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노 新 소재 '그래핀'으로 투명하고 휘어지는 디스플레이 개발

[Science] 때 묻지 않고 물위를 걷게 할 수 있는 '나노'의 신비
최근 과학기술의 어떤 분야를 막론하고 '나노기술'이 화두다.

나노기술은 초집적화된 광전자시스템을 실현할 수 있는 원천기술이다.

나노미터(10억분의 1m) 크기를 갖는 물질을 나노물질이라고 한다.

나노물질은 성질이 그야말로 무궁무진하다.

투명하고 휘어지는 플렉시블 디스플레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도 나노물질이며 물위를 걷게 하고 때가 묻지 않는 생활용품을 만드는 상상도 나노기술의 원리 때문에 가능하다.

고려대학교와 성균관대학교,KAIST 등을 통해 나노물질에 대해 알아보자.

⊙ 나노는 '투명'하다

나노를 알려면 먼저 투명의 개념을 알아야 한다.

투명은 빛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빛이 투과할 때 '투명하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만약 물질에 의해 빛이 반사되거나 흡수되면 그 물질은 불투명한 물질이다.

투명한 물질이라도 물질 표면을 거칠게 하면 표면에서 빛이 산란돼 불투명한 물질이 된다.

두꺼운 금속은 빛이 모두 반사되거나 흡수되므로 불투명한 물질이다.

금속이 햇볕에 노출되면 뜨거워지는 이유는 금속이 빛을 잘 흡수하기 때문이며,반사가 잘 되는 성질을 이용해 거울 대용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그런데 금속도 일정 두께(일명 'skin depth')보다 얇아지면 반투명해진다. 여기서 더 얇아져 두께나 나노미터로 가면 투명한 금속이 된다.

나노물질은 수백m의 가시광선이 투과할 정도로 투명하다. 탄소나노튜브 · 나노와이어 · 나노입자 등 나노물질은 원래 성질이 금속이든 반도체이든 상관없이 나노미터 크기라는 이유로 투명하다.

탄소나노튜브와 나노와이어는 전하 운반자의 이동이 다른 물질에 비해 월등히 빠르다는 점에서 '1차원 물질'이라고 불린다.

따라서 탄소나노튜브와 나노와이어로 만든 나노소자는 초고속 작동 투명전자소자가 된다.

한편 나노입자는 전자와 정공이 매우 효율적으로 재결합해 매우 효과적인 발광소자의 핵심 물질로 사용되는 '0차원 물질'이다.

수년째 저비용 대면적의 플렉시블 광전자소자 연구를 진행하며 국내외에서 뛰어난 연구성과를 내고 있는 김상식 고려대 전기전자전파공학부 교수는 "나노기술로 구현한 광전자시스템은 투명하고 초고속이며 발광으로 정보를 표시한다"며 "나노물질은 물리적으로 초박막이며 플렉시블하므로 미래의 문명기기는 모두 여기에 기반을 둘 것"이라고 설명했다.

⊙ 플렉시블 디스플레이,'그래핀'이 가능하게 할까

단 나노의 원리가 이럴 뿐 플렉시블 디스플레이가 현재 상용화된 것은 아니다.

시제품은 나와 있지만 가격과 공정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플렉시블 디스플레이의 투명전극 소재로는 터치스크린 패널의 소재인 인듐주석산화물(ITO)이 있었지만 잘 깨지고 인듐의 가격이 비싸 상용화가 안 됐다.

이를 대체할 물질로 그래핀이 있다. 그래핀은 탄소원자가 벌집 모양으로 뭉쳐 있는 것으로 이것이 튜브 형태로 말려 있으면 탄소나노튜브가 된다.

그래핀은 전자 이동 속도가 실리콘 반도체보다 10배 이상 빨라 꿈의 신소재라고 불린다.

이는 소위 입는 컴퓨터,접는 책의 원천 기술로 각광받고 있다.

최근 성균관대 화학과 홍병희 교수와 신소재공학부 안종현 교수팀이 30인치 대면적 그래핀 투명 전극을 '롤투롤'기반 공정을 이용해 합성,플렉시블 그래핀 터치스크린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이 연구팀은 작년에도 비슷한 성과를 발표한 적이 있다.

홍병희 교수는 "작년에는 안 보였던 그래핀을 잘 보이게 만든 것이고 질도 별로 안 좋아 상용화를 하기에는 적절치 않았으나 이번 연구 성과는 실제 적용할 만한 품질을 구현했다는 것이 차이점"이라고 설명했다.

성균관대 연구진은 현재 삼성테크윈과 함께 그래핀센터를 운영하면서 상용화에 가속도를 내고 있다.

홍 교수는 "디스플레이 분야에서는 시간이 다소 걸리겠지만 터치패널 분야에서는 5년 정도 지나면 그래핀을 사용한 플렉시블 제품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 때 묻지 않고 물 위를 걷게 할 수도

한편 자연속 나노구조의 원리도 주목할 만하다.

연꽃이 흙탕물 속에서도 깨끗하게 피어나는 원리가 바로 나노 원리다.

양승만 KAIST 생명화학공학과 교수는 최근 연꽃잎 나노구조를 가진 미세입자를 생성해 다양한 분야에 적용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네이처 및 네이처나노테크놀로지 등 저명한 국제학술지에 관련 논문을 게재했다.

논문에 따르면 크기가 수백 나노미터인 균일한 유리구슬을 감광성 액체에 넣으면 수십나노미터의 균일한 액체방울이 만들어진다.

이것을 물에 넣은 다음 물-감광성액체-유리구슬 사이 표면 장력 균형을 유지하면 촘촘한 육방밀집구조가 된다.

여기에 자외선 처리를 해 단단하게 만들면 수천개의 유리구슬이 박혀 있는 입자가 생성된다.

이 입자를 불화수소산(HF)으로 녹여내면 골프공처럼 분화구가 촘촘하게 박힌 미세입자가 생성되는데,이때 플라즈마(높은 에너지를 갖는 기체이온)를 쬐어주면 분화구가 깊게 패면서 연꽃잎 나노구조가 형성된다는 것이 연구팀의 설명이다.

식물인 끈끈이 주걱이나 물 위를 걷는 소금쟁이,물에 젖지 않는 나비 날개 등은 모두 자연 속 연꽃잎 나노구조다.

연꽃잎 나노구조는 물이 닿으면 퍼지지 않고 그대로 흘러내려 먼지를 쓸어내는 자기세정능력이 있으며 공기 중의 수증기를 응축해 물방울로 만들어 수분을 자체 공급하는 능력도 갖고 있다.

사막에 사는 딱정벌레가 스스로 갈증을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동안 이 같은 나노공정을 사용한 연꽃잎 효과는 종종 보고됐으나 이번 연구는 머리카락보다 더 가는 미세한 나노입자 표면에 자기 조립방식으로 연꽃잎 구조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최초의 사례로 알려졌다.

이를 분무기로 만들어 뿌리면 세차가 필요없는 자동차,김이 서리지 않는 유리도 등장할 수 있다.

양 교수는 "물 위를 걷는 마이크로로봇 등 기계공학이나 LCD 등 디스플레이 업계에서도 연꽃잎 효과를 이용한 코팅 기술을 사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해성 한국경제신문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