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핀파' 연구 통해 차세대 전자소자 'V-램'개발 가능성
[Science] D램 대체할 비휘발성 메모리 나올까?
최근 정보기술(IT) 분야의 가장 큰 관심은 단연 '아이폰'으로 촉발된 스마트폰이다.

스마트폰 분야에서 애플에 '선방'을 맞은 삼성전자는 최근 아이폰에 대항할 스마트폰 '갤럭시 S'를 내놓고 이와 연관된 풀 라인업 제품을 잇따라 출시하겠다고 선언했다.

스마트폰이 글로벌 IT기업에 최대의 화두가 된 것은 컴퓨터가 손 안으로 옮겨가고 있는 트렌드 때문이다.

즉 초소형 전자소자 발전으로 대용량 정보저장과 초고속 정보처리가 가능해지고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하는 소프트웨어(SW)가 이를 통해 연속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D램 등 전자소자에는 전자가 지니고 있는 전하의 흐름과 양을 제어함으로써 정보의 기록 · 재생 · 저장 등이 가능하다.

그런데 컴퓨터를 사용하다 보면 누구나 겪는 낭패가 있다.

전원이 갑자기 꺼져버린다든지 실수로 인해 문서 등 작업하던 것이 갑자기 날아가버리는 경우다.

이는 컴퓨터 정보기억소자 중 하나인 D램이 휘발성 메모리이기 때문이다.

컴퓨터에 쓰이는 휘발성 메모리를 비휘발성 메모리로 대체하면 어떨까. 현재 전자가 지니고 있는 다른 특성을 이용해 비휘발성 초소형 전자소자를 개발하려는 첨단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김상국 서울대 교수를 통해 '스핀'의 세계를 알아보자.

⊙ 자기소용돌이 핵 제어,V-램

막대자석이 N극과 S극을 갖고 서로 끌어당기는 물리 법칙은 초등학생 이상이면 누구나 알고 있다.

이 힘은 과연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자석의 본질을 전자가 갖고 있는 '스핀'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스핀은 전자가 막대자석과 같은 성질을 지니게 하는 양자 상태를 말한다.

원자 크기의 막대 자석을 '원자 스핀'이라고 해보자.스핀은 크기와 방향을 지닌 '벡터'량이므로 간단히 화살표로 표시할 수 있다.

또 작은 자성체 내에서 규칙적으로 배열된 원자들은 각각 스핀 상태를 지니고 있고, 외부에서 힘이 작용하면 집단적으로 소위 '파도타기'거동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 스핀파(spinwave)라고 한다. 스핀파 연구는 고체물리학 분야에서 수십년 전부터 주목받아 왔지만 최근 들어 차세대 반도체 개발 수단으로 각광받고 있다.

빛이 공기나 특정 매질에서 진행하듯, 자성체로 이뤄진 물질 내에는 특정 주파수를 가진 '스핀파'가 존재한다.

파동처럼 진행하는 스핀파는 굴절 · 반사 · 회절 · 간섭 등 빛이 지니고 있는 광학적 특성을 가진다.

김 교수는 이 현상을 이용해 기존 정보처리 소자를 대체할 수 있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김 교수는 '미소자기 컴퓨터 전산모사'란 방법을 써서 나노 크기 자성체가 수십 피코(pico)초(1조분의 1초) 시간대에 일어나는 스핀의 빠른 운동을 관찰하는 '스핀 동역학 연구'로 주목받았다.

그는 스핀파의 주파수 밴드갭 형성 원인을 규명하고 또 밴드갭의 위치와 폭의 특성을 규명했다.

또 특정 주파수 영역대의 스핀파만 통과시키는 '스핀파 필터'를 개발했다.

김 교수는 이를 통해 자성체 내부 스핀파의 파동성을 규명하고 스핀파 신호발생 · 전달 · 제어 기술을 확보하면 신개념 정보처리 소자를 개발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김 교수의 연구 분야는 또 있다. 그에 따르면 수백 나노(10억분의 1)미터 크기의 자성박막 내에는 태풍이나 토네이도,거시 세계의 나선 은하계를 닮은 특이 소용돌이 구조가 존재한다고 한다.

이를 '자기소용돌이'라 한다. 이 구조의 중심에는 태풍의 핵과 같이 자화(물체가 자성을 지니는 현상) 방향이 위 혹은 아래를 향하는 안정된 두 가지 상태를 갖고 있다.

김 교수는 이 안정된 상태를 이용해 비휘발성 정보기억소자를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그는 원평광 자기장과 선형평광 자기장을 이용한 자기소용돌이 핵의 선택적 스위칭 방법을 전산모사를 통해 개발하고 실험을 통해 증명했다.

이 역시 비휘발성 정보기억소자 원천 기술이라는 설명이다. 이 차세대 메모리는 V-램으로 명명됐다.

이들 연구내용은 작년 물리학 분야 저명 학술지인 피지컬 리뷰 레터(Physical Review Letters)에 게재됐으며 어플라이드 피직스 레터스(Applied Physics Letters)에도 실렸다.

⊙ F램,R램도 있다

국내 최고 권위의 과학자 노태원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를 통해 F램과 R램에 대해서도 알아보자.

F램은 강유전체 산화물이 주성분이다.

강유전체는 양전하와 음전하가 서로 다른 쪽으로 잘 분리(분극)되고 압력을 받으면 전기가 발생하는 물질을 말한다. 강유전체는 1920년대 '로셸염'이 발견된 후 100여종이 알려져 있다.

이는 전기모터나 음향장비,압전소자에 주로 쓰인다. 라이터가 압전소자의 좋은 예다. 부싯돌을 돌려 압력을 가해주면 전압차가 생겨 불꽃이 튀는 것이다.

한편 물질의 얇은 박막을 연구하면 새로운 현상을 관찰할 수 있는데 이를 '발현현상'이라고 하며 F램의 연구도 여기서 촉발됐다.

노 교수는 1990년대 들어 얇은 박막을 대상으로 강유전체 연구를 국내 최초로 진행해 F램 연구에 대한 세계적 성과를 인정받았다.

현재 각국 연구진과 기업들은 F램 상용화에 대한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물리적 한계와 가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R램은 자기저항변화라는 특이 현상을 가진 것으로 역시 상용화되지는 않았지만 국내 연구진과 기업이 세계에서 선도적 위치를 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노 교수는 F램과 R램 등 응집물질물리학 분야 논문 300여편을 국내외 학술지에 발표했으며 SCI 색인 피인용 횟수가 6000회 이상이나 된다.

주요 논문으로 '강유전체 산화물 박막 피로현상과 F램용 신소재 개발에 관한 연구(1999년 네이처 게재)'와 '스핀트로닉스용 산화물 박막에서 강자성 특성에 대한 기본 메커니즘 규명(2003년 피지컬 리뷰 레터 게재)','R램의 기본 현상인 전기저항 스위칭과 통계물리학 모델(2008년 어드밴스드 머티리얼즈 게재)'등이 있다.

노 교수는 "플래시나 D램 등 국내 기업이 경쟁력을 갖고 있는 분야가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다"며 "공학적 응용도 중요하지만 산화물 등 순수 물리적 현상에 대한 심도있는 연구가 장기적으로는 큰 성과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이해성 한국경제신문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