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대 1',수시 2-2 논술 전형 경쟁률이다.
수험장 두 곳에서 1명을 뽑는 꼴이다.
이것을 과연 논술시험이라고 할 수 있을까?
사실 60개의 답안 중에서 하나를 뽑는 시험은 논술시험이 아니라 백일장이다.
아무리 논제를 정확히 파악하고 짜임새 있게 구성했다 하더라도 타고난 글재주로 심사자의 눈에 들지 않으면 합격할 수 없다.
60대 1의 경쟁률 앞에서 사실 논술수업을 할 의욕을 잃을 정도다.
타고난 글재주가 없는데 어떻게 심사자의 눈에 띄겠는가?
그런데 학생들의 답안을 보면 20% 정도가 논제를 파악하고 짜임새 있게 쓴다고 한다.
그렇다면 60명 중에서 12명은 합격선에 든 것인데,그중에서 마지막 1명을 어떻게 선별한다는 것인가.
60대 1의 경쟁률 앞에서 12명 안에 드는 안정적인 답안을 쓰면 안 된다.
유일한 답안을 써야 한다.
하지만 유일한 답안을 쓰라고 하면 학생들은 두려워한다.
일단은 안정권에 드는 답안을 쓰려고 한다.
하지만 60대 1,심지어 100대 1의 경쟁률 앞에서 '평범'은 그 의미를 잃게 된다.
그래서 시험 보러 가는 학생들에게 거침없이 쓰라고 주문한다.
그리고 흥미진진하게 쓸 것도 당부한다.
송편을 만들 때 고물로 초콜릿을 넣어달라는 딸아이의 간곡한 부탁에 표면이 여러 가지 색깔로 코팅된 초콜릿을 3~4개 넣어서 송편을 만들었다.
실패를 염두에 두고 있었지만 예상과 달리 초콜릿이 많이 녹지 않고,색깔 또한 묘하니 예쁘다.
어른들은 먹는 음식을 가지고 장난친다고 말리셨지만,드셔보고는 즐거워들 하신다.
동서양의 오묘한 교배였다.
비유가 적절하지 않지만 논술을 송편 만드는 것에 비유해 보자.
송편에는 주로 깨와 콩을 고물로 많이 넣는다.
밤을 넣는 지역도 있지만 깨와 콩이 우세하다.
때문에 먹는 사람은 깨와 콩 둘 중에 하나만 있다고 생각하는데,갑자기 초콜릿이 든 송편이 나온다면 어떨까?
60개의 송편을 먹는데 아무리 맛있고 고소한 깨가 들었고 그 모양도 반듯하고 야무지게 예쁘더라도 기대하지 않았던 초콜릿 송편 앞에서는 힘을 잃을 것이다.
60대 1의 논술 경쟁률 앞에서 이제는 더 이상 깨인지 콩인지만 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채점자를 각성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답에 근접하려고 노력하지 말고 자신만의 정답을 만들어라.
채점자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깨 송편과 콩 송편에 질려 있다.
상상력을 발휘해 새로운 고물을 넣은 송편을 만들어 보자.
논술 문제를 보면 마치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것 같은 경우가 많다.
연세대 모의 논술 문제에서는 '진화를 진보로 봐야 하느냐,그렇지 않느냐' 중에 한 입장을 취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실제 대부분 학생들은 하나의 입장을 선택해서 근거를 대고 반론을 제시한다.
하지만 여기서 다른 입장을 제시해 보자.
진화를 진보가 아니라 순환의 한 과정으로 본다면 어떨까.
언젠가 '우주에 진화된 생물체가 존재한다면 왜 인류와 접속이 되지 않을까?' 하는 모의 논술 문제가 있었다.
이 문제를 보고 단순히 우주에는 진화된 생물체가 '있다,없다'라는 입장만 세울 것이 아니라 상상력을 발휘해 구체화시켜 보자.
우주에는 진화된 지적인 생물체가 있는데,인간처럼 게임에 중독됐고 그 속에 빠져있다 보니 외부로 시선을 돌리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지구와 접속이 되지 않은 것이다.
이 문제는 정답이 있는 게 아니다.
그리고 문제는 외계인의 존재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과학적 지식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논리적 근거를 얼마나 타당하게 댈 수 있느냐는 설득력을 물어 보는 문제다.
평상 시 외계인에 대해 아는 상식이 없기 때문에 풀지 못하겠다는 생각을 버리자.
그리고 문제의 쟁점을 타자화(他者化)시키지 말고,상상력을 동원해 자기화(自己化)시키자.
여러분도 게임의 세계에 빠져 시사에 무관심한 적이 있지 않았던가?
게임에 빠져 외부 세계와 단절되다 보니 외계인과도 접속되지 않는다는 발상이 다소 비약적인 면이 있어도 게임 중독과 외계인의 존재 여부를 연결시킬 수 있는 참신한 발상은 60대 1의 경쟁률을 뚫기에 충분하지 않을까 한다.
백일장과 같은 경쟁률에 겁먹지 말자.오히려 제3의 의견을 제시하거나 문제의 쟁점을 자기화시켜 청량제 같은 글을 쓰자.
논술의 중심에 자신을 당당하게 세우자.
수험장 두 곳에서 1명을 뽑는 꼴이다.
이것을 과연 논술시험이라고 할 수 있을까?
사실 60개의 답안 중에서 하나를 뽑는 시험은 논술시험이 아니라 백일장이다.
아무리 논제를 정확히 파악하고 짜임새 있게 구성했다 하더라도 타고난 글재주로 심사자의 눈에 들지 않으면 합격할 수 없다.
60대 1의 경쟁률 앞에서 사실 논술수업을 할 의욕을 잃을 정도다.
타고난 글재주가 없는데 어떻게 심사자의 눈에 띄겠는가?
그런데 학생들의 답안을 보면 20% 정도가 논제를 파악하고 짜임새 있게 쓴다고 한다.
그렇다면 60명 중에서 12명은 합격선에 든 것인데,그중에서 마지막 1명을 어떻게 선별한다는 것인가.
60대 1의 경쟁률 앞에서 12명 안에 드는 안정적인 답안을 쓰면 안 된다.
유일한 답안을 써야 한다.
하지만 유일한 답안을 쓰라고 하면 학생들은 두려워한다.
일단은 안정권에 드는 답안을 쓰려고 한다.
하지만 60대 1,심지어 100대 1의 경쟁률 앞에서 '평범'은 그 의미를 잃게 된다.
그래서 시험 보러 가는 학생들에게 거침없이 쓰라고 주문한다.
그리고 흥미진진하게 쓸 것도 당부한다.
송편을 만들 때 고물로 초콜릿을 넣어달라는 딸아이의 간곡한 부탁에 표면이 여러 가지 색깔로 코팅된 초콜릿을 3~4개 넣어서 송편을 만들었다.
실패를 염두에 두고 있었지만 예상과 달리 초콜릿이 많이 녹지 않고,색깔 또한 묘하니 예쁘다.
어른들은 먹는 음식을 가지고 장난친다고 말리셨지만,드셔보고는 즐거워들 하신다.
동서양의 오묘한 교배였다.
비유가 적절하지 않지만 논술을 송편 만드는 것에 비유해 보자.
송편에는 주로 깨와 콩을 고물로 많이 넣는다.
밤을 넣는 지역도 있지만 깨와 콩이 우세하다.
때문에 먹는 사람은 깨와 콩 둘 중에 하나만 있다고 생각하는데,갑자기 초콜릿이 든 송편이 나온다면 어떨까?
60개의 송편을 먹는데 아무리 맛있고 고소한 깨가 들었고 그 모양도 반듯하고 야무지게 예쁘더라도 기대하지 않았던 초콜릿 송편 앞에서는 힘을 잃을 것이다.
60대 1의 논술 경쟁률 앞에서 이제는 더 이상 깨인지 콩인지만 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채점자를 각성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답에 근접하려고 노력하지 말고 자신만의 정답을 만들어라.
채점자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깨 송편과 콩 송편에 질려 있다.
상상력을 발휘해 새로운 고물을 넣은 송편을 만들어 보자.
논술 문제를 보면 마치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것 같은 경우가 많다.
연세대 모의 논술 문제에서는 '진화를 진보로 봐야 하느냐,그렇지 않느냐' 중에 한 입장을 취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실제 대부분 학생들은 하나의 입장을 선택해서 근거를 대고 반론을 제시한다.
하지만 여기서 다른 입장을 제시해 보자.
진화를 진보가 아니라 순환의 한 과정으로 본다면 어떨까.
언젠가 '우주에 진화된 생물체가 존재한다면 왜 인류와 접속이 되지 않을까?' 하는 모의 논술 문제가 있었다.
이 문제를 보고 단순히 우주에는 진화된 생물체가 '있다,없다'라는 입장만 세울 것이 아니라 상상력을 발휘해 구체화시켜 보자.
우주에는 진화된 지적인 생물체가 있는데,인간처럼 게임에 중독됐고 그 속에 빠져있다 보니 외부로 시선을 돌리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지구와 접속이 되지 않은 것이다.
이 문제는 정답이 있는 게 아니다.
그리고 문제는 외계인의 존재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과학적 지식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논리적 근거를 얼마나 타당하게 댈 수 있느냐는 설득력을 물어 보는 문제다.
평상 시 외계인에 대해 아는 상식이 없기 때문에 풀지 못하겠다는 생각을 버리자.
그리고 문제의 쟁점을 타자화(他者化)시키지 말고,상상력을 동원해 자기화(自己化)시키자.
여러분도 게임의 세계에 빠져 시사에 무관심한 적이 있지 않았던가?
게임에 빠져 외부 세계와 단절되다 보니 외계인과도 접속되지 않는다는 발상이 다소 비약적인 면이 있어도 게임 중독과 외계인의 존재 여부를 연결시킬 수 있는 참신한 발상은 60대 1의 경쟁률을 뚫기에 충분하지 않을까 한다.
백일장과 같은 경쟁률에 겁먹지 말자.오히려 제3의 의견을 제시하거나 문제의 쟁점을 자기화시켜 청량제 같은 글을 쓰자.
논술의 중심에 자신을 당당하게 세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