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사상이 서양과학의 패러다임 이끈다”

[실전 고전읽기] 16. 카프라「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
'하나를 알면 열을 안다'는 말이 있다.

흔히 총명한 사람을 묘사할 때 자주 쓰이는 말이지만,굳이 사람이 아니라도 세상만물 삼라현상 그 무엇이 되었건 간에 하나의 부분에서 전체를 감지할 수 있다는 말이다.

어떤 사람의 사소한 한 마디 말에서 그 사람의 도량 내지는 깜냥을 알 수 있었던 일,혹은 어떠한 현상의 일부를 체득함으로써 전체의 '결'을 느꼈던 경험은 누구나 한번쯤 있었을 것이다.

전체의 구조적 맥락에 따라 세세한 내부가 유기적으로 형성되기 때문에 하나의 부분에서 전체를 더듬어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뒤집어서 생각하면 전체의 패턴을 알고 있을 때에는 그에 미루어 세부적 사항 하나를 추론할 수도 있다.

쉽게 옮기자면,'하나를 알면 열을 알고,열을 알면 열하나도 안다' 정도로 요약이 되겠다.

이렇게 정리를 하고 나니,어디 가서 말 한마디 허투루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상대방이 명석하다면 하나의 단편을 음미하여 내 전체를 '독해(讀解)'하고,또 내가 다음에 무슨 행동을 할지 예측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어쨌건 간에 올바르게만 살면 되니 살짝 엄습하는 불안은 떨치고 원래의 이야기로 돌아가자.

고금(古今)의 진리대로 세상 모든 것은 변화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 변화의 과정에서 부분과 전체의 유기적 관련성이 보이는 양상은 무척 흥미롭다.

상당수의 세부 사항들이 전체의 구조와 어긋나는 일들이 계속해서 발생하면 이를 조정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으로 전체의 구조적 틀이 바뀐다.

그리고 전체의 구조가 변환되면 세부적 내용 하나하나 모두 변경될 수밖에 없다.

사람의 개과천선을 쉽게 와 닿는 예로 들자면,어떤 사람이 자신의 구조적 패턴(이 경우 나쁜 놈이라는 행동양식의 패턴)에서 벗어나는 일을 계속한다고 하자.

세부적 이상 사례가 계속해서 축적되면서 전반적인 틀과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하면 전체의 구조 또한 바뀌어야 한다.

그래서 나쁜 인간이라는 전체의 구조는 선량한 인간이라는 구조로 변환이 되고,이제 이렇게 되면 구조 자체의 변화로 인해 세부적 사항 모두가 하나하나 바뀌게 된다.

이것을 토마스 쿤의 표현대로 말하자면 '패러다임의 전환'이 되는 것이다.

패러다임이란, 어떤 한 시대 사람들의 견해나 사고를 근본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테두리로서의 인식의 체계다.

쉽게 쓰자면 세상을 이해하는 틀, 혹은 세상을 바라보는 창이다.

그런데 서양과학의 패러다임을 뿌리부터 뒤흔든 물리학자가 있다.

이름은 프리초프 카프라.

카프라는 오랫동안 홀대받던 동양철학을 서양과학과 결합하여 '신과학 운동'의 첫 장을 열어젖힌 사람이다.

동양철학이 노릇노릇하게 생긴 인종들이 떠드는 괴상망측한 헛소리쯤으로 치부되던 시절도 있었는데,카프라는 무시받던 동양사상을 재발견하고 높이 평가하였다.

왜냐하면 그는 물리학을 공부하면서 기존 서양철학의 전체적 구조,즉 패러다임과 일치하지 않는 이상 사례들이 계속해서 집적되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부분과 전체는 유기적으로 연계되기 때문에 이러한 현상이 지속된다면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할 수밖에 없다.

서양철학은 우주가 거대한 정밀기계와 같다는 기계론적 우주관에 입각하여 세상을 바라보고 연구를 수행하였지만,이러한 패러다임으로는 발전해 나가는 현대물리학을 더 이상 포섭할 수 없었던 것이다.

미시 세계로 발을 들인 현대 물리학의 탐구는 기존 과학 이념의 한계를 드러내었고,카프라는 현대물리학을 포섭할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게 되었다.

그리고 동양의 지혜와 서양의 과학 사이에 본질적인 조화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하면서 동양사상이 현대과학이 필요로 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의 이러한 발견은 1975년 발간한 '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The Tao of Physics)'이라는 저서에 녹아 있다.

이 책에서 카프라는 상대성 이론과 양자 물리학을 기반으로 현대 물리학에서 나타난 세계관의 변화가 동양의 고대 사상 속에 담겨 있는 세계관과 얼마나 유사한가를 비교하며,근대 이후의 기계론적 자연관을 유기체적 자연관으로 바꾸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그렇다면 카프라가 발견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실제 확인해보도록 하자.

☞ 기출 제시문 (연세대학교 2002학년도 정시 인문계 논술)

[논제]

동일한 사물과 사건일지라도 그에 대한 표현은 다양할 수 있다. 제시문 (가: 카프라,'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 (나: 브레히트,'어느 책 읽는 노동자의 의문')을 참조하여 (다: 진수,'삼국지')와 (라: 나관중,'삼국지연의')의 차이점을 여러 측면에서 분석한 뒤 그것이 지닌 사회 · 문화적 의미를 오늘날의 문제와 연관지어 논술하시오. (1800자 내외)

[제시문]

개념적 지식의 한계나 상대성을 끊임없이 자각하는 일은 우리들 대부분에게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실재를 표현해 놓은 것이 실재 그 자체보다 훨씬 파악하기 쉽기 때문이며, 우리는 곧잘 이 둘을 혼동하여, 이 개념과 상징을 실재 그 자체로 착각하곤 한다.

이러한 미혹을 떨쳐 버리게 하는 일이 바로 동양 신비 사상의 주요한 목적 가운데 하나다.

그래서 불교의 선사들이 이르기를, 손가락은 달을 가리키기 위해서 필요했던 것이니 달을 인식한 후에는 그 손가락 때문에 우리가 혼란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고 하고 있다.

또한 '도가의 현자' 장자는 이렇게 말했다.

"통발은 물고기를 잡기 위해 있으며 물고기를 잡고 나면 통발 따위는 잊혀지게 마련이다. 올가미는 토끼를 잡기 위해 필요하며 토끼를 잡고 나면 올가미는 잊혀지고 만다. 말은 생각을 전하기 위해 있으며 생각하는 바를 알고 나면 말 따위는 잊고 만다."

서양에서는 의미론자인 알프레트 코지프스키가 '지도는 영토가 아니다'라는 분명한 어구로 똑같은 견해를 적확하게 표현했다. (…중략…)

동양의 신비 사상가들은 궁극적인 실재란 추론의 대상이나 형상화할 수 있는 지식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우리의 언어나 개념의 근원이 되는 감각이나 지성의 영역 밖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말로 적절하게 기술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실재를 도라고 규정한 노자는 도덕경의 첫 줄에서 똑같은 사실을 "말로 표현될 수 있는 도는 영원한 도가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 말의 의미는 우리가 어느 신문을 읽더라도 분명히 알 수 있다.

인류가 근 2000년 동안 엄청난 양의 논리적 지식을 축적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별로 현명해지지 못했다는 사실이 바로 절대적 지식은 언어로 전달될 수 없다는 것을 충분히 증명하고 있다. (…중략…)

직관적인 통찰이 일관성 있는 수학적 논리 체계를 갖추고 있지 않거나 일상적 언어로 그 의미를 쉽게 풀어낼 수 없다면 물리학자들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다.

이 때 수학적 논리 체계를 갖추기 위해서는 추상화의 과정이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그것은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실재의 지도(地圖)를 구성하고 있는 개념들과 상징들의 체계로 이루어져 있다.

실재의 지도는 몇 가지 특성만을 나타낼 따름이다.

우리들은 이것이 정확히 어느 것인지 알지 못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어릴 적부터 비판적인 분석 없이 우리의 지도를 조금씩 재구성해 왔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고 있는 단어들은 그 의미와 범주가 분명하게 규정된 것이 아니다.

단어들은 여러 가지 의미들을 지니고 있는데, 그것들의 대부분은 우리의 마음속에서 별 의미를 만들지 못한 채 스쳐 지나갈 따름이고, 우리가 어떤 단어를 들을 때 의미들은 대부분 우리의 잠재의식 속에 남아 있게 된다. (…중략…)

공간과 시간은 이제 관찰자가 자연 현상을 기술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언어의 중요한 구성 요소로 그 역할이 축소되었기 때문에 각 관찰자는 그 현상에 대해 서로 다른 방식으로 기술할 것이다.

그들의 기술로부터 어떤 보편적 자연 법칙을 도출해 내기 위해서는 그들이 모든 좌표계에서 설정했던 방식과 똑같은 방식으로, 즉 임의의 위치에서 상대적 운동을 하고 있는 모든 관찰자들에게 똑같이 적용될 수 있는 법칙들을 공식화해야 한다.

- 카프라 「현대 물리학과 동양 사상」

홍보람 S · 논술 선임연구원 nikebbr@nons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