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공간이 더 민주적이라 할 수는 없다

⊙ 출제 의도

'아고라'는 미디어다.

2008년 대한민국의 아고라는 많은 사람들이 '모인' 공간이다.

그리스의 아고라가 현실세계의 물리적 공간이었다면 대한민국의 인터넷 토론방 아고라는 사이버스페이스에 존재하는 가상공간이다.

이곳에서 대화와 참여를 기반으로 하는 쌍방향적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정보의 흐름이 일방적이던 기존의 매체와는 달리 인터넷에서는 네티즌이 정보 공급과 수용의 주체가 될 수 있다.

네티즌들이 인터넷을 통해 의사를 결집하고 정치를 운영하는 방식은 아테네의 직접민주주의를 떠올리게 한다.

사이버스페이스는 이제 새로운 여론 형성의 장,인터넷 '공론장'으로 주목받고 있다.

'공론장(public sphere)'은 하버마스에 의해 체계화된 개념으로 여론(公論· public opinion)이 생산될 수 있는 사회적 생활 영역을 의미한다.

이번 생글경시대회의 주제는 '인터넷 민주주의'이다.

미래학자들은 인터넷이 다양성과 참여도를 넓힌 새로운 민주주의로 이끌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평등과 기회의 딸이라고 여겼던 사이버스페이스에서도 차별과 선동 등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여러 행태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사어버-유토피아를 꿈꾸던 사람들만큼이나 디스토피아적 전망도 팽배하다.

논술이란 익숙해진 사물·사과·체계의 보이지 않는 근거를 꿰뚫어보는 과정이다.

이번 논술 경시대회를 통해 학생들이 '사이버스페이스의 양면성'이나 '인터넷 여론과 민주주의의 요건'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는 기회를 삼고자 하였다.

문제의 형태는 '분류 요약', '주장의 비판'을 거쳐 종합적 사고력을 발휘하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유도하도록 구성하였다.

⊙ 논제 및 제시문 해설

제시문 출전

△[가],[나] 마거릿 버트하임,「공간의 역사」 △ [다] 생글생글(2008. 6. 23),「인터넷 여론의 場이냐,선동의 場이냐」 △[라] 신동아(2008. 8. 25),「네티즌 여론, 대중의 지혜? 난폭한 포퓰리즘?」 △ [마] 한상희,「정보사회에서의 선거와 민주주의」

△ [바] 고경민,「인터넷은 민주주의를 이끄는가」

논제1 사이버스페이스는 현실을 연장 또는 확장해 놓은 공간이다.

인간 자신도 그렇지만 인간이 구축한 문명도 선악의 양면을 공유하고 있다.

사이버스페이스 역시 제시문 (가)의 천국과 같은 유토피아적 측면과 제시문 (나)의 지옥으로 변모할 가능성이 동시에 공존하는 공간이다.

논제1은 바로 이런 사이버스페이스의 양면성을 논지의 차이점이 드러나게 '요약'하는 문제이다.

제시문의 내용을 그대로 베끼거나 자신의 주관적 생각이나 주장을 넣는 것은 요약문제에서 감점요소임을 유의해야 한다.

제시문 (가)는 사이버스페이스를 현실 세계의 대안 공간으로 바라본다.

현실세계는 계급,성(性),인종에 따라 차별과 억압이 존재하는 공간이다.

반면에 사이버스페이스는 거리적 제한이나 사람들 간의 차별을 뛰어넘어 공동체적 질서를 유지할 수 있는 유토피아적 공간으로 설정된다.

사이버-유토피아주의자들은 사이버스페이스가 고대 아테네 광장처럼 자유롭고 평등한 공론장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제시문 (나)는 사이버스페이스의 역기능을 통해 사이버-낙관론자의 주장을 반박하고 있다.

보편적 평등이 사이버스페이스에서 실현될 것이라는 유토피아주의자들의 기대와는 달리 실제 사이버세계의 모습은 오락적이고 배설적 기능이 더 두드러지는 공간이다.

단테의 '지옥'은 인간이 자초한 인터넷의 부정적 폐해를 드러내는 비유적 표현이다.

사이버스페이스는 온갖 허영과 망상이 들어차게 되는 영적인 타락지대인 '지옥'과 같은 모습으로 표출되고 있다.

가상공간은 현실의 대안적 공간이라기보다는 현실을 왜곡하고 여러가지 차별과 편견이 증폭되는 곳이다.

제시문 (가)의 주장이 사이버스페이스가 전통적 제약과 기득권적 질서를 끊고 수평적이며 동등한 열린사회로 기능할 수 있다는 유토피아적 낙관론이라면 제시문 (나)는 디지털 세계에서 발생하는 문제점을 방치한다면 사이버스페이스는 점점 더 극악한 환경에 놓이게 될 것이라는 디스토피아적 전망이라고 할 수 있다.

논제2 인터넷은 기존 미디어를 대신하는 여론 생산매체로 급성장하고 있다.

제시문 (다)와 (라)는 익명의 대중이 주도하는 인터넷 여론(public opinion)에 대해 상반된 견해를 담고 있다.

여론의 문제는 '대중은 현명한가 어리석은가'라는 주제와도 연관된다.

논제2는 인터넷 매체를 이끌어가는 '익명의 네티즌'의 속성을 고려해 보고 '인터넷 여론이 과연 합리적이고 신뢰할 만한 것인가'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정리해 보라는 의도에서 출제되었다.

제시문 (다)는 인터넷 집단주의의 위험성을 지적하고 있다.

인터넷 매체를 장악한 네티즌들이 스스로를 집단권력화하고,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을 공격하고 소외시킨다.

이는 익명성이 보장되어 의견표출에 제약이 없기 때문에 다양한 계층,특히 소외된 계층이 평등한 주체로 논의에 참여할 수 있으리라는 인터넷 예찬론자들의 견해와는 상반된 현상이다.

익명으로 진행되는 인터넷 토론장에서는 외계어나 욕설,일방적인 자기주장과 매도 등이 난무하고 있다.

이러한 토론방을 주도하는 사람들은 전체 참여자 중 소수이다.

토론에서 지켜야하는 자율성과 타인에 대한 배려가 무시되고 있다는 점 또한 문제이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인터넷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공간이 아니다.

인터넷 여론은 대중 선동으로 이용되어 기득권자의 이익을 강화하는 위험에 빠질 수 있다.

포퍼는 익명성과 조작가능성을 근거로 "여론이 무책임하지 않다는 의견은 또 다른 형태의 집단주의의 신화"라고 비판한다.

인터넷 여론이 잘못 사용될 경우 폭력의 도구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인터넷 집단주의는 디지털 포퓰리즘(populism)에 대한 우려를 낳고 있다.

제시문 (라)는 인터넷 여론이 참여의 질과 수준이 낮은 감정적 비합리적 선동에 불과하다는 부정적 견해를 뒤집는다.

이 제시문은 네티즌 간의 견제를 거친 '집단지성'을 통해 인터넷 여론이 형성된다는 입장이다.

제시문에서는 집단지성의 예로 황우석 교수 사건을 검증한 '브릭(BRIC)'이나 미국의 웹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를 들고 있다.

다수의 네티즌은 소수 전문가 집단의 오류를 바로잡을 수 있는 '대중의 지혜'를 갖고 있다.

인터넷에서 개개인들이 가진 지식들이 수정과 보완을 통해 개체적 한계를 넘어서는 창조적 지적능력을 펼칠 수 있다는 것이다.

제시문 (다)의 '집단주의 폐해'나 제시문 (라)의 '집단지성' 중 어느 쪽 입장을 택해도 무방하며 자신의 주장을 견지하면서 반대편 주장을 설득력 있게 논박해야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논제3 인터넷이 민주주의를 보다 발전시킬 수 있는지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논술하는 문제이다.

'제시문들을 참고해서' 논제1의 사이버스페이스의 유토피아 디스토피아적 측면이나 논제2에서 다룬 인터넷 여론의 긍정적 부정적 특성을 논거로 사용해도 무방하다.

인터넷은 과연 자유로운 의사소통의 도구이며 민주적인 공론장인가?

아니면 무책임한 말과 글을 쏟아내는 사이버 폭력의 마당인가?

전자의 경우라면 인터넷이 민주주의를 이끄는 도구가 될 것이고 후자의 경우라면 오히려 여론 민주주의의 퇴행이라는 주장이 가능하다.

민주주의는 그리스어로 데모크라티아(demokratia)인데,대중(demos)의 지배(kratia)를 뜻한다.

민주주의는 대중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다는 믿음을 전제로 한다.

인터넷 민주주의의 가능성에 비관적 입장이라면 제시문 (다)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인터넷이 다양한 의견의 장이 아니라 특정 네티즌의 무차별한 공세가 일반적이라는 점을 부각시킬 수 있다.

반면 전자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입장이라면 제시문 (라)의 입장처럼 대중의 지혜를 강조할 수 있다.

제시문 (마)는 인터넷이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고 기대하는 신미래학자의 입장을 보여주고 있다.

이른바 미래학자로 불리는 토플러(Alvin Toffler,「제3의 물결 The Third Wave」의 저자)나 네그로폰테(Nicholas Negroponte,「디지털이다 Being Digital」의 저자)는 정보기술의 발달이 경제활동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은 물론,시민적 자유와 권리를 신장시켜 풍요롭고 민주적인 미래사회를 가져다 줄 것이라고 예견했다.

인터넷의 등장과 확산은 미래사회에 대한 유토피아적 전망에 힘을 실어주었다.

인터넷이 민주주의를 촉진시켜 줄 것이라는 전망도 이런 분위기 속에서 등장했다.

낙관론의 입장에서 본다면 인터넷은 시공간의 제약이 없기 때문에 전문적 지식의 공유가 가능하고,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동등한 발언 주체로 논의에 참여할 수 있는 '공론장'의 역할을 할 수 있다.

대의민주주의는 국민의 참여부족과 정책 결정의 투명성,개방성의 미흡이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인터넷은 직접민주주의의 직접성을 강화하고 대의민주주의에서 통상적인 의견표명 기회를 박탈당한 자들에게 일종의 해방 공간으로 주목받고 있다.

쌍방향 의사소통이 가능해지면서 지배자와 피지배자 사이의 수직적 위계질서를 깨고 활발하고 능동적인 참여와 토론으로 민주주의의 심의적(deliberative) 기능을 확대함으로써 직접민주주의의 실현에 한발 더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이 신미래학자들의 낙관적 전망이다.

제시문 (바)는 인터넷이 민주주의 새로운 창조자가 될 것이라는 낙관론적 담론을 '신화'라고 비판한다.

인터넷 사이트들이 사이버 테러나,일반적인 주장과 매도,여론몰이를 위한 대중 선동의 장으로 변모하고 있다는 점은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인터넷이 민주주의를 가져온다는 신화는 신기술이 인간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기술중심적 가치체계를 기반으로 형성되었다.

그러나 미래주의적 기술결정론은 사실에 근거하기보다는 기대나 희망에 바탕을 두고 있다.

사이버스페이스는 현실과 전혀 다른 새로운 공간이 아니다.

애초에 자유가 보장될 것이라 믿었던 사이버스페이스는 '규제와 통제'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자유를 상징하는 것처럼 여겨졌던 '익명성'을 제한해야 한다는 움직임도 있다.

700자의 짧은 글쓰기의 경우 서론·본론·결론으로 단락을 구성하기보다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 것이 좋다.

자신의 주장을 먼저 밝히고,타당한 논리적 근거(논증)나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구체적 사례(예증)를 제시해야 한다.

또한 반대편 주장을 논박하여 자신의 주장을 강조할 수도 있다.

가령 인터넷이 민주주의를 이끈다는 주장을 반박하려면 제시문 (바)의 논거를 사용해서 제시문 (마)의 주장을 비판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은희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polaris1132@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