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에는 모두 자신으로 돌아가는 이야기
어느 날, 내가 자는 동안 지구가 태양 주위를 무진장 빨리 도는 바람에 하룻밤 새 몇 천 년이 지나갔다고 치자. 이제 그만 일어나라고 누군가 흔들어 눈을 떴더니 거기 최첨단 미래 소재의 옷을 입은 여자가 서 있었다.
"지구가 당신만의 별이 됐다고 이렇게 계속 잠만 잘 건가요?"
"나만의 별이 됐다니…… 다른 사람들은 모두 어디에 있나요?"
그녀는 하늘을 가리켰다.
"우리의 과학 기술은 너무나 발달해서 한 별에서 모여 살 필요가 없어요. 우주에는 별이 무한하게 많거든요. 지금은 별 하나에 한 사람씩 살아요. "
"그럼 다른 사람들을 만나려면 어떻게 해야만 하나요?"
"일단 우주선 안에 들어가서 외치세요. 저별로가! 그러면 원하는 별로 갈 수 있어요. 다시 돌아오고 싶으면 이별로가, 라고 외치세요. "
우리는 가까운 별로 가서 과연 거기에는 어떤 사람이 사는지 만나보기로 하고 우주선에 올라탔다.
저별로가! 내가 외쳤다.
덜컹덜컹 우주선이 움직였다.
너무 빨리 가면 여행의 묘미를 잃을까봐 일부러 속도를 늦췄다는 게 그녀의 설명이었다.
대기권을 벗어나자 우주공간으로 무수히 많은 별들이 반짝이는 모습이 보였다.
"저걸 보니까 언젠가 읽은 소설의 한 구절이 떠오르네요. "
"어떤 소설인가요?"
"르 클레지오의 [황금 물고기]예요.
태어나자마자 납치돼 팔려온 여자아이 이야기예요.
이름은 라일라.
하지만 진짜 이름은 몰라요.
북아프리카에서 부모 없이 비참하게 살던 라일라는 마찬가지 처지였던 후리야 덕분에 스페인을 거쳐 파리까지 가죠.
거기서 세네갈 출신 노인 엘 하즈를 만나 이런 말을 들어요.
'라일라야, 너는 아직 어리니까 조금씩 세상을 알아가기 시작할 거다.
그러면서 이 세상에는 도처에 아름다운 게 많다는 걸 알게 될 테고, 멀리까지 그것들을 찾아나서게 될 거야.' 저렇게 아름다운 별 사이로 여행하니 그 말이 생각나네요. "
"그래서 라일라도 우주여행을 하나요?"
"아시겠지만, 우리 시대에는 우주여행 비용이 너무 비쌌어요.
대신에 하나의 별에 수많은 사람들이 살았죠. 몇십억 명이 서로 사랑하고 증오하고, 껴안고 또 때리고, 달래고 욕설을 퍼부으면서.
그렇게 몇십억 개의 삶이 별 하나에 모여 있었죠."
"별 하나에 몇십억 사람들이라 상상할 수 없군요. "
"맞아요, 하지만 지금과 비슷하기도 해요.
비록 라일라가 우리처럼 우주선을 타고 가는 건 아니지만 마치 여행하듯이 여러 사람들을 만나니까요. 지금 가는 별은 어딘가요?"
"고양이별이군요. "
"우리가 고양이별에서 얼마간 시간을 보낸다는 건 우주에 존재하는 다른 수많은 별들을 방문하지 않는다는 것과 같은 뜻이에요.
그래서 고양이별은 어쩔 수 없이 우리에게 특별해지는 거죠.
라일라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비슷한 걸 깨닫게 됩니다.
즉, 특정한 인생의 한 시기를 누군가와 보낸다면, 그건 그를 제외한 다른 모든 인간을 만나지 않는다는 뜻이라는 걸.
그러므로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가 특별하고 소중해진다는 걸.
그 사실을 알기 때문에 라일라는 관찰해요. "
"관찰?"
"예, 관찰. 마치 낯선 지방을 방문한 아이처럼.
또 그 모두를 절대로 잊지 않겠다는 듯이.
파리에서 라일라가 한 일은 이런 거예요. '
나는 모든 구역들을 걸어서 돌아다녔다.
쇼세 당탱, 오페라, 마들렌, 세바스토폴, 콩트르스카르프, 당페르 로슈로, 생 자크, 생 탕투안, 생 폴.
오후 세시에도 잠든 듯 조용하고 더할 나위 없이 세련된 부자들의 구역이 있는가 하면,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구역도 있었다.
어떤 구역은 무척 소란스러운데다가, 둘러보면 교도소 울타리와 흡사하게 붉은 벽돌로 된 기다란 담, 계단과 난간과 공터들, 이상한 차림의 사람들로 가득 찬 먼지투성이 공원들.
' 또 이런 문장도 있어요. '나는 지리학과 동물학 책을 읽었고, 졸라의 [나나]와 [제르미날], 플로베르의[보바리 부인]과[세 가지 이야기], 위고의[레미제라블],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 카뮈의[이방인]과 [페스트], 슈바르츠 바르의[마지막 의인]
'……"
"끝이 없군요. 라일라는 시간이 무척 많았던 모양이군요. "
"그렇다기보다는 자기 생을 사랑했기 때문이죠."
"혹시 책을 안 읽는 사람은 자기 생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씀을 하려는 건 아니겠죠?"
"정확하게 그 말을 하려는 겁니다.
자신의 삶을 사랑한다면, 그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을 다 알아내려고 애쓸 겁니다.
책뿐만 아니에요.
음악도 듣고, 그림도 보고, 춤도 추고, 외국에도 갈 거예요.
가능한 한 모든 걸 맛볼 겁니다.
이 삶에 눈멀고 귀먹고 입 다문 사람이라면 그물에 걸린 물고기의 신세나 마찬가지죠.
자유로운 물고기라면 자신의 입과 코와 눈과 귀로 자기 앞의 삶을 맛보고 냄새 맡고 보고 들을 거예요. 그게 바로 황금 물고기죠."
"그렇다면 그건 자유 물고기라고도 할 수 있겠군요. 도착할 시간이 다 됐네요. 그 황금 물고기가 하는 일은 뭔가요?"
"자신에게 돌아가는 일이에요. 자기 삶을 사랑하는 사람은 매순간 성장해요. 바뀌고 또 바뀌죠. 그러다가 최종적으로 자기 자신이 되죠. 마치 우주를 떠돌다가 이별로가, 라고 외친 것처럼. 우린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해 늘 새로운 삶 속으로 들어가는 거예요. "
"이런, 이런. 뭔가 잘못됐군요. 다시 처음으로 돌아왔어요. "
"제가 이별로가, 라고 말해서인가요?"
"그런 모양이네요. 잘됐네요. 그 소설 얘기 계속해주세요. "
그래서 나는 다시 ?~황금 물고기??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아주 상세하게 설명할 계획이었다.
※이 코너는 문학동네 네이버 카페(cafe.naver.com / mhdn)에도 함께 연재됩니다.
김연수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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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신 매매단에 납치된 흑인 소녀의 인생역정
▶ '황금 물고기' 줄거리
르 클레지오는 1940년 프랑스의 항구도시 니스에서 태어났다.
1963년 데뷔작 [조서]로 르노도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데뷔했고 이후 [홍수] [사막]과 같은 화제작을 잇달아 발표하며 작가적 재능을 발휘했다.
2008년에는 '지배적인 문명 너머 또 그 아래에서 인간을 탐사한 작가'라는 평과 함께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현대 프랑스 문단의 살아 있는 신화', '살아 있는 가장 위대한 프랑스 작가'로 일컬어지는 그는 또한 지한파 작가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 그의 작품 중 [허기의 간주곡]은 서울에 머무를 당시 집필한 소설이기도 하다.
[황금 물고기]는 1997년 프랑스에서 출간되자마자 순수문학으로는 이례적으로 장기간 베스트셀러 1위 자리를 지킨 작품이다.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서 나고 자랐는지도 모른 채 어린 나이에 인신매매단에 납치된 한 흑인 소녀의 인생역정을 다루고 있다. '밤'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소녀 '라일라'는 어릴 적 누군가에게 유괴되었다.
그녀의 기억이라곤 자신을 잡아 검은 자루 속에 집어넣은 커다란 손 같은 단편적인 이미지들뿐이다.
팔려온 집에서 잔심부름을 하며 지내던 그녀는 주인 노파가 죽자 가혹하게 자신을 부리는 아들 부부의 집에서 도망쳐 나와 프랑스로 떠난다.
하지만 자유를 얻은 이후의 삶 역시 녹록지만은 않다.
세상의 거친 탁류에 휘말려 미국으로, 다시 프랑스로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삶을 찾아나가던 라일라는 마침내 황금 비늘을 반짝이며 자신의 뿌리를 찾아 고향 아프리카로 향하게 된다.
어느 날, 내가 자는 동안 지구가 태양 주위를 무진장 빨리 도는 바람에 하룻밤 새 몇 천 년이 지나갔다고 치자. 이제 그만 일어나라고 누군가 흔들어 눈을 떴더니 거기 최첨단 미래 소재의 옷을 입은 여자가 서 있었다.
"지구가 당신만의 별이 됐다고 이렇게 계속 잠만 잘 건가요?"
"나만의 별이 됐다니…… 다른 사람들은 모두 어디에 있나요?"
그녀는 하늘을 가리켰다.
"우리의 과학 기술은 너무나 발달해서 한 별에서 모여 살 필요가 없어요. 우주에는 별이 무한하게 많거든요. 지금은 별 하나에 한 사람씩 살아요. "
"그럼 다른 사람들을 만나려면 어떻게 해야만 하나요?"
"일단 우주선 안에 들어가서 외치세요. 저별로가! 그러면 원하는 별로 갈 수 있어요. 다시 돌아오고 싶으면 이별로가, 라고 외치세요. "
우리는 가까운 별로 가서 과연 거기에는 어떤 사람이 사는지 만나보기로 하고 우주선에 올라탔다.
저별로가! 내가 외쳤다.
덜컹덜컹 우주선이 움직였다.
너무 빨리 가면 여행의 묘미를 잃을까봐 일부러 속도를 늦췄다는 게 그녀의 설명이었다.
대기권을 벗어나자 우주공간으로 무수히 많은 별들이 반짝이는 모습이 보였다.
"저걸 보니까 언젠가 읽은 소설의 한 구절이 떠오르네요. "
"어떤 소설인가요?"
"르 클레지오의 [황금 물고기]예요.
태어나자마자 납치돼 팔려온 여자아이 이야기예요.
이름은 라일라.
하지만 진짜 이름은 몰라요.
북아프리카에서 부모 없이 비참하게 살던 라일라는 마찬가지 처지였던 후리야 덕분에 스페인을 거쳐 파리까지 가죠.
거기서 세네갈 출신 노인 엘 하즈를 만나 이런 말을 들어요.
'라일라야, 너는 아직 어리니까 조금씩 세상을 알아가기 시작할 거다.
그러면서 이 세상에는 도처에 아름다운 게 많다는 걸 알게 될 테고, 멀리까지 그것들을 찾아나서게 될 거야.' 저렇게 아름다운 별 사이로 여행하니 그 말이 생각나네요. "
"그래서 라일라도 우주여행을 하나요?"
"아시겠지만, 우리 시대에는 우주여행 비용이 너무 비쌌어요.
대신에 하나의 별에 수많은 사람들이 살았죠. 몇십억 명이 서로 사랑하고 증오하고, 껴안고 또 때리고, 달래고 욕설을 퍼부으면서.
그렇게 몇십억 개의 삶이 별 하나에 모여 있었죠."
"별 하나에 몇십억 사람들이라 상상할 수 없군요. "
"맞아요, 하지만 지금과 비슷하기도 해요.
비록 라일라가 우리처럼 우주선을 타고 가는 건 아니지만 마치 여행하듯이 여러 사람들을 만나니까요. 지금 가는 별은 어딘가요?"
"고양이별이군요. "
"우리가 고양이별에서 얼마간 시간을 보낸다는 건 우주에 존재하는 다른 수많은 별들을 방문하지 않는다는 것과 같은 뜻이에요.
그래서 고양이별은 어쩔 수 없이 우리에게 특별해지는 거죠.
라일라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비슷한 걸 깨닫게 됩니다.
즉, 특정한 인생의 한 시기를 누군가와 보낸다면, 그건 그를 제외한 다른 모든 인간을 만나지 않는다는 뜻이라는 걸.
그러므로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가 특별하고 소중해진다는 걸.
그 사실을 알기 때문에 라일라는 관찰해요. "
"관찰?"
"예, 관찰. 마치 낯선 지방을 방문한 아이처럼.
또 그 모두를 절대로 잊지 않겠다는 듯이.
파리에서 라일라가 한 일은 이런 거예요. '
나는 모든 구역들을 걸어서 돌아다녔다.
쇼세 당탱, 오페라, 마들렌, 세바스토폴, 콩트르스카르프, 당페르 로슈로, 생 자크, 생 탕투안, 생 폴.
오후 세시에도 잠든 듯 조용하고 더할 나위 없이 세련된 부자들의 구역이 있는가 하면,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구역도 있었다.
어떤 구역은 무척 소란스러운데다가, 둘러보면 교도소 울타리와 흡사하게 붉은 벽돌로 된 기다란 담, 계단과 난간과 공터들, 이상한 차림의 사람들로 가득 찬 먼지투성이 공원들.
' 또 이런 문장도 있어요. '나는 지리학과 동물학 책을 읽었고, 졸라의 [나나]와 [제르미날], 플로베르의[보바리 부인]과[세 가지 이야기], 위고의[레미제라블],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 카뮈의[이방인]과 [페스트], 슈바르츠 바르의[마지막 의인]
'……"
"끝이 없군요. 라일라는 시간이 무척 많았던 모양이군요. "
"그렇다기보다는 자기 생을 사랑했기 때문이죠."
"혹시 책을 안 읽는 사람은 자기 생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씀을 하려는 건 아니겠죠?"
"정확하게 그 말을 하려는 겁니다.
자신의 삶을 사랑한다면, 그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을 다 알아내려고 애쓸 겁니다.
책뿐만 아니에요.
음악도 듣고, 그림도 보고, 춤도 추고, 외국에도 갈 거예요.
가능한 한 모든 걸 맛볼 겁니다.
이 삶에 눈멀고 귀먹고 입 다문 사람이라면 그물에 걸린 물고기의 신세나 마찬가지죠.
자유로운 물고기라면 자신의 입과 코와 눈과 귀로 자기 앞의 삶을 맛보고 냄새 맡고 보고 들을 거예요. 그게 바로 황금 물고기죠."
"그렇다면 그건 자유 물고기라고도 할 수 있겠군요. 도착할 시간이 다 됐네요. 그 황금 물고기가 하는 일은 뭔가요?"
"자신에게 돌아가는 일이에요. 자기 삶을 사랑하는 사람은 매순간 성장해요. 바뀌고 또 바뀌죠. 그러다가 최종적으로 자기 자신이 되죠. 마치 우주를 떠돌다가 이별로가, 라고 외친 것처럼. 우린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해 늘 새로운 삶 속으로 들어가는 거예요. "
"이런, 이런. 뭔가 잘못됐군요. 다시 처음으로 돌아왔어요. "
"제가 이별로가, 라고 말해서인가요?"
"그런 모양이네요. 잘됐네요. 그 소설 얘기 계속해주세요. "
그래서 나는 다시 ?~황금 물고기??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아주 상세하게 설명할 계획이었다.
※이 코너는 문학동네 네이버 카페(cafe.naver.com / mhdn)에도 함께 연재됩니다.
김연수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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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신 매매단에 납치된 흑인 소녀의 인생역정
▶ '황금 물고기' 줄거리
르 클레지오는 1940년 프랑스의 항구도시 니스에서 태어났다.
1963년 데뷔작 [조서]로 르노도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데뷔했고 이후 [홍수] [사막]과 같은 화제작을 잇달아 발표하며 작가적 재능을 발휘했다.
2008년에는 '지배적인 문명 너머 또 그 아래에서 인간을 탐사한 작가'라는 평과 함께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현대 프랑스 문단의 살아 있는 신화', '살아 있는 가장 위대한 프랑스 작가'로 일컬어지는 그는 또한 지한파 작가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 그의 작품 중 [허기의 간주곡]은 서울에 머무를 당시 집필한 소설이기도 하다.
[황금 물고기]는 1997년 프랑스에서 출간되자마자 순수문학으로는 이례적으로 장기간 베스트셀러 1위 자리를 지킨 작품이다.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서 나고 자랐는지도 모른 채 어린 나이에 인신매매단에 납치된 한 흑인 소녀의 인생역정을 다루고 있다. '밤'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소녀 '라일라'는 어릴 적 누군가에게 유괴되었다.
그녀의 기억이라곤 자신을 잡아 검은 자루 속에 집어넣은 커다란 손 같은 단편적인 이미지들뿐이다.
팔려온 집에서 잔심부름을 하며 지내던 그녀는 주인 노파가 죽자 가혹하게 자신을 부리는 아들 부부의 집에서 도망쳐 나와 프랑스로 떠난다.
하지만 자유를 얻은 이후의 삶 역시 녹록지만은 않다.
세상의 거친 탁류에 휘말려 미국으로, 다시 프랑스로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삶을 찾아나가던 라일라는 마침내 황금 비늘을 반짝이며 자신의 뿌리를 찾아 고향 아프리카로 향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