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파리를 모델로 ‘생체공생시스템’ 연구 … 감마델타 T세포 규명도
[Science] 장(腸)의 건강 살펴보면 면역력이 좋은지 나쁜지 알 수 있대요!
최근 모 연예인이 신종플루에 감염돼 사망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면역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감기나 아토피 등 흔한 질병부터 신종플루까지 모든 질환에 이기고 지는 관건은 바로 면역력이다.

우리 몸의 면역체계는 잘 유지될 때는 건강을 지켜주지만 반대로 교란되면 심각한 질병을 일으키기도 한다.

면역력이 좋은지 나쁜지는 장(腸)의 건강이 좌우하는 경우가 많다. 장 속에는 수없이 많은 균이 살고 있는데 몸에 좋은 작용을 하는 균과 나쁜 작용을 하는 균이 공존한다.

건강하고 면역력이 좋은 사람은 해로운 균을 잘 제거하고 몸에 좋은 균은 보호함으로써 안정적인 평형상태를 유지한다.

그러나 장의 면역력 기능이 상실되면 유해균이 많아지고 균의 평형이 깨지게 돼 장의 상태가 나빠지면서 각종 면역질환이 일어나게 된다.

면역력의 사전적 의미는 외부에서 들어온 병원균에 저항하는 힘이다.

좀 더 넓은 의미로 본다면 병이나 상처로부터 우리 몸을 지켜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는 능력을 말한다.

현대인들은 공해 등 각종 화학물질에 대한 노출, 잘못된 생활 습관과 스트레스 등 이유로 면역력이 저하되기 쉽다.

장의 면역력은 두 가지 측면에서 작동한다.

첫째로 해로운 균을 제거하기 위한 강력한 면역 작동자의 발현이고, 두번째는 유익한 유산균을 보호하기 위해 이들을 회피하는 방법이다. 장 내 작동하는 가장 빠르고 정확한 면역 작동자는 활성산소와 항균물질의 분비다.

유해한 균에 노출된 장내 면역 세포는 이들을 인지해 신속하게 살균성 활성산소를 분비,균을 제거한다. 이러한 면역 기전과 더불어 항균물질을 합성해 균의 제거를 촉진함으로써 추가적인 면역 증강력을 보인다.

또 평상시 나쁜 균에 대한 감염이 적고 유익한 균이 많을 때는 이런 면역 작동자는 유익균을 보호하기 위해 활동을 억제함으로써 유익균에 대한 공격을 회피한다.

이를 통해 유익한 균이 안정적으로 장내에 존재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

그러나 면역력이 약화되면 유해균을 제거하지 못하고 변비나 설사 등을 포함해 만성 질환이나 급성 염증 질환에 걸리게 된다.

반면 면역력이 너무 강화되면 유익한 균까지 제거하는 부작용이 생기고 유익균이 담당하는 면역력 보조 기능이 상실되므로 결국 장 건강이 나빠지고 면역력이 나빠진다.

따라서 유익균은 친구 같이, 유해균은 적으로 정확하게 인지해 작동하는 장내 면역 시스템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장이 좋은 균에 대해서는 '면역관용(면역 반응을 일으키는 물질에 생체가 반응하지 않도록 하는 것)'을 나타내고 나쁜 균에 대해서는 '면역반응'을 나타내는지 알아보기 위해서는 시험관이 아닌 살아있는 생체 내에서 실험을 진행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이원재 이화여대 바이오융합과학과/분자생명과학과 교수팀은 2006년부터 교육과학기술부 창의연구단 사업을 시작해 '생체 공생시스템'을 주제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연구진은 초파리를 동물 시험모델로 채택했다.

초파리는 인간 유전체의 축소판이라 불릴 정도로 인간 게놈과 유사성이 매우 높다.

초파리는 흔히 상한 과일에서 발견되는 과일파리로, 이들은 평상시 발효되거나 부패한 과일에 서식하는 미생물인 효모를 주 먹이감으로 삼고 있다.

따라서 초파리의 장에는 이런 미생물을 잘 조절할 수 있는 발달된 면역력이 존재할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초파리의 장에는 사람의 장에 서식하는 공생균이 사람과 유사하게 보존돼 있다.

이 교수 연구진은 장내 세포와 미생물간 관계를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새로운 개념의 장 면역 시스템 기전을 규명함으로써 사이언스 등 세계적 과학 저널에 논문을 다수 보고했다.

또 한국인의 식습관 변화로 서구식 질병인 대장암 등 관련 질환의 유병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시점에서 이들 질환의 원인이라고 알려진 장내 공생미생물 간의 불균형의 원인 및 결과를 규명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한편 박성규 광주과학기술원 생명과학부 교수는 미 컬럼비아대 연구진과 함께 감마델타 T세포의 활성화가 장과 관련된 주요 질환 가운데 하나인 장염 유발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최근 밝혀냈다.

이 연구 결과는 이달 중 세계 면역학 분야 저명 저널인 '이뮤니티(Immunity)'지에 실릴 예정이다.

박 교수는 "이번 연구를 통해 장의 점막에서 면역조절 T세포에 의해 조절받지 않은 감마델타 T세포의 활성화가 장염을 직접 유발할 수 있음을 마우스(쥐) 모델을 이용해 밝혀냈다"며

"이번 연구 결과는 과민성 장염 및 각종 과민성 면역질환(면역이 과도하거나 부적절하게 나타나는 과민성 반응으로 항원에 대해 비정상적으로 과다한 면역 반응이 일어나 세포 및 조직의 손상을 유발하는 것)의 치료에서 감마델타 T세포의 활성화를 조절하는 것이 관건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반적으로 우리 몸의 안쪽은 알파베타 T세포(후천성 면역반응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는 T세포로 알파와 베타 T세포 수용체를 작는 T세포)가 T세포의 주를 이루지만,

피부나 폐 · 장의 점막 등 경계점에서는 감마델타 T세포(선천성 면역반응에 참여하는 T세포로 감마와 델타 T세포 수용체를 갖는 T세포)가 주를 이룬다.

이런 경계점에서 감마델타 T세포는 알파베타 T세포에 비해 빠르게 반응하면서 감염성 병원균의 1차 방어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또 감마델타 T세포는 과도한 면역반응을 억제하고 점막 면역의 조절자로도 알려져 있다.

그러나 연구진은 쥐 모델을 통한 장염 연구에서 알파베타 T세포가 적절히 작동되지 않아 감마델타 T세포가 활성화되면 장염이 심해져 직장이 빠지는 증상이 일어나며 과민성 면역질환도 유발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즉 감마델타 T세포가 불활성화되면 장염이 억제된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어린이와 노인의 경우 알파베타 T세포의 발달이 건강한 성인에 비해 떨어지며 장염이나 과민성 장염이 잘 일어나는데 원인은 이런 메커니즘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이해성 한국경제신문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