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적 깨달음은 일탈에서 온다
⊙ 진흙 위에서 별을 보다
"우리는 모두 진흙구덩이 속에 살고 있지만 그 중 몇몇은 밤하늘의 별을 바라본다."
유미주의의 대표격인 오스카 와일드의 말이다.
아무리 고단하고 부조리한 현실을 살아가더라도 정신적인 지향은 언제나 미적인 것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
우리에게 오스카 와일드는 「행복한 왕자」라는 훈훈한 감동을 주는 교훈적인 동화 작가로 더 많이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는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과 같은 유미주의적 작품으로 그 진면목을 드러내는 작가다.
미적 가치를 위해 기존의 도덕이나 윤리쯤은 초월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오스카 와일드.
이런 맥락에서 「행복한 왕자」 역시 세속적인 가치를 추구하던 속물 귀족사회를 풍자한 것으로 읽을 수도 있다.
진정한 예술적 가치는 깨닫지 못한 채 그저 보석 따위를 중시하는 속류 귀족에 대한 일침으로 작품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한 가지 더 다른 이야기를 하자.
「달과 6펜스」는 서머싯 몸을 일약 세계적 명성을 얻게 해준 작품이다.
이 소설은 주식중개업을 하다가 화가가 된 고갱의 삶을 모티브로 창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작품의 주인공 스트릭랜드는 도덕이나 상식으로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는 17년간 함께 지냈던 아내와 자식을 헌신짝처럼 버렸으며,자기의 천재성을 알아봐주었던 친구를 배신하고 그의 아내를 가로채는 파렴치한에 다름 아니지만 동시에 예술에 대한 식을 줄 모르는 정열을 지닌 인물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도대체 작가는 왜 이런 인물을 우리에게 제시하는 걸까.
이는 작품 제목이 지닌 상징성을 떠올리면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다.
「달과 6펜스」에서 6펜스짜리 백동전은 밤하늘에 떠 있는 하얀 달과 그 모양이 비슷하다.
그러나 크기와 모습은 비슷할지언정 그것이 상징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6펜스'가 실용적이고 세속적인 가치를 상징하는 반면,'달'은 신비한 세계,다시 말해 세속적인 가치를 넘어선,기존의 도덕과 윤리를 넘어선 새로운 가치를 상징하는 것이다.
오스카 와일드의 표현대로라면 '6펜스'는 진흙구덩이를,'달'은 곧 '별'의 의미를 지닌다.
문학작품에서 상징적 과장이 허용되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주인공 스트릭랜드의 행위는 현실을 미적으로 초극하려는 극단적인 표현에 다름 아닌 것이다.
⊙ 김동인과 광염소나타?
한국 근대문학 초창기에도 오스카 와일드나 서머싯 몸의 문제의식을 지녔던 작가가 있었다.
바로 근대 단편소설의 형식을 완성시켰다고 평가받는 김동인이다.
작가 김동인은 우리에게는 주로 한 여인의 비극적인 삶을 다룬 「감자」로 알려져 있지만 그는 「광염소나타」와 「광화사」를 쓴 작가이기도 하다.
작품의 완성도나 주제의식의 깊이 차원에서 김동인의 소설은 결코 뛰어나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계몽 일색이었던 초창기 우리 문학의 환경에서 다양한 주제의식을 형상화하여 소설의 지평을 넓힌 점은 높은 평가를 받아 마땅하다.
자,이제 「광염소나타」를 살펴보자.
작품 「광염소나타」의 서두는 1인칭 서술자가 등장하여 "독자는 이제 내가 쓰려는 이야기를,유럽의 어떤 곳에 생긴 일이라고 생각하여도 좋다"고 시작한다.
이와 같은 언급은 작품이 김동인이 살았던 식민지 시대 현실과는 일정한 거리가 있음을 암시한다.
액자소설로 구성된 이 작품은 천재 예술가 백성수의 이야기를 음악 비평가 K씨가 들려주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액자 속 주인공 백성수는 광기를 지닌 채 요절한 한 피아니스트의 유복자이다.
당연히 그는 어린 시절을 불우하게 지낼 수밖에 없었지만 홀어머니의 지극한 정성 아래 피아노를 접하게 된다.
그러나 그는 정규교육을 제대로 받을 수 없었고 가난에 허덕이며 살아가다가 병든 어머니를 생각하며 우발적으로 오십전짜리 은전 하나를 훔치려다 결국 감옥에 수감된다.
백성수는 출옥 후,어머니의 죽음을 확인하고 자신에게 관용을 베풀지 않았던 그 집을 찾아 불태우게 되는데,이때 그는 자신의 주체할 수 없는 욕구를 피아노 연주로 풀어놓는다.
이를 우연히 목격한 비평가 K는 그를 자기 집으로 불러들여 그에게 연주와 작곡의 기회를 준다.
이후로 백성수는 방화와 살인을 저지르며 그때 느꼈던 흥분과 전율을 피아노곡으로 발표하다가 마침내는 경찰에 붙잡혀 정신병원에 수감된다.
⊙ 예술의 참된 가치
다음은 작품 「광염소나타」 중 일부이다.
이를 살펴보고 사회적 금기를 어기면서까지 예술을 추구하는 작품의 의도를 함께 살펴보도록 하자.
"어떤 '기회'라는 것이 어떤 사람에게서,그 사람의 가지고 있는 천재와 함께,'범죄 본능'까지 끌어내었다 하면,우리는 그 '기회'를 저주해야겠습니까? 혹은 축복해야겠습니까?
이 성수의 일로 말하자면 방화,사체 모욕,시간,살인,온갖 죄를 다 범했어요. (중략)
"죄를 벌해야지요. 죄악이 성하는 것을 그냥 볼 수는 없습니다."
"그렇겠습니다. 그러나 우리 예술가의 견지로는 또 이렇게 볼 수도 있습니다. (중략)
사실 말이지 백성수 그의 예술은 그 하나하나가 모두 우리의 문화를 영구히 빛낼 보물입니다.
우리의 문화의 기념탑입니다.
방화? 살인? 변변치 않은 집 개,변변치 않은 사람 개는 그의 예술의 하나가 산출되는 데 희생하라면 결코 아깝지 않습니다.
천 년에 한 번,만 년에 한 번 날지 못 날지 모르는 큰 천재를,몇 개의 변변치 않은 범죄를 구실로 이 세상에서 없이하여 버린다 하는 것은 더 큰 죄악이 아닐까요.
-김동인,'광염소나타'
인용된 부분은 「광염소나타」의 마지막 부분이다.
비평가 K는 백성수와 같은 천재 예술가는 인류의 문화를 빛낼 보물이기에 '몇 개의 변변치 않은 범죄'를 구실로 창작을 구속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인륜을 저버리면서까지 인류가 추구해야 할 위대한 예술이란 무엇일까.
당시 김동인이 작품 속에서 미처 답하지는 못했지만 위대한 예술이란 대체로 그 사회의 현실 원칙을 반성하게 하고 새로운 윤리와 도덕을 형성하게 하는 그 무엇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은 수많은 규칙과 질서,그리고 금기에 의해 유지된다.
살인하지 말라,도적질하지 말라,간통하지 말라 등의 전통적인 금기들은 현실 사회를 유지하는 중요한 메커니즘들인 것이다.
그러나 도덕이나 윤리,금기가 지나치게 강력할 경우 인간의 자유는 훼손되고,더 이상의 인간 역사의 발전은 기대하기가 어려워진다.
언제나 기존 틀에 맞춰서 살아가는 이상 진보는 없다.
또한 겉으로는 도덕과 윤리를 내세우면서도 그 이면에는 타인을 지배하고 억압하려는 의도가 숨겨진 경우도 있지 않은가.
예술로서의 참된 가치는 바로 이 지점에서 찾을 수 있다.
기존의 윤리와 도덕이 과연 인간 삶에 반드시 필요한가,또 그것이 인간의 자유와 역사의 진보를 가로막고 있지는 않은가를 반성하게 하는 것이다.
쉽게 이야기해서 우리가 만든 법률이 혹시 우리 자신의 자유를 억압하는 악법적인 요소가 있는가를 감성적으로 살펴보는 것.
이것이 예술의 사회적 기능이 되는 것이다.
오스카 와일드나 「달과 6펜스」의 스트릭랜드,그리고 「광염소나타」의 백성수는 바로 이 점에서 기존의 윤리와 도덕을 뒤집고 예술적 가치를 추구하려는 인물로 평가할 수 있다.
물론 작품의 딜레마는 이러한 예술적 깨달음이 '일상에 대한 일탈'로부터 얻어진다는 점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 모든 것들은 문학 작품 안에서의 일이다.
다시 말해 현실에서의 살인이나 방화와 같은 온갖 배덕(背德)은 분명 문제적이겠지만,그 모든 것들이 작품을 통해서 2차적으로 주어지는 한 그것은 현실에 대한 반성적 의미를 충분히 갖게 된다.
⊙ 혼돈 속에 숨겨진 의미
최근에 배우 히스 레저의 유작으로 관심을 모았던 영화 「다크나이트」에서 배트맨을 괴롭히는 조커는 스스로를 혼돈의 화신이라 일컫는다.
그는 그저 돈을 훔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파괴 자체가 자신의 목적임을 이야기한다.
온갖 규칙과 질서를 만들면서 동시에 추악한 뒷거래를 하는 이들에게 조커는 자신의 존재 이유를 논리적으로 전달하는 것이다.
분명 조커의 폭력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그가 전달하는 폭력과 혼돈은 부조리한 이성의 규칙과 질서에 대해 반성을 촉구하는 메시지로도 충분히 읽을 수 있다.
예술이 그러하듯이 말이다.
전주 상산고 교사 etika1@naver.com
⊙ 진흙 위에서 별을 보다
"우리는 모두 진흙구덩이 속에 살고 있지만 그 중 몇몇은 밤하늘의 별을 바라본다."
유미주의의 대표격인 오스카 와일드의 말이다.
아무리 고단하고 부조리한 현실을 살아가더라도 정신적인 지향은 언제나 미적인 것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
우리에게 오스카 와일드는 「행복한 왕자」라는 훈훈한 감동을 주는 교훈적인 동화 작가로 더 많이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는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과 같은 유미주의적 작품으로 그 진면목을 드러내는 작가다.
미적 가치를 위해 기존의 도덕이나 윤리쯤은 초월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오스카 와일드.
이런 맥락에서 「행복한 왕자」 역시 세속적인 가치를 추구하던 속물 귀족사회를 풍자한 것으로 읽을 수도 있다.
진정한 예술적 가치는 깨닫지 못한 채 그저 보석 따위를 중시하는 속류 귀족에 대한 일침으로 작품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한 가지 더 다른 이야기를 하자.
「달과 6펜스」는 서머싯 몸을 일약 세계적 명성을 얻게 해준 작품이다.
이 소설은 주식중개업을 하다가 화가가 된 고갱의 삶을 모티브로 창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작품의 주인공 스트릭랜드는 도덕이나 상식으로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는 17년간 함께 지냈던 아내와 자식을 헌신짝처럼 버렸으며,자기의 천재성을 알아봐주었던 친구를 배신하고 그의 아내를 가로채는 파렴치한에 다름 아니지만 동시에 예술에 대한 식을 줄 모르는 정열을 지닌 인물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도대체 작가는 왜 이런 인물을 우리에게 제시하는 걸까.
이는 작품 제목이 지닌 상징성을 떠올리면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다.
「달과 6펜스」에서 6펜스짜리 백동전은 밤하늘에 떠 있는 하얀 달과 그 모양이 비슷하다.
그러나 크기와 모습은 비슷할지언정 그것이 상징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6펜스'가 실용적이고 세속적인 가치를 상징하는 반면,'달'은 신비한 세계,다시 말해 세속적인 가치를 넘어선,기존의 도덕과 윤리를 넘어선 새로운 가치를 상징하는 것이다.
오스카 와일드의 표현대로라면 '6펜스'는 진흙구덩이를,'달'은 곧 '별'의 의미를 지닌다.
문학작품에서 상징적 과장이 허용되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주인공 스트릭랜드의 행위는 현실을 미적으로 초극하려는 극단적인 표현에 다름 아닌 것이다.
⊙ 김동인과 광염소나타?
한국 근대문학 초창기에도 오스카 와일드나 서머싯 몸의 문제의식을 지녔던 작가가 있었다.
바로 근대 단편소설의 형식을 완성시켰다고 평가받는 김동인이다.
작가 김동인은 우리에게는 주로 한 여인의 비극적인 삶을 다룬 「감자」로 알려져 있지만 그는 「광염소나타」와 「광화사」를 쓴 작가이기도 하다.
작품의 완성도나 주제의식의 깊이 차원에서 김동인의 소설은 결코 뛰어나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계몽 일색이었던 초창기 우리 문학의 환경에서 다양한 주제의식을 형상화하여 소설의 지평을 넓힌 점은 높은 평가를 받아 마땅하다.
자,이제 「광염소나타」를 살펴보자.
작품 「광염소나타」의 서두는 1인칭 서술자가 등장하여 "독자는 이제 내가 쓰려는 이야기를,유럽의 어떤 곳에 생긴 일이라고 생각하여도 좋다"고 시작한다.
이와 같은 언급은 작품이 김동인이 살았던 식민지 시대 현실과는 일정한 거리가 있음을 암시한다.
액자소설로 구성된 이 작품은 천재 예술가 백성수의 이야기를 음악 비평가 K씨가 들려주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액자 속 주인공 백성수는 광기를 지닌 채 요절한 한 피아니스트의 유복자이다.
당연히 그는 어린 시절을 불우하게 지낼 수밖에 없었지만 홀어머니의 지극한 정성 아래 피아노를 접하게 된다.
그러나 그는 정규교육을 제대로 받을 수 없었고 가난에 허덕이며 살아가다가 병든 어머니를 생각하며 우발적으로 오십전짜리 은전 하나를 훔치려다 결국 감옥에 수감된다.
백성수는 출옥 후,어머니의 죽음을 확인하고 자신에게 관용을 베풀지 않았던 그 집을 찾아 불태우게 되는데,이때 그는 자신의 주체할 수 없는 욕구를 피아노 연주로 풀어놓는다.
이를 우연히 목격한 비평가 K는 그를 자기 집으로 불러들여 그에게 연주와 작곡의 기회를 준다.
이후로 백성수는 방화와 살인을 저지르며 그때 느꼈던 흥분과 전율을 피아노곡으로 발표하다가 마침내는 경찰에 붙잡혀 정신병원에 수감된다.
⊙ 예술의 참된 가치
다음은 작품 「광염소나타」 중 일부이다.
이를 살펴보고 사회적 금기를 어기면서까지 예술을 추구하는 작품의 의도를 함께 살펴보도록 하자.
"어떤 '기회'라는 것이 어떤 사람에게서,그 사람의 가지고 있는 천재와 함께,'범죄 본능'까지 끌어내었다 하면,우리는 그 '기회'를 저주해야겠습니까? 혹은 축복해야겠습니까?
이 성수의 일로 말하자면 방화,사체 모욕,시간,살인,온갖 죄를 다 범했어요. (중략)
"죄를 벌해야지요. 죄악이 성하는 것을 그냥 볼 수는 없습니다."
"그렇겠습니다. 그러나 우리 예술가의 견지로는 또 이렇게 볼 수도 있습니다. (중략)
사실 말이지 백성수 그의 예술은 그 하나하나가 모두 우리의 문화를 영구히 빛낼 보물입니다.
우리의 문화의 기념탑입니다.
방화? 살인? 변변치 않은 집 개,변변치 않은 사람 개는 그의 예술의 하나가 산출되는 데 희생하라면 결코 아깝지 않습니다.
천 년에 한 번,만 년에 한 번 날지 못 날지 모르는 큰 천재를,몇 개의 변변치 않은 범죄를 구실로 이 세상에서 없이하여 버린다 하는 것은 더 큰 죄악이 아닐까요.
-김동인,'광염소나타'
인용된 부분은 「광염소나타」의 마지막 부분이다.
비평가 K는 백성수와 같은 천재 예술가는 인류의 문화를 빛낼 보물이기에 '몇 개의 변변치 않은 범죄'를 구실로 창작을 구속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인륜을 저버리면서까지 인류가 추구해야 할 위대한 예술이란 무엇일까.
당시 김동인이 작품 속에서 미처 답하지는 못했지만 위대한 예술이란 대체로 그 사회의 현실 원칙을 반성하게 하고 새로운 윤리와 도덕을 형성하게 하는 그 무엇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은 수많은 규칙과 질서,그리고 금기에 의해 유지된다.
살인하지 말라,도적질하지 말라,간통하지 말라 등의 전통적인 금기들은 현실 사회를 유지하는 중요한 메커니즘들인 것이다.
그러나 도덕이나 윤리,금기가 지나치게 강력할 경우 인간의 자유는 훼손되고,더 이상의 인간 역사의 발전은 기대하기가 어려워진다.
언제나 기존 틀에 맞춰서 살아가는 이상 진보는 없다.
또한 겉으로는 도덕과 윤리를 내세우면서도 그 이면에는 타인을 지배하고 억압하려는 의도가 숨겨진 경우도 있지 않은가.
예술로서의 참된 가치는 바로 이 지점에서 찾을 수 있다.
기존의 윤리와 도덕이 과연 인간 삶에 반드시 필요한가,또 그것이 인간의 자유와 역사의 진보를 가로막고 있지는 않은가를 반성하게 하는 것이다.
쉽게 이야기해서 우리가 만든 법률이 혹시 우리 자신의 자유를 억압하는 악법적인 요소가 있는가를 감성적으로 살펴보는 것.
이것이 예술의 사회적 기능이 되는 것이다.
오스카 와일드나 「달과 6펜스」의 스트릭랜드,그리고 「광염소나타」의 백성수는 바로 이 점에서 기존의 윤리와 도덕을 뒤집고 예술적 가치를 추구하려는 인물로 평가할 수 있다.
물론 작품의 딜레마는 이러한 예술적 깨달음이 '일상에 대한 일탈'로부터 얻어진다는 점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 모든 것들은 문학 작품 안에서의 일이다.
다시 말해 현실에서의 살인이나 방화와 같은 온갖 배덕(背德)은 분명 문제적이겠지만,그 모든 것들이 작품을 통해서 2차적으로 주어지는 한 그것은 현실에 대한 반성적 의미를 충분히 갖게 된다.
⊙ 혼돈 속에 숨겨진 의미
최근에 배우 히스 레저의 유작으로 관심을 모았던 영화 「다크나이트」에서 배트맨을 괴롭히는 조커는 스스로를 혼돈의 화신이라 일컫는다.
그는 그저 돈을 훔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파괴 자체가 자신의 목적임을 이야기한다.
온갖 규칙과 질서를 만들면서 동시에 추악한 뒷거래를 하는 이들에게 조커는 자신의 존재 이유를 논리적으로 전달하는 것이다.
분명 조커의 폭력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그가 전달하는 폭력과 혼돈은 부조리한 이성의 규칙과 질서에 대해 반성을 촉구하는 메시지로도 충분히 읽을 수 있다.
예술이 그러하듯이 말이다.
전주 상산고 교사 etika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