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주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기생충의 생존방식
[Science] 사마귀는 왜 물에 빠져 죽을까, 달팽이는 왜 나무에 기어올라갈까?
기생수의 컨셉트는 단순하다.외계 생명체들이 인간의 귀나 코로 들어가 그 인간을 점령하기 시작하면서 일어나는 얘기다.이 생명체는 평소에는 점령한 인간의 얼굴을 하고 살지만 때가 되면 머리가 쩍쩍 갈라지고 손이 칼날이 된다든가 하는 외계인의 면모를 보이게 된다.

주인공은 기생수에 완전히 점령당하지 않은 한 남자 고등학생 신이치(요괴 이야기의 주인공은 꼭 반인반요(半人半妖)다.'이누야샤'라든가 '클레이모어'라든가….그게 스토리가 술술 풀리는 비결인 모양이다).신이치는 외계 생물체에 왼팔까지 점령당했지만 다른 사람들처럼 뇌를 점령당하지 않은 덕에 인간으로서의 생각을 유지할 수 있다.그 다음부터는 왼팔의 미키(신이치가 생명체에 붙인 이름)와 마치 샴쌍둥이와 같은 공생 관계를 이어가며 각종 우여곡절을 겪는다는 얘기다(안 봤으면 꼭 보라고 추천하고 싶다.그림체가 좀 구려도 보다 보면 중독적이다).

◆뇌를 점령하는 기생생물

기생수에서 인간은 외계 생물체의 숙주가 된다.숙주와 기생생물의 관계는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다.영화 '에일리언'에서 인간 숙주는 다른 에일리언을 낳기 위한 영양소 공급 통로.보호막으로 사용될 뿐이다.반면 기생수나 최근 영화 '인베이전'(외계 생물체의 신체 강탈을 다룬 영화)의 기생생물은 숙주의 껍데기인 육체를 고스란히 유지하되 뇌를 점령한다.그릇에 담긴 내용물이 달라지는 것이다.겉보기에 달라지는 것 없이 사회생활을 하다가 '때가 되면' 기생생물은 본격적으로 숙주의 몸을 이용해 무언가를 한다.

외계 생물체만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실제 지구 생태계에는 '뇌를 점령하는' 기생생물이 적지 않다.숙주의 몸을 영양분으로 사용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 몸을 가지고 있을 때만 할 수 있는 어떠한 행동을 하는 것이다.

[Science] 사마귀는 왜 물에 빠져 죽을까, 달팽이는 왜 나무에 기어올라갈까?
◆사마귀와 달팽이의 비극적 종말

대표적인 것이 사마귀와 귀뚜라미 메뚜기 등에 기생하는 '연가시'다.철사벌레라고도 불리는 이 생물은 말 그대로 철사처럼 얇고 긴 줄 형태다.보통 수십㎝,최대 2m에 이른다고 하니 길기도 무척 길다.굵기는 2㎜가량.

연가시는 숙주에 침투해 있다가 충분히 성숙하게 되면 숙주의 뇌를 조정해 물가로 가게 만든다.사마귀나 메뚜기 등은 평소에 물에 들어갈 일이 절대 없는 녀석들이지만,이미 자기 의지는 잃어버리고 '물이 있는 곳으로 간다'는 연가시의 뜻대로 자살(!)을 하러 간다.숙주가 물에 닿으면 연가시는 꽁지에서 스물스물 빠져나온다.숙주는 힘이 빠져 물에서 죽는 경우가 대부분이다.사마귀를 키우는 사람들의 인터넷 카페를 방문하면 연가시가 들어 있는 사마귀를 손으로 잡아 꽁지만 물에 대 주면 연가시를 내보낼 수 있다는 '해결책'을 비롯해 다양한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그만큼 연가시에 당하는(?) 사마귀가 많다는 뜻이다.우리나라에 여섯 종류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달팽이를 조종해 죽음으로 몰고 가는 기생충도 있다.'Leucochloridium paradoxum'라는 이름인데 우리나라에 없는 기생충이라 한국식 이름이 없다.흡충이라는 벌레의 일종이라고 한다.이 기생충의 목적은 달팽이에 잘 붙어 있다가 새에게 먹혀 새의 창자에서 지내는 것이다.그러기 위해 이 기생충은 달팽이의 머리 부위로 가서 달팽이가 나무 위로 높이높이 기어 올라가도록 조종한다.습하고 그늘진 곳을 기어다니던 달팽이는 이 기생충 때문에 뜨거운 한낮에 새들의 눈에 잘 띄는 나무 위로 옮겨가게 된다.

이뿐만 아니다.기생충은 달팽이가 새들의 눈에 빨리 띄도록 하기 위해 달팽이의 촉수 안으로 들어간다.가느다랗고 쉽게 움츠러들던 달팽이의 촉수는 엄청나게 화려하고 굵게 변한다.새가 좋아하는 알록달록한 유충과 닮은 달팽이가 되어 '나 잡아가쇼'하고 나무 위에서 캠페인을 벌이는 셈이다.기생충 혼자서는 새의 뱃속에 들어갈 수 없으니 이런 묘한 아이디어(?)를 낸 것이다.

◆다른 존재의 영속적인 삶을 위한 '생존기계'

연가시-사마귀,흡충-달팽이의 관계에서 숙주는 몸 바쳐 영양분을 공급할 뿐만 아니라 최종적으로 죽음에 이르는 위험을 감수하게 된다.하지만 적어도 해당 기생생물과 함께 있는 동안 죽지는 않는다.이런 기묘한 상황에 대해 리처드 도킨스는 그의 저서 '이기적 유전자' 에서 '생존 기계(survival machine)'라는 재미있는 표현을 썼다.[註 참조]

도킨스는 기생충-숙주의 관계를 유전자-생물의 관계로 확대 적용했다.그에 따르면 모두 '유전자'의 도구이자 생존기계다.연가시가 사마귀를 물가로 이끌듯이 생물들이 자신의 유전자를 담은 개체를 남기기 위해 애를 쓰는 것은 유전자가 생물이 그렇게 행동하도록 조종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예컨대 수컷 맹수들은 왜 자기 목숨을 버려가며 다른 수컷과 싸워 이기려고 할까? 가만히 있으면 죽을 때까지 안전하게 살 수 있는데.어미새는 왜 뱀의 공격에 맞서 알을 지키려고 할까? 자신은 날아가버리면 그만일 텐데
[Science] 사마귀는 왜 물에 빠져 죽을까, 달팽이는 왜 나무에 기어올라갈까?
말이다.모두 유전자의 영원불멸의 삶(생명이 태어나 죽을 때까지 유전자는 전혀 '늙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하면,유전자의 입장에서는 개체에서 개체로 옮겨다니는 데 성공만 한다면 영원한 삶을 누릴 수 있다)을 위한 행동이라는 것이 도킨스의 견해다.어쩌면 조금은 끔찍하게 들릴 수 있지만,우리가 '우리의 의지'라고 생각하는 것이 알고 보면 '유전자의 의지'일지도 모른다.


[註]"오늘날 그들(유전자들)은 육중한 로봇(개체) 속에서 거대한 집단을 이루어 살면서 외부와 차단된 상태로 안전하게 기거하고 있다.그리고 간접적 방식으로 의사 소통을 하며 원격 조종에 의해 번식하고 있다.그것들은 여러분 안에도 있고 필자에게도 있다.그들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만들었는데,우리의 근본적인 존재 이유는 그들을 보존하는 것이다.(…)우리는 그들의 생존 기계들이다."

(리처드 도킨스 저,이용철 역,'이기적 유전자',두산동아,1997 41~42쪽)


이상은 한국경제신문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