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증시가 호황이다. 미국의 S&P500지수는 사상 처음으로 1600선을 돌파했고,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도 처음으로 15000선을 뚫었다. 유럽 금융시장도 상승세다. 독일 DAX30지수와 유럽 종합지수인 Stoxx600도 연일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영국 런던 FTSE100지수는 2008년 초 수준을 회복했고 일본 닛케이225지수도 아베 정부의 대규모 양적완화에 힘입어 올 들어 34% 올랐다. 증시만 보면 세계 경기가 회복세에 접어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물 경기는 딴판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중앙은행의 양적완화가 두 번째 글로벌 금융 위기는 막았지만 유럽은 여전히 멈춰선 데다 중국의 성장은 둔화하고 있고, 미국도 회복 속도가 느리다”고 지적했다.
[Global Issue] 글로벌 증시 돈잔치… 경기부진해도 주가는 고공행진
# PMI·실업률 여전히 먹구름

유로존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18개월째 50 이하에 머물고 있다. PMI는 제조업 동향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지수로 50을 넘으면 경기 확장, 50 이하일 땐 경기 위축으로 해석한다. 미국 제조업 공장 주문도 급감했다. 미 상무부에 따르면 올 3월 제조업 공장 주문은 4672억8800만달러로 전월보다 4%나 떨어졌다. 이는 지난해 8월 이후 최저치다. 미국 공급관리협회(ISM)가 발표한 미국 4월 제조업지수는 50.7로 전달의 51.3에서 하락, 올해 최저치를 기록했다. 서비스업지수도 53.1로 지난해 7월 이후 최저치다. 중국 4월 제조업 PMI 역시 예상치인 51.0을 밑도는 50.6을 기록했다.

유로존 통계청인 유로스탯에 따르면 유로존 공장 가동률은 지난 1분기 76.5%로 그리스 구제금융 이후 시장에 위기감이 팽배했던 2010년 3분기(77.9%)보다도 낮아졌다.

고용지표는 더 심각하다. 3월 유로존 실업률은 12.1%로 유럽연합(EU)이 실업률을 발표한 1995년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미국 실업률은 올 들어 하락세를 보이고 있지만 구직 활동 자체를 포기한 사람이 늘어나면서 나타나는 착시효과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구직 활동 포기자는 실업자로 분류되지 않아 실업률 통계에서 빠지기 때문이다.

#증시 끌어올린 중앙은행 '입'


경제 전망이 어두운데도 증시가 활황을 보이는 근본적인 원인은 미국 중앙은행(Fed)과 유럽중앙은행(ECB)이 경기부양책을 지속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각국 중앙은행이 시장에 돈을 풀면 기업들이 돈을 조달하기 쉬워지고 실적이 좋아질 가능성도 높아진다.

Fed와 ECB는 경기를 살리기 위해 금리 인하 정책을 펴 기업의 대출을 유도하는 등 막대한 유동성 공급 정책을 펼치고 있다. Fed는 지난해 9월부터 매달 850억달러의 국채와 모기지 채권을 사들이는 3차 양적완화를 시행하고 있다. ECB도 마찬가지다. ECB는 지난 2일 통화정책회의에서 기준금리를 연 0.75%에서 사상 최저 수준인 연 0.5%로 내렸다. 지난해에도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하겠다”며 3년 이내 만기 국채 무제한 매입 조치를 발표한 바 있다. 이날 재정위기국으로 꼽히는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10년 만기 국채금리도 각각 위기 이전 수준인 4%, 3% 이하로 떨어지며 증시 상승에 힘을 보탰다.

#돈 풀어도 꿈쩍 않는 기업

Fed와 ECB가 막대한 유동성을 공급했지만 막상 돈은 기업의 투자를 위해 대출되지 않고 주식으로만 몰리고 있다. ECB에 따르면 2월 유로존의 M1(협의 통화) 증가율은 전년 동기 대비 7%였지만 M3(총 통화량) 증가율은 3.1%에 그쳤다. ECB가 돈을 7% 더 풀어도 실물 경제에는 3.1%만 영향을 미쳤다는 뜻이다. 올해 유럽 기업의 44%는 예상을 밑도는 매출을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2009년 이후 최악의 전망치다.

미국 S&P500 편입 기업 절반 이상의 매출이 전분기에 비해 0.3% 줄어들었다. FT는 “기업이 불확실한 미래에 투자를 꺼리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앙은행이 금리를 내려 기업과 개인이 돈을 더 많이 빌려가도록 유도했지만 기업들은 ‘방어가 최선’이라는 전략을 짜고 있다는 이야기다.

중앙은행이 채권 매입을 늘려 채권금리가 낮아지자 수익률에 목마른 투자자들은 위험 자산인 주식시장으로 몰려들고 있다.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최근 “지금이 주식 매수 적기이니 가능한 한 많이 사들이라”면서도 “2년 뒤에는 대폭락을 예상해야 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증시의 거품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월가의 대표적 비관론자인 마크 파버는 “주식시장이 실물경기와 따로 움직이는 디커플링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뉴욕증시의 거품을 경고하고 나섰다.

박병종 한국경제신문 기자 dda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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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 내린 ECB "필요할때까지 돈 더 푼다"

유럽중앙은행(ECB)이 지난 2일 기준금리를 0.75%에서 0.5%로 0.25%포인트 내렸다.

ECB는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에서 열린 금융통화정책 회의에서 이같이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이번 금리 인하는 지난해 7월 0.25%포인트 내린 후 10개월 만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날 금리인하 결정에 대해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물가상승률이 하락하고 실업률이 오르는 등 경기 후퇴에 대한 우려가 ECB 금리 인하의 원인이 됐다”고 분석했다. 금리 인하로 시장에 돈을 풀어 침체 중인 유럽경기를 부양한다는 복안이다.

ECB는 최저 대출 금리도 1.5%에서 1%로 0.5%포인트 낮췄지만, 예금금리는 ‘제로 금리’를 유지했다. 이날 기준금리 인하는 시장의 전망과 일치하는 것이다. 유로존 경제 침체가 지속하는 상황에서 물가 안정세가 유지돼 금리 인하 여력이 확대됐기 때문이다. 일본과 미국 중앙은행의 양적 완화로 인한 유로화의 환율 절상 우려도 금리 인하의 배경으로 꼽힌다.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사진)는 “적어도 2014년 7월까지는 경기부양 기조가 이어질 것”이라며 “필요할 때까지 확장 정책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자금시장에 유동성을 실제로 공급하기 위해 오는 7월 만료되는 ‘만기 3개월 이하’ 단기자금(MRO) 지원도 최소한 연말까지 연장하기로 했다. 만기 3개월 이상 장기대출(LTRO) 공급도 올해 말까지 확대한다.

드라기 총재는 유로존 경제 전망에 대해 “하반기부터는 경제 회복이 시작돼야 하지만 여전히 하방 위험이 존재한다”며 “앞으로도 금융 시장을 면밀하게 관찰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