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초 첨단 쇄빙선 건조… 극지 미생물·광물 연구 ‘선봉’
[Science] ‘아라온’호, 남·북극 얼음깨고 심해 탐사 나선다
지난 11일 부산시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에서 순수 국내 기술로 건조된 우리나라 최초의 쇄빙연구선 '아라온'호의 진수식이 열렸다.

쇄빙선이란 남극대륙 주변이나 북극해처럼 얼어 있는 바다에서 단독으로 항해할 수 있는 선박을 말한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쇄빙선을 러시아 등으로부터 빌려서 사용했으나 아라온호의 건조로 내년부터 극지 연구가 한층 활발하게 진행될 전망이다.

⊙ 우리나라 최초의 쇄빙선

극지연구소가 국토해양부의 지원을 받아 총 1040억원(건조비 754억원,연구장비 286억원)을 투입해 만든 아라온호는 6950t급으로 한진중공업에서 제작했다.

길이 110m, 폭 19m,최고속도 시속 30㎞(16노트)이며 최대 85명까지 승선 가능하고 헬기도 실을 수 있다.

기름과 식량 등을 보급받으면 70일간 약 2만해리(약 3만7000㎞)를 항해할 수 있다.

현재 국내에 있는 가장 큰 규모의 연구용 선박은 해양연구원이 보유한 2500t급 연구선이다.

국내 극지 연구가들은 우리나라가 남극에 기지를 갖고 있지만 쇄빙선이 없어 필요할 때마다 러시아 등으로부터 하루에 8000만원가량씩 주고 빌려 써야 하는 설움을 받아왔다.

'아라온'이라는 이름은 순 우리말로 바다를 의미하는 '아라'에다 전부나 모두라는 뜻이 있는 관형사 '온'을 붙여 지어졌다.

'전 세계 모든 바다를 누비라'는 의미와 '어떠한 상황에서도 역동적으로 활약하라'는 기대를 담고 있다.

아라온호는 선박 내부를 단장한 뒤 이르면 9월 말 인천에 있는 극지연구소에 인도될 예정이다.

이후 쇄빙 능력을 확인하는 시험 항해를 거쳐 2010년부터 본격적인 탐사와 연구활동에 투입된다.

⊙ 60여종의 최첨단 장비 구비

아라온이 얼음을 깨고 항해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튼튼한 동체와 높은 엔진 출력을 이용한다.

최저 영하 30도의 환경에서 가동되는 쇄빙연구선은 1m 두께의 얼음을 연속으로 부수며 시속 5.4㎞(3~4노트)로 전진해야 한다.

따라서 선체의 앞머리 부분은 4㎝ 두께의 고강도 철판이 장착되며 6800마력 엔진 두 개를 가동해 동급 선박의 3~4배에 달하는 엔진 출력을 내뿜는다.

얼음이 두꺼워 앞으로 나가기 불가능할 때는 선체 앞머리를 얼음 위로 들어올린 후 배의 무게로 얼음을 깨뜨린다.

배 바닥에 실린 300t무게의 물이 아라온의 무게 중심을 이동시켜 최대 5m까지 앞머리를 들어올릴 수 있게 한다.

극지연구소는 아라온호를 이용해 남극과 북극을 비롯한 전 세계 대양에서 종합적인 해양 연구 조사 활동을 할 계획이다.

남극 세종기지 보급 및 연구지원 활동에도 나설 예정이다.

아라온은 규모면에서 외국 쇄빙선에 비해 큰 편은 아니지만 60여종의 최첨단 장비를 갖춰 연구능력만큼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음파를 이용해 바다 속 지형을 3차원으로 재생하는 '다중빔 해저지형 탐사기기'(Multibeam echo sounder)를 비롯한 수십 종의 연구 장비가 설치된다.

이재용 한진중공업 사장은 "쇄빙선을 보유하게 됐다는 것은 우리나라 영토를 그만큼 확장할 수 있게 됐다는 의미"라며 "주인이 없는 극지나 심해 등에서 국가 영향력을 선점하기 위해서는 지원과 연구도 뒷받침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심해 속 미생물과 새로운 광물을 찾는다

극지연구소는 아라온을 활용해 활발한 해양연구를 펼칠 계획이다.

우선 아직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는 '태평양-남극 중앙해령'을 본격 탐사하는 10개년 프로젝트를 내년부터 시작한다.

이 프로젝트엔 미국의 우즈홀해양학연구소(WHOI) 연구진이 참여해 극지연구소 연구원들과 아라온호를 함께 타고 극지 중앙해령의 열수분출구 탐사에 나선다.

중앙해령이란 태평양과 대서양 중앙의 수천m 아래 바다 밑에서 마그마를 분출하고 있는 곳을 말한다.

열수 분출구는 바닷물이 바다 밑 갈라진 땅 틈새로 스며들었다가 뜨거운 마그마를 만나 펄펄 끓는 강산성의 수증기가 되어 솟구쳐 오르는 구멍이다.

열수분출구는 빛이 도달하지 않는 깊은 바다 속 생태계의 에너지원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금속 광물 자원을 형성시키기도 한다.

현재 선진국들은 자원의 보고이자 천연실험장으로서 새로운 열수분출구를 발견하기 위해 각축전을 펼치고 있다.

최근에는 열수분출구 인근 120도의 환경에서도 잘 사는 미생물이 처음 확인되기도 했다.

중앙해령은 대양의 중앙에 뻗어 있어 대양중앙해령이라고도 불리는데 대서양 · 태평양 · 인도양 · 북극해 · 남극해를 통해 총연장 7만㎞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지구 둘레를 야구공의 실밥처럼 감싸며 끊임 없이 확장하고 있는 지구 최대의 바다밑 화산체이다.

현재까지 중앙해령 탐사는 적도 근처의 저위도 지역에서 주로 이뤄졌으며 남북극 근처는 쇄빙연구선이 없어 시도하지 못하는 실정이었다.

극지연구소 관계자는 "아라온을 타고 남극중앙해령을 연구하게 되면 우리나라는 아시아 최초로 극지중앙해령 연구국이 된다"며 "2010년엔 기초 준비를 하고 2011~2014년에는 해마다 2~4주가량 태평양-남극 중앙해령 해역을 집중 탐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아라온호가 내년부터 본격 운항에 들어가면 남극의 미개척 구간 탐사도 가능해 제2 남극 기지 건설도 추진될 전망이다.

황경남 한국경제신문 기자 knhw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