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측 설계·제작 도면에 의존해 국산화에 큰 어려움
[Science] 아~ 나로호 또 불발···나로우주센터 발사대시스템에 얽힌 우여곡절은?
한국 첫 우주로켓 나로호(KSLV-1)의 두번째 발사가 실패로 돌아가면서 항공우주연구원과 교육과학기술부,참여 기업들은 무거운 침묵 속으로 빠졌다.

8년을 걸쳐 개발을 해왔고,작년 1차 발사 실패 후 거의 모든 연구원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보완조치에 매달려 왔기 때문에 충격이 클 수밖에 없다.

나로호는 비록 1단 연소 과정에서 폭발했지만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는 장담할 수 없다.

특히 1단 자체 결함에 의한 것이라면 로켓 이륙 자체는 성공으로 이끈 국내 연구진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러시아의 도움을 받았지만 국내 기술로 만든 국산화에 성공한 나로우주센터의 발사대시스템은 수없이 많은 전기적 케이블과 수백개의 시스템이 공존하는 거대 복합시설이다.

우리 손으로 만든 첫 우주센터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큰 시설이다.

이번 실패에 굴하지 않고 앞으로 대부분의 위성을 쏘아올릴 공간이기도 하다.

항우연을 통해 나로우주센터 발사대시스템에 얽힌 우여곡절을 알아보자.

⊙ 국산화 하는 데 상당히 애먹어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 발사대시스템은 러시아 측에서 제공한 설계문서를 토대로 국산화 과정을 거쳐 2009년 6월 9일 건설됐다.

경험이 없던 우리로서는 러시아 측 전문가들에게 상세설계 및 제작도면을 거의 전적으로 의존해야 했다.

러시아 전문가들은 처음부터 자신들의 경험만이 보증된 최선의 방법이라며 우리가 시스템에 대한 의견을 내면 부정적 시선을 보내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러시아 측에서 제공한 발사대시스템 구성장비 일부는 20~30년 전 기술을 고집하는 부분도 있었다.

이에 우리 연구진은 끝없이 러시아 측을 설득해 발사대 지하 80여개 방에 자리잡고 있는 270여개 시스템에 대해 우리 기술을 적용하는 대안을 관철시켰다.

이제는 오히려 러시아 측에서 카자흐스탄 바이코노루 발사장에 구축하는 발사대시스템에 함께 참여하자는 역제안도 받게 됐다는 게 항우연의 설명이다.

⊙ 발사대시스템은 어떻게 나뉘나

러시아 측으로부터 건네받은 지상기계설비 설계문서는 처음부터 러시아 규격이라 어려움이 많았다.

모든 부품은 우주산업용으로 승인받은 것이지만 가격이 너무 비싸고 제작하는 데도 시간이 너무 걸렸기 때문이다.

이에 국내 기술진은 러시아 부품들을 국내에서 조달 가능한 산업용 부품으로 대체하는 국산화 작업에 착수했다.

수만 페이지에 달하는 도면 및 규격서를 수정하는 큰 작업이 시작됐다.

그러나 러시아 규격과 100% 일치하는 부품을 국내에서 찾기란 말 그대로 '하늘의 별따기'.

그나마 대체품을 찾아서 조달해도 전체 시스템과 맞지 않아 시험결과가 예상치를 벗어나는 일도 비일비재해 이를 수정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예를 들면 발사체를 수직으로 세우는 이렉터 밑 베어링은 러시아의 경우 베어링 공장에서 특별생산을 한다.

그러나 우리는 범용 베어링을 써도 문제가 없다고 보고 이를 기술적으로 대체했다.

또 이렉터의 유압장치와 전기장치를 제어하고 모니터링하는 제어판넬의 경우,러시아 측은 순차적으로 연결된 릴레이 형식으로 설계한 반면 우리는 보다 유지 보수에 용이한 식으로 변경했다.

대형 플랜트 및 조선사업에 세계 일류 기술을 갖고 있는 우리 기업들은 막상 발사대시스템 구축에 참여하자 상당한 실력을 발휘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항우연 측은 "이렉터는 원래 수많은 볼트를 통해 연결돼 있어 제작공정이 복잡했지만 국내 연구진과 기업은 이를 일체형 용접으로 바꿔 공정을 단순화했다"며 "국내 기술의 잠재력이 유감없이 발휘됐다"고 말했다.

⊙ 극한 상황 견디는 종합 설비

400바(bar)에 달하는 고기압과 3000도의 초고온,영하 200도의 극저온을 동시에 견뎌야 하는 발사대시스템 추진제공급설비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다.

세계 최고로 치는 프랑스 아리안 발사체도 수차례 발사 지연의 원인 중 하나가 발사체를 제어하는 고압가스의 불순물이라고 한다.

나로호의 경우도 발사대시스템 구축 초기에 가스 품질 관리에 어려움이 많았다.

머리카락보다도 가는 불순물조차 허락되지 않는 고청정도와 높은 순도 요구 조건이 문제였다.

사실 우리나라는 반도체강국이기 때문에 높은 청정도와 순도를 갖는 가스 생산은 문제가 없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대량생산을 위한 품질기준일 뿐 로켓에 적합한 것이 아니었다.

이에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은 가스품질을 관리하는 절차부터 수립해 사용 및 장비관리절차를 새로 수립해 항우연과 밀접히 공조했다.

로켓 발사 시 나오는 초고온 화염을 바다로 안전하게 배출하기 위한 터널 '화염유도로'를 완전히 국산화하기 위한 작업도 한창 진행 중이다.

발사대시스템의 핵심인 관제제어설비는 안정성을 위해 세번의 중첩성을 가지는 '삼중화 기술'을 적용한 시스템으로 설계됐다.

그러나 이는 러시아가 수십년 동안 자체 개발한 프로세서 및 신호 입출력장치를 사용하고 있어 기술을 이해하기가 상당히 난해했다.

고심하던 국내 연구진은 일부 산업계에서 적용된 TMR (Triple Modular Redundant) 제어기를 찾아내고 이를 새롭게 적용해 보기로 했다.

TMR 제어장비는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에 대한 안정성이 확보된 국제규격을 거친 장비다.

그런데 이는 일부 안전분야에 국한해 적용됐던 터라 국내에서 프로세싱 제어에 사용되기는 전례가 없었다.

연구진은 이에 굴하지 않고 수개월 동안 밤샘 작업을 거쳐 삼중화 제어설비를 개발하고 운용하게 됐다.

발사관제설비에 대한 전원공급설비 전압 변동률은 러시아 측이 ±5% 범위 이내로 요구했으나 우리는 우수한 전력 전자제어기술을 이용해 ±1% 이내의 안정된 전원을 공급할 수 있는 설비를 설치했다.

특히 발사대시스템을 구성하는 개별 서브시스템에 대한 독립적인 전원 분배 및 전원제어 능력은 러시아 기술진으로부터 확실한 인정을 받았다는 후문이다.

또 러시아 측에서 제안한 파라미터 측정시스템은 한 장소에서 센서 정보를 중앙 집중식으로 수집하는 큰 규모의 구조였다.

그러나 우리 연구원들은 자체 설계를 통해 이를 소규모의 분산형 시스템으로 구현했다.

이에 따라 현장에서 발생하는 노이즈(소음) 및 외부 영향을 최소화해 계측 데이터에 대한 신뢰도를 향상시켰으며 획기적인 비용절감을 실현했다는 설명이다.

이와 함께 러시아 측이 제공한 발사관제제어프로그램은 당초 개발 소요 기간이 수년 이상 소요되는 부분이었으나 우리 연구진은 앞선 IT기술을 기반으로 범용 개발 툴(Tool)을 만들어 단기간에 제어프로그램 개발기술을 확보했다.

이에 따라 소프트웨어에 대한 유지보수가 훨씬 쉬워졌다는 설명이다.

특히 실제 발사 시 사용되는 운용 소프트웨어를 검증하기 위한 시뮬레이션용 소프트웨어를 발사운용프로그램과 병행해 자체 개발하는 성과를 올렸다.

이해성 한국경제신문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