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 손상 신호 전달원리 규명이 관건
[Science] '암' 극복 연 구어디까지 왔나…
암은 인류가 경험한 질병 가운데 가장 고치기 어려운 난치병이다.

우리 몸은 약 80 조개의 세포들로 구성돼 있고 이들 각각의 세포들은 주변세포들과 긴밀히 협력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서로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기능을 수행한다.

때로는 더 이상 분열하지 말고 쉬라는 신호를 주기도 하고, 반대로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증식과 분열을 하라는 신호를 주기도 한다.

만일 이 가운데 하나의 세포라도 이기적으로 행동해서 비정상적 증식을 하게 되면 이것이 암으로 진행되는 것이다.

때로는 세포가 정상적으로 늙어갈 수 없는 환경이 암세포를 유발하기도 한다.

암극복을 위해 연구되고 있는 세포의 결함 치유 경로와 인간의 노화 과정에 대해 알아보자.

인체의 세포들은 특정 유전정보로 갖고 있어 정확히 무엇을 해야 할지 알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유전정보들은 노화가 진행되거나 인체가 지속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을 경우 오류가 생기게 되고 자칫 잘못된 지시로 이어질 위험성을 갖고 있다.

세포들은 유전정보의 오류를 방지하는 여러 개의 안전장치를 갖고 있다.

그러나 안전장치에 결함이 생긴 세포들은 정상세포들에 비해 수백 배 이상 변이되면서 암 발생 확률을 높인다.

이러한 안전장치의 가장 중요한 구성원이 유전자 손상 신호 전달체계이다.

따라서 이런 원리를 적절히 이용하면 정상세포에는 최소한의 영향을 주고 암세포만을 겨냥하는 새로운 암 치료가 가능하게 된다.

인간세포에는 유전자를 치유하는 단백질이 최소 150개 이상 존재하며 이들은 일부 중복되는 치유경로를 구성한다. 세포의 성장 및 분열 과정 중에 유전자는 정보오류 없이 충실히 복제돼야 한다.

정상 세포 내 단백질은 손상된 유전자를 찾아내어 이를 다른 단백질에 알려 주고, 이 신호를 전달받은 단백질들은 이 손상부위를 정확히 치유한다.

즉 단백질의 세포내 치유 경로를 정확히 이해한다면 암 극복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공해 줄 수 있다.

암 치료는 동시다각적 치유법이 시도돼야 한다.

먼저 유전적 · 분자생물학적 접근법에 의한, 각각의 세포 경로를 변화시켰을 때 생기는 구체적 결과 분석-사람, 미생물, 효모, 초파리, 물고기, 쥐 등- 이 필요하다.

또 생물학적 화학적 접근법으로 신약을 개발하는 방법 등도 있다.

최근 유전자 치유효소인 파프(PARP)저해제의 경우 암세포가 정상 세포와 달리 특정 유전자 치유기작만을 갖고 있다는 사실에 착안해 암세포만을 선택적으로 제거하는 성공적 신약으로 각광받고 있다.

포스텍 생명과학과 조윤제 교수팀은 2000년부터 '다이나믹지노믹스를 이용한 암과 노화의 이해'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조 교수는 구조생물학적 관점에서 유전자 손상 신호전달과 치유기작을 이해하는 분야의 권위자이다.

이 연구단은 유전자 복제 및 전사(DNA->RNA)과정 중에 유전자의 손상이 인식되고 치유하는 분자기작을 규명하는데 집중하며 신약 개발의 기반을 제시하고 있다.

암은 또 노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사람이 나이가 들어가면 세포의 정상적 노화 과정을 밟아야 하는데, 노화에 따라 위에서 언급한 각종 신호 체계가 왜곡되면서 정상 기능을 못하게 되고 이것이 결과적으로 암이 될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이다.

세포의 노화는 '텔로미어(염색체 말단소체)'가 결정한다.

텔로미어는 6개의 뉴클레오티드(AATCCC,TTAGGG 등/A:아데닌 G:구아닌 C:시토신 T:티민)가 수천번 반복 배열된 염색체의 끝단을 말한다.

이는 세포가 분열할 때마다 계속 짧아져 어느 시점에 가면 더 이상 짧아지지 않는다.

이를 '노화점'이라 하며 이때 세포분열이 멈춘다.

노화점에 이른 노화세포가 많이 존재하는 조직이나 기관(간 뇌 위 장 등)은 모양도 변하고 제 기능을 못하게 되며 이것이 정상적인 노화 과정이다.

반면 암세포는 이 메커니즘과 달리 말단소체복원효소(텔로머라제)가 특이하게 발현되기 때문에 텔로미어가 짧아지지 않고 무한 분열한다.

즉 정상적 세포 노화와 암세포 발생은 정반대 과정인 셈이다. 엘리자베스 블랙번 미 캘리포니아대 샌프란시스코캠퍼스(UCSF) 교수 등 3명은 이를 밝힌 공로로 작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텔로머라제의 억제방법이나 텔로미어의 연장방법을 연구하고 있는 제리 샤이 미 텍사스웨스턴 메디컬센터 교수는 텔로미어가 주변 세포의 활성화를 결정하는 '온오프(On-Off)스위치'역할을 한다는 점을 최근 새롭게 공개했다.

텔로미어 근처에 존재하는 특정 유전자는 텔로미어가 길 때는 잠복기에 있다가 짧아질 때에만 발현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샤이 교수의 가정에 입각해 최근 후천성면역결핍증(AIDS) 발병과 텔로미어 길이 변형간 상관관계가 있는지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세포 면역 및 세포간 신호전달에 중요하게 관여하는 단백질이자 세포 분비물인 '사이토카인'도 노화와 암 발생에 밀접하게 관여한다.

주디 캄피시 미 버크노화연구소 교수는 세포가 늙어가면서 사이토카인류 분비물이 많아지고, 이에 따라 노화가 가속화되면서 경우에 따라서는 암 발생을 촉진한다는 'SASP(Senescene associated secretory phenotype)' 이론을 최근 선보였다. 작년 그는 네이처에 관련 논문을 게재했다.

어떤 세포가 돌연변이를 할 때 노화된 세포와 인접해 있으면 해당 세포가 노화된 세포의 사이토카인 영향을 받아 암세포로 바뀔 수 있다는 설명이다.

임인경 아주대 의대 교수는 "상처가 났을 때 빨갛게 붓는 병리학적 염증반응이나, 세포 돌연변이 이후 많이 분비되는 사이토카인으로 인한 염증반응도 아닌 노화와 암의 경계선상에서 사이토카인을 규명했다는 점에서 이는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제 3의 염증반응'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해성 한국경제신문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