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은 인간을 타락시키는 위험천만한 것이다”

[실전 고전읽기] 19. 움베르토 에코「장미의 이름」
'소문만복래(笑門萬福來)'라는 말이 있다.

웃어야 온갖 복이 찾아 든다는 뜻이다.

구중중하게 오만상을 찌푸리고 있는 사람에게는 행운의 여신도 다가가기 싫을 것이다.

그러니 복이 넝쿨째 굴러오려면 생글생글 웃고 다녀야 하겠다.

그런데 웃고 다니기는커녕 아예 웃음 자체에 관해서 일언반구 입도 뻥긋하지 말라는 사람이 있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그런 사람이 '있었다'.

아니 이건 또 무슨 괴이한 소리냔 말인가.

하지만 이 황당무계한 이야기가 바로 세계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소설,「장미의 이름」에서 흥미진진하게 드러나는 갈등 테마이다.

14세기 중세 유럽의 수도원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추리소설 「장미의 이름」은 워낙 유명하여 누구나 한번쯤 그 제목을 들어보았을 작품이고,숀 코네리가 주연으로 나온 동명의 영화를 본 사람도 상당수 될 것이다.

그리고 설령 「장미의 이름」을 접하지 못 했다 하더라도,저자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 · 1932년 출생)가 워낙 왕성한 문필 활동을 하는 작가라서 서점 출입을 조금이라도 한다면 이 사람의 책과 필연적으로 조우하게 된다.

당신이 서점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에코의 작품들이 곳곳에서 얼굴을 내밀며 당신을 맞이할 것인데 몇몇 대표적인 작품들은 요즘 곱디 고운 색깔의 양장본 옷을 단체로 맞춰 입고서 자태를 뽐내기도 한다.

당신이 아무리 서점 안에서 이리저리 용케 움베르토 에코의 이름을 피해 다니려 해도 '푸코의 진자','전날의 섬','바우돌리노','로아나 여왕의 신비한 불꽃'과 같은 일련의 소설 작품이라든가,아니면 '기호학 이론','토마스 아퀴나스의 미학 문제','중세의 미와 예술','문학 강의','해석의 한계','미의 역사','연어와 여행하는 방법','미네르바 성냥갑','철학의 위안','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과 같은 이론서 내지는 수필과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혹자는 에코에게 지식계의 티라노사우르스 렉스(Tyrannosaurus Rex)라는 별명도 붙여줬다는데,방금 예시로 든 책의 제목만 살펴 보면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움베르토 에코의 직업은 공식적으로는 볼로냐 대학의 기호학 교수이지만,비단 기호학뿐만 아니라 미학,언어학,철학,문학,비평 등 다양한 방면에 재능을 보이며 중세 철학에서 현대의 대중문화 담론에 이르기까지 넓은 영역을 활발히 드나들고 있다.

엄청난 양의 독서와 다양한 지적 편력을 자랑하는 에코에게 티라노 렉스라는 별명은 어색하지가 않다.

여하튼 이러한 에코에게 인기몰이를 해준 작품이 바로 '장미의 이름'인데 그 유명세에 걸맞게 얼마 전에는 '장미의 이름 창작노트'라는 책까지 출판되었다.

'장미의 이름'은 요한묵시록의 구절과 함께 어우러지는 수도원의 연쇄살인 사건을 주축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단순히 중세를 배경으로 하는 흥미로운 추리소설에 지나는 것이 아니라,서양문화의 전반을 복합적으로 맛볼 수 있는 심층적인 작품이다.

책의 많은 문장을 다른 유명한 고전에서 담아온 이 소설은 에코가 집적한 방대한 지식이 녹아 있어 읽는 동안 서양 문화의 숲을 헤치고 지나오는 느낌이 든다.

이탈리아 수도원에 파견된 수사 윌리엄은 미궁에 빠진 살인 사건을 침착하고 현명하게 해결하면서 소설을 이끌어가는데,그가 밝혀낸 살인사건의 비밀은 한 권의 책으로 귀결된다.

그간의 살인사건은 모두 그 책,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제2권의 위험불온에서 기인한다.

문제 수도원의 호르게 수사는 책이 품고 있는 사상이 위험하여 사회를 파괴할 수 있으므로 세상의 눈으로부터 은폐해야 한다며 책장에 독을 바르고 사람들은 그 책에 중독되어 죽어간다.

중세는 '종교'를 중심축으로 세상이 회전하고 있었고 이러한 종교의 절대불가침성과 신성함을 지키고자 하는 호르게 수사의 집념은 살인이 꼬리를 물게 한다.

그가 생각하기에 웃음은 종교의 권위에 도전하게 하는 위험천만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윌리엄 수사는 호르게를 악마라고 부른다.

윌리엄에게 '악마라고 하는 것은 영혼의 교만,미소를 모르는 신앙,의혹의 여지가 없다고 믿는 진리'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유치한 쟁점을 둘러싸고 소설이 전개되는 것 같으나 당대의 특수성과 그 반영이 현재에 던지는 의미를 생각하면 주제의 중요성이 이해될 것이다.

단순명료한 대립을 축으로 하되 관련된 내용이 방대하게 펼쳐지는 이 소설은 복잡다기한 구조를 가진 건축물과 같아 두고두고 곱씹는 맛이 있다.

그렇다면 다음의 제시문을 읽으며 윌리엄과 호르게의 논쟁을 구경해보자.

☞ 기출 제시문 (서강대학교 2002년 논술 예시자료 및 2007학년도 정시논술 출제문)

(윌리엄) "지난 며칠간 생각해보았더니 점차 내 생각 속에 '시학' 제2권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나를 중독시킬 예정이었던 책장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그 내용을 거의 전부 당신에게 말해줄 수는 있습니다.

희극(코메디아)이란 '코마이', 즉 농촌에서 탄생하는데 식사나 잔치 뒤의 유쾌한 행사이며,희극은 유명한 권력자에 대한 것이 아니라 사악하지는 않다고 해도 천하고 우스꽝스러운 사람이 대상이고,주인공들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겁니다.

평범한 사람의 결함과 악습을 보여주어 우스꽝스러움의 효과를 낸다는 것인데,여기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웃음의 경향을 선을 위한 힘으로 파악하고 웃음이 교육적 가치도 있다고 보았지요." (…중략…)

"그런데 말입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숱한 책 가운데 유독 이 책만 더욱 기를 쓰고 감추려 하는 까닭이 무엇입니까?

당신 형제들과 자신을 단죄하면서까지 그 책을 감춘 이유가 어디 있단 말입니까?

세속적 희극에 관한 책이 많이 있고,외설된 웃음을 찬양하는 다른 책도 얼마든지 있는데,당신은 왜 하필 이 책만 그토록 두려워하는 겁니까?"

(호르게)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쓴 책이기 때문입니다.

대체로 철학자의 저서란 그리스도교가 여러 세기에 걸쳐 축적해 온 가르침의 일부를 파괴했습니다.

교부들이 말씀의 힘에 관해서 알아야 될 내용은 모조리 가르쳤는데도,보에시우스가 나와서 철학자의 저서에 주석을 달자 말씀의 거룩한 신비는 삼단논법의 범주와 인간적 풍자극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창세기에는 우주의 구성에 관한 모든 지식이 들어 있는데도,철학자의 '물리학'의 재발견으로 우주는 딱딱하고 끈끈한 물질의 개념으로 재구성되고 아랍인 학자 아베로에스는 이 세상이 영원하다는 확신을 거의 모든 사람에게 주었습니다.

그래서 아레오파고스에서 설교한 바오로가 최초의 원인(하나님)이 우주에 계시되어 있다고 가르쳤는데도,이 우주는 사람들이 추상적 요인이라 보는 지상적 증거의 집합체로 변질했습니다.

전에는 우리가 하늘을 쳐다보면서 물질의 수렁에 눈살을 찌푸리는 게 고작이었는데도,이제 우리는 땅을 쳐다보고 지상의 증거 때문에 하늘을 믿게 된 것입니다.

철학자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심지어는 성인들과 예언자들조차 그 말에 걸어 맹세하는데,이 세상의 모습을 뒤집어 놓았습니다.

만일 이 책이 공공연히 해석되었더라면 또 일반에게 공개되었더라면 우리 그리스도교는 마지막 방어선이 무너졌을 겁니다."

(윌리엄) "그렇지만 웃음에 대한 논의는 왜 두려워합니까? 책을 없앤다고 해서 웃음 자체를 당신이 없앨 수는 없는 겁니다."

(호르게) "그게 불가능한 일인 건 압니다만 웃음이란 우리 육체의 나약,타락,어리석음입니다.

웃음은 촌놈들의 오락이며 술주정뱅이의 방종으로,심지어는 지혜를 간직한 교회에서조차 축제니 사육제니 하여 우울한 기분을 방출하고 야망의 망각을 유도하는 이 일시적 오염을 허용하지만 웃음은 여전히 천박한 것이며 어리석고 단순한 사람들을 옹호하는 방패이거나 일반대중을 세속화시키는 타락한 신비에 지나지 않습니다. (…중략…)

웃음은 농노를 악마의 두려움에서 해방시킵니다.

이 서책은 악마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 지혜라고 가르치고 있어요.

포도주가 목구멍에서 꼴록꼴록 하듯이 웃을 때 농노는 주인이 된 기분을 느낍니다.

왜냐하면 그는 그의 주인과의 관계를 역전시켰기 때문입니다.

이 서책은 역전을 합리화할 뛰어난 책략을 가르칩니다.

소화작용의 수준에 머물렀던 농노를 두뇌작용을 하게끔 탈바꿈시킵니다.

웃음이 사람에게 적합하다는 것은 우리 한계의 징표로,우리가 죄인임을 말합니다.

그런데 그대처럼 타락한 많은 영혼들은 이 서책으로부터 웃음은 인간의 목적이라는 그럴싸한 논법을 끌어옵니다.

웃음은 잠시 동안 농노들을 공포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그러나 율법은 공포,신의 두려움으로부터 부여된 것입니다.

이 서책은 온 세상을 새롭게 불지를 수 있는 악마의 불꽃을 튀길 수 있습니다."

홍보람 S · 논술 선임연구원 nikebb@nons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