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글 200호 발행에 부쳐…

< 정규재 한경 경제교육연구소장 >

[생글 200호 특집] 생글 편집인의 편지 - 생글의 영원한 테마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생글 독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선생님들도 잘들 계십니까?

여름 나무들이 힘차게 푸른 잎들을 키우듯이 이 계절에도 독자 여러분들의 생각과 지식이 쑥쑥 자라나고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생글생글이 오늘 지령 200호를 발행했습니다.

지난 2005년 6월7일 창간호를 낸 지 4년 만입니다.

열심히 그리고 재미있게 읽어주시는 독자 여러분이 있기에 쉼없이 달려온 것이 4년을 훌쩍 넘기고 있습니다.

벌써 첫해 3학년 독자들은 대학에서도 고학년이 되었습니다.

대부분 대학생들이 자신의 고교시절을 회상하면서 생글을 기억해내고 있고 생글 편집실에는, 자주는 아니지만 한때 독자였던 대학생들의 전화도 간간이 걸려오고 있습니다.

4년 동안 생글생글을 일일이 교실로 옮겨 나르시고 가르쳐 주신 선생님들께는 특별한 감사를 드립니다.

제가 얼굴을 기억하는 선생님들도 있지만 모르는 분들이 더 많을 것입니다.

지면으로나마 감사의 악수를 건넵니다.

반갑게 맞잡아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저희 한국경제신문에서 생글을 창간키로 했던 것은 시장경제에 대한 학생들의 이해가 너무 부족하고 또 사회 문제를 보는 학교 사회의 논리구조가 때로는 과도하게 이념 편향적이었던 때문입니다.

많이 좋아지기는 했지만 이런 사정은 지금도 그다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고 봅니다.

매년 새로운 학생들이 고교로 진학해 올라오고 있고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역시 늘상 새로운 문제를 생산하면서 끊임 없이 우리에게 인식의 지평을 넓힐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생글생글은 바로 그런 문제들에 대한 안내자의 역할을 소명으로 삼아 창간호를 내게 되었고 이제 지령 200호를 발행했습니다.

생글이 지향하는 가치는 어떻게 보면 너무도 당연한 것이어서 우리가 종종 잊고 사는 그런 가치입니다.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라는 가치는 그 자체로 이미 보편성을 획득한 상황이기 때문에 의문의 여지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구체적인 내용으로 들어가면 허다한 견해차는 물론이고 때로는 심각한 오해에 기초한 극단적 해석이 난무하는 그런 가치이기도 합니다.

시장경제는 다만 효율성을 추구할 뿐이어서 사회적 정의를 추구하는 도덕적 가치와 무관하다는 등의 주장이 특히 그런 오해에 속하는 주장들입니다.

시장경제는 약육강식을 정당화하는 체제도 아니고 빈익빈부익부를 조장하는 그런 체제도 아닙니다.

시장경제의 역사를 되돌아 보더라도 시장경제가 활발한 곳은 언제나 정의가 실현되고 봉건 계급체제가 해체되며 양성평등이 추구되고 중산층이 사회의 중심 계층으로 성장해 왔습니다.

정의로운 체제로서의 시장경제를 이해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투명한 시장에서의 거래가 아니라면 우리는 밀실에서의 은밀한 거래와 약탈을 용인해야 하고 끊임 없이 국가의 명령을 받아야 하며 자유라고는 없는 그런 세계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시장경제는 정의로운 체제라는 것이 생글을 제작하는 기본 철학입니다.

물론 현실에는 허다한 문제들이 발생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천국이 아니어서 정의는 언제나 부족하고, 도덕은 언제나 메말라 있으며, 가난에 봉착하는 사람들도 끊이지 않고 나옵니다.

그러나 천국이 아니라고 해서 바로 지옥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현실에 허다한 문제가 있다고 해서 체제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그나마 오류를 가장 쉽게 수정할 수 있는, 다시 말해 자기교정의 가능성을 가장 많이 안고 있는 체제가 바로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라는 가치 체계입니다.

임의의 도덕적 잣대를 절대화하지 않고 가치의 우월성을 독점하지 않으며 상대적 가치를 용인하는 체제는 아직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체제 외에는 없습니다.

빈부 문제만 하더라도 그렇습니다.

같은 것을 같게, 다른 것을 다르게 취급하는 것을 평등의 기본 개념이라고 본다면 시장경제는 적어도 지금까지는 가장 평등한 체제입니다.

모두가 가난한 것이 우리의 목표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더욱 그럴 것입니다.

실제로 세계는 아직은 빈부차를 꾸준히 줄여가고 있습니다.

지난 70년대 중반 이후 미국의 빈부차가 커지고 있고 최근에는 일본의 빈부차와 한국의 빈부 격차 역시 커지고 있습니다.

중국의 빈부차도 커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를 종합하면 놀랍게도 빈부차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개별 국가들이 모두 빈부차가 커지고 있다고 해서 세계 인구의 빈부차가 커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생각을 소위 합성의 오류(fallacy of composition)라고 부릅니다.

유엔의 사회지표 등에 따르면 지니 계수 등으로 본 빈부 문제는 세계 전체로는 꾸준히 좋아지고 있습니다.

중국에서 먹고살 만하게 된 사람, 다시 말해 중국 내 빈부차를 넓히는 그런 부류의 선도적인 사람들이 세계적으로는 중산층으로 진입하면서-이런 사정은 인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세계 전체로는 빈부차를 줄이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이 점점 나빠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요?

경제는 부침을 거듭하지만 그렇다고 언제나 나빠지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은 아닙니다.

지난호 생글에서 비숍 여사 이야기를 커버스토리로 쓴 것도 그래서입니다.

100년 전 한국의 모습을 안다면 지금 우리의 모습은 말그대로 기적처럼 좋아졌습니다.

'아름다운 과거''가난했지만 인정이 많았던 과거'라는 생각은 대표적인 오류의 하나입니다.

가난하면서 인정있기란 너무도 어렵습니다.

질병과 가난과 착취와 양반의 횡포와 미신과 거리의 깡패와 ….

물론 과거를 지옥으로 묘사할 필요도 없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가 언제나 나빠지고 있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생각도 그렇습니다.

거리의 함성이 민주주의의 원동력은 아닙니다.

민주주의는 각 개인의 내밀한 선택과 판단이 종합되는 그런 체제입니다.

그래서 비밀투표를 하는 것입니다.

목소리 큰 사람이 거리의 여론을 장악하는 것은 오히려 매우 반민주적이라는 것이 생글의 철학입니다.

집단지성이나 대중의 지혜라는 것도 각자가 독자적으로, 그리고 독립적으로 다양한 의견을 표명하는 것이 용인되고 그것이 종합될 때 발휘되는 것이지 집단을 이루어 동일한 목소리를 낸다고 그것을 민주주의라고 부를 수는 없습니다.

만일 그런 것을 민주주의라고 부른다면 이는 나치즘이나 스탈리니즘 같은 대중선동적 전체주의를 민주주의라고 부르는 것과 같습니다.

시민의 불복종이나 저항권, 그리고 집회시위의 자유는 매우 긴요한 가치이지만 이 역시 민주주의의 기본 틀 속에서 기능하는 것이지 그 자체로 독재적 지위를 누릴 수는 없습니다.

시장에서 형성된 상품의 가격을 우리가 중시하는 것은 바로 시장 가격으로 표현되는 대중의 지혜를 존중하기 때문입니다.

정부나 독재자가 대중이 선택한 시장가격을 마음대로 고치려 든다면 경제적 복지체계는 결국 무너지고 맙니다.

시장 경제와 민주주의가 만나는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거리의 함성을 대중의 지혜라고 주장하지만 실로 착각입니다.

민주주의의 원천인 대중의 지혜는 개개인의 선택의 종합일 때, 다시 말해 시장 가격이 살아 움직일 때 비로소 가능합니다.

거리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은 큰 소리로 자기 물건을 팔기 위해 고함을 지릅니다.

그러나 다른 상인들의 좌판을 갈아엎는다면 이는 곧바로 깡패가 되고 맙니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만나는 지점에 대해 생글은 이런 철학을 갖고 있습니다.

생글생글을 만드는 편집인으로서 언제나 이런 가치들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생글은 500회 1000회로 이어져 갈 것입니다.

이 작은 신문이 우리 학생들을 사려 깊은 청년으로 키우고 나아가 우리사회의 지성을 높이는 데 기여하기를 바랍니다.

또 그렇게 되도록 생글 편집진도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 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