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이상향 실현시킬 ‘설계 도면’을 그리다
당신이 일국의 군왕이라고 하자.
그런데 정치는 복잡하고 행정은 영 모르겠다.
외교니 안보니 하는 것들은 더욱 말할 나위도 없다.
국가의 모든 대소사가 당신에게 버겁기만 하다.
그러다가 어느 날 혼자 끙끙 앓지만 말고 다른 사람의 명석한 두뇌를 활용하자는 생각이 떠오른다.
기발한 생각에 스스로 흡족해 하면서 번영하는 국가를 이룰 수 있는 사상의 설계도면을 제시하는 이에게 후한 상을 내리겠다고 사방팔방에 알린다.
그러자 배가 고픈 철학자들과 야심 있는 사상가들이 온갖 종류의 이상국 설계도를 들고 구름같이 몰려 와서는 자신의 사상을 채택해 달라고 간청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들 무리에는 한때 천하주유로 이름을 알린 공자도 끼여 있다.
이름도 자주 들어 친숙한 인물이니 공자에게 그냥 국정을 기탁할까 하는 생각이 당신 머릿속에 살짝 스친다.
하지만 나라면 당신을 적극 말릴 것이다.
우선,당신에게 내미는 공자의 설계도를 잘 살펴보라.
설계도의 타이틀은 '대동사회(大同社會)'이다.
하지만 정작 설계도면을 들여다보면 아무 것도 없이 휑한 백지이다.
대동사회라는 제목만이 덩그러니 찍혀있을 뿐이다.
당혹감을 수습하려고 노력하는 당신에게 어쩌면 바로 이 때문에 공자가 천하를 방랑했을 것만 같다는 의혹이 갑자기 엄습한다.
안심해도 좋다.
유독 당신만이 이 위대한 사상가의 자질을 의심하는 이상한 사람은 아니니까 말이다.
이미 많은 정치학자들이 당신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대동(大同'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공자의 이상향인 대동사회는 모든 이가 공동체적 합일(合一)의 삶을 영위하는 사회이다.
문제는 이 사회가 추상적 구호에 그칠 뿐이지 공자가 이에 대해 사회공학적 설계(social engineering)를 구체적으로 제시한 적이 없다는 점이다.
공자는 도덕적 이상주의자였지 인간의 삶의 구조나 사회 현실을 체계적으로 탐구한 인물은 아니다.
그가 대동사회라는 자신의 정치적 이상론을 좀 더 설득력 있게 제시하려 했다면 적어도 그 이상사회를 명시적으로 묘사하고,이상 실현을 위한 방안을 모색했어야 한다.
하지만 뭐 그렇다고 해서 '대동사회'를 모두 내다버릴 이유는 없다.
당신에게 달려온 사상가 중에는 청나라 학자 캉유웨이(康有爲 · 1858~1927)도 있기 때문이다.
공자를 성왕(聖王)이라고 칭하면서 흠모하던 캉유웨이는 타이틀만 존재하였던 '대동사회'의 구체적 설계도면을 공자를 대신하여 제공한다.
그리고 캉유웨이가 '대동사회'의 추상적 구호를 구체화시켜서 묘사한 책이 바로 오늘 소개되는 '대동서(大同書)'이다.
'대동서'는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甲乙丙丁戊己庚辛壬癸)의 순서로 책이 구성되어 있다.
각각의 내용을 살피면 <갑-인간이 세상에서 느끼는 모든 괴로움, 을-국경 없는 하나의 세계,병-계급차별 없는 평등한 민족,정-인종차별 없는 하나의 인류,무-남녀차별 없는 평등 보장,기-가족관계가 없는 천민(天民),경-산업 간의 경계가 없는 공평한 생업,신- 난세를 태평세로,임- 인간과 짐승의 구별이 없는 모든 생명체 사랑,계-괴로움이 없는 극락의 세계로>와 같은 표제의 목차가 달려 있다.
각 장의 표제만 죽 읽어봐도 캉유웨이가 그린 이상사회의 모습이 대강 그려질 것이다.
대동서는 세상의 온갖 괴로움(苦)에 대한 이야기를 그 유형별로 자세하게 열거하면서 시작된다.
캉유웨이는 모든 고통의 근원은 계급적 억압과 지구 곳곳에서 자행되는 차별이라고 지적하면서 이러한 차별을 낳는 모든 기제를 비판한다.
따라서 세상의 평화와 사람들의 안녕을 위해서는 모든 집단적 구분을 폐지하고 정치,경제,사회,문화를 평등하게 통합하는 세계통일정부 체제의 만민공동체를 이룩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캉유웨이는 세상을 크게 세 단계로 나누어 대동합국(大同合國) 삼세표(三世表)를 제시하는데,현재의 거란세(據亂世),대동이 점차 진행되는 승평세(升平世),대동이 성취된 태평세(太平世)의 상태로 구분하고 각 단계에서 이루어질 일들을 기술하였다.
현재의 상태가 개선되면 '소강(小康)'의 승평세가 되고,승평세가 발전하여 궁극적 이상향에 도달하면 대동의 태평세가 실현된다는 사회 진화를 묘사한 것이다.
대동사회가 도래하면 남녀,계급,인종 등의 불평등이 전혀 없이 모든 사람이 동등하게 높은 교양과 도덕으로 고양된 삶을 누릴 수 있다고 캉유웨이는 설명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문제는 캉유웨이가 제시한 이상향이 유학의 언어로 표현되었지만 실은 묵가의 사상이라는 것이다.
유가는 사랑의 '차이'를 인정하고 가장 가까운 것에 대한 사랑으로부터 출발해 순차적으로 넓혀나가면 결국 인류애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묵자는 이를 차별적인 사랑이라고 비판하면서 겸애(兼愛)와 상동(尙同)을 기치로 내세우며 모든 인간을 무차별적으로 사랑해야 한다고 설파하였다.
공자가 중시하는 가족애나 애국심은 묵자의 관점에서는 이기주의적 사랑이기 때문에 이를 부정하고 인류애가 충만한 평화로운 세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하였다.
무차별적 인류애를 주장하는 캉유웨이는 본인은 깨닫지 못했겠지만 지식인 엘리트가 사회를 지도하는 이분화된 정치공동체를 꿈꾸던 공자의 제자라기 보다는,만민박애를 주장한 묵자의 제자에 가깝다.
또한 캉유웨이가 대동서에서 그리고 있는 이상사회의 모습은 공자의 가르침과 상반되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어서 공자가 들었으면 무덤 속에서 오만상을 찌푸렸을 것이다.
억압과 종속에 기반한 가족제도가 모두 철폐되는 대동사회에서는 이를 상징하듯이 남녀간의 관계도 부부라는 명칭 대신 '교호(交互)'라는 명칭이 사용된다는 것,그리고 혼인의 기한은 길어도 1년을 넘지 못하고 아무리 짧아도 1개월은 채우도록 하되 상호 합의가 있으면 계속적인 계약을 허락한다는 점은 공자가 들었으면 펄쩍 뛸 이야기이다.
또한 임산부는 하늘을 대신해 아이를 낳는 것이고,동시에 공공을 위해 출산을 하기 때문에 세상 대중의 어머니(衆母)라는 명칭을 수여하고 임산부는 공직을 수행하는 입장이므로 공공시설에서 지내도록 하면서 봉급을 준다는 사상 역시도 제사봉공을 통해 가문의 부계 전승을 중시하는 유가에서 반길 내용은 절대 아니다.
그러나 저자 스스로는 자신의 모순을 몰랐기에 책의 제목은 '대동서'라고 붙여졌다.
어쨌든 다음의 구절을 읽고 캉유웨이의 이상사회론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보기로 하자.
☞ 논술 기출 제시문 (고려대학교 2009학년도 정시)
전쟁을 피해 고향 집에 돌아온 나는 하루 종일 독서와 사색에 빠져서 가족들을 무심히 대했다.
그런 가운데에도 사방에서 들려오는 괴로운 사람들의 이야기는 내 가슴에 사무쳤다.
고아는 배고픔에 울음을 그치지 않았고 헐벗은 노파는 이불도 없이 밤새 웅크려 있으며,몹쓸 병에 걸린 자들이 허리를 조아려 구걸을 해도 의지할 데가 없었다.
나는 이들로 인한 슬픔과 괴로움에 하루하루를 탄식 속에 지냈다.
저들은 저들 자신이 괴로운 것일 뿐 나와는 무관한 일인데 무엇이 나를 이렇게까지 동요시키는 것일까?
생각해 보건대 나에게 있는 지각이 천지의 기(氣)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혈맥이 온몸에 통하듯이 모든 사람은 천지의 기와 연결되어 있다.
자석도 서로 끌어당기는 힘이 있는데 지각을 지닌 사람들 사이에 끌어당기는 힘이 없을 수 있겠는가?
남의 불행을 차마 견디지 못하는 인(仁)이야말로 바로 사람을 서로 끌어당기는 힘이다.
온 세상 모든 인류는 나의 동포이다.
겉모습은 서로 다르고 멀리 떨어져 있어 만날 수 없다 하더라도 나는 책을 통해 저들의 사상을 접할 수 있고 세계 곳곳에서 만든 물건들을 사용하고 여러 나라의 예술을 향유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다른 나라가 진보하면 우리도 진보하고 퇴보하면 우리도 퇴보하며,그들이 즐거우면 나도 즐겁고 그들이 처참해지면 나도 처참한 심정이 된다.
이 지구상에 사는 모든 사람이 사랑으로 끌어당기니 내 어찌 무관심할 수 있겠는가?
나는 열강이 약소국을 침략하는 난세에 태어나 계급과 인종과 남녀 사이의 억압으로 인한 세상의 괴로움을 목격했다.
내 생각으로는 모든 차별을 없애는 대동(大同)의 도(道)야말로 모든 사람을 이러한 괴로움에서 구제해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대동의 도를 이루자면 차별을 낳는 가족이나 국가 역시 없애고 세계를 하나로 만들어야 한다.
가족이 있으면 자기 가족의 생계를 위해 탐욕을 부리게 되며,불우한 집에서 태어난 아이는 아무도 돌보지 않아 질병과 추위,굶주림과 무식함을 벗어날 수 없다.
국가가 있으면 자기 나라의 이익을 위해 남의 나라를 착취하며 결국 전쟁을 일으켜 많은 사람을 참혹한 지경에 몰아넣기도 한다.
그러므로 가족과 국가의 구별을 넘어 온 세계 사람을 동등하게 사랑하는 데로 나아가야 한다.
☞ 기출논제
'공감의 확장'이라는 관점에서 제시문 (나: 강유위,'대동서') (다: 막스 쉘러,'공감의 본질과 현상') (라: 김용택,'사랑')을 비교하고,이 제시문들을 참고하여 공감과 도덕적 실천의 상관관계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논술하시오.
홍보람 S · 논술 선임연구원 nikebbr@nonsul.com
당신이 일국의 군왕이라고 하자.
그런데 정치는 복잡하고 행정은 영 모르겠다.
외교니 안보니 하는 것들은 더욱 말할 나위도 없다.
국가의 모든 대소사가 당신에게 버겁기만 하다.
그러다가 어느 날 혼자 끙끙 앓지만 말고 다른 사람의 명석한 두뇌를 활용하자는 생각이 떠오른다.
기발한 생각에 스스로 흡족해 하면서 번영하는 국가를 이룰 수 있는 사상의 설계도면을 제시하는 이에게 후한 상을 내리겠다고 사방팔방에 알린다.
그러자 배가 고픈 철학자들과 야심 있는 사상가들이 온갖 종류의 이상국 설계도를 들고 구름같이 몰려 와서는 자신의 사상을 채택해 달라고 간청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들 무리에는 한때 천하주유로 이름을 알린 공자도 끼여 있다.
이름도 자주 들어 친숙한 인물이니 공자에게 그냥 국정을 기탁할까 하는 생각이 당신 머릿속에 살짝 스친다.
하지만 나라면 당신을 적극 말릴 것이다.
우선,당신에게 내미는 공자의 설계도를 잘 살펴보라.
설계도의 타이틀은 '대동사회(大同社會)'이다.
하지만 정작 설계도면을 들여다보면 아무 것도 없이 휑한 백지이다.
대동사회라는 제목만이 덩그러니 찍혀있을 뿐이다.
당혹감을 수습하려고 노력하는 당신에게 어쩌면 바로 이 때문에 공자가 천하를 방랑했을 것만 같다는 의혹이 갑자기 엄습한다.
안심해도 좋다.
유독 당신만이 이 위대한 사상가의 자질을 의심하는 이상한 사람은 아니니까 말이다.
이미 많은 정치학자들이 당신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대동(大同'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공자의 이상향인 대동사회는 모든 이가 공동체적 합일(合一)의 삶을 영위하는 사회이다.
문제는 이 사회가 추상적 구호에 그칠 뿐이지 공자가 이에 대해 사회공학적 설계(social engineering)를 구체적으로 제시한 적이 없다는 점이다.
공자는 도덕적 이상주의자였지 인간의 삶의 구조나 사회 현실을 체계적으로 탐구한 인물은 아니다.
그가 대동사회라는 자신의 정치적 이상론을 좀 더 설득력 있게 제시하려 했다면 적어도 그 이상사회를 명시적으로 묘사하고,이상 실현을 위한 방안을 모색했어야 한다.
하지만 뭐 그렇다고 해서 '대동사회'를 모두 내다버릴 이유는 없다.
당신에게 달려온 사상가 중에는 청나라 학자 캉유웨이(康有爲 · 1858~1927)도 있기 때문이다.
공자를 성왕(聖王)이라고 칭하면서 흠모하던 캉유웨이는 타이틀만 존재하였던 '대동사회'의 구체적 설계도면을 공자를 대신하여 제공한다.
그리고 캉유웨이가 '대동사회'의 추상적 구호를 구체화시켜서 묘사한 책이 바로 오늘 소개되는 '대동서(大同書)'이다.
'대동서'는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甲乙丙丁戊己庚辛壬癸)의 순서로 책이 구성되어 있다.
각각의 내용을 살피면 <갑-인간이 세상에서 느끼는 모든 괴로움, 을-국경 없는 하나의 세계,병-계급차별 없는 평등한 민족,정-인종차별 없는 하나의 인류,무-남녀차별 없는 평등 보장,기-가족관계가 없는 천민(天民),경-산업 간의 경계가 없는 공평한 생업,신- 난세를 태평세로,임- 인간과 짐승의 구별이 없는 모든 생명체 사랑,계-괴로움이 없는 극락의 세계로>와 같은 표제의 목차가 달려 있다.
각 장의 표제만 죽 읽어봐도 캉유웨이가 그린 이상사회의 모습이 대강 그려질 것이다.
대동서는 세상의 온갖 괴로움(苦)에 대한 이야기를 그 유형별로 자세하게 열거하면서 시작된다.
캉유웨이는 모든 고통의 근원은 계급적 억압과 지구 곳곳에서 자행되는 차별이라고 지적하면서 이러한 차별을 낳는 모든 기제를 비판한다.
따라서 세상의 평화와 사람들의 안녕을 위해서는 모든 집단적 구분을 폐지하고 정치,경제,사회,문화를 평등하게 통합하는 세계통일정부 체제의 만민공동체를 이룩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캉유웨이는 세상을 크게 세 단계로 나누어 대동합국(大同合國) 삼세표(三世表)를 제시하는데,현재의 거란세(據亂世),대동이 점차 진행되는 승평세(升平世),대동이 성취된 태평세(太平世)의 상태로 구분하고 각 단계에서 이루어질 일들을 기술하였다.
현재의 상태가 개선되면 '소강(小康)'의 승평세가 되고,승평세가 발전하여 궁극적 이상향에 도달하면 대동의 태평세가 실현된다는 사회 진화를 묘사한 것이다.
대동사회가 도래하면 남녀,계급,인종 등의 불평등이 전혀 없이 모든 사람이 동등하게 높은 교양과 도덕으로 고양된 삶을 누릴 수 있다고 캉유웨이는 설명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문제는 캉유웨이가 제시한 이상향이 유학의 언어로 표현되었지만 실은 묵가의 사상이라는 것이다.
유가는 사랑의 '차이'를 인정하고 가장 가까운 것에 대한 사랑으로부터 출발해 순차적으로 넓혀나가면 결국 인류애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묵자는 이를 차별적인 사랑이라고 비판하면서 겸애(兼愛)와 상동(尙同)을 기치로 내세우며 모든 인간을 무차별적으로 사랑해야 한다고 설파하였다.
공자가 중시하는 가족애나 애국심은 묵자의 관점에서는 이기주의적 사랑이기 때문에 이를 부정하고 인류애가 충만한 평화로운 세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하였다.
무차별적 인류애를 주장하는 캉유웨이는 본인은 깨닫지 못했겠지만 지식인 엘리트가 사회를 지도하는 이분화된 정치공동체를 꿈꾸던 공자의 제자라기 보다는,만민박애를 주장한 묵자의 제자에 가깝다.
또한 캉유웨이가 대동서에서 그리고 있는 이상사회의 모습은 공자의 가르침과 상반되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어서 공자가 들었으면 무덤 속에서 오만상을 찌푸렸을 것이다.
억압과 종속에 기반한 가족제도가 모두 철폐되는 대동사회에서는 이를 상징하듯이 남녀간의 관계도 부부라는 명칭 대신 '교호(交互)'라는 명칭이 사용된다는 것,그리고 혼인의 기한은 길어도 1년을 넘지 못하고 아무리 짧아도 1개월은 채우도록 하되 상호 합의가 있으면 계속적인 계약을 허락한다는 점은 공자가 들었으면 펄쩍 뛸 이야기이다.
또한 임산부는 하늘을 대신해 아이를 낳는 것이고,동시에 공공을 위해 출산을 하기 때문에 세상 대중의 어머니(衆母)라는 명칭을 수여하고 임산부는 공직을 수행하는 입장이므로 공공시설에서 지내도록 하면서 봉급을 준다는 사상 역시도 제사봉공을 통해 가문의 부계 전승을 중시하는 유가에서 반길 내용은 절대 아니다.
그러나 저자 스스로는 자신의 모순을 몰랐기에 책의 제목은 '대동서'라고 붙여졌다.
어쨌든 다음의 구절을 읽고 캉유웨이의 이상사회론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보기로 하자.
☞ 논술 기출 제시문 (고려대학교 2009학년도 정시)
전쟁을 피해 고향 집에 돌아온 나는 하루 종일 독서와 사색에 빠져서 가족들을 무심히 대했다.
그런 가운데에도 사방에서 들려오는 괴로운 사람들의 이야기는 내 가슴에 사무쳤다.
고아는 배고픔에 울음을 그치지 않았고 헐벗은 노파는 이불도 없이 밤새 웅크려 있으며,몹쓸 병에 걸린 자들이 허리를 조아려 구걸을 해도 의지할 데가 없었다.
나는 이들로 인한 슬픔과 괴로움에 하루하루를 탄식 속에 지냈다.
저들은 저들 자신이 괴로운 것일 뿐 나와는 무관한 일인데 무엇이 나를 이렇게까지 동요시키는 것일까?
생각해 보건대 나에게 있는 지각이 천지의 기(氣)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혈맥이 온몸에 통하듯이 모든 사람은 천지의 기와 연결되어 있다.
자석도 서로 끌어당기는 힘이 있는데 지각을 지닌 사람들 사이에 끌어당기는 힘이 없을 수 있겠는가?
남의 불행을 차마 견디지 못하는 인(仁)이야말로 바로 사람을 서로 끌어당기는 힘이다.
온 세상 모든 인류는 나의 동포이다.
겉모습은 서로 다르고 멀리 떨어져 있어 만날 수 없다 하더라도 나는 책을 통해 저들의 사상을 접할 수 있고 세계 곳곳에서 만든 물건들을 사용하고 여러 나라의 예술을 향유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다른 나라가 진보하면 우리도 진보하고 퇴보하면 우리도 퇴보하며,그들이 즐거우면 나도 즐겁고 그들이 처참해지면 나도 처참한 심정이 된다.
이 지구상에 사는 모든 사람이 사랑으로 끌어당기니 내 어찌 무관심할 수 있겠는가?
나는 열강이 약소국을 침략하는 난세에 태어나 계급과 인종과 남녀 사이의 억압으로 인한 세상의 괴로움을 목격했다.
내 생각으로는 모든 차별을 없애는 대동(大同)의 도(道)야말로 모든 사람을 이러한 괴로움에서 구제해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대동의 도를 이루자면 차별을 낳는 가족이나 국가 역시 없애고 세계를 하나로 만들어야 한다.
가족이 있으면 자기 가족의 생계를 위해 탐욕을 부리게 되며,불우한 집에서 태어난 아이는 아무도 돌보지 않아 질병과 추위,굶주림과 무식함을 벗어날 수 없다.
국가가 있으면 자기 나라의 이익을 위해 남의 나라를 착취하며 결국 전쟁을 일으켜 많은 사람을 참혹한 지경에 몰아넣기도 한다.
그러므로 가족과 국가의 구별을 넘어 온 세계 사람을 동등하게 사랑하는 데로 나아가야 한다.
☞ 기출논제
'공감의 확장'이라는 관점에서 제시문 (나: 강유위,'대동서') (다: 막스 쉘러,'공감의 본질과 현상') (라: 김용택,'사랑')을 비교하고,이 제시문들을 참고하여 공감과 도덕적 실천의 상관관계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논술하시오.
홍보람 S · 논술 선임연구원 nikebbr@nons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