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화 파괴한다는 세계화에 대한 반론… 그러나…

[실전 고전읽기] 56.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오래된 미래」
오늘날 환경문제의 심각성을 부인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사실 오래 전부터 산업화와 경제 성장이 생태계를 파괴하고 인류에게 치명적인 위험을 가져올 것이라는 우려는 존재해 왔다.

개발이냐 환경이냐는 논쟁에서 '지속가능한 개발'이라는 말이 화두가 된 지도 오래되었다.

더구나 최근 글로벌 경제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그 우려가 더욱 커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최근 우리는 지구촌 곳곳에서 폭설,가뭄,홍수,지진 등으로 수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했다는 뉴스를 자주 접할 수 있다.

지난달 전 세계를 경악케 하며 무려 수십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아이티 강진의 충격에서 채 벗어나기도 전에 지난주에는 그보다 더 위력이 큰 지진이 칠레를 덮쳤다.

이런 소식을 접할 때마다 우리는 과학기술의 발달에 따른 산업화와 경제 성장에 대한 '자연의 역습'이 시작되었고,성장에 대한 인간의 무한한 욕망이 얼마나 어마어마한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목격하게 된다.

이처럼 환경문제의 심각성 제기와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더욱 절실하며 이는 실제 논술 시험에서도 출제될 수 있는 주제로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오래된 미래'를 재조명할 필요성이 있다.

⊙ 호지,라다크로부터 배우다

언어학자였던 저자는 학위를 위해 티벳의 작은 고장 '라다크'에 16년 동안 드나들면서 그곳의 문화와 철학에 매료되었다고 한다.

이후 그녀는 라다크에 서구문명이 유입되면서 파괴되는 전통문화와 가치관을 안타까워하며 최근까지도 전 세계에서 세계화와 현대문명을 비판하는 강연을 왕성하게 벌이고 있다.

"라다크에 머무는 동안 나는 기존의 것 이외에도 더욱 바람직한 삶의 방법이 있다는 것을 경험하는 한편 그동안 나 자신이 속해 있던 문화를 외부에서 바라보게 되었다. 라다크 사회는 그 근본부터 다른 원칙에 기초를 둔 곳이었고,그곳에서 나는 현대화된 외부세계가 그들의 문화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상황들을 목격했다. 처음 라다크 땅을 밟았을 때 나는 몇 십년 만에 그곳을 찾은 외국인이었으며,당시의 라다크는 서구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나 이후 불어닥친 변화의 물결은 너무나 거센 것이었다. 극명하고 생생한 대조를 이루는 이 두 문화의 충돌은 드라마틱하게 펼쳐졌다. 나는 산업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사회적 기술적 구조의 심리 · 가치에 대해 알게 되었고,또 무엇이 전통적 가치에 기반을 둔 사회를 지지하는지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나 같은 서구인이 내가 속한 사회 경제적 시스템과 보다 근본적이며 자연과 인간의 공동진화에 기초를 둔 또 다른 시스템을 비교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흔치 않은 기회였다."

호지는 '오래된 미래'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우리는 흔히 환경문제의 원인은 서구화된 기계문명에서 찾는데 서구 출신의 주류 사상가들이 자신이 속한 서구와 산업사회에서의 경험을 보편화하려는 경향을 보이며 자신들이 설명하는 특성들을 산업문화의 산물이 아니라 인간 본성의 표상이라고 전제한 것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서구의 문화가 유럽과 북미에서 전 세계로 확산되는 과정에서 서구의 경험이 일반화되었고 이러한 경향은 필연적인 것으로 인식되며 너무나 강력한 힘을 가지고 전파되면서 스스로 돌아볼 객관적인 시각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세계가 지나치게 한쪽으로 치닫지 않고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사회를 구성하고 유지해 주는 상호연계의 의미를 이해하면서 미래로 나아갈 방향을 가늠할 수 있다고 본다.

라다크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자기 세계에 갇힌 획일적인 사고가 아니라 폭넓은 시각을 통해 현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지난 수 세기 동안 레는 자연친화적인 경제체제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그로 인해 레는 오랜 기간 지속이 가능한 안정감 있는 생산구조를 유지할 수 있었다. 도심과 교외 지역 사이에는 역동적인 균형관계가 이루어졌다. 그것은 한쪽이 언제나 다른 한쪽을 보완해 주는 관계였다. 주민의 일부가 외부세계와의 교역으로 생활을 하는 경우는 있지만 대부분의 경제활동은 지역의 자원에 기반을 두고 이루어졌다.

그런데 지금 진행되고 있는 개발 계획은 레를 이질적인 경제적 기초의 중심으로 변형시키고 있다. 외부세계로 연결되는 도로가 건설되면서 라다크는 세계 거시경제의 구조 속으로 편입되었고 지역의 경제활동을 레로 집중시켰다. 또한 현대생활의 모든 요소들이 유입되기 시작했다. 전기가 들어오고 처음으로 가스 충전소라는 곳이 세워졌고,정부의 활동과 임금 노동이 활발해졌다. 또 처음으로 서구식 병원이 생겼고 극장,학교,은행에 축구장까지 생겨났다. 다른 지역의 경우와 같이 라다크의 개발 과정은 사람들을 쉴 새 없이 중심으로 끌어당기는 소용돌이와도 같았다.

지난 16년 사이 레의 인구는 두 배로 불었다. 교육과 취업을 위해 젊은 사람들이 도시로 떠나면서 농촌의 인구는 감소하기 시작했다. 그 좁은 지역이 많은 사람들로 북적대면서 적지 않은 사회문제들이 생겨났다. 여름철이면 레의 도로들은 붐비는 차량으로 인한 교통체증으로 몸살을 앓을 정도가 된다. 좁고 북적거리는 도시에서 사람들은 살을 맞대고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그들 사이의 거리는 예전보다 훨씬 더 멀어져 있다. 서로 돕고 사는 분위기를 북돋워주던 지역의 정치경제구조는 이제 붕괴되고 만 것이다. 몸이 아프거나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 레에 사는 사람들은 옆집에 사는 낯선 이웃보다 고향 마을의 친지를 먼저 찾는다. 주거공간도 너무 비좁다. 주방과 욕실이 없는 방 두 개짜리 주거공간에 여덟 식구가 모여 사는 경우도 있다."

저자는 중심사회,경제성장이라는 중독이 사람들을 자신들의 자원으로부터 분리시키며 지역의 경제체제를 파괴시켰다는 것을 개발 이전과 이후라는 라다크의 모습을 대비시키며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척박한 자연환경 속에서도 불교문화를 지키며 자급자족하며 공동체를 운영해 오던 라다크가 세계화 과정에서 변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속한 사회 역시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우리 사회에서도 '세계화'란 매번 뜨거운 논란을 일으키고 있지 않은가?

풍요와 편리라는 이름으로 다양성보다는 보편화,표준화된 삶을 최우선하면서 라다크의 중심거리가 세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들로 채워지는 것처럼 우리 주변 역시 채워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비단 환경문제에만 속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가 흔히 행복을 사회구조와 함께 이야기하는 것과도 연관될 수 있는 것이다.

개인이 생각하는 행복의 조건이란 결국 그가 속한 사회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삶의 태도 역시 구조를 변화시키는 동력이 될 수 있음을 역설한다고도 볼 수 있다.

어쩌면 이러한 요소들이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에까지 '오래된 미래'라는 책이 고전으로서 영향을 미치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자부심과 자신의 가치에 대한 인식이 흔들리기 이전에는 자신들이 문명화되어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 굳이 전기 같은 것을 설치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개발의 영향력은 짧은 기간 중 사람들의 자존심을 침식해버렸고 그 결과 전기는 말할 것도 없이 펀자브 지방에서 생산된 쌀이나 플라스틱 제품들까지도 그들의 생활필수품이 되어 버렸다. 나는 시계를 볼 줄 모르는 사람들이 그 소용없는 손목시계를 자랑이라도 하듯 손목에 두른 모습을 보기도 했다. 사람들 사이에 자신이 현대화된 것으로 보이고 싶어 하는 분위기가 높아지면서 고유문화를 부정하려는 경향이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전통 음식을 먹는다는 것도 이제는 더 이상 자부심을 가질 만한 일이 아닌 상황이 돼버렸다. 마을 사람들의 집에 초대되었을 때 그들은 즉석라면이 없어 전통 음식인 보리빵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는 것에 미안해하기도 했다.

이제 라다크 사람들 대부분은 개발을 필수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물론 전통사회를 옹호하는 입장에서 두 사회를 비교할 경우에도 전통사회가 완벽한 사회라고 할 수는 없다. 분명 그 안에도 개선할 점을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나는 개발이라는 것이 꼭 파괴의 의미를 지니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라다크 사람들의 수 세기 동안 영위해온 사회적,생태학적 균형을 희생시키지 않고서도 그들 삶의 수준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한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 위해 그들은 관습화된 개발의 방향을 답습하여 고유의 것을 해체해버리기보다 오래 전부터 내려오던 그 기반 위에 새로운 것을 건설해야 할 것이다."

경제 개발을 시작하는 세계 모든 곳에서 일어나는 현상이 라다크에서도 발견된다는 점에서 라다크를 통해 오늘의 문제에 대한 해결방안 역시 모색할 수 있는 것이다.

서구문명이 들어오면 올수록 전통문화가 설 자리는 사라져간다는 인식이 '개발=서구화,보존=전통문화'라는 담론을 형성해 왔는지도 모른다.

1990년대 이후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세계화 광풍은 분명 다양한 기존 전통문화를 서구화라는 획일화된 모습으로 바꿔왔다.

그리고 작년 코펜하겐에서 열렸던 '기후변화협약 회의'처럼 환경문제를 전 지구적차원에서 접근하는 것도 사실 세계화로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개발 자체를 부정할 수 없는 현실도 인정해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4대강 정비사업''뉴타운개발' 등의 사업이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때문에 개발을 파괴와 동일시하는 것도 착오이다.

특히 오늘날과 같은 세계화시대에 개발을 부정하는 논리는 결코 설득력을 얻을 수 없다.

어쩔 수 없이 망각되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지속가능한 개발'에 다시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은희 S · 논술 선임연구원 Jinenji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