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을 위협하는 위험사회의 도래

⊙ 산업화와 자연

[강영준 선생님의 소설이야기] 30. 김원일「도요새에 관한 명상」
김원일은 중편 「어둠의 혼」과 장편 「노을」을 통해 비극적인 분단 현실을 조망한 작가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위의 작품들에서 이데올로기의 갈등과 대립을 추상적으로 그리지 않고 우리 주변에서 충분히 겪었을 법한 가족의 이야기로 구성하였으며 또 어린 소년을 서술자로 설정하여 이야기를 실감나게 풀어가도록 했다.

그 결과 세월이 흘러 자칫 무덤덤해지거나 박제된 관념으로 남을 수 있는 분단의 비극적 역사를 새삼 자각하게 해주었다.

그런 그가 분단의 상황을 후경(background)으로 삼고 당대의 작가들이 그다지 주목하지 않았던 공해문제의 심각성을 알린 작품이 「도요새에 관한 명상」이다.

물론 이 작품에도 아버지로 대변되는 실향민들의 한과 '병국'으로 표상되는 입시문제,노동자들의 열악한 삶 등 다양한 사회구조적인 모순이 존재한다.

그러나 작품의 제목에서 느껴지듯 주요 이야기는 공해로 인한 환경오염과 그 모순을 시정하려는 지식인 청년의 삶에 집중되어 있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1970년대는 중화학 공업이 임해지역을 중심으로 빠르게 조성되었고 그 과정에서 자연과 환경에 관한 문제는 논의의 범주에서 제외되었다.

물론 공해에 대한 법과 원칙은 존재했었지만 정작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엄격한 감시와 통제는 이뤄지지 않았던 것이다.

아마도 이는 절대 빈곤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더 시급한 과제이고 환경보호는 그 다음 문제라는 사회적 묵인이 존재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근대화가 지닌 인간 중심의 이데올로기도 환경문제를 당면 과제로 받아들이는 것을 주저하게 했을 것이다.

실제 우리나라의 환경운동은 1970년대를 한참 지나 1990년대 초반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분단으로 고향을 상실한 실향민의 비애와 공해로 본래의 모습을 잃어가는 자연을 서정적인 상상력으로 연결한 「도요새에 관한 명상」은 그 의미가 적지 않다고 할 수 있다.

⊙ 독살되는 자연과 자유

「도요새에 관한 명상」은 작가의 이전 작품처럼 주요 인물이 가족으로 설정되어 있다.

북녘 땅에 가족과 애인을 두고 온 아버지와 부동산 투기를 하며 물질적인 풍요를 최선으로 하는 어머니,그리고 명문대에 진학했지만 시국사건에 연루되어 퇴학을 당한 뒤 낙향해버린 큰 아들 병국,마지막으로 지방대학 입시에도 낙방한 채 학원을 전전하는 둘째 병식이가 있다.

쉽게 눈치 챌 수 있겠지만 분단으로 고향을 잃은 아버지와 정치적 억압으로 젊음의 패기가 꺾여버린 큰 아들 병식은 가슴에 커다란 상실감을 지녔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또한 부동산 투기에 골몰하는 어머니와 학원을 전전하며 유흥과 환락에 빠져버린 병식은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욕망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인물의 성격만 살펴봐도 작품의 주요 갈등이 아버지 대 어머니,병국 대 병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은 쉽게 확인된다.

추상적인 이념의 문제를 '가족'의 이야기로 구체화했던 김원일의 창작 관습은 이 작품에도 고스란히 나타난 셈인데 다시 말해서 자연을 지켜가고자 하는 순수한 의도와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욕망이 서로 충돌하는 상황을 '가족'의 틀 안에서 진행시켜 나가고 있는 것이다.

대학에서 퇴학을 당한 큰 아들 병국은 어머니의 모진 시선을 견디면서 하루하루를 견뎌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동진강의 수질이 심각하게 오염되어가고 있다는 근처 모대학 교수인 대학선배의 말을 떠올리게 된다.

또 어린 시절에는 동진강 하구에 도요새를 비롯한 온갖 철새가 찾아들었지만 지금은 도요새를 한 마리도 보기가 어려운 형편이 된 사실도 병국은 새삼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중화학 공업단지에서 몰래 배출하는 폐수 때문이라는 것도 알게 된다.

이후 그는 동진강의 이곳저곳을 다니며 수질을 직접 조사하고 또 오염 정도를 파악하면서 관계기관에 진정을 내는 일을 한다.

자유롭고 민주적인 사회를 지향했던 병식의 삶은 공해로 삶의 터전을 잃어가는 철새를 지키는 일로 변모했지만 자유를 지향하는 병식의 본질만큼은 변하지 않았던 것이다.

반면에 재수생인 동생 병식은 족제비라는 친구와 함께 동진강의 개펄에 독이 묻은 콩알들을 뿌려놓고 새를 독살하는 일을 하게 된다.

도요새와 같은 희귀종을 박제하는 이들에게 넘기면 적지 않은 돈을 구할 수 있고 그 돈으로 유흥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작품의 가장 중심적인 갈등은 바로 이 두 형제의 갈등으로 집약된다.

병국은 세속에 물들지 않고 자유로운 삶과 순수한 세계를 동경하는 반면 병식은 말초적이고 감각적인 즐거움을 탐닉하며 물질적 욕망에 함몰된 채 목적을 위해 수단을 정당화하는 타락한 세계의 표상이었기 때문이다.

⊙ 위험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

형제는 동진강 둑 위에서 조우한다.

동진강 개펄에서 수질조사를 하고 있던 병국이와 새를 독살하던 병식이가 만나게 된 것이다.

"어,형 아냐?"


병식이가 손을 들어 보이며 소리쳤다.

나는 아무 말도 안 했다.

"동진강 하구가 형의 서식처다보니 형을 만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더랬지. 예감 적중이군." (중략)

"형님 실례의 말 같지만 새가 되더라도 개펄에 떨어진 콩은 주워 먹지 마슈."

말을 마치자 두 녀석은 한바탕 신나게 웃어 젖혔다.

별 새겨들을 말 같지가 않아 나는 걸음을 빨리했다.

잿빛의 하늘을 배경으로 멀리 갈매기들이 날고 있었다.

바람 소리 속에 끼룩끼룩 우는 갈매기의 울음 소리가 여리게 들려왔다.

새의 울음소리,그 소리는 들을 적마다 내 가슴을 새로이 두근거리게 하고 교감신경을 자극하여 이상한 쾌감으로 마취시키는 힘이 있었다.

마치 자기 짝을 부르듯 나를 부르는 소리로 변용되는 정다움과 부드러움을 지니고 있었다.

병식에게 말한 것처럼 나는 정말 새가 되고 싶었다.

새처럼 모든 구속으로부터 나를 해방시키고 싶었다. (중략)

병국의 눈앞에 홀연히 한 마리의 도요새가 날아올랐다.

도요새의 유연한 비상은 날개를 아래위로 움직여 나는 날개치기의 비행이 아니었다.

맞바람의 상승 기류를 타고 동그라미를 그리며 공중 높이 올라갔다가 바람을 옆으로 받아 활공으로 미끄러져 내려오는 섬세한 율동이 눈앞에 잡힐 듯 떠올랐다.

도요새야,너는 동진강 하구를 떠나 어디에다 새로운 도래지를 개척했느냐?

병국이가 낮은 소리로 중얼거리며 도요새를 따라갔다.

그러자 도요새의 비행은 그의 눈앞에서 곧 사라지고 말았다.

- 김원일,「도요새에 관한 명상」

위의 인용에서 보듯 형 병국이는 병식이를 어쩌다 우연히 만난 것으로 생각하고 만다.

하지만 그는 곧이어 개펄에 철새들이 까닭 없이 떼죽음을 당한 현장을 목격하고 그것이 병식이와 족제비의 짓임을 본능적으로 알게 된다.

위의 인용에서 중략된 부분은 병국이가 병식이를 찾아가 새를 죽인 이유와 새를 박제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캐묻는 과정에서 서로 주먹다짐만을 한 채 헤어지는 내용이다.

아무 소득이 없자 병국은 생각이 정리되지 않은 채 아버지가 자주 들르는 해주집이라는 술집 근처를 머뭇거린다.

그리고 그곳에서 홀연히 하늘을 날아가는 도요새를 목격한다.

병국은 멀리 유영하는 도요새를 쫓아가보지만 이내 도요새를 놓친다.

중화학공업단지가 들어서고 사람들의 이기적인 욕망이 들끓는 그곳에 도요새가 정처를 잡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작년에 우리는 중국발 멜라민 파동을 겪었고 올해는 또 석면 파동이 있었다.

콩에 묻은 독을 철새들이 먹듯 아이들이 분유와 과자를 먹고,베이비 파우더를 바르면서 독성 물질에 노출된 것이다.

아마도 그 기저에는 자본을 최우선 가치로 여기는 인간의 이기심이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문제는 멜라민이나 석면과 같은 독성물질들이 허용치나 기준치라는 한계 내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현실이다.

지금 당장 밝혀지지 않았더라도 우리가 섭취하는 화학물질 중에는 치명적인 독성을 지닌 것으로 판명될 만한 것들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현대사회는 성찰과 반성이 없는 근대화로 인해 잠재적 위험이 상존하며,그것은 예전에는 없던 광범위하고 치명적인 것일 수 있다고 진단한 바 있다.

인간의 편리가 증가하는 만큼 위험도 함께 비대해진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사회는 위험사회인 것인데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폭주기관차처럼 내리닫던 근대화와 산업화를 보다 성찰적으로 바라보는 일일 것이다.

전주 상산고 교사 etika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