 성공했다. 1850년부터 1940년까지 유럽의 프로테스탄트와 가톨릭 지역의 1인당 소득을 비교한 통계 연구를 보면 전자의 지역이 일관되게 높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미 중세시대에 자본주의가 꽃을 피우기 시작했고 복식부기와 다양한 금융기법이 생겨난 지역이 이탈리아의 가톨릭 도시국가였다는 사례를 들어 베버의 논리적 취약성을 지적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목할 대목은 베버의 방법론이다. 자본주의, 도덕, 법 등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싶다면 개인의 행동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른바 개인주의적 접근법이다. 그의 사상적인 토대는 견고한 방법론에 있다. 베버는 계급이나 집단을 중심으로 한 집단주의 방법을 믿지 말라고 충고한다. 집단은 생각하고 행동하는 실체가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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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버는 경제학이 객관적인 과학적 학문이 되기 위해선 학자의 주관적인 가치 판단이 개입돼서는 안 된다는 원칙도 강조했다. 그런 원칙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은 경험적 연구를 통한 이론의 검증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종교와 자본주의 관계에 대한 베버의 논리도 경험적 연구 방법을 통해 얻은 결론이다. 그는 역사적 증거를 근거로 해 자본주의에 대한 종교적 설명을 뒷받침하고 있다. 일부 증거가 불완전하고 의심이 가는 부분도 있지만 베버의 시도는 경험적 검증의 본격적인 시작이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흥미로운 것은 자본주의에 대한 베버의 비전이다. 자본주의는 거대한 부를 창출한다는 게 그의 믿음이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자본주의 장래에 대해 걱정했다. 먼저 기업의 관료화에 대한 우려다. 기업 관료화는 정부 관료제와 똑같이 개인을 옭아매는 ‘강철 우리(iron cage)’와 같고 그래서 자본주의의 활력을 떨어뜨릴 것이라고 지적한다.

베버는 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세속화돼 자제력 정직성 성실성 등 프로테스탄트 윤리가 퇴색할 것이라는 점도 우려했다. 또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사람들 사이에 정(情)이 없고 공동체 가치도 결여돼 있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전통사회에서는 서로 알고 지내는 이웃과 협력하지만 현대사회에서는 서로 모르는 사람들 틈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베버의 이런 자본주의 문제점 지적에 대한 반론도 상당하다. 기업은 정부의 관료시스템과 전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유연성이 없는 기업조직은 경쟁 과정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국가 관료제는 그런 경쟁 과정이 없다. 일부 기업 조직이 관료화된다고 해도 혁신과 위험을 감수하는 기업가들은 여전히 존재한다는 점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가 세속화될 것이란 전망과 관련해서는 시장경제가 스스로 도덕을 유지하는 경향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베버의 걱정은 기우라는 지적이다.

베버의 사상은 여러 가지 비판의 여지를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20세기의 전환기를 이끈 위대한 사상가였다는 평가에 이의를 달 사람은 없다.

특히 그는 자본주의를 종교적 시각에서 해석해 종교경제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적 영역을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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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블렌과 세기의 대결… 사회주의 역설 꼬집어

베버 사상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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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스 베버의 사상은 19세기와 20세기 초 서구사회를 풍미하던 탐욕이론, 반종교 사상, 방법론적 집단주의 등 세 가지 사상을 무력화하기 위한 중요한 무기였다. 자본주의 정신이 탐욕과 이윤 추구라는 기존 주장에 대해 베버는 강력하게 도전했다. 이런 충동은 어떤 사회에서도 존재했으며 유독 자본주의에서만 목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종교윤리를 토대로 하는 자본주의야말로 탐욕을 억제한다는 논리를 폈다. 독일의 질서자유주의를 창시한 오이켄이 교회를 질서의 수호자라고 여겼던 것도 베버의 영향에 따른 것이라는 평가다.

베버의 사상은 서구사회를 풍미하던 반종교적 분위기를 무력화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신앙을 도덕적 장애인의 지팡이쯤으로 여겼던 니체, 종교를 환각이자 불합리한 정신적 혼란이라고 비아냥거렸던 프로이트를 겨냥해 베버는 종교야말로 자본주의를 지탱하면서 번영을 불러온 서구문명의 핵심이라고 쏘아붙였다. 그는 자본주의를 등장시킨 게 종교라는 인식을 가지고 경제적 토대가 종교를 규정한다고 주장하는 마르크스주의자들과 대립했다.

베버 논증의 지적인 힘은 유한계급의 과시소비로 자본주의를 풍자하던 미국의 인류학자 겸 경제학자 베블렌과의 세기적인 논쟁에서도 드러난다. 저 멀리 아메리카 대륙의 중심부에서 베블렌이 자본주의를 야만적 진화와 착취의 대표적 사례라고 목소리를 높일 때 유럽 대륙의 한복판에서 베버는 자본주의 정신이야말로 인간의 약탈적 행동을 중단시킨 결정적인 요인이라는 논리를 폈다. 베블렌이 자본가를 약탈자이자 출세주의자라고 말하자 베버는 게으름과 낭비를 막고 건전한 소비생활을 촉진하는 개인의 종교적 양심과 기독교적 훈계를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응수했다. 결국 베블렌은 베버의 탁월한 논리를 이길 수 없었다.

베버는 사회주의 운동과도 맞섰다. 노동자들의 이익은 물론이요 독일 경제의 발전을 지체시키는 게 사회주의라고 역설했다.

[경제사상사 여행] "富 축적은 신의 축복"…자본주의 발전 원천 종교서 찾아
동아시아의 발전과 관련된 연구에 미친 베버의 영향도 결코 작지 않다. 베버 사상의 영향으로 유교윤리를 의미하는 ‘동아시아의 자본주의 정신’이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경제 발전이 종교 그 자체에 달려 있는 게 아니라 종교가 개인의 자유와 재산권을 보호하는 데 얼마나 크게 기여했는가에 따라 좌우된다는 것이다.

민경국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