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리더의 요람··· '지하 캠퍼스' 새로운 명물로
가을바람과 함께 본격적인 대학 입시철이 왔다.
이미 수시 접수가 시작됐고 정시 전형 등 일정이 줄줄이 이어진다. 정보라 양(18)은 목표를 이화여대로 잡고 있다.
정양은 인터넷을 통해 입시와 전공 정보를 얻었지만 실제 캠퍼스 생활이 어떨지 궁금해 한다. ‘여대라서 심심하지는 않을까’‘남학생도 있다는데 사실일까’…
생글생글은 이번호부터 대학들을 방문해 캠퍼스 정보와 함께 선배들의 생생한 조언을 전달한다. ‘캠퍼스 투어’ 시리즈를 통해 목표 대학으로 미리 들어가보자.
이화여대(총장 김선욱)는 1886년 단 한 명의 학생으로 시작한 학교다.
미국인 선교사 메리 스크랜턴 여사는 하얀 배꽃이 날리는 황화방 인근에 학당을 세우고 학생을 찾아 나섰다.
125년이 지나 그가 뿌린 하나의 씨앗은 아름드리 나무숲이 됐다. 18여만 동문을 배출한 이화여대는 여성 전문 인력의 요람으로 자리잡았다.
# 한국 여성계의 산 역사
우리나라의 근현대사와 궤를 같이한 이화여대는 ‘최초’라는 수식어를 많이 달고 다닌다.
최초의 근대 여성 교육기관으로 출발해 1946년에는 국내 최초로 종합대학 인가를 받았다. 21세기에는 모든 수업을 영어로 진행하는 국제학부를 처음으로 설립했다.
이화여대 출신 인재들도 ‘여성 1호’ 기록을 보유한 사람들이 많다.
최초의 여성 국무총리인 한명숙 씨와 첫 여성 헌법재판소 재판관인 전효숙 씨가 동문이다.
최초의 여성변호사 이태영, 최초의 여의사 박에스더, 첫 여성 언론사 사장 장명수, 첫 여성 금융통화위원 김성남 씨도 이화 출신이다.
동계올림픽 유치위원회 대변인 나승연, 아리랑국제방송 사장 손지애, 앵커 김주하 등 언론·문화계에도 이화의 바람은 거세다.
이현민 씨(교육 2년)는 “얼마전 학교에서 손지애 사장의 강연을 듣고 여성 리더의 꿈을 갖게 됐다”며 “최고의 여자대학을 다닌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 하버드와 서머스쿨
이화여대는 세계적인 석학 교수진의 강연을 자주 연다.
주요 교수진으로는 노벨화학상 수상자 로버트 그럽스 교수를 비롯해,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르 클레지오, 노벨물리학상 조지 스무트 교수 등이 있다.
또한 62개 국가 802개 대학 및 기관과 교류해 매년 1500명 이상의 재학생을 세계 곳곳에 파견하고 있으며 하버드대와 이화-하버드 서머스쿨을 운영하고 있다.
미국 UC버클리에 교환학생을 다녀온 노유진 씨(언론정보 4년)는 “하버드대 베이징대 등 해외 명문대들과 교류 시스템이 잘 돼 있어서 대학 선택 범위가 넓다”고 말했다.
해외에서 여름 계절학기를 진행하는 교수인솔 해외학습 프로그램도 인기다.
지난 여름방학에는 350여명의 학생들이 24개국을 방문해 다양한 현장학습의 기회를 가졌다.
해외 각국의 유엔, 대사관, 정부기관, 연구소 등으로 탐사를 보내는 ‘EGI 해외탐사 프로그램’ 등도 구축돼 있어 글로벌 경험을 쌓을 기회가 많다.
이화여대는 기독교 계통의 사립대학이기 때문에 학생들은 정기적으로 여는 예배의식인 채플에 의무적으로 참석해야 한다.
매학기 채플을 이수해야 졸업이 가능하고 한 학기에 두 번 이상 빠지면 안 된다.
이경희 씨(사학 2년)는 “채플 시간에 예배만 보는 것이 아니라 음악회나 명사 강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어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 남자 없어도 잘해요
배꽃 날리는 봄이 되면 ‘이화인 하나 되기 축구대회’가 열린다.
치열한 몸싸움은 기본이고 비가 올 때는 수중전도 마다하지 않는다.
1학년 때부터 스트라이커로 활약했다는 오예진 씨(정치외교 졸업)는 “우승해도 남는 것은 명예밖에 없지만 선후배 간의 끈끈한 정을 나눌 수 있었다”고 말했다.
남자가 없다 보니 MT 때 굳은 일도 도맡아야 한다.
김기영 씨(경제 4년)는 “무거운 짐을 드는 것부터 텐트치는 것까지 모든 걸 우리끼리 해 책임감과 독립심이 더 길러졌다”며 “여성 리더로 클 수 있는 좋은 경험을 한 것 같다”고 했다.
남학생이 이대에 입학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때 무용과에서 한두 명을 뽑는다는 소문도 있었지만 사실이 아니다. 그렇다고 남학생 출입까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캠퍼스를 돌아보면 학교식당에서 혼자 김밥을 먹는 남학생들도 쉽게 볼 수 있다.
교류학점이 가능하기 때문에 연세대 서강대 등 인근 대학 남학생들이 수업을 들으러 오는 경우도 많다.
글로벌 마케팅 수업을 듣다가 남자친구를 사귀었다는 이유진 씨(중어중문 졸업)는 “오페라처럼 특이하고 재미있는 과목일수록 남학생들이 많이 들으러 온다”고 귀띔했다.
다만 오후 10시 이후에는 남자들의 출입이 금지된다. 오후 7시부터는 학생 자치 순찰기구인 ‘이화캠퍼스지킴이’가 교내를 순찰한다. 우지영 씨(언론정보 졸업)는 “활동 지급비가 시간당 6000원으로 짭짤하기 때문에 경쟁률이 높다”고 말했다.
이대 앞에는 유명한 패션숍, 미용실 등이 많다.
그래서일까 예나 지금이나 ‘이대생들은 잘 꾸미고 다닌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경희 씨는 “고등학교 후배들에게 이대생들은 정말 다 예쁘냐는 질문을 받았는데 용돈이 부족해서 안 꾸미고 다니는 친구들이 더 많다”며 웃었다.
이씨는 “여자들끼리만 있다 보니 개성 있게 입고 다니는 친구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 이대의 랜드마크 'ECC'
이대에서 가장 가보고 싶은 건물로 꼽히는 ECC(Ehwa campus complex). 정문에서 오른쪽을 바라보면 지하로 내려가는 거대한 길이 보인다.
길 옆으로 지하 6층 규모의 건물이 서서히 상승하는 자연지형과 맞물려 병풍처럼 늘어서 있다.
2008년 4월에 완공된 이곳은 세계적인 건축가 도미니크 페로가 설계했다. 건물 내에는 자유열람실, 교수 연구실, 세미나실, 갤러리, 극장 등의 다양한 교육 문화 복지시설이 들어서 있다.
김지혜 씨(독어독문 졸업)는 “그룹 스터디를 할 수 있는 장소가 많아서 다른 학교 학생들도 찾아와 이용할 정도”라고 말했다.
ECC에는 취업에 관심 있는 학생들을 위한 전용공간인 ‘Job cafe’가 있다.
이곳에서는 취업 관련 자료 및 도서를 대출할 수 있으며 취업지원관에게 커리어컨설팅을 받을 수도 있다.
ECC에는 학생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이 많다. 박정민 씨(환경공학 2년)는 “열람실에 수면실이 마련돼 있어 시험기간에 자주 이용하고 있다”며 “극장, 서점, 은행 등 생활에 필요한 곳들이 모두 있어 하루 종일 ECC 안에만 있을 때도 있다”고 말했다.
최만수 한국경제신문기자 bebop@hankyung.com
가을바람과 함께 본격적인 대학 입시철이 왔다.
이미 수시 접수가 시작됐고 정시 전형 등 일정이 줄줄이 이어진다. 정보라 양(18)은 목표를 이화여대로 잡고 있다.
정양은 인터넷을 통해 입시와 전공 정보를 얻었지만 실제 캠퍼스 생활이 어떨지 궁금해 한다. ‘여대라서 심심하지는 않을까’‘남학생도 있다는데 사실일까’…
생글생글은 이번호부터 대학들을 방문해 캠퍼스 정보와 함께 선배들의 생생한 조언을 전달한다. ‘캠퍼스 투어’ 시리즈를 통해 목표 대학으로 미리 들어가보자.
이화여대(총장 김선욱)는 1886년 단 한 명의 학생으로 시작한 학교다.
미국인 선교사 메리 스크랜턴 여사는 하얀 배꽃이 날리는 황화방 인근에 학당을 세우고 학생을 찾아 나섰다.
125년이 지나 그가 뿌린 하나의 씨앗은 아름드리 나무숲이 됐다. 18여만 동문을 배출한 이화여대는 여성 전문 인력의 요람으로 자리잡았다.
# 한국 여성계의 산 역사
우리나라의 근현대사와 궤를 같이한 이화여대는 ‘최초’라는 수식어를 많이 달고 다닌다.
최초의 근대 여성 교육기관으로 출발해 1946년에는 국내 최초로 종합대학 인가를 받았다. 21세기에는 모든 수업을 영어로 진행하는 국제학부를 처음으로 설립했다.
이화여대 출신 인재들도 ‘여성 1호’ 기록을 보유한 사람들이 많다.
최초의 여성 국무총리인 한명숙 씨와 첫 여성 헌법재판소 재판관인 전효숙 씨가 동문이다.
최초의 여성변호사 이태영, 최초의 여의사 박에스더, 첫 여성 언론사 사장 장명수, 첫 여성 금융통화위원 김성남 씨도 이화 출신이다.
동계올림픽 유치위원회 대변인 나승연, 아리랑국제방송 사장 손지애, 앵커 김주하 등 언론·문화계에도 이화의 바람은 거세다.
이현민 씨(교육 2년)는 “얼마전 학교에서 손지애 사장의 강연을 듣고 여성 리더의 꿈을 갖게 됐다”며 “최고의 여자대학을 다닌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 하버드와 서머스쿨
이화여대는 세계적인 석학 교수진의 강연을 자주 연다.
주요 교수진으로는 노벨화학상 수상자 로버트 그럽스 교수를 비롯해,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르 클레지오, 노벨물리학상 조지 스무트 교수 등이 있다.
또한 62개 국가 802개 대학 및 기관과 교류해 매년 1500명 이상의 재학생을 세계 곳곳에 파견하고 있으며 하버드대와 이화-하버드 서머스쿨을 운영하고 있다.
미국 UC버클리에 교환학생을 다녀온 노유진 씨(언론정보 4년)는 “하버드대 베이징대 등 해외 명문대들과 교류 시스템이 잘 돼 있어서 대학 선택 범위가 넓다”고 말했다.
해외에서 여름 계절학기를 진행하는 교수인솔 해외학습 프로그램도 인기다.
지난 여름방학에는 350여명의 학생들이 24개국을 방문해 다양한 현장학습의 기회를 가졌다.
해외 각국의 유엔, 대사관, 정부기관, 연구소 등으로 탐사를 보내는 ‘EGI 해외탐사 프로그램’ 등도 구축돼 있어 글로벌 경험을 쌓을 기회가 많다.
이화여대는 기독교 계통의 사립대학이기 때문에 학생들은 정기적으로 여는 예배의식인 채플에 의무적으로 참석해야 한다.
매학기 채플을 이수해야 졸업이 가능하고 한 학기에 두 번 이상 빠지면 안 된다.
이경희 씨(사학 2년)는 “채플 시간에 예배만 보는 것이 아니라 음악회나 명사 강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어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 남자 없어도 잘해요
배꽃 날리는 봄이 되면 ‘이화인 하나 되기 축구대회’가 열린다.
치열한 몸싸움은 기본이고 비가 올 때는 수중전도 마다하지 않는다.
1학년 때부터 스트라이커로 활약했다는 오예진 씨(정치외교 졸업)는 “우승해도 남는 것은 명예밖에 없지만 선후배 간의 끈끈한 정을 나눌 수 있었다”고 말했다.
남자가 없다 보니 MT 때 굳은 일도 도맡아야 한다.
김기영 씨(경제 4년)는 “무거운 짐을 드는 것부터 텐트치는 것까지 모든 걸 우리끼리 해 책임감과 독립심이 더 길러졌다”며 “여성 리더로 클 수 있는 좋은 경험을 한 것 같다”고 했다.
남학생이 이대에 입학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때 무용과에서 한두 명을 뽑는다는 소문도 있었지만 사실이 아니다. 그렇다고 남학생 출입까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캠퍼스를 돌아보면 학교식당에서 혼자 김밥을 먹는 남학생들도 쉽게 볼 수 있다.
교류학점이 가능하기 때문에 연세대 서강대 등 인근 대학 남학생들이 수업을 들으러 오는 경우도 많다.
글로벌 마케팅 수업을 듣다가 남자친구를 사귀었다는 이유진 씨(중어중문 졸업)는 “오페라처럼 특이하고 재미있는 과목일수록 남학생들이 많이 들으러 온다”고 귀띔했다.
다만 오후 10시 이후에는 남자들의 출입이 금지된다. 오후 7시부터는 학생 자치 순찰기구인 ‘이화캠퍼스지킴이’가 교내를 순찰한다. 우지영 씨(언론정보 졸업)는 “활동 지급비가 시간당 6000원으로 짭짤하기 때문에 경쟁률이 높다”고 말했다.
이대 앞에는 유명한 패션숍, 미용실 등이 많다.
그래서일까 예나 지금이나 ‘이대생들은 잘 꾸미고 다닌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경희 씨는 “고등학교 후배들에게 이대생들은 정말 다 예쁘냐는 질문을 받았는데 용돈이 부족해서 안 꾸미고 다니는 친구들이 더 많다”며 웃었다.
이씨는 “여자들끼리만 있다 보니 개성 있게 입고 다니는 친구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 이대의 랜드마크 'ECC'
이대에서 가장 가보고 싶은 건물로 꼽히는 ECC(Ehwa campus complex). 정문에서 오른쪽을 바라보면 지하로 내려가는 거대한 길이 보인다.
길 옆으로 지하 6층 규모의 건물이 서서히 상승하는 자연지형과 맞물려 병풍처럼 늘어서 있다.
2008년 4월에 완공된 이곳은 세계적인 건축가 도미니크 페로가 설계했다. 건물 내에는 자유열람실, 교수 연구실, 세미나실, 갤러리, 극장 등의 다양한 교육 문화 복지시설이 들어서 있다.
김지혜 씨(독어독문 졸업)는 “그룹 스터디를 할 수 있는 장소가 많아서 다른 학교 학생들도 찾아와 이용할 정도”라고 말했다.
ECC에는 취업에 관심 있는 학생들을 위한 전용공간인 ‘Job cafe’가 있다.
이곳에서는 취업 관련 자료 및 도서를 대출할 수 있으며 취업지원관에게 커리어컨설팅을 받을 수도 있다.
ECC에는 학생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이 많다. 박정민 씨(환경공학 2년)는 “열람실에 수면실이 마련돼 있어 시험기간에 자주 이용하고 있다”며 “극장, 서점, 은행 등 생활에 필요한 곳들이 모두 있어 하루 종일 ECC 안에만 있을 때도 있다”고 말했다.
최만수 한국경제신문기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