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원리 이용한 꿈의 에너지‘프라즈마’…수소폭탄 제조도
[Science] 북한이 개발했다고 허풍 떠는 핵융합 기술은 뭘까?
최근 북한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이 지난 12일자로 북한 과학자들이 핵융합 기술을 자체 개발했다고 보도했다.

세계의 관심은 북한으로 급격히 쏠렸으며 각국은 북한의 주장에 대한 진위 확인에 분주히 움직였다.

왜 그랬을까. 핵융합은 수소폭탄을 제조할 수 있는 원천 기술이다.

수소폭탄은 핵폭탄보다 위력이 수백~수천배까지 강하기 때문에 '폭탄의 제왕'이라고도 불린다.

핵무기 보유가 기정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북한이 수소폭탄 제조 기술까지 개발하고 있다면 그야말로 큰일이다.

그러나 국가핵융합연구소는 "북한의 실험은 성공했다 해도 매우 짧은 시간 동안 플라즈마를 발생시킨 극히 초보적 단계의 수준에 불과하다"며 "군사적 목적이 아니라 전기 생산을 목적으로 기초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궁극의 에너지' 핵융합기술에 대해 알아보자.

⊙ 태양의 원리 이용한 궁극의 에너지

핵융합에너지를 알려면 먼저 태양과 플라즈마를 이해해야 한다.

태양 중심부에서는 전자로부터 자유로워진 가벼운 수소 원자핵들이 반발력을 잃고 서로 융합해 무거운 헬륨 원자핵으로 바뀌는 과정이 지속적으로 일어난다.

이때 시간당 기가(Giga)와트급 에너지가 발생한다. 지구의 모든 생명체 에너지의 근원인 태양에너지는 이런 핵융합 과정을 통해 발생한다.

플라즈마는 원자핵과 전자가 분리돼 전기적으로 중성 상태인 이온화된 입자들을 말하며 우주 물질의 99%를 차지한다.

고체→액체→기체→플라즈마 상태로 변하는 것을 두고 '제4의 물질'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일상에서 볼 수 있는 플라즈마의 예로 번개나 오로라,형광등 등을 들 수 있다.

핵융합은 태양이 열을 내는 것과 같은 원리로 고온의 플라즈마 상태에서만 발생한다.

먼저 수소 원자핵을 이온과 전자로 분리된 전기적 중성 상태의 플라즈마로 만든다. 그 다음 플라즈마가 사라지지 않도록 자장용기(토카막)로 가두고 이를 섭씨 1억~3억도의 초고온과 고압으로 가열하면 핵융합 반응이 일어난다.

핵융합 반응의 관건은 이 플라즈마를 어떻게 잘 유지하느냐는 것이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초고온의 플라즈마에서 리튬과 중성자의 핵반응에 의해 생성된 삼중수소와 중수소를 융합시키면 헬륨과 중성자가 생성된다.

이때 질량 결손에 따라 에너지가 생성된다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에 따라 17.58 MeV(메가전자볼트)의 막대한 에너지가 지속적으로 방출된다.

⊙ 친환경 고효율 에너지

핵융합 에너지는 여러 장점을 갖고 있다.

먼저 화력발전소처럼 온실가스나 원자력발전소처럼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을 발생시키지 않는 친환경 에너지다.

핵융합 반응 결과 발생하는 방사능 독성도는 50년이 지나면 오히려 화력발전소의 석탄재보다도 독성이 낮아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안전한 에너지다.

플라즈마는 전하를 띤 기체다.

기본 원리상으로는 운전 오작동으로 플라즈마가 불안정해져서 핵융합로 내벽과 접촉하게 되더라도 플라즈마는 즉시 소멸되고 장치의 작동이 멈추게 돼 있다.

에너지원이 무한하다는 장점도 있다.

중수소는 바닷물 1ℓ당 0.03g이 존재한다.

이것만을 핵융합발전에 이용하더라도 평균 연비의 중형 승용차로 서울에서 부산을 세 번 왕복할 수 있는 휘발유와 동일한 에너지가 나온다.

또 효율이 매우 높은 에너지원이다. 중수소와 삼중수소 1g을 융합할 경우 1만ℓ의 중유를 태운 것과 같은 열량을 낼 수 있다.

현존하는 발전소를 예로 들면,300g의 삼중수소와 200g의 중수소만 있으면 고리 원자력 발전소보다 2배나 큰 100만 킬로와트(㎾)급 핵융합발전소를 하루 동안 가동시킬 수 있다.

⊙ 선진국도 2040년께 상용화 목표

현재 우리나라는 '핵융합에너지개발진흥에관한 특별법'과 '핵융합에너지개발진흥기본계획'을 수립해 국가차원의 장기적 전략을 세워 자립기술을 단계적으로 개발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70~80년 소형 토카막 연구 등 기초연구를 거쳐,1995년에 이미 대형 초전도 토카막을 건설키로 결정하고 2007년까지 3090억원을 투입하기로 결정했었다.

2003년에는 국제핵융합실험로(ITER · 한국 EU 미국 일본 러시아 중국 인도 7개국이 핵융합에너지 상용화를 목표로 공동으로 핵융합로를 건설하고 운영하는 국제협력 프로젝트) 국제기구 사업 공식 참여를 결정했다.

이어 2007년 9월에는 국내 기술로 핵융합실험로인 'KSTAR'제작을 완료했으며 2008년 6월 최초로 플라즈마를 발생시키는 데 성공하며 '대형 토카막 보유국'에 이름을 올렸다. 핵융합기술 개발국에 본격적으로 합류하기 시작한 것이다.

최근에는 국가핵융합연구소와 ITER 국제기구 간에 'KSTER'를 'ITER' 운전에 앞서 여러 모의 실험을 하는 '선행연구장치'로 활용하기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이로써 한국은 핵융합발전기에 쓰이는 초전도자석 · 진공용기 · 삼중수소 운송저장 · 전력공급계통 등 우리에게 할당된 ITER 10개 품목을 국내 기술로 제작 공급할 예정이다.

인력 파견 및 양성은 물론,조달품목에 따른 공정관리나 품질관리를 통해 ITER 기술 개발에 참여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ITER의 사업기간은 2006년부터 2040년까지다.

이 기간 약 51억유로(EU 약 45%,나머지 6개국 분담)가 투입될 예정이며 건설부지는 프랑스 카다라쉬에 위치하고 있다.

ITER의 열출력 용량은 한국 표준 원전의 6분의 1 규모인 열출력 500메가와트(㎿)급 규모다.

그러나 핵융합 에너지 실용화를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

핵융합로의 장시간 운전이나 극한 상황을 견딜 수 있는 실험로 재질 개발 등 여러 기술적 난제가 남아 있다.

선진국들조차도 멀찌감치 2040년을 목표로 한 이유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의 독자적 핵융합 기술 발표는 더욱 신빙성에 의심을 갖게 한다.

국가핵융합연구소 관계자는 "상전도 토카막 등 실험실에서나 쓰일 수 있는 초기단계의 핵융합연구장치 제작을 통해 아주 짧은 시간 플라즈마를 발생시킨 수준으로 보인다"며 "그렇다면 이미 1970~80년대 우리가 수행한 연구"라고 설명했다.

또 실험실 수준의 핵융합 기술 연구와 수소폭탄 제조 기술은 차원이 다르다.

이해성 한국경제신문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