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ience] 우울증 약 효과 없다고?
영국 가디언지


프로작과 같은 우울증 약을 먹어도

'거짓약(僞藥·플라시보)효과' 이상의 의미가 없다고 보도

오늘도 만화 이야기를 하나 할까 한다.

'드래곤 헤드(모치즈키 미네타로)'라는 만화는 세계가 무엇이라 형용할 수 없는 엄청난 재앙을 만났을 때 인간이 보여주는 다양한 행태를 그린 만화다.

끝까지 재앙의 원인같은 것은 밝혀주지 않는 이 만화에는 어떤 일이 닥쳐도 태연한 '용두(드래곤 헤드)'라는 아이들이 나온다.

공포에 맞서기(?) 위해 '공포를 느끼는 뇌의 부위(편도체와 해마)'를 잘라내는 수술을 받은 아이들이다.

이 아이들은 주인공들처럼 무시무시한 공포에 질리는 일은 없다.

[Science] 우울증 약 효과 없다고?
하지만 몸에 불이 붙어도 아픔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외부 자극에 둔감해진 이들은 '인간'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로봇 같지도 않다.

그저 괴기스러울 뿐이다.

동물들은 외부에서 오는 부정적인 자극을 단순히 피할 뿐이지만, 인간은 좀 더 다양한 선택지를 개발해 왔다.

고통을 잊기 위한 진통제, 가라앉는 기분을 없애기 위한 우울증약 등이 그 사례다.

쾌적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자기 자신의 반응체계의 한 부분을 끊어버리는 것이다.

드래곤 헤드의 '용두'들은 그같은 고통 회피 과정을 극단적으로 밀고 갔을 때 나타날 수 있는 인간상일 것이다.

(물론 두통약·우울증약을 먹거나 진통제를 맞는 정도로 누군가를 '인간답지 못하다'든가 '감각을 억지로 차단한다'고 비난한다면 우스운 일이다.)

⊙ 감정의 고통을 가라앉히는 약

'우울증 약(항우울증 치료제)'이라는 단어를 곱씹어보면 묘한 위화감을 느끼게 된다.

'마음'이나 '감정'을 물질의 전달 체계로 이해하는 것에 대한 (그것이 진짜라 해도) 거부반응이 일어나는 것이다.

마약이 아닌 다음에야 무슨 수로 가라앉는 기분을 약 한 알로 바꿀 수 있단 말인가?

인간의 감정을 그렇게 쉽게 바꿀 수 있다면, 감정은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울증 약은 엄청나게 소비되고 있다.

우울증 약의 대명사인 일라이릴리(Eli Lilly)사의 '프로작(Prozac)'이 대표적이다.

20여년 전에 만들어진 이 제품은 현재 세계 각국의 4000만명이 의사의 처방을 받아 복용하고 있다.

염산 플루옥세틴이라는 성분이 들어있는 이 제품의 작용 기전은 완전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이 제품은 뇌 안에서 신호를 서로 주고받기 위해 사용되는 신경전달물질 중 하나인 세로토닌이 신경 안으로 재흡수되도록 하는 것을 방지한다고 알려져 있다.

세로토닌이 신경 안으로 재흡수되면 효소작용에 의해 파괴되는데, 이들이 파괴되지 않도록 막아놓으면 뇌 속에 세로토닌이 부족하지 않게 되고 이것이 우울증을 덜 느끼게 해준다는 것이 회사의 설명이다.

⊙ 우울증 약의 효과 논란

우울증 약의 효과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 26일 영국 가디언지는 프로작과 같은 우울증 약을 먹어도 '거짓약(僞藥·플라시보) 효과' 이상의 의미가 없다는 연구 결과를 보도했다.

영국 헐(Hull) 대학 심리학과의 어빙 커시(Irving Kirsch) 교수팀이 학술지 'PLoS(Public Library of Science)'에 발표한 이 연구 내용에 따르면 연구진들은 환자들에게 '우울증 약'을 주겠다고 말하고 실제로는 진짜 우울증 약 4종(프로작·세록삿·에펙소·서존)과 설탕 덩어리에 불과한 가짜 우울증 약을 각각 제공했다.

그러자 진짜 우울증 약을 복용한 환자들의 증상은 호전됐다.

하지만 같은 기간 중 가짜를 먹은 사람들도 증상이 호전됐다.

다만 가장 심한 상태의 우울증을 겪던 사람들은 진짜 약을 먹은 집단은 조금 호전됐으나, 가짜 약은 아무런 효과를 보여주지 않았다.

커시 교수는 "심각한 상황의 우울증 환자들을 제외했을 경우 다른 사람들에게 항우울증 약물을 제공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며 "기존 약품 허가 과정과 임상실험 결과를 보고하는 과정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약을 먹었으니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이 사람들을 낫게 했을 뿐, 진짜 효과가 있는 것이 아니므로 제약사에 비싼 돈을 주고 약을 처방받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가디언은 이 내용을 보도한 다음 날 '프로작 신화의 형성'이라는 글을 통해 커시 교수팀과 같은 연구 결과가 나온 것이 처음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다만 그동안 대형 제약사의 지원을 받은 연구와 환자를 고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의사들의 이해관계, 위약 효과 등이 얽혀 이 약의 효과에 대한 강한 믿음이 형성됐다는 것.

⊙ 감정의 고통을 조율하는 주체-나인가 약인가

엘라이릴리사는 이 같은 연구 결과에 대해 '받아들일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 회사는 즉각 성명서를 통해 "광범위한 과학적 의학적 경험에 의하면 플루옥세틴(프로작의 성분)은 항우울증 치료제로서 효과가 있다"며 "우리는 우울증을 겪은 수백만명의 치료에 도움을 준 플루옥세틴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실험에 사용된 또 다른 우울증 약 세록삿을 만들고 있는 글락소스미스클라인 사도 "이번 연구의 저자들은 항우울증 치료의 긍정적인 혜택은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연구 결론은 실제 임상 행위에서 발견되는 결과와 다른 결론을 내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우울증 약의 효과가 진짜 있는지 없는지는 연구진들이 가려낼 일이다.

만약 플라시보 효과 외의 특별한 효과가 없는 것으로 나타난다면 인간 문명사에 길이 남을 '한 편의 코미디'가 될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수많은 우울증 환자들은 '어떻게 해야 내가 좀 더 나은 상태가 될 수 있는가'라는 원론적인 질문으로 돌아가게 된다.

이 경우 두 갈래의 길이 있다. 하나는 플라시보 효과를 만들어낸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을 되찾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플라시보 효과를 줄 다른 약을 찾는 것이다.

이상은 한국경제신문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