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공공재를 생산하지 않는 이유는 뭘까?
[경제교과서 친구만들기] (16) 정부 생산=공공재?
'공공(公共 · public)'의 사전적 의미는 '사회 일반이나 공중에 관계됨'이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공공재는 정부나 공공 기관이 공급하는 재화,공공서비스는 정부나 공공 기관이 제공하는 서비스로 생각하게 된다.

실제로 국어사전에도 공공재(public goods)란 '정부나 공공 기관이 민간에게 제공하는 재화'로 설명된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경제용어사전에 설명된 '공공'의 의미는 이와 완전히 다른 관점에서 서술된다.

경제학에서 '공공'의 의미는 '모두 함께 사용이 가능한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경제학이다 보니 여기에 '①가격'이니 '②소비량'이니 하는 추가 단서가 붙게 된다.

모두 함께 사용이 가능하다는 것은 '①가격을 지불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사용을 배제시킬 수 없다'는 의미로 바꿔 생각할 수 있다.

국방 서비스의 경우 정부가 세금을 납부하지 않은 국민에게 서비스의 혜택을 배제시킬 수 없기 때문에 '공공'의 성격을 가진다.

'국도의 이용'도 마찬가지로,정부가 특정 국민을 배제시킬 방법이 없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공공'의 성격은 대가를 지불하지 않아도,그 사람을 재화의 소비에서 배제시킬 수 없는 특징을 갖는다.

이것은 대가를 지불해야만 소비가 가능한 일반적인 재화와 완전히 다른 성격인 것이다.

'모두 함께 사용이 가능한 것'이라는 '공공'의 두 번째 의미는 '②내가 추가로 소비를 늘려도 다른 사람의 소비 가능성이 줄어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소비를 늘리자 다른 사람의 소비가 감소한다면 다툼이 발생하고 '모두 함께 사용이 가능한 것'이라는 의미에서 멀어지게 될 것이다.

사과를 한 입 베어 물면 다른 사람이 소비할 사과의 양이 줄어들게 마련이다.

그러나 앞에서 예로 들었던 국방 서비스나 국도의 이용은 내가 소비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의 소비량이 감소하지는 않는다(물론 약간 반례가 생각나겠지만 조금만 더 참고 읽어보자).

이러한 커다란 두 가지의 특성을 모두 만족하는 경우,경제학에서는 공공재 혹은 순수(pure) 공공재라고 부른다.

위 두 가지 특성 중 ①번의 특성을 '비배제성',②번의 특성을 '비경합성'이라고 부르기 때문에 공공재란 비배제성과 비경합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재화(혹은 서비스)로 봐야 한다.

이것은 공공재란 정부가 공급하는 재화나 서비스라는 설명과 다른 설명으로,경제학을 공부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설명하는 공공재가 다른 관점에서 논의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반면에 우리가 일반적으로 관찰하고 소비하는 대부분의 재화는 배제성과 경합성을 가지고 있고,이런 재화를 공공재와 대비해 사적재(private goods)라고 부른다.

한편 공공재의 두가지 특성 중 한쪽의 특성이 다소 불완전한 경우가 있을 수 있다.

비배제성은 있지만 비경합성이 없거나,반대로 비경합성은 있지만 비배제성이 없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이런 경우에 우리는 비순수공공재 혹은 준공공재란 이름을 붙여준다.

국도는 분명히 공공재였다.

세금 등 비용을 지불하지 않은 사람도 차를 가지고 나올 수 있어 비배제성이 있고,차를 도로에 가지고 나온다고 해서 다른 사람의 도로 사용을 줄이지는 않기 때문에 비경합성도 있다.

그런데 사람들이 국도에 차를 많이 가지고 나오기 시작하면 정체가 발생하기 시작한다.

최고속도 시속 60㎞는커녕 20㎞도 채 되지 않는다면 차를 가지고 나오면서 도로 서비스를 이용하는 소비행위가 다른 사람의 도로 소비 가능성을 감소시킨 것이다.

물론 대가를 지불하지 않은 사람도 도로를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비배제성은 여전히 있다.

따라서 막히는 도로는 더 이상 순수공공재가 아니라,비배제성은 있지만 비경합성이 사라진 비순수공공재가 된 것이다.

이용시설이 한정되어 정체가 발생할 수 있는 재화에는 늘 이런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한가한 수영장과 만원의 수영장,한가한 체력 단련장과 인원이 붐비는 체력 단련장,평일의 한가한 산행과 주말의 번잡한 산행 등이 이에 해당한다.

시설의 과다 이용에서 발생하는 이런 문제를 자연자원에 적용할 경우 '공유지의 비극'이라는 현상을 만나게 된다.

지나친 고래 포획이 멸종의 위기를 가져오는 경우,지나친 개발로 대기 환경이 오염되는 경우 등이 이에 해당한다.

반대로 비경합성은 있지만 비배제성이 없는 경우도 찾아 볼 수 있다.

유선방송 서비스 업체는 수신기를 달아주고 방송 서비스를 제공한다.

만약 요금을 납부하지 않게 되면 수신기를 떼어가고 방송 시청은 중단될 것이기 때문에 배제성이 있다.

그러나 경합성은 없다.

내가 추가로 수신기를 더 설치한다고 해서 옆집 유선방송 시청자 소비에 영향을 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선방송 서비스는 비순수공공재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같은 방송이지만 KBS MBC SBS가 제공하는 방송은 조금 다르다.

이들이 제공하는 전파 서비스는 특별히 요금을 납부하지 않아도 TV만 구입한다면 언제나 시청이 가능하기 때문에 배제성이 없다.

물론 내가 TV를 구입해서 방송을 시청한다고 해서 옆집 TV 수신이 불량해지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비경합성도 있다.

즉 공공재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보니 공공재는 정부가 생산하는 재화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SBS는 분명히 공공 기관이 아니지만 공공재를 공급하고 있다.

한편,정부가 공급하는 의료 서비스,교육,주택 서비스는 공공이 공급하지만 경합성과 배제성이 있는 사적재라고 볼 수 있다.

공공재라는 것은 정부가 공급하는 재화가 아니라 비경합성과 비배제성을 가지고 있는 재화를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공공재=정부 공급 재화'라고 착각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시장에서 비경합성과 비배제성이 있는 순수공공재는 수요가 있음에도 공급이 적절히 이뤄지지 않는 시장실패를 유발하기 때문에 정부가 나서서 공급하는 경우가 많다.

이로 인해 정부가 공급하는 재화나 서비스가 공공재의 정의라고 착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앞의 사례에서 보듯이 모든 공공재를 정부가 공급하는 것도 아니며 모든 사적재를 민간이 공급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공공재가 있는 경우 시장의 수요와 공급이 작동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재화나 서비스를 이용하는 무임승차의 문제를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민간이 국방 서비스를 공급한다고 생각해보자.

기업은 국방서비스의 대가로 사용 요금을 받을 것이고 사용요금을 지불하지 않는 사람에게 국방 서비스를 배제하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방법이 마땅히 떠오르지 않는다.

가격이 신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이 공공재를 생산하기는 어렵다.

또한 공공재는 누군가 추가로 소비를 증가시켜도 다른 사람의 소비가능성을 감소시키지 않는다.

이것은 추가적 소비의 비용이 0이라는 것이고,되도록 많은 사람이 소비하도록 시장 가격이 0에서 형성되는 것이 사회적으로 바람직하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런데 시장 가격이 0이라면 기업이 생산을 통해 이윤을 얻기 어려울 것이다.

결론적으로 공공재란 정부가 공급하는 재화나 서비스가 아니라 비경합성과 비배제성을 가지고 있는 재화나 서비스를 말하는 것이며,이 두 가지 특성은 무임승차와 가격 형성이 어렵다는 문제를 발생시키기 때문에,시장 원리의 원활한 움직임을 방해한다.

더 직접적으로 말하면 이 두 가지 특성은 시장에서 공공재 공급을 어렵게 만들고,정부가 나서서 공공재를 공급하는 타당한 근거를 제공하는 것이다.

차성훈 KDI 경제정보센터 전문원 econcha@kd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