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의 긴 줄을 피하고 싶었어!

[경제교과서 뛰어넘기] (8) 균형과 비교 정태 분석
오랜만에 가족과 마트에 가서 물건을 구매하고 카트를 밀며 계산대로 갔다.

2개의 계산대가 열려 있었다.

1번 계산대에는 10명이 줄을 서서 계산을 기다리고 있었고, 2번 계산대에는 5명만 기다리고 있다.

그 누구도 다른 줄로 이동하지 않고 차분히 순서를 기다린다. 당신은 어느 계산대로 향하겠는가?

"갑자기 웬 마트에 관한 퀴즈?"하겠지만,이 문제를 푸는 것은 경제학의 '균형'을 이해하는 것과 아주 밀접한 연관이 있다.

균형(equilibrium)이란 '외부의 힘이 가해지지 않는 한 현재 상황이 유지되는 상태'를 말한다.

작용하는 힘이 서로 같기 때문에 외부의 교란 요인이 없다면 현 상태가 유지되는 것을 균형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경제학에서 균형은 주어진 가격에서 사려는 힘인 수요와 팔려는 힘인 공급이 같아지는 것이다.

주어진 소득과 가격에서 자신의 만족을 가장 크게 만드는 재화를 선택하려는 힘(수요량)과 주어진 기술 수준과 가격에서 자신의 이윤을 가장 크게 만드는 생산 및 판매를 선택하려는 힘(공급량)이 같아지면 균형이 이뤄지는 것이다.

이런 균형은 쌍방의 경제 주체가 최선을 다해 선택한 결과로서 외부 교란 요인이 없다면 현 상태가 유지될 것이다.
[경제교과서 뛰어넘기] (8) 균형과 비교 정태 분석
<그림1>에서 D는 '누군가'가 600원부터 1400원까지 오렌지 가격을 제시하면 차씨가 만족을 크게 만들기 위해 20개부터 4개까지 구매할 의사를 연결한 것(수요 곡선)이다.

또한 '누군가'가 600원부터 1400원까지 오렌지 가격을 제시하면 A마트가 이윤을 가장 크게 만들기 위해 4개부터 20개까지 생산 또는 판매할 의사를 연결한 곡선(공급 곡선)이 S다.

물론 이 곡선이 왜 이와 같은 모양을 가지는지는 이미 앞 시간에 배운 바 있다.

여기서 '누군가'는 아무런 사심 없이 수요자와 공급자에게 가격을 제시하고 둘 사이를 연결시켜 주는 '무손'이라는 사람이다.

무손씨가 1400원의 가격을 제시하면 차씨는 4개만 구매할 것이고 A마트는 20개를 팔려고 한다.

공급량이 수요량보다 많은 초과 공급 상태에 빠진 것이다.

오렌지가 16개나 남은 A마트는 당황해하면서 무손씨를 쳐다볼 것이다. 당황한 무손씨가 이번에는 800원을 제시하자 차씨는 16개의 오렌지를 사고 싶어 하지만 A마트는 8개만 팔 의향이 있다.

이번에는 차씨가 부족한 8개의 오렌지를 갈망하는 눈으로 무손씨를 쳐다볼 것이다.

고민하던 무손씨가 1000원의 가격을 제시하자 차씨는 12개를 구매하고,A마트도 12개를 판매한 후 서로 만족하고 자리를 떠났다.

다른 조건이 변하지 않는다면 무손씨의 중재 속에서 차씨와 A마트는 계속 1000원에 12개를 서로 사고팔 것이다.

바로 이 점이 균형인 것이다.

여기서 무손씨가 바로 경제학의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이다.

이제 퀴즈로 다시 돌아가 보자. 문제의 답을 찾았는가?

퀴즈의 답은 어디에 줄을 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줄이 짧은 2번 계산대와 줄이 긴 1번 계산대가 균형이라면 그 이유가 있을 것이다.

1번 계산대 직원의 처리 속도(1분)가 2번 계산대 직원의 처리 속도(2분)의 2배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줄을 2배나 길게 서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1번에서 대기해도 10분을 기다려야 하고,2번에서 대기해도 10분을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만약 짧은 쪽으로 이동하는 것이 유리했다면 이미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은 현재 상태가 균형이며 어디로 줄을 서도 시간의 차이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이때 사람이 북적거린다고 생각한 A마트에서 3번 계산대를 하나 더 열었다.

그 순간 줄을 서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흩어져 다시 일정한 상태로 변했다.

'3번 계산대 오픈'이라는 교란 요인이 시장을 변화시킨 것이다.

만약 계산하려는 사람들이 15명으로 일정하다면 3번 계산대가 오픈하면서 대기해야 하는 시간이 10분보다 짧아질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즉 계산대 공급이 증가하면서 대기해야 하는 시간-시간은 곧 가격이기도 하다-이 하락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 관심은 처음 계산대가 2개일 경우의 균형과 계산대가 3개일 경우 균형을 비교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균형에 이르는 과정은 '순식간에'라는 말로 얼버무렸다.

이것이 바로 비교 정태 분석(Comparative static analysis)의 특징이다.

처음 균형의 가격과 거래량에 대한 사진을 찍고,교란 요인이 발생한 후 '어찌어찌하여' '순식간에' 시장의 새로운 균형을 달성하고 나서 다시 사진을 찍어,두 균형의 사진을 비교하는 것이다.

'어찌어찌하여'의 과정과 시간의 개념이 들어간 분석은 동태(Dynamic)의 문제로 넘어가는데,이것은 대학과정에서도 잘 다루지 않고,대학원 과정에서야 다루게 된다. 기초적 수준에서는 비교 정태 분석만 알아도 충분한 것이다.
[경제교과서 뛰어넘기] (8) 균형과 비교 정태 분석
이제 마지막으로 간단한 비교 정태 분석과 함께 '순식간에'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자.

앞에서 차씨의 오렌지 수요를 우리나라 전체 오렌지 수요로,A마트의 오렌지 공급도 우리나라 전체의 오렌지 공급으로 확장하자.

여전히 무손씨는 둘 사이를 중재하고 있다.

무손씨가 제시한 가격은 1000원이고 국내에서 12억개가 거래(E1)되고 있었다.

이때 해외에서 오렌지를 수송하는 운임이 내려가면서 더 많은 오렌지가 수입된다고 한다.

이것은 가격 이외의 요인이 공급을 증가시키는 시장 교란이다.

앞에서 공부한 것과 같이 이는 공급 곡선이 오른쪽으로 이동한 것으로 나타낼 수 있다.

이때 무손씨가 가격을 1000원으로 부르자 소비자들은 12억개의 오렌지를 구매할 것이고,공급자들은 20억개를 판매하려고 할 것이다.

시장의 초과 공급을 눈치 챈 똑똑한 무손씨가 재빠르게 800원의 가격을 제시하자,소비자들은 16억개의 오렌지를 구매하려 할 것이고,공급자들도 16억개를 팔려고 할 것이다.

아주 빠르고 순식간에 시장 균형이 달성된 것이다.

무손씨가 어떻게 시장 상황을 파악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직관적으로 '사려는 사람보다 팔려는 사람이 더 많기 때문에 무손씨가 가격을 내리자 수요량이 증가하고 공급량이 감소해서 균형을 달성했구나'라고 이해하면 그만이다.

결과적으로 '수송 운임 하락 사건 때문에 시장의 균형 가격이 하락하고 균형 거래량이 증가했음'이라고 결론내리면 비교 정태 분석으로 훌륭한 것이다.

이 정도만 가지고는 비교 정태 분석의 편리함을 잘 모르겠지만,앞으로 다루게 될 각종 정부 정책의 효과 분석을 배우고 나면 그 편리함과 위력을 더욱 실감할 것이다.

차성훈 KDI 경제정보센터 책임전문원 econcha@kd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