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많이 풀면 침체된 경기 되살릴수 있을까?

[경제교과서 친구만들기] (22) 대공황과 뉴딜정책
1888년 미국의 변호사 겸 작가였던 에드워드 벨라미(Edward Bellamy)는 《뒤를 돌아보면서(Looking Backward:2000~1887)》란 제목의 유토피아 소설을 발표했다.

이 소설의 간략한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주인공 줄리안 웨스트는 미국 보스턴에 살고 있는 청년으로 1887년에 최면술사의 도움으로 지하의 비밀침실에서 잠이 들어 113년 후인 2000년 긴 잠에서 깨게 된다.

잠에서 깬 웨스트는 2000년의 미국이 19세기 말의 사회적 모순들이 해소된 사회주의 유토피아 국가로 변모하였음을 알게 된다.

국가의 생산수단은 모두 국유화가 되었으며,국가는 모든 국민들에게 일자리와 완벽한 복지서비스를 제공하여 이상적인 사회가 구현된 것이었다.

《뒤를 돌아보면서》는 19세기 말 미국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었으며 혹자는 《톰아저씨의 오두막집》 이후 가장 큰 베스트셀러라는 평을 내리기도 했다.

《뒤를 돌아보면서》는 대공황기인 1930년대에 다시 한번 주목을 받게 된다.

루즈벨트에 의해 시작된 뉴딜정책 때문이다.

정부가 개입하여 기존의 질서를 수정하고 국민들에게 일자리와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뉴딜정책은 미국 시민들로 하여금 《뒤를 돌아보면서》에 묘사된 미국사회의 변모과정을 떠올리게 하였다.

뉴딜정책은 자본주의의 틀을 유지하면서 국가가 개입하는 것으로 《뒤를 돌아보면서》의 사회주의 정책들과는 분명 차이가 있다.

그러나 뉴딜정책은 당시로서는 상당히 급진적인 내용도 포함하고 있었기 때문에 루즈벨트는 일부의 사람들로부터 사회주의자라는 공박을 받기도 했다.

뉴딜(New Deal)에서 딜(Deal)이란 본래 카드게임에서 카드를 한 장씩 분배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카드를 받은 사람 중 어떤 사람의 패는 좋을 수도 있고,어떤 사람의 패는 나쁠 수도 있다.

'뉴딜'이란 결국 카드를 새롭게 분배하는 것을 의미한다.

루즈벨트의 뉴딜정책은 여러 경제부흥과 복지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핵심목표는 흔히 3R(Recovery,Relief,Reform)로 요약된다.

'회복(Recovery)'이란 경제를 회생시키는 것을 가리키며 '구제(Relief)'란 실직자와 고통 받는 농민들을 배려하는 것을 가리킨다.

끝으로 '개혁(Reform)'이란 금융과 산업부문의 여러 제도들을 개혁하는 것을 의미한다.

현행 경제교과서들을 보면 대공황은 과잉생산과 과소소비에 의해 발생하였으며 뉴딜정책을 통해 미국이 대공황으로부터 탈피하였다고 기술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뉴딜정책이 수요를 창출해내 생산과 소비의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였다는 해석은 전통적인 학설을 기반으로 한 것인데, 1960년대 이후 기존 학설을 반박하는 많은 연구결과들이 발표되었으므로 교과서적 시각을 재조명해볼 필요성이 있다.

뉴딜정책 시행이 대공황에서 벗어나는 기점이 되었다는 데는 대부분의 학자들이 동의하고 있다.

하지만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는 속담이 있듯이 뉴딜정책이 대공황 탈출의 원인이 되었다고 곧바로 해석하는 것은 인과의 오류(post hoc fallacy)를 범할 가능성이 크다.

뉴딜정책의 수요창출 효과는 과연 얼마나 됐을까?

이에 대한 학자들의 의견은 분분하다.

먼저 뉴딜의 주요 정책으로 꼽히는 산업부흥법(National Industry Recovery Act:NIRA)과 농업조정법(Agricultural Adjustment Act:AAA)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산업부흥법은 뉴딜의 대표적 공업정책으로 주당 노동시간 제한,시간당 40센트의 최저임금 보장,노동조건 개선,상대적으로 숙련도가 낮은 연소자 · 고령자의 우선적 보호 등을 주 내용으로 하고 있다.

정부는 노동자의 구매력 향상을 통한 경제회복을 목표로 이러한 정책을 추진했지만 효과는 신통치 않았다.

노동자 보호 측면에서 상당한 기여를 했다는 의견도 있지만 대공황기의 이러한 정책은 미숙련 노동자의 임금을 인상시켜 노동비용의 전반적 상승을 불러왔고 제품가격 역시 상승하게 되었다.

물가상승률보다 임금상승률이 더 컸기 때문에 실질임금은 증가하였으나 그로 인해 실업률은 높은 수준으로 유지가 돼 수요창출 효과는 크지 않았다.

시행 2년 후인 1935년에 전국산업부흥법은 결국 연방대법원에서 위헌판결을 받게 된다.

농업부문에서는 과잉생산과 수요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경작지 감축을 목표로 농업조정법(Agricultural Adjustment Act:AAA)이 추진되었는데 전국산업부흥법에 비해서는 평가가 우호적인 편이다.

국가의 농산물 생산제한 정책은 지속적인 농업 불황 문제를 상당부분 해결하였기 때문에 획기적인 정책이었다고 평하는 이가 많았다.

그런데 경작지 감축 과정에서 토지 소유주들은 보상을 받았지만 실제 경작자인 소작농들은 보상없이 축출되었다.

삶의 터전을 잃은 소작농들은 더욱 열악한 환경으로 몰리게 되었기 때문에 농업조정법은 수요창출 측면에서 부정적 영향을 주었다.

사람들이 흔히 뉴딜정책하면 떠올리는 테네시강유역 개발사업 등의 확장적 재정 정책의 효과는 어떠할까?

현재 오바마 행정부에서 경제자문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대공황 연구의 권위자인 크리스티나 로머(Christina Romer)는 1992년의 데이터 분석 결과 정부의 재정정책은 1942년 이전에는 거의 효과가 없었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로머에 의하면 대공황으로부터 회복의 원천이 되었던 것은 확장적 통화정책이다.

1933년에 시작된 통화공급의 증가는 실질이자율을 하락시켰고,교과서에 나오는 바와 같이 낮아진 이자율은 투자를 활성화시켜 대공황을 탈피하는 메커니즘을 제공했다고 로머는 주장한다.

이렇듯 수요를 창출하기 위한 당시 재정정책의 효과에 대해 의문점을 가지는 학자들이 많지만 재정정책 자체가 효과가 없다고 보는 것은 주의해야 한다.

뉴딜정책이 실패한 것은 재정정책의 효과가 미미하기 때문이 아니라 당시 공황의 깊이에 비해 그 규모가 충분치 못했기 때문이라는 견해 또한 존재하기 때문이다.

로머는 최근의 논문에서 자신의 1992년 연구결과를 보고 재정정책이 효과가 없다고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자신의 결론은 재정지출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견해와 맥락을 같이 한다고 밝힌 바가 있다.

확장적 재정정책이란 정부의 적자재정을 통해 수요를 창출하는 것을 의미한다.

1930년대에 미국의 재정적자는 큰 폭으로 증가를 하지만 이는 테네시강유역 개발사업 등의 대규모 공공사업에 대한 재정지출보다는 소득감소에 따른 소득세 수입 감소에 기인한 바가 크다.

재정지출이 충분치 못하였다는 얘기다.

대공황에 관한 연구는 현재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으며 다양한 연구들은 우리로 하여금 더 폭넓은 사고를 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줄 것이다.

김훈민 KDI 경제정보센터 전문원 hmkim@kd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