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약청 “위해 가능성 없지만 판매는 중단”

제약사들 “판매금지로 큰 피해” 소송 채비
[Science] 석면 의약품 파동 ‘일파만파’ … 먹으면 큰탈 나는 걸까?
베이비 파우더에 석면이 검출되면서 시작된 탤크 의약품 파동이 일파만파로 확대되고 있다.

지난 9일 식품의약품안전청은 석면 오염 우려가 있는 120개 제약사 1122개 의약품을 대상으로 판매금지와 회수명령을 내렸다.

식약청에서 판매금지한 약품들은 유명 제약사들의 대표약품들이 포함됐으며 대체 약품이 없는 의약품들에 대해서는 30일 동안 판매를 유예했다.

윤여표 식약청장은 이날 "의약품에 함유된 미량의 석면은 먹어도 위해 가능성이 거의 없는 것으로 파악됐으나 위해 물질은 미량이라도 먹어서는 안 된다는 판단에 따라 판매금지 결정을 내렸다"고 발표했다.

⊙ 탤크 의약품은 얼마나 유해한가

베이비 파우더에서 석면이 검출된 것은 원료성분인 탤크에 자연적으로 석면이 섞여 있기 때문이다.

탤크는 땅 속에서 석면을 함유하고 있는 사문암과 함께 존재하는 경우가 많은데 탤크를 채굴할 때 사문암이 혼재돼 석면이 공존하게 된다.

이에 따라 탤크 제조공정에서 별도로 석면을 제거하지 않으면 제품에도 석면이 남아 있게 된다.

탤크는 베이비 파우더뿐만 아니라 알약을 찍어낼 때 재료가 기계에 들러붙지 않게 하거나 시럽 제품의 점성을 높이기 위해서도 사용된다.

알약의 경우 한 정당 무게가 500~1000㎎인데 이 중 탤크 비중이 1% 미만이고 탤크 중 석면 오염 정도가 2~5%로 추정되는 만큼 한 정당 0.1~0.5㎎의 석면을 함유한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의 석면 관련 환경기준이 공기 1㏄당 0.01개 입자 이하, 물은 1㏄당 7000개 이하라는 것과 비교해 볼 때 의약품을 통한 석면의 유해성은 극히 낮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소화기를 통한 석면 노출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일고 있다.

석면을 흡입하면 암을 유발한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과 달리 미량의 석면을 먹었을 때의 독성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하게 밝혀진 바 없다.

광산지역에서 지하수를 통해 석면에 노출된 사람들에게서 암 발생이 증가한다는 보고가 있지만 이 경우에도 노출량이 매우 높았으며 동물실험에서는 암 위험을 높이지 않는 것으로 나왔다.

일본 후생노동성의 2005년 12월 발표에 따르면 식수를 통한 석면 섭취가 암 위험을 높이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후생노동성은 "경구 섭취된 석면이 건강에 위험하다는 설득력 있는 증거는 없으며 식수에 대한 석면 가이드라인을 수립할 필요는 없다"고 밝혔다.

반면 미국 환경청(EPA)은 보다 엄격하게 먹는 물의 석면 기준을 7ppb 이하로 설정했다.

⊙ 전국 약국, 병원에서 일대 혼란

석면 함유 우려가 있는 의약품들에 대해 회수 및 판매금지 조치가 내려진 후 제약업계와 병 · 의원,약국에서 일대 혼란이 일어났다.

식약청이 구체적이고 정확한 지침을 내리지 않아 혼선은 더욱 가중됐다.

병 · 의원과 약국들은 이미 처방했거나 판매한 판매금지 의약품에 대해 환자가 환불,재처방 등을 요구할 경우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지침을 전혀 못 받았다.

환자들도 복용 중인 판매금지 약을 약국에서 다른 약으로 교환하거나 환불받을 수 있는지,해당 약이 전문 의약품일 경우 대체 약을 처방받으려면 의사에게 진료비를 또 내야 하는지 등을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게다가 식약청은 석면 함유 우려가 있는 탤크를 전혀 사용하지 않은 의약품에 대해서도 판매금지 조치를 내린 것으로 알려져 해당 제약업체들의 반발을 샀다.

대한제약협회도 공식 성명을 내고 "제약회사들은 정부가 정한 원료 기준을 위반하지 않았음에도 경제적 · 사회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타격을 보게 돼 매우 당혹스럽다"고 말했다.

아울러 식약청이 내렸던 최초의 판매금지 목록에 간질약인 페노바르비탈정과 같이 시장에서 대체 약품을 구할 수 없는 약품 3~4종이 포함된 것도 문제가 됐다.

이들 약품은 30일 판매금지 유예 목록에도 포함돼 있지 않았다.

⊙ 소송전으로 비화하고 있는 탤크 사태

[Science] 석면 의약품 파동 ‘일파만파’ … 먹으면 큰탈 나는 걸까?

지난 13일에는 일부 의약품의 판매가 금지된 제약사 가운데 30여개사가 식약청을 상대로 공동 소송에 들어가기로 해 사태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제약협회 관계자는 "해당 제약사 실무자들과 회의한 결과 현재까지 30여개사가 소송에 참여할 뜻을 전해왔다"며 "곧 소송을 대리할 로펌 선정에 들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제약업체들은 식약청이 석면 검출 여부와 관계없이 석면 함유 우려 의약품 리스트에 업체명과 품목을 노출함으로써 매출 감소 등의 피해를 입고 있다며 식약청을 상대로 판매금지 및 회수 명령 행정처분에 대한 효력정지 및 취소 청구 소송을 제기할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0일 한림제약은 독자적으로 서울행정법원에 같은 소송을 제기했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석면 오염 우려로 판매 금지된 약품의 한 해 매출액이 3700억원에 육박할 정도로 업계의 피해가 큰 만큼 소송에 참여하는 업체가 더 늘어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반대로 소비자들은 제약사와 정부를 대상으로 한 소송전에 나서고 있다.

웹 포털사이트 네이버 카페에 만들어진 '석면 베이비 파우더 피해자 집단소송 모임'은 최근 1차로 23개 가정 46명을 모아 국가와 파우더 제조사 등을 상대로 서울중앙지법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배상액은 한 가정에 60만원.

환경운동연합도 8일 서울 종로구의 사무실에서 10여명의 피해 접수자를 모아 1차 피해자모임을 열었다.

또 홈페이지를 통해 피해 사례를 모은 뒤 최근 파우더 제조사와 탤크 공급업체를 검찰에 고발하기도 했다.

환경운동연합 관계자는 "매일 수십건씩 피해 사례가 들어오고 있으며 곧 집단 민사소송을 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황경남 한국경제신문 기자 knhw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