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철 <연세대 철학과 교수>

[인문학 산책] CEO에게 正義란 ‘공정한 성과분배·자율보장’
“It’s not fair(이건 공평하지 않아요)!”

미국 시카고 유학시절 유치원에 다녀온 딸은 동생이 사탕을 먹고 있는 것을 보더니 울음을 터뜨리며 이렇게 소리쳤다.

평소 자기한테는 단것을 엄격히 금지했는데 동생한테만 허용되는 것을 보고 무척이나 속상했던 모양이다.

철학자들 가운데는 공평한 것이 ‘정의’의 핵심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관점에서 딸에게 비친 나는 정의롭지 못한 아빠였다.

그런데 공평하면 다 정의로운 것일까.

정의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철학자들은 고대 그리스 시대 이래로 정의로움에 대한 논의를 많이 해 왔다.

플라톤은 정의를 ‘각자에 합당한 몫을 나누어 주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지도자는 지혜,전사 계급은 용기,근로자 계급은 근면의 덕을 행사하면,종합적인 화합의 결과로 정의가 국가에 깃든다고 보았다.

각 계급은 각자의 몫이 불평등한 것에 대하여 불평해서는 안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의,특히 분배 정의를 ‘평등한 자를 평등하게 대우해 주고,불평등한 자를 불평등하게 대해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평등한 자와 불평등한 자를 구분하는 기준을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에,이 정의는 ‘형식적 정의’라고 불린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아리스토텔레스도 무조건적인 평등이 정의는 아니라고 봤다는 것이다.

하버드대학 철학 교수였던 존 롤스(John Rawls·1921~2002)는 평등과 자유 사이의 갈등 관계에서 빚어지는 모순을 해결하려고 평생 ‘정의’의 문제 하나만을 탐구했다.

평등에는 두 가지 개념이 있다.

첫째는 결과의 평등이다.

즉 모두가 동일한 몫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둘째는 기회의 평등이다.

불평등을 창출하는 게임에 참여하는 기회 자체를 평등하게 가지는 것이다.

롤스에게는 둘 다 만족스럽지 못했다.

결과적 평등은 수월성을 추구하려는 인센티브에 강력한 제동을 가해 심각한 부작용을 낳게 된다.

무임 승차자를 양산하게 된다.

일을 하나 안 하나 똑같이 봉급을 받는다면 누가 일을 열심히 하겠는가.

기회의 평등도 완전하지는 않다.

복권을 사는 사람은 사기에 걸려들기 전에는 당첨 기회를 평등하게 보장받는다.

그러나 그 결과는 엄청난 불평등의 창출이다.

한 사람이 당첨되기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손해를 보는 것이다.

물론 자발적 참여이기 때문에 불평하긴 힘들지만 복권이 정의롭다고 말하긴 어렵다.

롤스 교수는 “진리가 지식 체계의 제일 덕목이듯이,정의는 모든 사회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사회 전체의 복리 증진을 위해서라도 정의를 희생해서는 안 된다. 모든 개인은 절대로 침범당할 수 없는 자유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고 설파했다.

여기서 롤스는 정의의 중요한 원칙을 제시한다.

모든 사람에게 자유가 최대한으로 평등하게 부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의 자유는 소위 소극적 자유,즉 양심·집회·결사· 신앙·거주·행동·언론의 자유와 같은 인간의 기본권에 해당되는 것을 말한다.

이 같은 자유의 평등 부여에 대해 롤스는 어떠한 융통성도 허용하지 않는 엄격한 칸트주의적 입장을 취한다.

‘법 위에 사람 없고 법 아래 사람 없다’ ‘법 앞에 만인은 평등하다’라는 법치주의는 개인의 자유에 대한 존중, 인권의 존엄성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미국 프로야구 양키스의 감독이었던 조 디마지오는 마릴린 먼로의 남편으로만 유명한 것이 아니다.

선수들을 아주 혹독하게 대한 것으로도 악명이 높았다.

기자가 선수에게 감독이 어떤 사람이냐고 묻자,“그는 아주 공평한 사람이에요.스타 선수건,후보 선수건,모두 똑같이 개처럼 대해 주니까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조 디마지오는 평등하게 개인의 권리를 짓밟은 것이다.

물론 전설적인 스코어를 낸 감독이긴 하지만….

노숙자들이 노숙하는 이유도 사회복지센터에서 운영하는 쉼터가 있는 것을 몰라서라기보다 나름의 자유를 누리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먹고 자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산소같이 마음껏 마실 수 있는 자유다.

롤스가 탐구한 ‘정의’를 비즈니스 현장에 접목시켜 보자.

최고경영자(CEO)가 자신이 경영하는 기업에서 정의를 실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CEO는 자신의 부하들을 공평하게 다루어야 한다.

능력 있는 직원 하나가 열을 먹여 살릴 수도 있겠지만 궁극적으로 다른 직원들의 도움 없이 혼자서 모든 것을 다 잘해 낼 수 있는 만능 선수는 없다.

분업의 결과로 이루어진 효율성의 성과가 공정하게 분배돼야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

둘째,직원들에게 책임을 묻기 전에 먼저 자유를 주어야 한다.

자유 토론이 벌어지는 곳에선 스스로 동기 유발이 된다.

규칙을 엄격하게 적용하려면,적용 대상자인 직원들 스스로의 참여를 유도해야 한다.

동기 유발의 출발점은 자발성이다.

셋째,CEO는 일하는 사람이 아니다. 일을 나누어 주는 사람이다.

CEO는 책임을 지는 사람이 아니다. 책임을 나누어 주는 사람이다.

CEO는 기회에 강한 사람이 아니다. 직원들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사람이다.

이 모든 것은 임기응변적으로가 아니라 원칙에 입각한 시스템을 통해서 실현돼야 한다.

모든 사람이 동일한 정의 원칙을 준수한다고 느낄 때,직원들 모두가 힘을 합치게 된다.

CEO들이여! 자신에게도 예외를 두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