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가 조선의 배추김치를 버무렸다.

고려 땐 무·가지·오이·부추가 주재료

1850년께 中서 배추 종자 유입 '토착화'


[경제사 뒤집어 읽기] (22) 침채·딤채가 김치가 되기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언제부터 김치를 먹었을까.

고대부터 채소를 발효시킨 음식이 존재했을 테지만 오늘날과 같은 형태로 김치가 정착한 시기는 조선시대였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 문헌에서 김치를 가리키는 용어로는 해(酉+右+皿),저(菹),지(漬),침채(沈菜) 등이 있다.

아마도 침채(沈菜)의 옛날 발음인 '딤채'가 '김치'가 되었을 것이다.

'해'는 《삼국사기》 신문왕 3년조에 폐백 품목의 하나로 나오고,'저'는 《세종실록》 오례(五禮)에 처음 보인 후 여러 문헌에 많이 등장한다.

예컨대 《임원십육지(林園十六志)》에서 '저는 날채소를 소금에 절여 차가운 곳에 두어 익힌 것,즉 한 번 익혀 먹는 침채류'라고 정의를 내리고 있다.

여러 문헌을 이용해 김치의 발달을 정리한 연구를 보면 고대에 '해'식의 김치로 시작했다가 고려시대를 거치면서 침채형 김치가 추가된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고려시대까지는 무 가지 오이 부추 파 등이 주재료였고 양념으로는 마늘 생강 귤껍질 천초 등이 쓰였다.

조선 전기의 《수운잡방(需雲雜方)》이나 《음식디미방》 같은 문헌을 봐도 김치의 재료는 이전과 큰 차이가 없다.

이런 기록들을 보면 뭔가 이상한 점이 눈에 띈다.

김치 양념 가운데 고추가 없으니 매운 맛이 안났을 테고,무엇보다 배추를 사용하지 않았으니 우리가 요즘 많이 먹는 배추 통김치라는 것이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배추김치가 처음 등장하는 것은 조선 중엽부터다.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1766)에 김치 재료로 배추가 보인다. 다만 이 시기에는 널리 쓰인 것 같지는 않다.

우리나라는 본래 배추 재배가 쉽지 않아 19세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좋은 배추가 많이 났다. 이 점 역시 문헌에서 확인할 수 있다.

1809년에 나온 《규합총서(閨閤叢書)》에 여러 종류의 김치들이 나오지만 여전히 배추 통김치는 보이지 않는다.

배추 통김치를 처음 거론한 책은 19세기 말에 나온 요리책 《시의전서(是議全書)》다.

아마도 중국의 호북지방 원산인 배추 종자가 우리나라에 들어와 토착화한 것은 1850년께로 짐작된다.

'배추'라는 말도 '백채(白寀)'에서 나왔을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사람들이 배추김치를 일반적으로 많이 먹은 것은 사실상 150년 정도에 불과하다. 윤서석 선생의 《식생활문화의 역사》에 이 같은 내용이 다 나온다.

양념으로 많이 쓰이는 고추의 도입 역시 중요한 문제다.

중남미가 원산지인 고추는 어떻게 해서 우리나라까지 들어왔을까.

콜럼버스가 아메리카에 처음 갔을 때 벌써 고추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그의 항해일지에는 이런 기록이 있다. '인도인들(인디언,즉 아메리카 원주민)은 음식을 먹을 때 우리의 고추보다 훨씬 맛이 강한 향신료를 함께 먹는데 이것을 아히(aji)라 부른다. '

아메리카에서 고추는 콜럼버스 이전에 수천년 이상 사용된 양념이다.

멕시코의 아스텍인들은 강낭콩과 옥수수를 고추와 함께 먹었다. 그들은 '칠리'라 부르던 고추를 남쪽의 열대지방으로 보급시켰다.

아스텍의 지배 아래 있던 토토나케(오늘날의 베라크루스와 푸에블라 지방) 사람들은 매년 1600카르가스(1카르가스는 약 40㎏)의 고추를 공물로 바쳐야 했다.

고추를 처음 맛본 스페인 사람들은 처음에 이 작물을 '인도의 후추'라는 뜻인 피미엔타 데 라스 인디아스(pimienta de las Indias)라고 명명했다가,강력한 맛을 더 강조하기 위해 남성 명사인 피미엔토(pimiento)로 바꾸었다. 16세기 중반 고추가 스페인에 들어와서 음식 맛을 강하게 하는 데 일부 쓰였고 이탈리아로 건너가서는 페페론치토(peperoncito)라는 이름을 얻었다.

곧이어 유럽 전역에 보급되었는데,특히 헝가리에서는 개량종 고춧가루를 이용해 만드는 향신료 파프리카가 탄생했다.

한국이나 중국,일본 등 동아시아에 고추가 어떤 경로로 들어왔는지는 정확히 추적하기 힘들다.

음식의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바로는 어떤 식재료가 원산지에서 다른 지역으로 전파되는 과정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다는 것이다.

이는 고추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에서는 고추가 일본에서 한반도로 들어왔다고 보는 견해가 우세하다. 우리 문헌에 그런 식으로 많이 기술돼 있기 때문이다.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권10에는 '번초(蕃椒)를 향명(鄕名)으로 고초(苦草)라 한다.

남과(南瓜)는 속칭 호박이라 칭한다.

둘 다 원래 남번(南蕃)에서 나는데 고초를 남번초(南蕃椒)라 하며 호박은 또한 호과(號瓜)라 한다'고 돼 있다.

《지봉유설(芝峯類設)》 권20에는 '남번초에는 독이 있다.

왜국에서 처음 온 것이며,속칭 왜개자(倭芥子)라 한다'고 돼 있어 일본을 통해 고추가 들어왔다고 보고 있다.

그렇지만 일본에서는 거꾸로 우리나라를 통해 고추가 전래됐다 해서 고려초(高麗草)라 불렀다고 한다.

아마도 비슷한 시기에 한 · 중 · 일 삼국에 고추가 전래됐을 것으로 보인다.

고대 이래의 음식 전통과 중국의 배추,중남미의 고추가 더해져 우리가 즐겨 먹는 배추김치가 완성됐다.

그것은 생각보다 가까운 과거의 일이다.

단군 이래 먹었으리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사실 배추김치는 근대 이후에 생긴 세계화의 산물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