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의 의미는 무엇일까?

<논제>

인간이 의미있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정신적으로 성숙해져야 하며,그 성숙의 정도와 단계는 개인마다 다르다.

다음 제시문들은 각 작품의 화자이자 주인공이 큰 세계를 경험하면서 성숙해가는 과정에서의 내면 풍경을 묘사하고 있다.

제시문에서 그들이 깨달은 것 혹은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성숙'이라는 관점에서 자신의 경험을 활용하여 논하시오.

[논술 기출문제 풀이] 2010학년도 서울대학교 수시 기출문제 풀이
1
나는 드디어 뭍에 올랐다!

뱃삯을 안 문 건 순전히 할머니 덕분인데 오히려 할머니가 나에게 고생했다고 말했다.

"악아,늙은이 짐 들어 주느라고 고생했다. 여그 선창 가까운 디서 우리 딸네미가 식당을 한께 거기 가서 점심이나 먹고 가그라."

그러잖아도 배가 출출한데 잘 됐다 싶었다.

"그럼 지가 거기까지 짐을 들어다 주고 갈께요."

나는 올망졸망한 할머니의 짐을 양 손에 힘껏 들고 걸어 나갔다.

짐을 들긴 했지만 내 걸음이 그래도 할머니 걸음보다 빨라 한참 앞서 가다가 멈춰 섰다.

"할무니,어느 쪽으로 가요?"

나는 중간중간 길을 확인하면서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할머니의 딸이 하는 식당은 부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건물은 낡았지만 식탁이 여남은 개 놓여 있을 정도로 실내는 넓었다.

부두가 가까워서 뜨내기 손님이 많은지 출입문 위엔 '나그네 식당'이라는 간판이 붙어 있었다.

할머니의 딸은 은주 고모와 나이가 엇비슷해 보였다.

점심이 나오자,할머니는 자기 밥그릇에 있는 밥을 내 밥그릇에 덜어 주면서 걱정스레 말했다.

"많이 먹그라. 객지에 나오면 배곯는 설움이 제일 큰 것인께."

나는 순간적으로 콧등이 시큰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런데 밥을 다 먹고 나자,할머니의 딸이 다짜고짜 나에게 호통치듯 말했다.

"너,뭣 땜시 집 나왔어? 쓸데없는 생각 말고 다시 돌아가그라. 에미,애비 속 좀 그만 썩이고!"

나는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할머니가 거들었다.

"에미 찾는다고 하더구먼."

그러자 할머니의 딸이 까르륵 하고 웃었다.

"고 방울만한 녀석이 거짓말도 상당하게 하네. 느이 어무니는 집에 있을 것인디 목포 바닥에서 으찌께 찾는다냐?"

나는 얼굴이 빨개져서 뭐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할머니의 딸은 나 같은 놈은 수도 없이 많이 봤다는 태도였다.

"너 몇 학년이냐? 아직 학교 댕길 나이로 보이는디,학교나 졸업하고 집을 기어 나와도 나와라. 으이구,이 녀석!"

할머니의 딸은 기어코 내 머리통을 쥐어박았다.

나는 순간,자리를 박차고 밖으로 나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러나 꾹 참았다.

성깔대로 했다간 세상을 살아나갈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목포 바닥에 있다간 언제 집으로 잡혀 갈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친 김에 서울로 가 버리자고 마음먹었다.

할머니의 딸은 나에게 자기 집에서 자고 내일 아침 배로 할머니와 같이 다시 돌아가라고 윽박지르다시피했다.

이마빼기에 피도 안 마른 조그마한 녀석이 일찍 도시물 먹어 봐야 건달밖에 더 되겠느냐는 것이 할머니 딸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나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나는 이미 인생이 뭔지 나름대로 겪을 것 다 겪고 집을 나온 것이다.

그런데 나보고 마빡에 피도 안 마른 조그마한 녀석이라니!

나는 거기 있다간 죽도 밥도 안 될 것 같아서 잘 먹었다는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하고선 후닥닥 뛰쳐나왔다.

2 설리번 선생님(Miss Sullivan)이 오신 다음날 아침 선생님은 나를 방으로 데리고 가시더니 인형 하나를 주셨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 인형은 퍼킨스 맹아학교의 어린이들이 보내준 것으로,로라 브리지먼이 옷을 만들어 입힌 것이었다.

인형을 갖고 논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선생님이 내 손바닥에 천천히 'd-o-l-l'(인형)이라고 쓰셨다.

나는 단박에 이 손가락 놀이에 흥미를 느끼고 그대로 따라서 써보았다.

마침내 그 글자들을 올바로 쓰는 데 성공하자 나는 어린애다운 기쁨과 자랑스러움으로 얼굴이 발그레해졌다.

그리고 어머니가 계신 아래층으로 내려가 손을 치켜들고 'doll'이라고 썼다.

그때 나는 내가 한 단어의 철자를 쓰고 있다는 것도,심지어 단어라는 게 존재한다는 것조차 알지 못했다.

그저 원숭이가 흉내 내듯 손가락을 움직였을 뿐이었다.

그 뒤로 며칠 동안 나는 뜻도 모르는 채 많은 단어의 철자를 익혔는데,그 단어들 중에는 'pin,hat,cup'은 물론 'sit,stand,walk'와 같은 동사도 있었다.

몇 주 동안 이런 식의 단어 공부가 계속된 후에야 모든 것에 이름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어느 날 새 인형을 갖고 놀고 있는데,설리번 선생님이 내 무릎에 큰 봉제 인형을 올려 놓으시고는 내 손바닥에 'd-o-l-l'이라고 쓰셨다.

선생님은 내게 이 두 인형 모두 'd-o-l-l'이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이해시키려고 애쓰셨다.

그러나 그날 아침 우리는 벌써 'm-u-g'와 'w-a-t-e-r'이라는 단어를 가지고 씨름을 했었다.

선생님은 'm-u-g'는 mug(머그컵)이고,'w-a-t-e-r'은 water(물)를 뜻한다고 깨우쳐주려 애쓰셨지만 나는 계속 둘을 혼동했다.

실망한 선생님은 적절한 기회에 다시 가르치기로 하고 잠시 그 문제를 접어두셨다.

나는 선생님의 매번 반복되는 방식에 짜증이 나서 새 인형을 들어서 마룻바닥에 내동댕이쳤다.

깨진 인형 조각이 발에 닿자 짜릿한 쾌감을 느꼈다.

거칠게 성질을 부렸지만 조금도 슬프거나 후회스럽지 않았다.

사실 마음에 드는 인형도 아니었다.

내가 사는 적막한 암흑의 세계에는 슬픔이니 후회니 하는 감정은 존재하지 않았다.

선생님이 깨진 인형 조각을 난로 한 켠으로 쓸어 내시는 것을 느꼈을 때,나를 불편하게 만들던 원인이 없어져서 더할 나위없이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나서 선생님이 모자를 가져다 주셔서 나를 데리고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는 밖으로 나가시려는구나 하고 짐작할 수 있었다.

만약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이 느낌을 생각이라고 부른다면,지금 든 이 생각이야말로 나를 기뻐서 어쩔 줄 모르게 만들었다.

우리는 우물을 뒤덮은 인동덩굴 향기에 이끌려 오솔길을 따라 내려갔다.

누군가 물을 긷고 있었고 선생님은 물이 쏟아져 나오는 꼭지 아래에 내 손을 갖다 대셨다.

차가운 물줄기가 꼭지에 닿은 손으로 계속해서 쏟아져 흐르는 가운데 선생님은 다른 한 손에 처음에는 천천히,다음에는 빠르게 'w-a-t-e-r'이라고 쓰셨다.

나는 선생님의 손가락 움직임에 온 신경을 곤두세운 채 가만히 서 있었다.

갑자기 잊혀진 것,그래서 가물가물 흐릿한 의식 저편으로부터 생각이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며 돌아오는 전율을 느꼈다.

언어의 신비가 내 앞에서 베일을 벗는 순간이었다.

나는 그제야 지금 내 손 위로 세차게 쏟아지는 이 차가운 물줄기가 water라는 것의 정체임을 알았다.

살아 숨쉬는 낱말의 입맞춤을 받은 내 영혼은 긴 잠에서 깨어나 그것이 가져다 준 빛과 희망과 기쁨을 맛보았을 뿐만 아니라,드디어 자유를 얻은 것이다.

물론 아직도 많은 장애물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그 모든 장애물은 시간이 흐르면서 사라질 것들이었다.

3 그래서 나는 그야말로 고민에 빠졌고,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를 지경이 되고 말았습니다.

마침내 한 가지 생각이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그래 편지를 쓰자. 그리고 나서 기도할 수 있는지 알아보기로 하자.

그러자 놀랍게도 그 순간 내 마음이 깃털처럼 가벼워지면서 모든 고민이 말끔히 사라져 버렸습니다.

매우 기쁘고 마음이 들떠 종이와 연필을 꺼내고 앉아서 이렇게 편지를 썼습니다.

왓슨 아줌마에게

도망 노예 짐(Jim)은 파이크스빌에서 2마일 하류에 있는데,펠프스 씨가 그를 붙잡아놓고 있습니다. 만약 아줌마가 현상금을 보내면 돌려보내 주겠지요.

―헉 핀(Huck Finn)

나는 난생 처음으로 죄가 깨끗이 씻겨진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제는 기도를 드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곧장 기도를 드리지 않고 편지를 아래에다 내려놓고서 앉은 채 생각에 잠겨 있었습니다.

참 이렇게 되어서 천만다행이야,하마터면 길을 헤매다 지옥에 떨어질 뻔했잖아 하고 말이지요.

그리고는 생각을 계속 했습니다.

강을 따라 내려오던 우리들의 여행에 생각이 미치자 바로 눈앞에 짐이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낮이나 밤이나 때로는 달빛 아래서 때로는 폭풍우 속에서 항상 곁에 짐이 보였습니다.

우리들은 서로 얘기 나누고 노래 부르며 웃어대면서 뗏목을 타고 강을 따라 내려왔지요.

그러나 웬일인지 짐에게 나쁜 감정을 품었던 때는 전혀 머리에 떠오르지 않고 그 반대의 장면만이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짐이 자기 몫의 불침번을 선 다음,내가 그대로 잠을 잘 수 있도록 나를 깨우지 않고 내 몫까지 해준 짐의 모습이며,안개 속에서 내가 돌아왔을 때에도,원한으로 두 집안이 싸우던 그 곳 늪지에서 다시 돌아왔을 때에도 그토록 기뻐하던 짐의 모습이 머리에 떠올랐지요.

그리고 늘 나를 귀염둥이 도련님이라고 다정하게 부르며 귀여워해 주었고,나를 위한 일이라면 무슨 일이건 기꺼이 해주었지요.

짐은 늘 나에게 얼마나 친절하게 대해 주었던지요.

맨 마지막으로 내가 뗏목에 천연두 환자가 타고 있다고 하여 짐을 구해 냈을 때,짐이 아주 고마워하며 나더러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친구이자 하나밖에 없는 친구라고 했던 일이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바로 그 때 우연히 주위를 둘러보다가 방금 써놓은 그 편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슬아슬한 순간이었습니다.

나는 편지를 움켜쥐었습니다. 몸이 부들부들 떨렸습니다.

둘 중에서 어느 하나를 결정해야 했고,어느 쪽을 택할 것인지 이미 알았기 때문이었지요.

나는 숨을 멈추고 잠시 생각한 끝에 혼잣말로 중얼거렸습니다.

"그래,그렇다면 난 지옥으로 갈테다"(All right,then,I'll go to hell).

그리고는 편지를 북북 찢어버렸습니다.

그것은 끔직스런 생각이었고 무서운 말이었지만 입 밖으로 내뱉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 말을 쓸어 담을 생각을 하지 않고 그냥 그대로 내버려두었지요.

그리고는 이제 두 번 다시는 마음 고쳐먹는 일에 대해서 신경 끄기로 했습니다.

그 모든 생각을 머리에서 말끔히 씻어버렸지요.

다시 나쁜 짓을 하기로 하자고 마음 먹었습니다.

나란 놈은 자라나기를 그런 식으로 자라났으니 나쁜 짓은 내 천성에 맞고,착한 일은 그렇지 않다고 말입니다.

맨 첫 번째 일로 나는 노예 상태의 짐을 다시 한 번 빼내자,아니 그보다 더 나쁜 일이라도 생각해 낼 수 있다면 그것마저 하겠다고 다짐했지요.

나쁜 짓을 하기로 한 이상,더구나 끝까지 하기로 한 이상,철저하게 해내는 것이 좋을 테니까요.

⊙ 출제방향

서울대학교 논술이 변화하고 있다.

이번 수시논술에서 보인 서울대 논술의 유형은 특정되기 어렵다.

일반적으로 자주 출제되던 정형적 논제가 아니며,서울대학교에서 요구하던 제시문간의 유기적인 정합성을 치밀하게 요구하는 문제도 아니다.

자신의 경험을 기본으로 해서 깨달은 것과 깨닫지 못한 것을 읽어내고 성숙의 의미를 완성시키라는 평범한 논제다.

하지만 이 평범한 논제가 더 어렵다.

평소에 성숙의 의미를 충분히 사고하지 못했다면 지엽적인 독해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앞으로 서울대 논술을 준비하는 학생들은 최소한의 배경지식과 독서가 필요하다.

이제 논술은 단순한 글쓰기 시험이 아니라 진정 사고의 싸움이 되어 벼렸다.

더 치밀한 생각과 더 치열한 사고의 흔적을 남겨야만 한다.

이번 문항은 성숙에 대한 다의적인 의미 도출을 요구하고 있다.

성숙에서 정신적인 성숙과 육체적인 성숙이 있겠지만,이번 제시문들은 주로 정신적인 성숙에 초점을 두고 논의를 진행한다.

그 정신적 성숙의 범위가 어떻게 규정되고,성숙을 깨닫는 주체가 누구인지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 논제 분석 및 제시문 분석

문제에서 제시문의 인물들이 깨달은 것과 깨닫지 못한 것을 분명히 밝힐 것을 요구하고 있다.

따라서 제시문에 대한 기본 해석과 함께 깨달은 것과 깨닫지 못한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언급하고,그것이 시사하는 바를 찾아야 한다.

인간의 성숙은 개인적,사회적,국가적 의미에서 언제나 추구하고 지향하는 목표이다.

개인적 성숙으로서의 자아실현,사회적 성숙으로서의 인간간의 신뢰,국가적 성숙으로서의 질서유지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의 성숙은 개별 주체간의 추구 과정에서 갈등으로 확대되는 경우가 있다.

'성숙' 자체는 모두가 전제하는 지향점이지만,그 의미의 규정과 범위의 확정에 있어 모호한 경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개인적 성숙을 주장하는 쪽에서는 이른바 수양을 통한 깨달음이나 내적 인지 능력의 확장을 전제한다.

그리고 사회적,국가적 의미의 성숙을 주장하는 쪽은 개인의 내적 활동과 인간간의 관계망 설정에 일정한 제약을 요구한다.

하지만 이 대립되는 성숙에 대한 견해는 인간이 더 나은 상태로 나아가고자 하는 본능적 욕구이자 사회적 필요로 인식한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다.

따라서 성숙은 그것의 추구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조화된 지향점을 합의할 수 있느냐가 주된 논점이 되어야 한다.

제시문 <1>,<2>,<3>은 각각 특정 인물의 성숙이 가지는 의의와 한계를 내포하고 있다.

제시문<1>의 '나'는 '할머니 딸'의 호통에 대해 무시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할머니 딸'의 경우 '나'를 학교를 다니고 가정의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아이로 인식하는 반면,'나'는 스스로를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고 속박으로부터의 자유를 성숙의 당연한 결과로 믿는다.

'나'는 성숙의 개념을 자신의 경험에 대한 믿음과 확신으로 획득하지만,'할머니 딸'은 나이라는 생물학적 연령에 기대되는 사회적 의미의 성숙을 기준으로 제시함으로써 성숙의 규정에 불일치가 생기는 것이다.

'나'와 같은 성숙의 자의적이고 개별적인 규정은 획일적인 인간의 '기대 역할'을 개방적인 개념으로 바꿀수 있다는 데 의의가 있다.

하지만 '할머니 딸'이 인식하는 성숙은 사회적 경험을 기반으로 체화된 경험가치로서 무시할 수 없다.

화자인 '나'는 더 큰 자신의 꿈을 성취하기 위해 도전의 길을 택한것이라 할 수 있지만,사회에서 최소한의 요구되는 경험가치에 반할 경우,이는 공허한 자기 만족으로 그칠 가능성이 크다.

국가에서 정한 의무교육의 체계를 일탈했을 경우,우리 사회에서 겪어야 하는 불이익 이 대표적 예다.

그리고 사회에서 일정한 규범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교육의 의미도 상실될 가능성이 있다.

요컨대 제시문<1>의 '나'는 가출을 통해 세계의 확장을 얻었지만,사회에서 요구하는 정신적인 성숙은 깨닫지 못했다.

한편 성숙에는 사회 구성원의 합의와 인정을 요구하지만,근본적으로 성숙은 개인의 내적 성숙을 전제한다.

이런 점에서 제시문<2>의 화자는 언어의 발견을 통한 내적 성숙을 실현하고 있는 경우라 할 수 있다.

제시문<2>의 '나'는 언어와 사고의 일치를 통해 사물과 현상에 대한 인식의 성숙을 깨닫게 된다.

이는 정신적,인지적 측면의 불완전성을 극복할 수 있는 것으로 내적 세계의 확장과 성숙을 의미한다.

'나'는 'water'라는 상징과 물의 존재를 일치시키게 됨으로써 개인의 내적 성숙을 실현할 수 있는 단계로 발전할 수 있었다.

인간은 앎을 본능적으로 추구하는 존재다.

지식의 확장을 통해 사고의 확장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식을 규정하는 일차적인 수단이 언어라고 볼 때,개인의 내적 성숙은 사회적 성숙을 깨닫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라 볼 수 있다.

즉 제시문 <2>는 언어의 성숙을 통한 내적 성숙의 방법론을 깨달았지만,아직은 그 내적 성숙이 충분히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깨닫지 못한 진리의 양이 더 크다.

한편 내적 성숙이 언제나 긍정되고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학문의 자유,표현의 자유가 국가의 권력이나 통제에 의해 제한되기도 하고,사회적 도덕과 문화적 관습에 의해 성숙의 방향과 정도가 제약되기도 한다.

제시문<3>은 인간관계를 중시하는 사회적 성숙의 관점과 법률과 규율을 중시하는 국가적 관점의 갈등이 나타나 있다.

제시문<3>의 '나'는 '짐'의 노예상황에 순응하는 선택과,그것에 대해 거부하는 선택에서 갈등했고,결국 후자를 선택했다.

이는 '짐'과 함께 했던 추억과 인간적 정,연민의 감정에 의한 판단이다.

인간에게 요구되는 의리와 정에 의해 판단했다는 점에서 인간관계의 원만한 유지와 지속을 위한 사회적 성숙을 깨달았다.

하지만 이러한 인간관계의 성숙은 국가공동체,사회공동체 전체의 기준과 부합하지 않는다.

'나'는 결국 내적 성숙과,인간 관계에 있어 사회적 성숙은 깨달았지만,전체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국가적 의미의 성숙은 깨닫지 못했다.

오늘날 문제가 되고 있는 파파라치 제도와 같이 공동체의 질서와 인간간의 신뢰가 상충될 경우,우리는 성숙의 지향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다른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

즉 제시문<3>은 '짐'과의 관계를 원만히 할 수 있는 인간적인 성숙을 깨달았지만,사회적으로 인정받기 위한 성숙의 개념은 깨닫지 못했다.

인간의 성숙은 언제나 지향해야 할 대상이자 목표이다.

하지만 인간의 성숙을 구성하는 내용은 내적인 만족과 인정,인간관계를 지속시켜 줄 수 있는 사회적 기준과의 부합,국가 공동체의 안정이라는 복합적 요소가 고려되어야 한다.

인간의 내적 성숙만을 강요하면 인간의 탈사회화,고립화가 커질 것이다.

반면 사회적,국가적 차원의 성숙은 인간을 획일화 시키거나 성숙을 내적 동기가 아닌 외부 환경에 의해 수동적으로 전달받는 것으로 만듦으로써 성숙하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을 억압할 것이다.

오늘날 개성화와 자율화를 가장한 개인주의의 범람은 인간의 성숙 개념에 대해 더 깊은 성찰이 필요함을 보여준다.

우리는 성숙의 개념을 획일화 하려는 일련의 시도에 대해 비판적 자세를 견지하면서 구성원들의 합의된 가치를 성숙의 내용으로 수용해야 한다.

요컨대 성숙은 최종의 단계가 존재하는 수직적 개념이 아닌 내외적 요소의 조화가 필요한 복합적 개념이 되어야 한다.

김윤환 S · 논술 선임연구원 pogara@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