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능력보다는 환경이 성공을 좌우한다”
[실전 고전읽기] 48. 말콤 글래드웰「아웃라이어」
말콤 글래드웰,서점을 자주 기웃거리거나 다른 사람들이 들고 있는 책을 유심히 살펴보는 사람이라면 이제 무척 친숙한 이름이다.

2005년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뽑힌 세계의 이야기꾼 글래드웰은 여러 분야를 섭렵하는 다종다양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으며 이목을 끌고 있다.

그가 집필한 '티핑포인트(Tipping Point)'와 '블링크(Blink; The Power of Thinking Without Thinking)'는 모두 전 세계적 유명도서가 되었으며,최근 발간된 '아웃라이어(Outlier)' 역시 각계의 무수한 찬사를 받으며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그가 발표한 최신작의 표제 '아웃라이어'의 뜻을 사전에서 찾으면 본체에서 분리되거나 따로 분류되어 있는 물건 내지는 표본 중 다른 대상들과 확연히 구분되는 통계적 관측치라고 정의되어 있다.

글래드웰은 이 의미를 변용하여 보통사람들을 넘어서는 성공을 거둔 사람들을 '아웃라이어'라고 지칭하면서 성공의 비결을 분석한다.

그리고 그가 밝히는 평범과 비범의 차이는 기존의 통념과 사뭇 다르다.

흔히들 성공은 개인의 재능과 의지에서 연유한다고 이해한다.

그러나 글래드웰은 성공을 단순히 개인적 차원에서만 접근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며 환경조건이 성공에 결정적 영향력을 미침을 풍부한 입증자료를 통해 보여준다.

'아웃라이어'의 서론은 그리스 이주민 마을의 장수 이야기로 시작한다.

전국 평균을 훨씬 웃도는 '아웃라이어' 수치의 비밀은 그리스인의 섭생이 특이하거나 마을환경이 유독 양호해서가 아니었다.

다만 상호유대가 강한 특유의 공동체 문화가 주민들이 오래도록 건강한 삶을 누리게 한 것이다.

이처럼 건강과 같은 생리적 문제까지도 문화의 영향을 받는다는 자료를 제시하면서 말콤 글래드웰은 자신의 주장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심지어 건강이 문화의 영향을 받으니 성공은 어떠하겠느냐는 의도이다.

이후의 장에서 글래드웰은 양적 데이터와 질적 데이터를 번갈아 제시하면서 성공의 비밀이 무엇인지에 관한 예증을 본격적으로 이끌어 나간다.

제1장은 "무릇 있는 자는 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는 마태복음의 구절이 서두를 장식하고 있다.

글래드웰은 그가 인용한 마태복음과 더할 나위 없이 맞아 떨어지는 캐나다 하키선수들의 출생통계를 보여준다.

하키선수들은 주로 1월 출생이 많다.

사람마다의 차이는 있지만 대체적으로 유 · 소년기 발육은 출생 이후의 경과시간에 비례한다.

그래서 하키선수 선발대회에서 생일이 빠른 아이들은 또래 중 덩치가 크게 마련이고,이는 그들에게 능력(ability)이 아니라 성숙도(maturity)에 기인한 우세한 지위를 보장해준다.

그리고 이렇게 선발된 선수들은 집중적인 훈련과 지원을 받게 되면서 성장발육이 앞섰다는 '우연한' 차이가 '실질적'인 능력 차이로 고착화된다.

이처럼 '누적적 이득'이 발휘하는 치명적 영향력은 한 개인의 성공을 다시 돌아보게끔 한다.

연이어 글래드웰은 지능지수도 성공을 결정지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탁월한 지능은 성공에 어느 정도는 기여하지만 머리는 '적당한' 만큼만 똑똑(smart enough)하면 된다.

일정 수준 이상의 지능을 갖추었다면 이제 빛을 발하느냐 못 하느냐의 여부는 주어진 기회와 조건,혹은 양육환경이 결정한다.

그는 두 천재를 대비하면서 어째서 한 명(오펜하이머)은 역사적 성취를 이루었음에 반해 다른 한 명(랭건)은 시골마을에서 묻혀 살게 되었는지를 조명한다.

190이 넘는 지능지수를 자랑하는 랭건은 열악한 가정환경에서 비참한 어린 시절을 보낸다.

그의 탁월한 재능을 발견하고 배양하려는 주변인은 아무도 없었다.

사회적 지원을 받지 못한 그는 학교를 중퇴하고 만다.

반면,랭건에 비하면 선천적 재능에서 오히려 뒤처진다고 할 수 있는 오펜하이머는 풍족한 부와 높은 수준의 문화를 자랑하는 가정에서 자라나며 부모가 열성을 다한 '집중양육'의 수혜자가 되었다.

하늘이 선물한 능력(gift)을 지녔다는 '천재'들조차 결국은 환경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글래드웰은 조숙한 신동으로 알려진 모차르트의 작곡 능력도 그가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집중적으로 노출되었던 음악환경으로 인해 점진적으로 더디게 길러졌다고 분석한다.

비틀스 역시 하루 여덟 시간 이상의 무대공연을 하며 실력을 쌓았기에 이름이 남았다.

비틀스의 특이성은 멤버들의 재능이 유별났다기보다는 그들의 훈련시간이 유난히 많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글래드웰은 성공의 밑바탕이 되는 집중적 교육과 훈련을 강조한다.

성공은 환경과 기회의 강력한 조합으로 이루어져서 부모의 양육태도와 환경조건,사회진출 시기(세계 역사상 가장 부유한 75인 중 14인이 같은 나라에서 동시대에 태어난 이유는 막대한 부의 축적이 가능한 시기와 장소가 특정되어 있기 때문) 등에 좌우됨이 다양한 실증자료를 통해 책 전체에서 거듭 강조되고 있다.

성공을 개인의 자질과 역량으로만 평가할 수 없다는 글래드웰은 '문화적 유산(Legacy)'이라는 제목을 단 책의 2부에서 대한항공의 사례를 인용한다.

글래드웰은 대한항공 괌 추락사고 당시의 기록을 집중적으로 분석하면서 비행기 추락사고와 문화적 배경의 상관관계를 밝힌다.

괌 추락사고의 비극은 조종실을 지배한 권위주의 문화가 그 원인이었다.

기장의 권위에 위축된 부기장이 급박한 상황에서 완곡어법으로 뜻을 전달하려다가 위기 대처를 제때 못 하고 비행기는 니미츠 힐에 충돌했다.

결국 이 사건을 계기로 대한항공은 조종실 내 권위의식을 떨치기 위해 직무문화를 개선하였다.

당연히 문화의 개선은 우수한 성과로 이어졌다.

글래드웰은 저자 후기에서 자신의 가족사를 통해 다시금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책을 매듭짓는다.

성공은 특별한 기회의 합작품이라는 글래드웰의 이야기는 그 흥미진진함 때문인지 최근 발간된 도서임에도 불구하고 이번 수시논술에서 제시문으로 인용되었다.

☞ 기출문제 (서강대 2010학년도 수시 1차)

오전 1시 21분 13초, 우리는 부기장이 말하고자 했던 것을 알고 있다.

"기장님,후행 대책 없이 시계 접근을 하겠다고 하셨지만 바깥 날씨가 끔찍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지 못했다. (…중략…)

오전 1시 41분 59초,부기장이 혼잣말을 했다.

"안 보이잖아?"

오전 1시 42분 19초,부기장이 말했다.

"착륙,포기합시다."

그는 결국 힌트를 주다가 동료에게 권유하는 방식으로 어조를 높였다.

그는 착륙을 취소하고 싶었던 것이다.

훗날 조사를 통해 그 시점에 부기장이 조종권을 넘겨받고 조종간을 당겼더라면 니미츠 힐에 충돌하지 않고 재착륙을 시도할 수 있는 충분한 여유가 있었음이 확인되었다.

부기장은 기장이 명백히 잘못하고 있을 경우 그렇게 행동하라고 훈련을 받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교실에서 배우는 내용일 뿐이고 하늘에서 벌어지는 일은 엄연히 달랐다.

실수를 하면 손으로 등을 얻어맞을 수도 있는 것이 조종실의 현실이었다.

오전 1시 42분 20초,기관사가 말했다.

"안 보이잖아."

결국 재앙이 그들 앞에 얼굴을 드러낼 때가 되어서야 부기장과 기관사가 입을 열었다.

그들은 기장이 조종간을 당겨 다시 착륙을 시도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엄격한 위계질서를 중시하는 문화 속에서 조종사,부조종사,기관사 간 커뮤니케이션은 단절되었고 1997년 8월 5일,괌 사고는 이렇게 발생했다.

2000년,대한항공은 데이비드 그린버그를 비행 담당 임원으로 영입한다.

그린버그가 처음으로 한 일은 그가 대한항공의 문제를 뿌리부터 파악하고 있지 않았다면 내놓을 수 없던 것이었다.

그린버그는 '대한항공의 공용어는 영어다. 약 대한항공의 조종사로 남고 싶다면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규칙을 세웠다.

그린버그는 조종사들에게 또 다른 정체성을 심어주고자 애썼다.

그들이 문화적 유산의 함정에 빠져 있다는 것을 심각한 문제로 보았기 때문이다.

일단 조종석에 앉았을 때는 기존의 역할로부터 벗어날 필요가 있었고,언어는 그 전환을 이끌어내는 열쇠였다.

영어로는 한국어의 복잡한 경어체계를 사용할 수 없지 않은가.

그린버그의 개혁에서 가장 결정적인 것은 '그가 하지 않은 일'에 있었다.

그는 절망에 빠진 대한항공 조종사들을 몽땅 해고하고 권력 간격이 낮은 문화권의 조종사로 대체하지 않았다.

그는 문화적 유산이 문제이고,그 힘은 강력하고 널리 퍼져 있으며 본래의 유용성이 사라진 후에도 오래도록 지속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문화적 유산을 떨쳐낼 수 없는 것으로 보지는 않았다.

그는 한국인이 스스로의 문화적 기원에 솔직해지고 항공 세계와 맞지 않는 부분과 정면으로 대결할 의향이 있다면 그것을 바꿀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홍보람 S · 논술 선임연구원 nikehbr@nons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