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주의에 짓밟히는 식민지의 비참한 현실
⊙ 식민지 조선의 현실
현진건은 우리에게 '운수 좋은 날'로 아주 잘 알려진 작가이다.
인력거꾼 김 첨지에게 이상하게도 손님이 많았던 운수 좋았던 그날,아내가 숨지는 비극적 아이러니를 담고 있던 이야기를 언젠가 한번쯤은 접해보았을 것이다.
작가 현진건은 이 작품을 위시해서 '빈처''할머니의 죽음''술 권하는 사회' 등을 통해 식민지 현실 속에 살아가는 다양한 인간군상을 사실적으로 형상화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의 여러 단편 중 1926년 발표된 '고향'은 '운수 좋은 날' 이상으로 식민지의 비참한 현실을 사실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이 작품은 형식적으로는 서술자인 '나'가 기찻간에서 우연히 마주한 '그'의 이야기를 듣는 액자형 구조로 되어 있으며 따라서 전달하고자 하는 주요 내용은 고향을 잃고 유랑을 거듭하던 '그'의 이야기이다.
'그'는 '서울'에 가서 막노동을 하려는 사람이다.
하지만 원래 그는 역둔토(역에 딸린 소작지)에서 농사를 짓던 농민이었고 불행히도 일제가 조선을 식민지화하면서 동양척식주식회사에 의해 땅을 잃게 된다.
이후 가족이 모두 서간도로 이주했지만 그곳에서 양친을 잃게 되고 신의주로,안동현으로 날품팔이를 하다가 일본으로 건너가 규슈 탄광과 오사카 철공장에 있으면서 온갖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러다가 얼마 전 그리움에 못이겨 고향 땅을 다시 찾지만 그곳에서 그는 폐인이 다 된 옛 연인을 만날 뿐이다.
결국 그는 세월의 고단함을 느끼며 서울로 올라가는 중이었다.
이 작품은 아주 간결하고 짧은 단편이어서 복잡한 인물 사이의 갈등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운명적인 대결의식이나 인간적 의지를 형상화하지도 않았다.
대신 작품은 당대 현실을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낸 고발문학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 작품에서 고발하려는 것은 다름 아닌 식민지의 비참한 현실이다.
'전토는 신작로로 변하고,말마디나 하는 친구는 감옥으로 가고,인물 좋은 계집은 유곽으로 갈 수밖에 없었던' 조선의 비참한 현실을 작가는 제시했던 것이다.
어리석은 의문일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면 도대체 왜 식민지인들의 삶은 이렇게 비참할 수밖에 없었을까.
그리고 왜 세계는 제국주의와 식민지적인 질서로 급속하게 재편되는 운명에 처할 수밖에 없었을까.
또한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에 제국주의와 식민지적 잔재는 완전히 소멸되었을까.
이제 이 의문에 대한 답을 차분히 모색해보기로 하자.
⊙ 제국주의와 식민지-팽창하는 자본주의
제국주의는 국민국가를 모태로 한다.
서구에서 근대국민국가는 정치적으로는 자유주의,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가 자리를 잡으면서 봉건적 질서로부터 벗어난 정치 경제적 시스템으로 표현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국민국가는 대단히 긍정적인 기능과 역할을 수행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국민국가의 모델,특히 자본주의의 팽창과정 속에는 내재된 모순이 존재하고 있었다.
자본주의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생산과 소비가 원활하게 이루어져야 하고,생산 과정에는 반드시 잉여가치가 발생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자본화의 과정을 거쳐 생산에 재투자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생산과정에서 노동자의 임금은 노동자가 생산한 총가치보다 항상 적을 수밖에 없고 소비되지 않는 초과분의 잉여가치는 외부의 시장에서 소비되어야 자본화가 가능해진다.
이러한 경향은 생산성이 높아질수록 함께 커질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총자본 속에서 임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상대적으로 줄어들게 마련이고, 보다 많이 생산된 잉여가치를 다시 자본화하기 위해서는 더 큰 외부의 시장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 과정에서 비자본주의국가를 강제적으로 자본주의의 시장으로 포섭한 것이 제국주의이며,이때 포섭당한 비자본주의 국가가 바로 식민지이다.
앞에서 살펴본 대로 자본은 끊임없이 팽창되는 경향성을 보인다.
따라서 제국주의는 잉여가치를 자본화한 것으로 머물지 않고 그 이상의 잉여가치 실현을 위해 이를 다시 생산과정에 재투입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제국주의는 더 많은 원료를 필요로 하게 되고 이를 식민지로부터 착취하고 수탈하기에 이른 것이다.
같은 이유로 제국주의 경제는 새로운 노동력도 끊임없이 확보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 제국주의는 강제적으로 농민과 같은 토착민들을 새로운 프롤레타리아트로 거듭나게 만든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체제와 거리가 멀었던 자작농이나 소작농을 공장의 값싼 임금 노동자로 전락시키는 것이 제국주의의 전략이었던 것이다.
⊙ 농민에서 임금노동자로의 전락
아래의 인용은 '고향'에서 주인공인 '그'가 유랑하게 된 계기를 짐작할 수 있게 하는 부분이다.
함께 읽고 이 내용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그의 고향은 대구에서 멀지 않은 K군 H란 외딴 동리였다.
한 백 호 남짓한 그곳 주민은 전부가 역둔토를 파먹고 살았는데 사삿집 땅을 붙이는 것보다 떨어지는 것이 후하였다.
그러므로 넉넉지는 못할망정 평화로운 농촌으로 남부럽지 않게 지낼 수 있었다.
세상이 뒤바뀌자 그 땅은 전부가 동양척식회사의 소유에 들어가고 말았다. (중략)
악착한 운명이 던져 준 깊은 슬픔을 술로 녹이려는 듯이 연거푸 다섯 잔을 마신 그는 다시 말을 계속하였다.
그 후 그는 부모 잃은 땅에 오래 머물기 싫었다.
신의주로 안동현으로 품을 팔다가 일본으로 또 벌이를 찾아가게 되었다.
구주 탄광에 있어도 보고 대판 철공장에도 몸을 담아 보았다.
벌이는 조금 나았으나 외롭고 젊은 몸은 자연히 방탕해졌다.
돈을 모으려야 모을 수 없고 이따금 울화만 치받치기 때문에 한곳에 주접을 하고 있을 수 없었다.
화도 나고 고국 산천이 그립기도 하여서 훌쩍 뛰어나왔다가 오래간만에 고향을 둘러보고 벌이를 구할 겸 서울로 올라가는 길이라 한다.
-현진건,'고향'
인용된 부분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듯이 '그'는 자의로 농사를 그만둔 것이 절대 아니다.
그는 '동양척식주식회사'라는 외부의 제국주의적 강제에 이끌려 어쩔 수 없이 농민으로서의 삶을 포기한다.
물론 처음에는 간도에서 어떻게든 농사를 지어보려 하지만 이내 실패하고 결국 그가 할 수 있었던 일은 날품을 팔다가 탄광과 철공장에서 노동하는 것이었다.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자기 논밭처럼 일구던 역둔토를 빼앗긴 채 값싼 임금노동자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이는 제국주의가 비자본주의 국가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프롤레타리아트를 창출하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점에서 '그'가 일했던 곳이 '탄광'과 '철공장'이었다는 것도 시사적이다.
당시 '탄광'과 '철공장'은 자본주의가 움직일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핵심적인 공간이 아니었던가.
⊙ 새로운 제국의 시대
그렇다면 제국주의가 소멸하고 식민지로부터 완전히 독립한 지금 현재 자본은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고 있을까.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는 과거의 제국주의적 환경과는 분명히 다르다.
과거 제국주의는 무엇보다도 민족이나 국가의 경계를 중요하게 받아들였지만 현대사회는 민족과 국가의 경계가 자꾸 허물어져가고 있는 상황이다.
어느 때보다도 막강한 전 세계적 네트워크는 민족과 국가를 낡은 개념으로 만들어 버리지 않았는가.
또한 과거의 제국주의가 전통적인 자본주의적인 생산,이를테면 원료와 노동과 자본,그리고 이를 집적할 수 있는 공간을 필요로 했던 시스템 위에서 성립했다면 최근의 산업의 흐름은 분명히 정보를 중심으로 한 서비스가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기존의 제국주의와 식민지적인 틀은 지극히 낡은 개념이다.
그렇다면 그토록 막강했던 제국주의와 끝없이 자본을 재생산하던 시스템은 어떻게 되었을까.
최근 '제국'과 '다중'으로 새로운 분석의 틀을 제시한 안토니오 네그리에 의하면 제국주의는 보다 막강한 '제국' 그 자체로 변모했다고 한다.
현대사회에서 자본을 생산하는 핵심적인 생산요소는 원료라든지 노동력이 아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네트워크를 통해 끝없이 이동하는 정보다.
현대사회에서 '제국'은 그 무엇보다도 네트워크를 교묘히 지배하기를 원한다.
네트워크를 독점하기만 한다면 막대한 자본을 재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이러한 새로운 제국의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야만 하는 것일까.
전주 상산고 교사 etika1@naver.com
⊙ 식민지 조선의 현실
현진건은 우리에게 '운수 좋은 날'로 아주 잘 알려진 작가이다.
인력거꾼 김 첨지에게 이상하게도 손님이 많았던 운수 좋았던 그날,아내가 숨지는 비극적 아이러니를 담고 있던 이야기를 언젠가 한번쯤은 접해보았을 것이다.
작가 현진건은 이 작품을 위시해서 '빈처''할머니의 죽음''술 권하는 사회' 등을 통해 식민지 현실 속에 살아가는 다양한 인간군상을 사실적으로 형상화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의 여러 단편 중 1926년 발표된 '고향'은 '운수 좋은 날' 이상으로 식민지의 비참한 현실을 사실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이 작품은 형식적으로는 서술자인 '나'가 기찻간에서 우연히 마주한 '그'의 이야기를 듣는 액자형 구조로 되어 있으며 따라서 전달하고자 하는 주요 내용은 고향을 잃고 유랑을 거듭하던 '그'의 이야기이다.
'그'는 '서울'에 가서 막노동을 하려는 사람이다.
하지만 원래 그는 역둔토(역에 딸린 소작지)에서 농사를 짓던 농민이었고 불행히도 일제가 조선을 식민지화하면서 동양척식주식회사에 의해 땅을 잃게 된다.
이후 가족이 모두 서간도로 이주했지만 그곳에서 양친을 잃게 되고 신의주로,안동현으로 날품팔이를 하다가 일본으로 건너가 규슈 탄광과 오사카 철공장에 있으면서 온갖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러다가 얼마 전 그리움에 못이겨 고향 땅을 다시 찾지만 그곳에서 그는 폐인이 다 된 옛 연인을 만날 뿐이다.
결국 그는 세월의 고단함을 느끼며 서울로 올라가는 중이었다.
이 작품은 아주 간결하고 짧은 단편이어서 복잡한 인물 사이의 갈등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운명적인 대결의식이나 인간적 의지를 형상화하지도 않았다.
대신 작품은 당대 현실을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낸 고발문학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 작품에서 고발하려는 것은 다름 아닌 식민지의 비참한 현실이다.
'전토는 신작로로 변하고,말마디나 하는 친구는 감옥으로 가고,인물 좋은 계집은 유곽으로 갈 수밖에 없었던' 조선의 비참한 현실을 작가는 제시했던 것이다.
어리석은 의문일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면 도대체 왜 식민지인들의 삶은 이렇게 비참할 수밖에 없었을까.
그리고 왜 세계는 제국주의와 식민지적인 질서로 급속하게 재편되는 운명에 처할 수밖에 없었을까.
또한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에 제국주의와 식민지적 잔재는 완전히 소멸되었을까.
이제 이 의문에 대한 답을 차분히 모색해보기로 하자.
⊙ 제국주의와 식민지-팽창하는 자본주의
제국주의는 국민국가를 모태로 한다.
서구에서 근대국민국가는 정치적으로는 자유주의,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가 자리를 잡으면서 봉건적 질서로부터 벗어난 정치 경제적 시스템으로 표현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국민국가는 대단히 긍정적인 기능과 역할을 수행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국민국가의 모델,특히 자본주의의 팽창과정 속에는 내재된 모순이 존재하고 있었다.
자본주의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생산과 소비가 원활하게 이루어져야 하고,생산 과정에는 반드시 잉여가치가 발생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자본화의 과정을 거쳐 생산에 재투자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생산과정에서 노동자의 임금은 노동자가 생산한 총가치보다 항상 적을 수밖에 없고 소비되지 않는 초과분의 잉여가치는 외부의 시장에서 소비되어야 자본화가 가능해진다.
이러한 경향은 생산성이 높아질수록 함께 커질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총자본 속에서 임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상대적으로 줄어들게 마련이고, 보다 많이 생산된 잉여가치를 다시 자본화하기 위해서는 더 큰 외부의 시장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 과정에서 비자본주의국가를 강제적으로 자본주의의 시장으로 포섭한 것이 제국주의이며,이때 포섭당한 비자본주의 국가가 바로 식민지이다.
앞에서 살펴본 대로 자본은 끊임없이 팽창되는 경향성을 보인다.
따라서 제국주의는 잉여가치를 자본화한 것으로 머물지 않고 그 이상의 잉여가치 실현을 위해 이를 다시 생산과정에 재투입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제국주의는 더 많은 원료를 필요로 하게 되고 이를 식민지로부터 착취하고 수탈하기에 이른 것이다.
같은 이유로 제국주의 경제는 새로운 노동력도 끊임없이 확보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 제국주의는 강제적으로 농민과 같은 토착민들을 새로운 프롤레타리아트로 거듭나게 만든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체제와 거리가 멀었던 자작농이나 소작농을 공장의 값싼 임금 노동자로 전락시키는 것이 제국주의의 전략이었던 것이다.
⊙ 농민에서 임금노동자로의 전락
아래의 인용은 '고향'에서 주인공인 '그'가 유랑하게 된 계기를 짐작할 수 있게 하는 부분이다.
함께 읽고 이 내용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그의 고향은 대구에서 멀지 않은 K군 H란 외딴 동리였다.
한 백 호 남짓한 그곳 주민은 전부가 역둔토를 파먹고 살았는데 사삿집 땅을 붙이는 것보다 떨어지는 것이 후하였다.
그러므로 넉넉지는 못할망정 평화로운 농촌으로 남부럽지 않게 지낼 수 있었다.
세상이 뒤바뀌자 그 땅은 전부가 동양척식회사의 소유에 들어가고 말았다. (중략)
악착한 운명이 던져 준 깊은 슬픔을 술로 녹이려는 듯이 연거푸 다섯 잔을 마신 그는 다시 말을 계속하였다.
그 후 그는 부모 잃은 땅에 오래 머물기 싫었다.
신의주로 안동현으로 품을 팔다가 일본으로 또 벌이를 찾아가게 되었다.
구주 탄광에 있어도 보고 대판 철공장에도 몸을 담아 보았다.
벌이는 조금 나았으나 외롭고 젊은 몸은 자연히 방탕해졌다.
돈을 모으려야 모을 수 없고 이따금 울화만 치받치기 때문에 한곳에 주접을 하고 있을 수 없었다.
화도 나고 고국 산천이 그립기도 하여서 훌쩍 뛰어나왔다가 오래간만에 고향을 둘러보고 벌이를 구할 겸 서울로 올라가는 길이라 한다.
-현진건,'고향'
인용된 부분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듯이 '그'는 자의로 농사를 그만둔 것이 절대 아니다.
그는 '동양척식주식회사'라는 외부의 제국주의적 강제에 이끌려 어쩔 수 없이 농민으로서의 삶을 포기한다.
물론 처음에는 간도에서 어떻게든 농사를 지어보려 하지만 이내 실패하고 결국 그가 할 수 있었던 일은 날품을 팔다가 탄광과 철공장에서 노동하는 것이었다.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자기 논밭처럼 일구던 역둔토를 빼앗긴 채 값싼 임금노동자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이는 제국주의가 비자본주의 국가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프롤레타리아트를 창출하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점에서 '그'가 일했던 곳이 '탄광'과 '철공장'이었다는 것도 시사적이다.
당시 '탄광'과 '철공장'은 자본주의가 움직일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핵심적인 공간이 아니었던가.
⊙ 새로운 제국의 시대
그렇다면 제국주의가 소멸하고 식민지로부터 완전히 독립한 지금 현재 자본은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고 있을까.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는 과거의 제국주의적 환경과는 분명히 다르다.
과거 제국주의는 무엇보다도 민족이나 국가의 경계를 중요하게 받아들였지만 현대사회는 민족과 국가의 경계가 자꾸 허물어져가고 있는 상황이다.
어느 때보다도 막강한 전 세계적 네트워크는 민족과 국가를 낡은 개념으로 만들어 버리지 않았는가.
또한 과거의 제국주의가 전통적인 자본주의적인 생산,이를테면 원료와 노동과 자본,그리고 이를 집적할 수 있는 공간을 필요로 했던 시스템 위에서 성립했다면 최근의 산업의 흐름은 분명히 정보를 중심으로 한 서비스가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기존의 제국주의와 식민지적인 틀은 지극히 낡은 개념이다.
그렇다면 그토록 막강했던 제국주의와 끝없이 자본을 재생산하던 시스템은 어떻게 되었을까.
최근 '제국'과 '다중'으로 새로운 분석의 틀을 제시한 안토니오 네그리에 의하면 제국주의는 보다 막강한 '제국' 그 자체로 변모했다고 한다.
현대사회에서 자본을 생산하는 핵심적인 생산요소는 원료라든지 노동력이 아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네트워크를 통해 끝없이 이동하는 정보다.
현대사회에서 '제국'은 그 무엇보다도 네트워크를 교묘히 지배하기를 원한다.
네트워크를 독점하기만 한다면 막대한 자본을 재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이러한 새로운 제국의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야만 하는 것일까.
전주 상산고 교사 etika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