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처럼,우리에게 다가오는···

[한국 작가가 읽어주는 세계문학] (8) 프란츠 카프카 ‘소송’
카프카를 생각하면 늘 오후 두 시가 떠오른다.

'산업재해보험공단'에서 십사 년 동안 근무했던 그는 오후 두 시에 퇴근을 했다지.

한동안 나는 오후 두 시에 출근을 했던 적이 있다.

오후 두 시 사무실로 향하면서 나는 종종 카프카를 떠올리곤 했다.

어느 날 문득 나는 뒤를 돌아다보았는지 모르겠다. 퇴근길의 카프카가 방금 나를 지나쳐간 것 같은 착각에 휩싸여.

오후 두 시는 틀림없는 낮인데도 불구하고, 그로 인해 어스름과 차가운 안개의 이미지가 함께 떠오르는 시간이 되어버렸다.

내가 카프카의 「소송」을 기다리던 시간도 오후 두 시쯤이었다.

나는 「소송」을 무척이나 기다렸는데, 내가 꼭 「소송」을 읽어야만 한다는 그 어떤 의무감에 사로잡혔기 때문이었다.

그 소설이 20세기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알려졌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잠깐 엉뚱한 이야기를 하자면) 우리가 거의 날마다 먹는 소와 돼지와 닭들이 어떻게 키워지고 도살되는지 그 과정을 취재한 방송을 나는 얼마전에 본 적이 있다.

인간의 식탁에 오르기 위해 번식되고 살찌워지는 가축들의 공포에 사로잡힌 눈.

그 눈에 비친 인간은 절대의 권위를 부여받은 심판자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가축은 자신들이 왜 도살되는지 모르는 채, 심지어 곧 도살되리라는 사실조차 모르는 채 도살장에 끌려가고 처형당한다.

내게 그 과정은 불합리하고 비논리적이다 못해 그릇된 심판의 한 과정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나는 「소송」의 K가 겪는 소송과 심판의 과정이 가축들이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그 과정과 어쩐지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송」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나는 주인공 요제프 K에 대해 먼저 이야기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낀다.

은행 간부인 K는 도덕적이거나 선량한 인간이 결코 아니다.

소심하고 우울한 인간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비판적이고 냉소적이면서, 공격적이기까지 하다.

침묵이 자신에게 유리할 수도 있다는 걸 깨닫기에 그는 달변가다.

때때로 변덕이 죽 끓듯 해 모순적이고 이기적인 인간의 전형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K가 카프카로 혼돈되면서) K에게 사랑에 가까운 감정마저 느꼈는데(일상에서는 선량함을 타고난 사람에게 매혹되지만), K가 결코 착하고 순진한 사람이 아니라서 그 감정이 가능했을 것이다.

K는 때때로 어이없고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

"누군가 요제프 K를 중상 모략한 것이 틀림없다.

그가 무슨 특별한 나쁜 짓도 하지 않은 것 같은데.

" 그러므로 K는 자신이 생각하기에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닌," 누가 무엇 때문에 고소했는지조차 모르는 소송을 별일 아닌 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K는 일 년 뒤 사형에 처해진다. 줄거리로만 이해하자면 단순하기 그지없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소송」을 펼치는 순간 미로 속으로 발을 내딛는 것 같은 기분이 든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소송을 대하는 '피고인' K의 입장과, 소송 과정에서 K가 만나는 무수한 사람들의 관계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그것들은 미로처럼 얽혀 부조리하고 엉뚱한 상황을 끊임없이 만들어낸다.

K에게 법원은 신성한 권위의 장소가 아니라 도덕적으로 타락한 장소다.

'다락방에 앉아 있는' 예심판사는 법원 정리의 아내를 농락하려는 부도덕한 인간이다.

그러한 인간이 과연 K를 심판한다는 것이 가당하기나 한가?

소송은 일 년에 걸쳐 지루하게 계속되지만 끝내 그의 죄가 무엇인지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는다.

소송은 K에게 '아무런 가르침'도 반성도 주지 못하고 사형이라는 극단적이고 황당한 결론에 도달한다.

서른한 번째 생일날 K가 사형에 처해지는 순간, 법원이란 것이,그리고 법이란 것이 과연 정말로 존재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을 누구나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K는 사형에 처해지는 '종말'의 순간에도, 사형을 집행하는 낯설고 '여위어 보이는 어떤 사람' 에 대한 의문에 혼란스러워한다.

'누굴까? 친구일까? 좋은 사람일까? 관련된 사람일까? 도와주려는 사람일까? 한 사람일까? 아니면 전체일까? 아직 도움이 가능한 것일까? 생각해내지 못한 반대 변론이라도 있는 걸까?'

「소송」은 내게 구원의 문제를 다룬 소설로도 읽힌다. 괴물이 되어버린 법과 질서, 권력 앞에서 한 인간이 스스로를 변론하고 구원한다는 것은 과연 가능할까.

죽어가는 K를 지켜보면서 나는 스스로에게 의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나 자신은 K일까? 아니면 K의 소송과 관련된 사람일까? K의 친구일까? K를 도와주려는 사람일까? 아니면 일 년 전 체포되었다는 사실을 K에게 알리러 온 감시인들 중 한 명일까?

나는 어쩐지 「소송」에 대해 이야기하려 애썼지만 아무것도 이야기하지 못한 기분이 든다.

생전에 카프카는 책을 사랑했다고 한다. 그는 행복해지기 위해 책을 읽었던 것은 아닌 듯하다.

그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책이 "우리를 몹시 고통스럽게 해주는 불행처럼, 우리 자신보다 더 사랑했던 사람의 죽음처럼, 우리가 모든 사람을 떠나 인적 없는 숲속으로 추방당한 것처럼, 자살처럼, 우리에게 다가오는 책"이라고 했다. "

한 권의 책은 우리들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만 한다"고.

바로 그러한 책이 「소송」이다.

소설을 쓰는 사람으로서, 책을 사랑하고 싶은 독자로서, 나약하고 모순적인 한 인간으로서 「소송」을 이제라도 읽을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김 숨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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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번째 생일날 아침 갑자기 체포 되는데···

⊙ ‘소송’줄거리

프란츠 카프카는 1883년 체코 프라하에서 태어나 독일어를 쓰는 유대인 사회에서 성장했다.

대학 시절 단편소설을 집필할 만큼 문학에 대한 열의가 컸지만 가족에 대한 의무감으로 대학 공부를 그만두지는 못했다.

1906년 법학박사 학위를 받고 법원에서 일하다 결국 법조계 생활을 접고 노동자산재보험공사로 직장을 옮겼다.

카프카는 낮에는 직장에 다니면서 밤에는 글을 쓰는 생활을 계속했고, 1917년 폐결핵 진단을 받은 후에도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결국 발병 7년 만인 1924년 세계문학사에 길이 남을 작품들을 남기고 마흔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소송」은 20세기 최고의 문제 작가 카프카의 대표작이다.

은행의 부장으로 있는 요제프 K는 서른 번째 생일날 아침 하숙집에서 두 명의 감시인에게 갑자기 체포된다.

그 후 그는 자신도 알지 못하고, 그 누구도 알려주지 않는 어떤 죄로 인해 소송에 휘말려 지내다가 결국 서른한 번째 생일날 밤에 처형당한다.

그가 정해진 종말과의 헛된 싸움을 벌여나가는 그 1년 동안, 소설 속에서는 이성적으로는 납득하기 어려운 사건들이 대거 등장한다. 법정은 가정집과 연결되어 있고, 법원과 관계된 인물들은 하나같이 부패했다.

주인공은 모든 여인과 성적 관계로 연결되고, 변호사는 의뢰인을 노예처럼 다룬다.

끊임없는 구속과 억압, 관료주의가 지휘하는 부조리한 현대사회에서 개인이 겪는 무력감을 담아낸 소설 「소송」은 20세기 가장 중요한 소설 중 하나라는 평가를 받으며, 카프카를 위대한 작가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한국 작가가 읽어주는 세계문학] (8) 프란츠 카프카 ‘소송’
원제:Der Prozess

저자:Franz Kafka

발표:1925년

분야:독일 문학

한글번역본

제목:소송

옮긴이:권혁준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023(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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