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주의의 모순을 드러내다
⊙ 식민주의의 메커니즘
팔레스타인 출신 에드워드 사이드는 그의 대표작인 「오리엔탈리즘」을 통해 서양이 동양을 어떻게 왜곡해왔는지를 실증적 사료를 통해 검증한 바가 있다.
그에 의하면 서양은 동양을 신비화하거나 이와는 정반대로 동양을 미개하게 묘사하는가 하면 심지어는 반문명적인 곳으로 그려놓았다고 밝힌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은 일순간에 생겨난 것이 아니라 적어도 수백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수많은 학자와 예술가,종교인에 의해서 형성되었음을 지적해낸다.
요약하자면 서양은 오랫동안 서양이 아닌 문명권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을 뿐더러 서양을 중심에 두고 그 밖의 세계를 철저히 타자화시켜왔던 것이다.
개인의 자유를 역설했던 존 스튜어트 밀과 같은 학자마저도 '인도'는 영국의 도움 없이는 문명화될 수 없다고 언급했던 것을 보면 서구 사회에서 동양에 대한 편견과 오해가 얼마나 뿌리 깊었던가를 쉽게 짐작할 수가 있다.
불행하게도 동양은 19세기에서 20세기 초 대부분의 국가가 정치 · 경제적으로 서구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만다.
이 때 동양은 서구의 발달된 물질문명과 자본주의를 보며 이를 서둘러 추수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그 과정 중에 동양인들은 자신들의 역사와 전통을 부정하는 엄청난 오류를 범하게 된다.
자신도 모르게 동양적인 것에 대해서 오래되고 낡고 폐기하고 부정해야 할 것이라는 심각한 자기 혐오에 빠지게 된 것이다.
물론 서양이 다양한 분야에서 동양적 가치를 폄하하는 행위도 함께 진행되었음은 분명하다.
결국 이러한 자기 혐오는 정치 · 경제적 지배뿐만이 아니라 문화를 포함한 모든 정신적 가치마저도 서구가 동양을 지배하는 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다행히도 최근에는 이러한 식민주의를 극복하려는 시도가 다양한 분야에서 시도되고 있다.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을 계기로 수많은 학자들이 서양이,혹은 동양 스스로가 어떻게 식민주의를 강요하거나 내재해왔는지를 탐구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탈식민주의라는 이러한 일련의 비평은 기존의 작품 속에 내재된 식민주의를 해체하거나 또는 식민주의에 대항하는 작품을 재발굴하고 가치를 조명하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 쑈리 킴(shorty Kim)의 비극
한국의 근대사를 살펴보면 근대 이후 서양이 동양을 어떻게 대해왔는지를 파악할 수 있는 단서가 많다.
19세기 말 조선은 서구 열강들의 각축장이었을 뿐 열강과 동등한 자격을 지닌 문명국가가 아니었다.
서구인들에 비친 조선은 미개하고 열등하게 보였고 일본이 식민지배를 정당화할 수 있었던 명분도 바로 이 점이었다.
식민지배가 끝난 뒤에도 미국과 소련의 군정은 이어졌고 6 · 25를 겪는 동안이나 그 이후에도 미 · 소(美 · 蘇)의 영향력은 여전했다.
문제는 서구인이나 그와 비슷한 입장에 놓인 이들이 여전히 한국을 무시했다는 것과 한국인을 동등한 인격적 존재로 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당시 저개발된 한국을 도덕적인 차원에서 동정하거나 연민을 느낀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들은 우리들을 어떻게 바라보았을까.
또 우리의 진정한 모습은 어떤 것이었을까.
이제 송병수의 「쑈리 킴」을 살펴보면서 푸른 눈을 가진 이들이 한국에 대해 어떤 생각과 의식이 있었는지를 탐구해보기로 하자.
송병수의 「쑈리 킴」을 탈식민주의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쉽지는 않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 작품에 치우친 탈식민주의 비평의 폭을 확대한다는 의미에서라도 「쑈리 킴」을 탈식민주의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이 작품은 6 · 25 때 전쟁고아가 되어버린 열 살 남짓한 한 소년의 이야기인데 쑈리 킴이라는 그에 대한 호칭은 '키 작은 김씨'라는 영어식 이름이다.
그는 자기와 함께 살아가는 '따링 누나'의 매춘을 주선하는 소위 펨푸이다.
미군 부대 근처에서 헌병의 눈을 피해 미군에게 매춘을 하며 살아가는 어린아이였던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인물의 호칭만을 잠시 눈여겨봐도 소년과 소년이 따르던 누나는 이미 타자화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쑈리(shorty),따링(darling) 등은 모두 미군의 눈에 비친 그것일 뿐,그들의 원래 이름은 아닌 것이다.
또한 타자화된 시선,다시 말해 격이 낮은 인간으로 여기는 잠재적인 의식은 열 살 먹은 전쟁고아가 매춘으로 살아가는 것을 보면서도 도덕적 양심이 작동하지 않게 만들고 만다.
그들의 눈에 비친 한국인 어린이는 보호해야 할 대상도 아니었고,오갈 곳 없는 한국인 여성은 성적 노리개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않았던 것이다.
⊙ 펨푸인가,열 살 어린 소년인가
흔히 「쑈리 킴」은 전후소설의 맥락에서 전쟁의 참혹함과 그 속에서도 순수성을 잃지 않았던 한 소년의 이야기로 평가된다.
하지만 불행한 인물들을 더욱 더 비극적인 상황에 빠지게 하는 것은 타인을 동등한 인격체로서가 아니라 성적 노리개로 바라보는 미군의 시선이다.
열 살 남짓한 아이에게 자신의 성기를 주무르게 하거나 매춘을 주선해달라는 요구는 아무리 힘없는 나라의 아이라고 해도 지나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작가 송병수는 이러한 부조리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작품화하면서 의도했든,하지 않았든 미군이 어떤 방식으로 한국인들을 바라보았는지를 새삼 일깨워준다.
작품 속에서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쑈리 킴이 비록 펨푸의 역할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어린아이의 동심을 지니고 있는 점이다.
그는 함께 생활하는 따링 누나에게 '보물섬'이나 '백설공주' 이야기를 듣는가 하면,라디오에서 나오는 어린이 노래 '저 산너머 해님'을 줄창 따라 부르기도 한다.
미군에 눈에 비친 펨푸 쑈리 킴이 아니라 열 살 나이의 어린이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쑈리 킴을 펨푸가 아니라 어린이로 보는 딱 한 사람.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양공주 따링 누나다.
그녀는 잠잘 때 자신의 젖가슴을 매만지는 가엾은 어린아이에게 기꺼이 모성을 허락한다.
하지만 그들의 위험천만한 삶은 결국 타자에 의해 짓밟히고 만다.
헌병들이 '따링 누나'를 잡아간 것이다.
물론 매춘은 옳지 못한 일이다.
그러나 부대의 룰을 깨고 돈을 주고 성을 산 미군들에게도 비슷한 처벌이 이루어졌을까.
이제 소설의 마지막 장면을 잠시 살펴보자.
이젠 이 곳 양키 부대도 싫다.
아니,무섭다.
생각해 보면 양키들도 무섭다.
부르도크 같은 놈은 왕초보다 더 무섭고,엠피는 교통 순경보다 더 미웁다.
빨리 이 곳을 떠나 우선 서울에 가서 따링 누나를 찾아야겠다.
그 마음 착한 따링 누나를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야 까짓 달러 뭉치 따위,그리고 야광 시계도 나일론 잠바도 짬방 모자도 그 따윈 영 없어도 좋다.
그저 따링 누나를 만나 왈칵 끌어안고 실컷 울어나 보고,다음에 아무 데고 가서 오래 자리 잡고 '저 산너머 해님'을 부르며 마음놓고 살아 봤으면….
송병수 「쑈리 킴」
쑈리 킴은 이발사 쩔뚝이가 따링 누나를 헌병에게 신고하고 달러를 훔쳐가는 것을 보고 하우스보이로 일하던 딱부리와 함께 그를 공격한다.
그러다가 딱부리가 칼로 쩔뚝이를 찌르게 되고 둘은 피흘리는 쩔뚝이를 보며 겁을 집어먹고 도망치기에 이른다.
위의 인용은 바로 도망치는 쑈리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들이다.
그는 양키 부대도 싫고 엠피도 밉고 어서 빨리 따링 누나를 찾아야겠다고 마음 먹는다.
왜냐하면 그녀만이 자신을 펨푸가 아닌 열 살의 소년으로 살갑게 맞아준 유일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 식민성의 극복을 위해
아마도 한 어린 소년이 쑈리 킴으로 전락하게 된 근원적인 까닭은 서구가 동양을 비문명적인 존재로 간주했던 메커니즘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동등한 문명 속에서 쑈리를 바라보았다면 분명 매춘으로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는 불행한 열 살 어린아이에게 성매매를 알선해달라는 주문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당시의 모든 미군이,또 모든 서구인들이 이러한 시선을 지녔다는 것은 분명히 아니다.
그러나 오랜 편견과 불평등한 시선이 존재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짧지 않은 식민지 경험 동안 식민지성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내재화되어 있을 수도 있다.
따라서 이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자신의 안팎에 형성되어 있는 식민성에 대해 정확하게 인식한 뒤 이를 해체하는 일일 것이다.
그렇지 않는 한 쑈리 킴의 비극은 또 다른 형태로 반복될 수 있고,우리의 무분별한 서구 취향이나 자기 혐오도 멈추지 않을지 모른다.
전주 상산고 교사 etika1@naver.com
⊙ 식민주의의 메커니즘
팔레스타인 출신 에드워드 사이드는 그의 대표작인 「오리엔탈리즘」을 통해 서양이 동양을 어떻게 왜곡해왔는지를 실증적 사료를 통해 검증한 바가 있다.
그에 의하면 서양은 동양을 신비화하거나 이와는 정반대로 동양을 미개하게 묘사하는가 하면 심지어는 반문명적인 곳으로 그려놓았다고 밝힌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은 일순간에 생겨난 것이 아니라 적어도 수백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수많은 학자와 예술가,종교인에 의해서 형성되었음을 지적해낸다.
요약하자면 서양은 오랫동안 서양이 아닌 문명권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을 뿐더러 서양을 중심에 두고 그 밖의 세계를 철저히 타자화시켜왔던 것이다.
개인의 자유를 역설했던 존 스튜어트 밀과 같은 학자마저도 '인도'는 영국의 도움 없이는 문명화될 수 없다고 언급했던 것을 보면 서구 사회에서 동양에 대한 편견과 오해가 얼마나 뿌리 깊었던가를 쉽게 짐작할 수가 있다.
불행하게도 동양은 19세기에서 20세기 초 대부분의 국가가 정치 · 경제적으로 서구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만다.
이 때 동양은 서구의 발달된 물질문명과 자본주의를 보며 이를 서둘러 추수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그 과정 중에 동양인들은 자신들의 역사와 전통을 부정하는 엄청난 오류를 범하게 된다.
자신도 모르게 동양적인 것에 대해서 오래되고 낡고 폐기하고 부정해야 할 것이라는 심각한 자기 혐오에 빠지게 된 것이다.
물론 서양이 다양한 분야에서 동양적 가치를 폄하하는 행위도 함께 진행되었음은 분명하다.
결국 이러한 자기 혐오는 정치 · 경제적 지배뿐만이 아니라 문화를 포함한 모든 정신적 가치마저도 서구가 동양을 지배하는 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다행히도 최근에는 이러한 식민주의를 극복하려는 시도가 다양한 분야에서 시도되고 있다.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을 계기로 수많은 학자들이 서양이,혹은 동양 스스로가 어떻게 식민주의를 강요하거나 내재해왔는지를 탐구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탈식민주의라는 이러한 일련의 비평은 기존의 작품 속에 내재된 식민주의를 해체하거나 또는 식민주의에 대항하는 작품을 재발굴하고 가치를 조명하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 쑈리 킴(shorty Kim)의 비극
한국의 근대사를 살펴보면 근대 이후 서양이 동양을 어떻게 대해왔는지를 파악할 수 있는 단서가 많다.
19세기 말 조선은 서구 열강들의 각축장이었을 뿐 열강과 동등한 자격을 지닌 문명국가가 아니었다.
서구인들에 비친 조선은 미개하고 열등하게 보였고 일본이 식민지배를 정당화할 수 있었던 명분도 바로 이 점이었다.
식민지배가 끝난 뒤에도 미국과 소련의 군정은 이어졌고 6 · 25를 겪는 동안이나 그 이후에도 미 · 소(美 · 蘇)의 영향력은 여전했다.
문제는 서구인이나 그와 비슷한 입장에 놓인 이들이 여전히 한국을 무시했다는 것과 한국인을 동등한 인격적 존재로 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당시 저개발된 한국을 도덕적인 차원에서 동정하거나 연민을 느낀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들은 우리들을 어떻게 바라보았을까.
또 우리의 진정한 모습은 어떤 것이었을까.
이제 송병수의 「쑈리 킴」을 살펴보면서 푸른 눈을 가진 이들이 한국에 대해 어떤 생각과 의식이 있었는지를 탐구해보기로 하자.
송병수의 「쑈리 킴」을 탈식민주의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쉽지는 않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 작품에 치우친 탈식민주의 비평의 폭을 확대한다는 의미에서라도 「쑈리 킴」을 탈식민주의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이 작품은 6 · 25 때 전쟁고아가 되어버린 열 살 남짓한 한 소년의 이야기인데 쑈리 킴이라는 그에 대한 호칭은 '키 작은 김씨'라는 영어식 이름이다.
그는 자기와 함께 살아가는 '따링 누나'의 매춘을 주선하는 소위 펨푸이다.
미군 부대 근처에서 헌병의 눈을 피해 미군에게 매춘을 하며 살아가는 어린아이였던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인물의 호칭만을 잠시 눈여겨봐도 소년과 소년이 따르던 누나는 이미 타자화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쑈리(shorty),따링(darling) 등은 모두 미군의 눈에 비친 그것일 뿐,그들의 원래 이름은 아닌 것이다.
또한 타자화된 시선,다시 말해 격이 낮은 인간으로 여기는 잠재적인 의식은 열 살 먹은 전쟁고아가 매춘으로 살아가는 것을 보면서도 도덕적 양심이 작동하지 않게 만들고 만다.
그들의 눈에 비친 한국인 어린이는 보호해야 할 대상도 아니었고,오갈 곳 없는 한국인 여성은 성적 노리개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않았던 것이다.
⊙ 펨푸인가,열 살 어린 소년인가
흔히 「쑈리 킴」은 전후소설의 맥락에서 전쟁의 참혹함과 그 속에서도 순수성을 잃지 않았던 한 소년의 이야기로 평가된다.
하지만 불행한 인물들을 더욱 더 비극적인 상황에 빠지게 하는 것은 타인을 동등한 인격체로서가 아니라 성적 노리개로 바라보는 미군의 시선이다.
열 살 남짓한 아이에게 자신의 성기를 주무르게 하거나 매춘을 주선해달라는 요구는 아무리 힘없는 나라의 아이라고 해도 지나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작가 송병수는 이러한 부조리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작품화하면서 의도했든,하지 않았든 미군이 어떤 방식으로 한국인들을 바라보았는지를 새삼 일깨워준다.
작품 속에서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쑈리 킴이 비록 펨푸의 역할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어린아이의 동심을 지니고 있는 점이다.
그는 함께 생활하는 따링 누나에게 '보물섬'이나 '백설공주' 이야기를 듣는가 하면,라디오에서 나오는 어린이 노래 '저 산너머 해님'을 줄창 따라 부르기도 한다.
미군에 눈에 비친 펨푸 쑈리 킴이 아니라 열 살 나이의 어린이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쑈리 킴을 펨푸가 아니라 어린이로 보는 딱 한 사람.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양공주 따링 누나다.
그녀는 잠잘 때 자신의 젖가슴을 매만지는 가엾은 어린아이에게 기꺼이 모성을 허락한다.
하지만 그들의 위험천만한 삶은 결국 타자에 의해 짓밟히고 만다.
헌병들이 '따링 누나'를 잡아간 것이다.
물론 매춘은 옳지 못한 일이다.
그러나 부대의 룰을 깨고 돈을 주고 성을 산 미군들에게도 비슷한 처벌이 이루어졌을까.
이제 소설의 마지막 장면을 잠시 살펴보자.
이젠 이 곳 양키 부대도 싫다.
아니,무섭다.
생각해 보면 양키들도 무섭다.
부르도크 같은 놈은 왕초보다 더 무섭고,엠피는 교통 순경보다 더 미웁다.
빨리 이 곳을 떠나 우선 서울에 가서 따링 누나를 찾아야겠다.
그 마음 착한 따링 누나를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야 까짓 달러 뭉치 따위,그리고 야광 시계도 나일론 잠바도 짬방 모자도 그 따윈 영 없어도 좋다.
그저 따링 누나를 만나 왈칵 끌어안고 실컷 울어나 보고,다음에 아무 데고 가서 오래 자리 잡고 '저 산너머 해님'을 부르며 마음놓고 살아 봤으면….
송병수 「쑈리 킴」
쑈리 킴은 이발사 쩔뚝이가 따링 누나를 헌병에게 신고하고 달러를 훔쳐가는 것을 보고 하우스보이로 일하던 딱부리와 함께 그를 공격한다.
그러다가 딱부리가 칼로 쩔뚝이를 찌르게 되고 둘은 피흘리는 쩔뚝이를 보며 겁을 집어먹고 도망치기에 이른다.
위의 인용은 바로 도망치는 쑈리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들이다.
그는 양키 부대도 싫고 엠피도 밉고 어서 빨리 따링 누나를 찾아야겠다고 마음 먹는다.
왜냐하면 그녀만이 자신을 펨푸가 아닌 열 살의 소년으로 살갑게 맞아준 유일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 식민성의 극복을 위해
아마도 한 어린 소년이 쑈리 킴으로 전락하게 된 근원적인 까닭은 서구가 동양을 비문명적인 존재로 간주했던 메커니즘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동등한 문명 속에서 쑈리를 바라보았다면 분명 매춘으로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는 불행한 열 살 어린아이에게 성매매를 알선해달라는 주문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당시의 모든 미군이,또 모든 서구인들이 이러한 시선을 지녔다는 것은 분명히 아니다.
그러나 오랜 편견과 불평등한 시선이 존재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짧지 않은 식민지 경험 동안 식민지성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내재화되어 있을 수도 있다.
따라서 이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자신의 안팎에 형성되어 있는 식민성에 대해 정확하게 인식한 뒤 이를 해체하는 일일 것이다.
그렇지 않는 한 쑈리 킴의 비극은 또 다른 형태로 반복될 수 있고,우리의 무분별한 서구 취향이나 자기 혐오도 멈추지 않을지 모른다.
전주 상산고 교사 etika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