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글생글은 이번 호부터 7회에 걸쳐 '세금을 바로 알자!'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세금은 한 나라 살림살이의 바탕입니다. 우리가 꿈꾸는 건강한 사회,복지국가도 결국 세금이 뒷받침돼야 가능합니다.

세금을 많이 내는 개인이나 기업이 존경받아야 할 충분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세금에 대한 편견과 오해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생글이들이 '세금을 바로 알자!' 시리즈를 읽고 세금에 대한 이해를 더 넓히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세금 갈등으로 탄생한 미국

"세금은 '혁명'을 몰고왔다"


[세금을 바로 알자] (1) 세금의 역사
세금을 뜻하는 한자의 어원을 살펴보면 세금의 의미와 탄생에 대해 어느 정도 짐작이 가능하다.

세금(稅金)의 '세(稅)'는 곡식을 나타내는 '벼 화(禾)'와 '바꿀 태(兌)'가 합쳐져서 만들어졌는데, 여기서 '兌'는 '빼내다'의 뜻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사람들이 수확한 곡식 중에서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몫을 떼고 나서 나머지를 관청에 바치는 것이 세금인 셈이다.

이와 함께 세금은 유목 생활이 어느 곳에 정착해서 농사를 짓는, 보다 발전된 농경사회로 진입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사람들은 한 지역에 터전을 잡은 후 땀 흘려 거둬들인 주요 생산물인 벼를 비롯한 곡식으로 공동체 운영에 필요한 경비,즉 세금을 납부하게 된 것이다.

# 메소포타미아에서 첫 부과

세금은 부족들이 서로 힘을 합쳐 국가의 기틀을 마련하면서부터 생겨났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세금의 기록은 기원전 4000년께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 처음으로 엿보인다.

점점 불어나는 세금을 일일이 기억할 수 없게 되자,한 부족장이 고민 끝에 점토판에 세금의 모양을 대충 그려 기록을 했던 것이다.

벼이삭 모양을 그리면 쌀이라는 뜻이고,과일 모양을 그리면 과일이라는 의미로 서로 약속해 쓰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점토판에 기록한 모양이 나중에 상형문자로 이어져 세금의 기원과 문자의 탄생이 거의 비슷한 시기가 된 것이다. 이후 세금에 대한 기록은 곳곳에 등장한다. 세금이 점차 보편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나폴레옹이 이집트 원정에서 발견한 고대 이집트의 상형문자 해독의 열쇠인 로제타석에도 세금과 관련된 내용이 새겨져 있다.

기원전 200년께 그리스인들이 이집트를 지배하면서 무거운 세금을 물리자,이에 반발한 군대가 반란을 일으켰다.

그러자 궁지에 몰린 왕이 밀린 세금을 면제해 주겠다고 약속한 후 이 내용을 돌에 새겨 증표로 남긴 것이 바로 로제타석이다.

그런데 로제타석에서 보는 것처럼 세금의 역사는 동 · 서양을 막론하고 안타깝게도 반란이나 민란으로 얼룩졌다.

그릇된 세금이 백성들의 저항을 불렀기 때문이다.

심지어 근대 헌법의 효시가 된 영국의 마그나카르타도 세금을 걷는 징세권을 지닌 왕의 권리를 제한한다는 문서에서 비롯된 것을 보면 당시의 세금제도가 얼마나 문란했는지를 엿볼 수 있다.

당시 영국을 다스리던 존왕이 기사들에게 방패세를 물렸다가 귀족들과의 세력 다툼에서 패해 '앞으로는 귀족의 동의를 받아 세금을 거두겠다'는 서명까지 했다.

왕으로서는 중요한 권력을 잃은 것이다.

이를 계기로 법의 규정대로 세금을 부과한다는 조세법률주의의 싹이 서서히 돋아나기 시작했다.

왕은 자신의 권력을 빼앗겨 아쉬웠겠지만,국민으로선 가혹한 징세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으니 반길 만한 일이었다.

프랑스혁명도 루이 16세가 세금을 더 거두기 위해 삼부회를 소집한 것이 화근이 됐고,미국 독립전쟁이 터진 것도 영국의 세금정책에 반발한 보스턴 차 사건이 발단이 됐다.

# 보스턴 차 사건으로 美 독립

영국은 1760년대에 접어들자마자 아메리카 식민지에 새로운 세금을 잇따라 부과했다.

1764년 설탕세법,1765년 인지세법에 이어 1766년에는 타운센트조례까지 도입함으로써 식민지 주민들의 강력한 반발을 자초하게 된 것이다.

영국 재무장관 타운센트의 제안으로 1767년 만들어진 이 법률에는 뉴욕 식민지 의회의 권리 정지,유리 · 납 · 도료 · 종이 · 차에 대한 과세,영국에서 아메리카로 수출하는 동인도회사 차(茶 · Tea)의 수입세 면제 조항 등이 들어 있었다.

하지만 주민들은 자신들의 대표가 참석하지 않은 의회에서 결정한 세금은 납부할 수 없다며 이 법안의 철폐를 주장하고 나섰다.

이에 따라 영국은 식민지 주민들의 요구를 일부 받아들였지만,차에 대한 세금만큼은 물러설 수 없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그러자 격분한 주민들이 보스턴항에 정박 중인 동인도회사의 배 2척을 습격해 300여개의 차 상자를 바다에 내던진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이 그 유명한 보스턴 차 사건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자치정부를 수립한 식민지 주민들은 1776년 7월4일 드디어 독립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잘못된 세금에 맞선 주민들의 의지가 독립전쟁으로 이어져 결국 세계에서 가장 부강한 나라인 미국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 租 · 庸 · 調 세금의 기원

우리나라는 고구려 때 기록에 세금에 대한 언급이 처음 등장한다. 밭의 비옥도를 여러 등급으로 나눠 각각 세금을 매긴 것이다.

우리나라의 세금제도는 조(租),용(庸),조(調)가 핵심이다.

삼국시대 때 만들어진 이 제도는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계속 이어졌다.

농지에 부과한 조(租)는 쌀로 징수했고,호적에 등재된 16~60세의 남자에게 매긴 용(庸)은 노동력으로 거둬갔다.

그리고 조(調)는 가구마다 부과해 영광 굴비,개성 인삼,강화 화문석 같은 특산물로 세금을 내도록 했다.

이 중 세금의 주류는 지금의 소득세와 비슷한 조(租)였다.

19세기까지는 산업화가 전혀 이뤄지지 않아 농지에서 대부분의 소득이 발생했기 때문에 농지와 관련된 세금이 주류를 이룰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조 · 용 · 조도 서양과 마찬가지로 점차 과세 기준이 모호해짐으로써 당초의 의미가 크게 퇴색하고 말았다.

결국 농민이 경작하는 토지에 매기는 세금인 전정(田政)과 군정(軍政),환정(還政)이 부정부패로 얼룩지는 삼정의 문란이 초래됐다.

동학혁명을 비롯한 조선시대 민란들도 대부분 탐관오리들의 가혹한 징세에 대한 불만 때문에 일어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처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세금 때문에 발생한 사건들이 수없이 많았다는 것은 불문가지의 사실이다.

그래서 세금의 역사를 혁명의 역사라고 일컫기도 한다.

하지만 흙탕물에서 화려한 연꽃이 피어나는 것처럼,그릇된 세금의 역사가 있었기 때문에 올바른 세금 제도의 탄생도 가능했다. 잘못된 세금의 역사를 반면교사로 삼는 지혜를 배우고 터득했기 때문이다.

벤저민 프랭클린은 이 세상에서 확실한 것은 죽음과 세금뿐이라고 했다.

이 두 가지는 세상에 존재하는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납세의 의무를 지고 있는 반면 세금의 혜택도 골고루 누리고 있다.

따라서 법에 따라 올바르게 세금을 부과하고,모든 사람이 성실하게 세금을 납부함으로써 살맛나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세금은 우리 삶에 없어서는 안 될 행복의 거울이기 때문이다.

자료:국세청 세정홍보과 (02-397-7506~8)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shins@hank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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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금 퀴즈 / 정답은 무엇일까요?


우리나라의 과거 세금제도는 조(租),용(庸),조(調)가 핵심이었습니다.


그 당시 세금의 주류이며,지금의 소득세와 비슷한 세금은 무엇일까요?

①조(租) ②용(庸) ③조(調) ④벼(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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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글생글홈페이지(www.sgsgi.com)에 접속해 퀴즈에 응모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