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 대신 와인 마시는 '안암골 호랑이'
“와! 여기가 고대 맞아?”
고려대를 처음 방문한 사람이나 오랜만에 모교를 찾은 졸업생들은 정문에 들어서자마자 눈이 휘둥그레진다.
정겹지만 다소 촌스러운 느낌도 있었던 예전 풍경과는 다르게 캠퍼스가 현대적이고 세련되게 변했기 때문이다. 고풍스러운 본관과 대학원 건물 등은 예전 그대로지만 경영관과 지하캠퍼스, 100주년 기념관 등 웅장한 건물들이 곳곳에 들어섰다.
캠퍼스를 거닐다보면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은 물론 초등학생들도 자주 볼 수 있다. 이곳에서 만난 김수진 양(18)은 “목표로 하고 있는 고대 캠퍼스를 직접 보고 싶어 왔다”며 “듣던 것보다 건물이 아름답고 시설이 잘 돼 있어 놀랐다”고 말했다.
고려대는 1905년 설립됐다. 출발부터 일제의 압박과 재정난으로 어려움을 겪던 고려대는 1932년 ‘교육구국(敎育救國)’을 내세운 인촌 김성수가 경영을 맡으면서 본격적인 성장을 시작했다.
고려대는 독재정권에 항거하여 1960년 4·19 혁명의 촉매제가 된 4·18 의거를 비롯해 각종 시위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1975년에는 고려대를 겨냥해 긴급조치 7호가 내려지기도 했다. ‘민족 고대’라는 별칭은 이러한 역사에 근거한 것이다.
고려대는 4·18 의거를 기념하기 위해 매년 4월18일 4·18 기념 마라톤과 구국대장정을 진행한다.
헌화 행사에 이어 오전에는 기념 마라톤이, 오후에는 구국대장정이 진행된다.
재학생뿐 아니라 교직원, 동문들이 참가하며 학교를 출발하여 4·19 국립묘지를 거쳐 다시 학교로 돌아오는 코스다.
이렇게 역사가 깊은 만큼 고려대에는 전통도 많다. 대표적인 것이 사발식이다.
신입생들이 커다란 사발에 부어 놓은 막걸리를 선배들이 불러주는 막걸리 찬가에 맞춰 마시는 행사다.
신입생환영회에서 많은 양의 막걸리를 마시게 하는 것은 “획일화된 교육과 얽매인 생활의 묵은 때를 모두 토해 비워버리고 학문의 진리와 민족의 정의를 위해 나아가는 고대인이 되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한다.
하지만 캠퍼스가 자유로운 분위기로 바뀌면서 사발식도 형식만 갖춘 행사로 변하고 있다. 강압적인 분위기는 사라졌고 선배들은 물론 교수도 함께 참여하고 즐기는 이벤트가 됐다.
권석민 씨(독어독문 2년)는 “요즘은 강권하는 분위기가 거의 없다. 못 마시겠다고 하면 억지로 권하지 않는다. 사발식은 형식에 불과하다. 학과별로 다르겠지만 대부분 술을 강요하지 않는 분위기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고려대와 연세대의 자존심을 건 ‘2011 정기 고·연전(연·고전)’이 지난 9월에 열렸다. 5개 종목(축구·야구·농구·럭비·아이스하키)에서 뜨거운 승부가 펼쳐졌다.
올해는 고려대가 3승 1무 1패로 이겼다.
역대 성적에서는 연세대가 18승 8무 15패로 앞선다. 양측 모두 모교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해 고려대 출신들은 약국에 가서도 ‘연고 달라’는 말을 절대로 하지 않는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다.
고·연전의 시작은 해방 직후인 1945년 12월 제1회 두 학교의 전신인 보성전문·연희전문 졸업생의 축구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같은해 농구시합이 잇따라 열렸고 다음해인 46년 5월에는 두 학교 현역 선수들의 축구가, 10월에는 축구와 농구대회가 열리면서 정기 대항전으로 발전했다.
한때 주요 종목의 국가대표 선수들이 대부분 두 학교 소속이라 연·고전은 양교 출신만이 아닌 국민의 관심사가 되기도 했다.
열기가 지나쳐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 적도 있지만 고·연전은 나름대로 대학문화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이 대회를 통해 수많은 스타와 라이벌이 생기기도 했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야구의 최동원 선수와 선동열 전 삼성 감독. 농구스타 김현준과 이충희 등 셀 수 없을 정도다.
두 학교 졸업생들은 “젊은 시절의 추억을 공유하며 경쟁하다 사회에 진출한 뒤에도 애교심과 협동심을 살려나갈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박정훈 씨(경영 2년)는 “올해 농구경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20점 차이로 지고 있다가 역전을 거듭해 결국 이겼을 때 희열을 느꼈다”고 말했다.
김성욱 씨(산업경영공학 2년)는 “경기가 끝난 후 선배들이 술집을 통째로 빌려줬다.
안암과 신촌 아무 술집이나 들어가도 모두 공짜로 먹을 수 있었다. 평생 잊지 못할 경험”이라고 했다.
고려대는 국내 최고의 명문사학에서 세계의 명문대학으로 거듭나기 위해 힘을 쏟고 있다.
고려대는 현재 79개국 744개교와 국제교류 협정을 맺고 있으며 2010년에는 총 1062명의 고려대 학생들에게 교환·방문학생 프로그램 등을 통해 해외에서 공부할 기회를 제공했다.
고려대 안에서 수학하는 외국인 학생도 89개국 2300여명에 이른다.
교양 외국어 과목은 모두 영어를 비롯한 원어로 진행하고 있으며 특히 국제어문학부는 ‘7+1프로그램’에 따라 전체 8학기 중 해당 언어권 현지 대학에서 1학기를 배우도록 권장한다.
해외 체류 시에는 장학금도 지급한다. 경영대는 전체 강의 144개 중 93개인 65%를 영어로 진행하며 신입생을 위한 특별 영어 강좌도 있다.
경영대 학생들은 영어강의를 10개 이상 수강해야 졸업할 수 있다. 고려대는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UBC), 미국 펜실베이니아대ㆍUC데이비스, 영국 로열할러웨이대, 호주 그리피스대 등에 교환학생들의 원활한 생활을 위해 직접 기숙사를 설립했다.
졸업생 강경민 씨는 “교환학생 기간은 원래 6개월이었지만 6개월 더 있고 싶다고 얘기해 학교 측에서 학점을 리포트로 대체할 수 있게 해줬다. 재학 시절 4년 중 1년 반 정도롤 해외에서 보냈다”고 말했다.
고려대의 명소로는 일명 ‘고엑스(고대+코엑스)’로 불리는 자연계 캠퍼스의 ‘하나 스퀘어’가 있다.
고려대는 2006년 주차장을 뜯어내고 지하 3층 지상 1층, 연면적 8500평의 학생 편의시설을 만들었다.
이 건축물은 선박 바닥 모양의 유리 천장을 통해 지하 1층까지 햇빛이 들어오고 건물 양쪽 끝에 유리 계단과 폭포형 분수가 설치돼 있다.
대형 쇼핑몰을 연상케 하는 시설 안에는 강의실과 세미나실, 열람실뿐 아니라 피트니스센터, 서점 등이 갖춰져 있다.
서민철 씨(사회 4년)는 “캠퍼스 어디를 가도 24시간 개방하는 열람실이 많아 공부하기에는 최고의 환경”이라고 말했다.
최만수 한국경제신문 기자 bebop@hankyung.com
고려대를 처음 방문한 사람이나 오랜만에 모교를 찾은 졸업생들은 정문에 들어서자마자 눈이 휘둥그레진다.
정겹지만 다소 촌스러운 느낌도 있었던 예전 풍경과는 다르게 캠퍼스가 현대적이고 세련되게 변했기 때문이다. 고풍스러운 본관과 대학원 건물 등은 예전 그대로지만 경영관과 지하캠퍼스, 100주년 기념관 등 웅장한 건물들이 곳곳에 들어섰다.
캠퍼스를 거닐다보면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은 물론 초등학생들도 자주 볼 수 있다. 이곳에서 만난 김수진 양(18)은 “목표로 하고 있는 고대 캠퍼스를 직접 보고 싶어 왔다”며 “듣던 것보다 건물이 아름답고 시설이 잘 돼 있어 놀랐다”고 말했다.
고려대는 1905년 설립됐다. 출발부터 일제의 압박과 재정난으로 어려움을 겪던 고려대는 1932년 ‘교육구국(敎育救國)’을 내세운 인촌 김성수가 경영을 맡으면서 본격적인 성장을 시작했다.
고려대는 독재정권에 항거하여 1960년 4·19 혁명의 촉매제가 된 4·18 의거를 비롯해 각종 시위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1975년에는 고려대를 겨냥해 긴급조치 7호가 내려지기도 했다. ‘민족 고대’라는 별칭은 이러한 역사에 근거한 것이다.
고려대는 4·18 의거를 기념하기 위해 매년 4월18일 4·18 기념 마라톤과 구국대장정을 진행한다.
헌화 행사에 이어 오전에는 기념 마라톤이, 오후에는 구국대장정이 진행된다.
재학생뿐 아니라 교직원, 동문들이 참가하며 학교를 출발하여 4·19 국립묘지를 거쳐 다시 학교로 돌아오는 코스다.
이렇게 역사가 깊은 만큼 고려대에는 전통도 많다. 대표적인 것이 사발식이다.
신입생들이 커다란 사발에 부어 놓은 막걸리를 선배들이 불러주는 막걸리 찬가에 맞춰 마시는 행사다.
신입생환영회에서 많은 양의 막걸리를 마시게 하는 것은 “획일화된 교육과 얽매인 생활의 묵은 때를 모두 토해 비워버리고 학문의 진리와 민족의 정의를 위해 나아가는 고대인이 되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한다.
하지만 캠퍼스가 자유로운 분위기로 바뀌면서 사발식도 형식만 갖춘 행사로 변하고 있다. 강압적인 분위기는 사라졌고 선배들은 물론 교수도 함께 참여하고 즐기는 이벤트가 됐다.
권석민 씨(독어독문 2년)는 “요즘은 강권하는 분위기가 거의 없다. 못 마시겠다고 하면 억지로 권하지 않는다. 사발식은 형식에 불과하다. 학과별로 다르겠지만 대부분 술을 강요하지 않는 분위기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고려대와 연세대의 자존심을 건 ‘2011 정기 고·연전(연·고전)’이 지난 9월에 열렸다. 5개 종목(축구·야구·농구·럭비·아이스하키)에서 뜨거운 승부가 펼쳐졌다.
올해는 고려대가 3승 1무 1패로 이겼다.
역대 성적에서는 연세대가 18승 8무 15패로 앞선다. 양측 모두 모교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해 고려대 출신들은 약국에 가서도 ‘연고 달라’는 말을 절대로 하지 않는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다.
고·연전의 시작은 해방 직후인 1945년 12월 제1회 두 학교의 전신인 보성전문·연희전문 졸업생의 축구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같은해 농구시합이 잇따라 열렸고 다음해인 46년 5월에는 두 학교 현역 선수들의 축구가, 10월에는 축구와 농구대회가 열리면서 정기 대항전으로 발전했다.
한때 주요 종목의 국가대표 선수들이 대부분 두 학교 소속이라 연·고전은 양교 출신만이 아닌 국민의 관심사가 되기도 했다.
열기가 지나쳐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 적도 있지만 고·연전은 나름대로 대학문화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이 대회를 통해 수많은 스타와 라이벌이 생기기도 했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야구의 최동원 선수와 선동열 전 삼성 감독. 농구스타 김현준과 이충희 등 셀 수 없을 정도다.
두 학교 졸업생들은 “젊은 시절의 추억을 공유하며 경쟁하다 사회에 진출한 뒤에도 애교심과 협동심을 살려나갈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박정훈 씨(경영 2년)는 “올해 농구경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20점 차이로 지고 있다가 역전을 거듭해 결국 이겼을 때 희열을 느꼈다”고 말했다.
김성욱 씨(산업경영공학 2년)는 “경기가 끝난 후 선배들이 술집을 통째로 빌려줬다.
안암과 신촌 아무 술집이나 들어가도 모두 공짜로 먹을 수 있었다. 평생 잊지 못할 경험”이라고 했다.
고려대는 국내 최고의 명문사학에서 세계의 명문대학으로 거듭나기 위해 힘을 쏟고 있다.
고려대는 현재 79개국 744개교와 국제교류 협정을 맺고 있으며 2010년에는 총 1062명의 고려대 학생들에게 교환·방문학생 프로그램 등을 통해 해외에서 공부할 기회를 제공했다.
고려대 안에서 수학하는 외국인 학생도 89개국 2300여명에 이른다.
교양 외국어 과목은 모두 영어를 비롯한 원어로 진행하고 있으며 특히 국제어문학부는 ‘7+1프로그램’에 따라 전체 8학기 중 해당 언어권 현지 대학에서 1학기를 배우도록 권장한다.
해외 체류 시에는 장학금도 지급한다. 경영대는 전체 강의 144개 중 93개인 65%를 영어로 진행하며 신입생을 위한 특별 영어 강좌도 있다.
경영대 학생들은 영어강의를 10개 이상 수강해야 졸업할 수 있다. 고려대는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UBC), 미국 펜실베이니아대ㆍUC데이비스, 영국 로열할러웨이대, 호주 그리피스대 등에 교환학생들의 원활한 생활을 위해 직접 기숙사를 설립했다.
졸업생 강경민 씨는 “교환학생 기간은 원래 6개월이었지만 6개월 더 있고 싶다고 얘기해 학교 측에서 학점을 리포트로 대체할 수 있게 해줬다. 재학 시절 4년 중 1년 반 정도롤 해외에서 보냈다”고 말했다.
고려대의 명소로는 일명 ‘고엑스(고대+코엑스)’로 불리는 자연계 캠퍼스의 ‘하나 스퀘어’가 있다.
고려대는 2006년 주차장을 뜯어내고 지하 3층 지상 1층, 연면적 8500평의 학생 편의시설을 만들었다.
이 건축물은 선박 바닥 모양의 유리 천장을 통해 지하 1층까지 햇빛이 들어오고 건물 양쪽 끝에 유리 계단과 폭포형 분수가 설치돼 있다.
대형 쇼핑몰을 연상케 하는 시설 안에는 강의실과 세미나실, 열람실뿐 아니라 피트니스센터, 서점 등이 갖춰져 있다.
서민철 씨(사회 4년)는 “캠퍼스 어디를 가도 24시간 개방하는 열람실이 많아 공부하기에는 최고의 환경”이라고 말했다.
최만수 한국경제신문 기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