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腸)내 세균을 조절해 비만 치료 가능할듯
[Science] 우리 몸엔 세균이 ‘바글바글’… 세균은 인간과 공생한다?
최근 신종 인플루엔자(신종 플루)가 전 세계에 창궐하면서 그 병증과 확산속도 및 여파에 대한 다양한 분석과 전망 등이 쏟아지고 세계 각국은 방역대책을 세우기에 부심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사람의 몸에 어떻게 공기나 다른 생물의 몸에서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침투해 병을 일으키는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더불어 우리 몸에 유익한 세균은 무엇이고 어떤 것들이 무해한 세균인지도 말이다.

어른 한 명의 몸을 구성하는 전체 세포 수는 약 60조개.

이는 쉽게 상상조차 되지 않는 숫자다.

더욱 더 놀라운 것은 우리 몸에는 이 세포 수보다 더 많은 세균이 함께 살고 있다.

우리 몸에 살고 있는 세균의 수는 놀랍게도 100~1000조개에 달한다.

무게로 치면 약 1㎏이나 된다.

외부에서 들어온 세균이 우리 몸에 세포보다 많다.

즉 아무리 깨끗이 씻고 깔끔하게 지낸다고 해도 우리는 이미 수백 조개의 세균을 몸에 붙이고 사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우리 몸의 각질을 먹고 사는 집먼지 진드기를 비롯 다양한 세균들이 우리 몸에 기생하고 있다고 말한다.

여기서 의문이 생길 것이다.

질병을 일으키는 대표주자로 여겼던 세균이 우리와 어떻게 같이 살고 있을까?

⊙ 세균과 인간은 공생한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몸에 함께 사는 세균은 해를 끼치지 않고 오히려 도움을 주는 경우가 많다.

악어새와 악어의 관계처럼 도움을 주고받는 이런 관계를 '공생(symbiosis)'이라고 한다.

세균은 소화기관은 물론이고 생식기, 신장, 허파, 입에 주로 산다.

입이나 호흡기나 소화기관이야 외부의 물질들을 주로 받아들이는 곳이므로 그렇다고 쳐도 심지어 피부와 눈에도 살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이 중 가장 많은 세균은 대장과 소장에 존재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우선 먼저 주의해야 할 것은 장 내에 살 수 있는 세균은 따로 정해져 있다는 사실이다.

대표적인 것은 유익한 균으로 알려진 유산균이다.

유산균은 1000만 마리가 한꺼번에 들어와도 아무 탈이 안 나지만 살모넬라균, 비브리오균, 황색포도상구균 등 식중독을 일으키는 세균이 들어오면 우리 몸은 즉각 이들을 죽이는 면역 체계를 가동하게 된다.

실제 사람의 장에서 공생할 수 있는 세균은 약 500종류뿐이다.

세균은 사람뿐 아니라 다른 모든 동물과도 공생하고 있다.

이로 미뤄보면 사람과 동물의 장에는 공통된 공생 메커니즘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공생 메커니즘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세균을 살리고 죽일까를 구별해 내는 것이다.

아직까지 명확히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전 세계 연구진은 세균을 구별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유전자라고 보고 있다.

즉 공생을 가능하게 하는 공생 유전자가 있다는 것.공생 유전자란 특정한 하나의 유전자가 아니라 공생에 관여하는 모든 유전자를 말한다.

공생은 쌍방 간의 작용이기 때문에 공생 유전자는 장내세포와 세균에 각각 존재할 것이라는 가설이다.

알아내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세균에 있는 공생 유전자를 밝히기 위해서는 유전자가 파괴된 세균들을 무작위로 장에 집어넣는다.

이 중 정상적으로 공생을 하지 못하는 세균이 있다면 공생에 관여하는 유전자가 파괴됐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 세균을 골라내고 세균에 어떤 유전자가 파괴되었는지를 조사해 공생 유전자를 찾아낸다.

반대로 장의 상피세포에 있는 공생 관여 유전자를 밝히기 위해서는 장의 유전자를 여러 형태로 변형시켜 세균과의 공생을 조사하면 된다.

장의 유전자를 변형하는 것은 세균보다 어렵기 때문에 초파리를 이용한다.

초파리는 사람의 유전자와 비슷한 면이 많기 때문에 더욱 유용하다.

초파리의 전체 유전자인 1만3000개 유전자 중 하나씩을 손상시켜 가며 어떤 유전자가 파괴됐을 때 공생에 문제가 생기는지 조사하는 어렵고 힘든 작업이다.

장내 세포 간에 이온 전달과 항상성 유지에 관여하는 Mocs1 유전자, 장내 세균을 인식해 장의 상피세포에 신호를 전달하는 데 관여하는 PGRP-LC 유전자와 PGRP-LB 유전자 등 초파리의 공생유전자는 이미 많이 밝혀진 상태다.

앞으로 사람에 있는 공생 유전자를 알게 되면 사람마다 적합한 '맞춤형 유산균'을 개발할 수도 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 세균도 인체를 조절한다

장은 공생을 허락한 세균이라 할지라도 그 숫자를 적절하게 조절한다.

아무리 유익한 세균이라도 그 수가 너무 많으면 문제가 생길수밖에 없기 때문.

따라서 적절한 숫자를 유지하기 위해 장은 세균을 죽이는 물질을 분비하는데 대표적인 것은 '듀옥스'라는 효소다.

듀옥스는 생물의 노화와 죽음을 촉진하는 물질인 활성산소를 만들어 장에 공생하고 있는 세균을 죽이는 역할을 한다.

만약 듀옥스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장내 세균은 최대 1000배 이상 늘어 과다 세균 때문에 죽을 수도 있다.

이런 물질은 우리 몸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적절한 양이 분비돼야 한다.

듀옥스의 양이 지나치게 많이 분비될 경우 만성 대장염의 원인이 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현재 이들의 분비를 잘 조절해 질병을 예방하려는 연구도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인체가 공생하는 세균을 조절하듯 세균도 인체를 조절한다.

이와 연관된 재미있는 연구 결과가 있다.

바로 장에 공생하는 세균이 비만을 유도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장내 공생하는 세균 중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은 '페르미쿠테스(Firmicutes)세균'과 '박테로이데테스(Bacteroidetes)세균'이다.

이 두 세균의 상호작용으로 비만이 유도되고 없어지기도 한다는 것이 연구내용의 핵심이다.

연구 결과 뚱뚱한 사람일수록 장내 페르미쿠테스 세균이 90%가량을 차지했다.

반면 비만 환자가 정상체중으로 돌아오면서 페르미쿠테스 속 세균의 비율은 73%로 떨어졌고 박테로이데테스 속 세균의 비율이 15%로 늘었다.

실제 세균이 전혀 없는 무균생쥐에 비만생쥐의 내장에 사는 세균들을 이식한 결과 2주 만에 체지방이 47%나 증가했다.

또 무균생쥐에 고지방 음식을 먹여도 비만생쥐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결국 칼로리를 흡수하는 정도가 세균에 의해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이다.

과학자들은 비만의 원인으로 게으름이나 식탐 이외에도 생물학적인 원인을 주목해 왔는데 그 근거가 제시된 셈이다.

과학자들은 앞으로 장내 세균을 조절하는 것을 통해 비만을 치료하는 방법을 개발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인체와 세균은 이처럼 서로가 서로를 조절하며 공생하고 있다.

인체와 세균이 서로 균형을 이룰 때 최선의 건강 상태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인간관계나 일상생활에서도 이 같은 균형감각을 배워야 하지 않을까?

참고 : 과학기술정보 통합서비스 과학향기

임기훈 한국경제신문기자 shagg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