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스스로 만든 국가 라는 ‘괴물’에 잡아 먹혔다

[실전 고전읽기] ⑧ 조지 오웰「동물농장」
동일한 단어라도 누가 언제 어떤 의도로 쓰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띠게 된다.

표현의 욕망이라는 목 마른 수요를 충족시켜 줄 만큼의 다양한 단어가 아직은 채 형성되지 않은 단계라서 그럴 수도 있고,아니면 어느 눈에 비치느냐에 따라 색깔과 모습을 시시각각 달리하는 이 세상의 섭리가 본시 그러할 수도 있겠다.

'괴물(怪物)'이라는 단어로 표현해 내려는 대상 역시 다양하다.

전투 게임을 즐기는 이에게는 레벨을 따져 봐야 되는 몬스터이고,용모를 신랄하게 묘사하는 이에게는 끔찍한 추남이나 추녀를 뜻하며,영화계에서는 몇 년 전 흥행한 영화 제목,신화에서는 신 또는 악마 혹은 그 경계 너머의 것이다.

그런데 이 단어가 정치학에서 쓰이면 어떠한 의미를 담아 낼까.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는 말로 유명한 토마스 홉스는 '괴물'이라는 단어가 불러일으키는 공포를 국가의 특성과 결부시켜 그가 원하는 정치 공동체의 환치어로 사용하였다.

홉스의 유명한 저서인 「국가론」의 원제는 '리바이어던(leviathan)'이다.

문자 그대로 직역을 하자면 '바다 괴물'을 제목으로 삼아야 하지만 번역가가 책 내용에 맞춰 적당한 제목을 잘 달아 놓았다.

저자 홉스가 결코 해원에서 뛰쳐나오는 괴물을 말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국가에 관한 정치학적 논의를 전개하고자 함을 알고 있어서이다.

야만 상태의 인간 사회를 처참한 투쟁과 극심한 반목으로 상정한 홉스는 이러한 혼란을 통제하고 조정하려는 필요에서 '국가'라는 기구를 제시한다.

물론 책의 작명에서 알 수 있듯이 국가는 섬뜩한 '괴물'과도 같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는 괴상망측한 존재다.

하지만 인간 사회의 지속과 발전을 위해서는 어디까지나 국가가 필수적이라는 것이 홉스의 지론이다.

그렇다면 홉스의 소신을 받아들일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의 권력을 이양하여 만들어 낸 사랑스러운 '괴물'인 국가가 제대로 움직이게 하여,가공할 만한 권력을 자랑하는 '국가'가 과오와 패악을 저지르지 않게 하는 것이다.

우리가 창조해 낸 괴물이 우리를 잡아 먹는다면 어떻게 될까?

조지 오웰은 이 의문에 대한 답을 「동물농장」이라는 소설의 형태로 내놓았다.

정치 소설을 논할 때 가장 첫 줄에 꼽히는 「동물농장」은 사회 구성원들이 스스로 만들어 낸 국가 권력이 어떻게 변질되어 사회 구성원들을 핍박하는지 통렬하게 묘사한다.

⊙ 기출 제시문

복서는 발굽이 나아지자 전보다 더 열심히 일했다.

사실 모든 동물들은 그 해에 노예처럼 많은 일을 했다.

농장에서 각자 해야 하는 일이 있었을 뿐 아니라 풍차를 다시 만들어야 했고,3월부터 시작된 새끼 돼지의 교실을 짓는 작업도 있었다.

넉넉하게 먹지도 못하면서 오랜 시간 일을 한다는 것이 때로는 견딜 수 없이 힘들었겠지만 복서는 결코 굽히지 않았다.

그는 조금도 지쳐 보이지 않았다.

단지 겉모습이 조금 달라 보일 뿐이었다.

그의 피부는 전과 같이 매끄럽지 못했고 커다란 궁둥이가 약간 작아진 것처럼 보였다.

"복서는 봄이 와서 풀이 새로 자라면 다시 살찌게 될 겁니다."

다른 동물들은 말했다.

그러나 봄이 왔는데도 복서는 살이 찌지 않았다.

그가 채석장 꼭대기로 올라가는 비탈길에서 커다란 돌이 굴러 내리지 않게 받치고 있을 때에는 오로지 인내의 힘으로 버티고 서 있는 것 같았다.

그의 입술은 '더 열심히 일하자'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였지만,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클로버와 벤자민은 복서에게 몸조심하라고 몇 번이나 충고했지만 그는 말을 듣지 않았다.

그의 열두 번째 생일이 다가왔다.

그는 퇴직 연금을 받기 전에 돈을 충분히 모아 놓기만 한다면 다른 일은 아무래도 좋았다.

어느 여름날 저녁 늦게 복서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는 소문이 갑자기 농장 안에 퍼졌다. (…중략…)

스퀼러는 농장에서 가장 충실한 일꾼에게 이런 불행이 닥친 것을 나폴레옹 동지가 알고 심심한 유감의 뜻을 표했다고 하면서,복서를 월링턴의 병원에 보내 치료받도록 이미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동물들은 이 이야기를 전해 듣고 조금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 때까지 몰리와 스노우들 이외에는 농장을 떠난 동물이 하나도 없었다.

게다가 자기들의 병든 동지를 인간의 손에 맡긴다는 것을 생각하니 기분이 언짢았다.

스퀼러는 월링턴의 수의사가 이 농장에서보다 복서를 훨씬 잘 치료해 줄 것이라고 간단하게 동물들을 납득시켰다.

30분 정도 지나자 복서는 조금 회복이 되어서 간신히 우리까지 걸어갈 수 있었다.

거기에는 클로버와 벤자민이 훌륭한 짚 침대를 마련해 놓고 있었다.

그 후 이틀 동안 복서는 꼼짝도 하지 못하고 우리 속에 틀어박혀 있었다. (…중략…)

한낮에 복서를 태우고 갈 짐마차가 농장에 들이닥쳤다.

동물들은 모두 돼지 한 마리의 감독 아래 순무 밭의 잡초를 뽑고 있었다.

바로 그 때 농장 건물 쪽에서 벤자민이 소리를 있는 대로 지르면서 뛰어 나왔다.

모두들 그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벤자민이 흥분하는 것을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빨리,빨리요! 복서를 데려가려고 한단 말입니다!"

벤자민이 외쳤다.

동물들은 감독하는 돼지의 명령도 듣지 않고,하던 일을 걷어치우고 농장 건물로 뛰어왔다.

과연 마당 한가운데 말 두 마리가 끄는 커다란 짐마차가 있었는데,그 마차의 측면에는 무슨 글자가 쓰여 있었다.

마부석에는 낮은 중산모를 쓰고 교활한 표정을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복서의 우리는 벌써 텅 비어 있었다.

동물들은 짐마차 주위를 에워쌌다.

"복서,잘 갔다 와요!"

그들은 함께 소리를 질렀다.

벤자민은 그들 주위를 뛰어다니며 작은 발굽으로 땅바닥을 동동 구르면서 외쳤다.

"바보들,바보들 같으니라구! 이 바보들! 저 짐마차에 무엇이라고 쓰여 있는지 보이지도 않는단 말이오?"

그러자 동물들은 소리를 멈추고 조용해졌다.

뮤리엘이 글자를 띄엄띄엄 읽기 시작했다.

벤자민이 뮤리엘을 밀어 제치고 글자를 줄줄 읽어 내려갔다.

"알프렛 시몬즈,폐마 도살 및 아교 제조업. 월링턴. 피혁과 골분 매매. 개집 공급―저것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소? 저들은 복서를 폐마 도살장으로 데리고 가려 한단 말이오!"

모든 동물들로부터 공포의 외침 소리가 터져 나왔다.

바로 이때 마부석에 앉아 있던 남자가 말에 채찍질을 했다.

그러자 짐마차는 빠르게 마당에서 빠져나갔다.

동물들은 모두 힘껏 소리를 지르며 짐마차 뒤를 쫓았다.

"복서! 복서! 뛰어 내려요! 빨리요! 저들은 당신을 죽이려고 데리고 가고 있어요!"

동물들은 모두 함께 소리쳤다.

그러나 짐마차는 이미 속력을 내어 그들을 멀리 떼어놓고 사라지기 시작했다. (…후략…)

☞ [기출논제] 다음 글은 어느 소설의 한 장면을 옮겨 놓은 것이다.

이 글은 '복서'의 죽음을 둘러싼 이야기를 통해 인간 사회에서 일어날 수 있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암시하고 있다.

어떤 문제들이 이 글에 암시되어 있는지 글의 내용에 근거하여 밝히고,'복서'의 죽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각자의 견해를 논술하라. (서울대학교 1998학년도 정시 논술고사)

해설

「동물농장」에서 복서의 죽음은 정치 권력이 어떻게 사회 구성원을 철저하게 이용할 수 있는지,심지어 그 죽음을 통해 지배자가 자신의 지배를 어떻게 정당화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 준다.

누구보다도 성실하였고 정치 권력을 신뢰하였던 복서는 충성심에 휘둘려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 이용되었고,도살업자에게 팔려간 그의 최후도 정당이 날조한 유언에 의해 정부의 공적을 찬양하고 정강을 합리화하는 수단으로 변질된다.

이 소설을 읽으면 복서의 죽음에 안타까움과 답답함,분노를 느끼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감정은 결국 복서에게로 향하게 된다.

순진무구한 복서는 선량하였으나 그의 삶이 올바른 것은 결코 아니었다.

국가 권력에 대한 성찰과 지배자에 대한 비판의식이 결여된 복서는 헌신적으로 노동하지만 오히려 억압을 정당화하고 강화한다.

홉스가 '괴물'로 묘사한 국가는 필연적으로 지배와 피지배의 정치적 관계를 하는데 이 관계가 희생을 강요하는 억압으로 변질되지 않으려면 정치적 참여와 비판적 노력이 필요하다.

복서는 국가라는 괴물이 제 길을 가게 만들어야 하는 책임을 다 하지 못했고 그래서 결국 이 괴물에 잡아 먹힌 것이다.

홍보람 S · 논술 선임연구원 nikebbr@nons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