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연구진 세계 최초로…반도체 강국 명성 드높여

국내 연구진이 차세대 나노반도체 상용화에 기여할 수 있는 핵심 기술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지난 10년간 나노기술 분야에서 풀리지 않는 숙제로만 여겨지던 '반도체 나노결정 도핑 기술'이 국내 연구진에 의해 처음 개발된 것.

이 기술은 우리나라가 차세대 나노 반도체 공정 기술을 주도해 반도체 기술 강국으로서의 명성을 이어나갈 수 있는 길을 열었다는 평가다.

⊙ 반도체 산업의 핵심인 도핑 공정

[Science] 휘어지는 전자제품 만드는 ‘반도체 나노 도핑’ 기술 개발
지난 16일 현택환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교수와 박사과정의 유정호 연구원은 반도체 결정 핵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나노미터(㎚,10억분의 1m) 단위의 도핑(doping)을 할 수 있는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이 연구 결과는 나노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지인 '네이처 머터리얼스(Nature Materials)' 인터넷판에 게재됐다.

지난 10년간 전 세계적으로 나노기술 개발 경쟁이 치열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반도체 나노 결정과 관련된 제조공정,LED(발광다이오드),태양전지,메모리 소자 등 다양한 분야의 산업화와 관련된 연구가 진행돼왔다.

반도체 나노결정은 카드뮴 셀레나이드(CdSe) 자성반도체(스핀트로닉스)를 만드는 주 재료다.

그러나 반도체 나노결정 도핑 기술은 나노결정이라는 매우 작은 크기와 안정성 등으로 인해 학계에서는 도핑이 매우 어렵다고 인식되어 왔으며 기존에 보고된 도핑 효율도 1%에 지나지 않았다.

도핑이란 불순물을 의도적으로 주입해 물질의 전기적,광학적,자기적 성질을 조절하는 것을 말한다.

실리콘과 같은 물질에 인이나 붕소 등을 도핑해 전기 전도도를 획기적으로 향상시키고 전도성이 뛰어난 반도체로 만들어주는 공정이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이같이 도핑은 반도체 산업의 핵심 기반공정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디스플레이에 사용되는 형광체는 산화물에 금속이온이 도핑된 것을 말한다.

자기장을 이용해 전자와 그 전자의 스핀 방향을 원하는 대로 제어하는 기술을 이용하는 D램(DRAM · Dynamic Random Access Memory)을 대체한 차세대 메모리기술인 스핀트로닉스(자성반도체 · 전자가 핵을 중심으로 자전하는 방향에 따라 신호를 형성하는 원리를 이용한 신기술) 소자에서 금속 이온을 반도체에 도핑하는 기술이 매우 중요하게 인식되고 있다.

⊙ 휘어지는 초소용 전자제품 만들 수 있는 도핑기술 개발

[Science] 휘어지는 전자제품 만드는 ‘반도체 나노 도핑’ 기술 개발

현택환 교수 연구팀은 '반도체(카드뮴 셀레나이드 · CdSe)' 나노결정 성장 과정 중에서 나노입자보다 더 작은 '핵' 형성 과정을 화학적으로 제어하면 망간 이온으로 반도체 나노결정을 10% 이상 더 효율적으로 많이 도핑할 수 있다는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연구진은 카드뮴과 셀레늄 원자들이 수십 개 모여 있는 반도체 결정 핵에서 카드뮴 한두 개를 망간 원자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이렇게 만든 핵은 자기들끼리 달라붙어 두께가 수 나노미터인 판을 만들었다.

휘어지는 디스플레이나 초소형 전자제품을 만들려면 이처럼 도핑이 나노미터 단위에서 일어나야 한다.

기존의 반도체 나노결정의 도핑 기술은 결정을 기르는 과정에서 불순물을 중간에 입히는 과정으로 불순물(망간) 이온이 결정 안쪽보다는 바깥쪽에 많이 분포하게 되는 단점을 가지고 있었다.

반면 이번 연구에서 사용한 방법은 결정 성장 과정이 아닌 결정의 핵 생성 과정에서부터 불순물 이온이 안으로 들어가게 돼 높은 효율의 도핑을 얻을 수 있다.

도핑된 핵입자들은 자기조립과정을 통해 나노리본을 만드는데 이 나노리본은 차세대 나노소자에 이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 기존 도핑 방법보다 효율 10% 높아

망간 이온이 도핑된 카드뮴 셀레나이드 나노선은 지만(Zeeman) 효과가 매우 우수하다.

전기 및 광학적으로 제어 가능한 자성반도체 분야의 활용이 매우 기대된다.

D램이나 플래시 메모리는 전하를 캐패시터에 저장하는 방식으로 데이터 값을 기록하는 데 비해 자성반도체는 자성과 전하를 이용해 데이터를 저장하는 데 사용한다.

자성과 전하를 이용해 전자회로를 구현하면 전자의 흐름에 의존한 기존 소자에 비해 월등히 우수한 작동속도,비휘발성,확장성 등의 우수한 물리적 성능을 낼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이번 연구는 현택환 교수 연구팀의 주도하에 △후디나(Furdnya) 미국 노트르담대 물리학부 교수 연구팀 △황경순 텍사스주립대 화학공학과 교수 연구팀 △박재훈 포항공과대 물리학부 교수 연구팀 △김영운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 연구팀의 공동연구로 이루어졌으며 나노기술의 국제적 학제 간 공동연구의 성공 사례로 평가되고 있다.

연구팀은 망간 이온을 카드뮴 셀레나이드 결정 내부에 주입한 뒤 이온의 크기를 키우는 방법을 이용,기존 도핑 방법에 비해 10% 이상 효율을 높였다고 전했다.

현택환 교수는 "지금까지는 이온을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결정 외부에 이온을 입히는 방법을 주로 사용해 도핑 효율이 약 1% 정도에 불과했다"며 "그간 학계에서는 나노결정의 매우 작은 크기와 기술의 불안정성 등으로 인해 반도체 나노결정 도핑의 효율을 높이기 어려운 것으로 알려져왔다"고 설명했다.

현 교수는 또 "이번 연구 결과는 반도체 나노결정의 도핑 과정을 근원에서부터 제어할 수 있는 신기술 개발로 나노반도체 산업의 발전 가능성과 자성반도체 응용 가능성을 높였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지만효과(Zeeman effect)

지만효과는 광원을 강력한 자기장 안에 두고 거기에서 나오는 빛의 스펙트럼을 조사했을 때 관측되는 스펙트럼선이 여러 개로 갈라지는 현상을 의미한다. 이 스펙트럼선의 개수에 따라 정상지만효과와 이상지만효과로 나눌 수 있다.

황경남 한국경제신문 기자 knhw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