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연구진, 세계 최대 식물유전자 네트워크 규명
[Science] 식물도 사람처럼 유전자 네트워크가 있었네!
국내연구진이 세계 최대 식물유전자 네트워크를 규명해 농업 및 바이오에너지 연구의 새로운 발전 가능성 제시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이인석 연세대학교 생명공학과 교수가 식물유전자 2만개 간에 존재하는 100만 개 이상의 기능적 상관관계를 지도화한 세계 최대 식물유전자네트워크를 규명했다고 2일 발표했다.

이승연 미국 카네기연구소 박사, 마콧(Marcotte) 텍사스주립대 박사와의 국제 공동 연구를 통해 수행된 이번 연구결과는 생명공학분야의 국제저널인 ‘네이처 생명 공학(Nature Biotechnology)’ 온라인판에 게재됐다.

⊙ 유전자 네트워크란?

유전자들간의 상호관계를 의미하는 유전자 네트워크는 밝혀지지 않은 유전자들의 숨겨진 기능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돕는다.

사람들은 서로 연결돼 ‘사회’라는 휴먼네트워크를 이룬다.

컴퓨터들은 서로 연결돼 ‘인터넷’이라는 컴퓨터 네트워크를 구성한다.

이같이 생물체 안에 존재하는 유전자들도 기능적으로 서로 연결돼 ‘유전자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이같은 유전자 네트워크를 규명하는 것은 매우 유용하다.

이는 성격이 비슷한 사람들이 더욱 가깝게 지내듯이 기능이 유사한 유전자들은 보다 밀접하게 관련돼있기 때문이다.

이들 관련성을 지도화한 유전자네트워크를 이용하면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유전자의 기능을 밀접하게 연관된 이웃 유전자들의 이미 잘 알려진 기능을 근거로 예측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전까지 생물학자들은 유전학은 유전자만 연구하면 되는 것으로 알았다.

그러나 2000년에 들어서면서 과학자들은 단순히 유전자만 연구하는 것으로는 생명체를 이해하기에 크게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유전자 청사진은 단순히 유전자를 모아서 정리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아주 복잡한 네트워크로 구성돼있고 이 네트워크 내에서 유전자들은 복잡한 방식으로 상호작용을 한다는 사실에 집중하게 된 것이다.

이 때문에 유전자 네트워크는 현대 생물학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시스템생물학(System Biology)에서 매우 중요한 연구 목표이자 수단으로 각광받고 있다.

시스템생물학은 생물시스템간의 복잡한 상호관계에 초점을 맞춘 학제간 연구 분야로 부분에 대한 연구 대신 시스템이라는 총체적 관점에서 생물학 연구를 수행한다.

즉 생명체를 유전자와 단백질이 네트워크처럼 얽혀 있는 시스템으로 간주하고 생명현상을 설명한다는 것이다.

⊙ 애기장대의 유전자네트워크 규명

이 교수 연구팀의 이번 연구는 유전자네트워크를 이용한 연구방법이 기존의 미생물과 동물연구뿐만 아니라 식물에서도 가능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

이 교수팀은 식물의 한 종류인 애기장대(Arabidopsis)의 유전자네트워크<사진>를 규명했다.

애기장대는 여러 가지 연구의 수월성 때문에 식물연구에 가장 많이 쓰이고 있는 모델 생물체로 약 3만개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으며 쌍떡잎식물의 대표 연구식물이기도 하다.

애기장대는 발아해서 다음 씨가 맺힐 때까지의 1세대 기간이 약 6주로 짧고 화학물질을 쓰면 다양한 형태의 돌연변이체를 간단히 만들 수 있다.

또 크기가 작아서 유리 용기 안에서 쉽게 재배할 수 있고 유전자 사이즈가 작기 때문에 식물 연구를 위한 모델 식물로 많이 활용된다.

식물은 자연계에서 동물보다 더 오래 진화해 왔기 때문에 유전자의 수도 많고 복잡하다.

이 때문에 현재까지 식물의 기능에 대한 연구는 동물에 비해 상대적으로 뒤떨어져 있다.

그러나 21세기 식량문제와 환경문제가 글로벌 이슈로 대두됨에 따라 식물연구의 필요성이 증대되고 있다.

특히 벼와 옥수수 같은 주요작물이 가뭄이나 병충해와 같은 유해환경에 적응하는데 주요한 역할을 하는 ‘작물유전자(농작물의 좋은 형질을 보존하는 유전자)’의 발굴은 식량문제와 환경문제를 해결 하는데 중요한 열쇠가 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작물당 3만~5만개에 이르는 유전자들 중에서 중요한 형질과 관련된 소수 유전자들을 탐색하기 위해서는 현재까지 많은 기술적 한계가 존재한다.

⊙ 가뭄저항 유전자, 뿌리 생장 조절 유전자 발견

이번 연구에서 이인석 교수팀은 새로운 유전자 ‘드라스원(Drs1)’과 ‘라스원 (Lrs1)’을 발견했다.

이 교수팀은 식물연구에 가장 널리 사용되는 애기장대의 유전자 네트워크를 이용해 예측된 소수 후보유전자들을 테스트했다.

그 결과 드라스원 유전자는 가뭄에 저항하는 기능을,라스원 유전자는 뿌리 생장을 조절하는 기능을 지녔다는 사실이 새롭게 발견됐다.

또한 네트워크를 이용한 형질 조절 유전자 발굴법이 기존의 유전자 탐색법에 비해 10배 이상의 효율이 높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이인석 교수는 “이번 연구는 벼,옥수수와 같은 식량이나 바이오연료로 사용될 수 있는 작물의 유전자네트워크를 이용해 형질개량 유전자들을 효과적으로 발굴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성공사례”라며 “이러한 식물과 작물의 유전자네트워크는 향후 농업과 바이오 에너지 연구에 획기적인 발전을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유전자 네트워크 분석 기술을 활용하면 유전자 하나하나를 분석하는 방법보다 유전자 기능 분석에 있어서 10배 정도 효율이 좋아진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단세포 진핵미생물인 효모와 동물연구 모델생명체인 꼬마선충의 유전자네트워크를 개발한 뒤 이를 활용해 종양과 같은 질병과 관련된 새로운 유전자들을 예측할 수 있다는 사실을 2004년과 2008년에 각각 ‘사이언스(Science)’와 ‘네이처 유전학(Nature Genetics)’에 발표한 바 있다.

이 교수는 당시 선충에서 발견된 암 유발 유전자 네트워크가 사람과 비슷하다는 사실을 밝혔으며 선충에서 인간의 암과 유사한 형질이상을 일으키는 데 관여하는 16개의 새로운 유전자를 발견했다.

황경남 한국경제신문 기자 knhw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