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ience] 한국 대표하는 국보급 과학자 유룡 KAIST교수님 아세요?

나노물질 합성의 길 개척한 세계 최고 과학자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전기가 없어 등잔불 밑에서 공부하며 과학자의 꿈을 키우던 한 소년이 한국을 대표하는 국보급 과학자인 '국가과학자'가 됐다.

유룡 한국과학기술원(KAIST) 화학과 교수가 그 주인공.

과학기술부는 지난 7일 제9차 국가과학자위원회를 열어 유 교수를 올해의 국가과학자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국가과학자란 무엇이고,유 교수는 어떤 인물인지 알아보자.

⊙나노화학 분야 새로운 이정표 세워

국가과학자란 해당 연구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 성과를 냈거나,과학기술인상 수상 등 그 우수성이 세계적으로 입증된 과학자에게 수여되는 영예로운 칭호다.

특히 국가 과학자로 선정되면 매년 15억원 이내의 연구비를 최대 6년 동안 지원받을 수 있다.

첫 국가과학자는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였으나 논문조작 사실이 드러나면서 취소됐다.

지난해에는 신희섭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박사와 이서구 이화여대 교수 등 생물학자들이 국가과학자의 영예를 안았다.

화학자가 국가과학자로 선정된 것은 유 교수가 처음이다.

그는 극미세 세계를 다루는 나노화학 분야에서 획기적인 연구 성과를 낸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유 교수는 국내에서 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도 나노 연구의 대가로 손꼽힌다.

나노는 그리스어에서 난장이를 뜻하는 '나노스(nanos)'에서 유래했다.

1나노미터는 10억분의 1m로 머리카락 굵기의 10만분의 1 정도 크기다.

세상 만물의 기본단위인 원자가 0.1나노미터,이보다 큰 분자가 10나노미터 정도 크기에 불과하다.

유 교수는 수 나노미터 크기의 나노구멍이 규칙적으로 뚫려 있는 이산화규소 물질 속에서 분자나 원자들을 조립해서 새로운 나노구조의 물질을 합성하는 '나노주형합성법'을 창안,지금까지 만들기 어려웠던 여러 가지 나노물질(나노막대,나노다공체 등)을 합성하는 길을 개척했다.

특히 유 교수는 이 방법을 적용해 메조영역(2∼50나노미터)크기의 구멍이 규칙적으로 배열된 탄소를 세계 최초로 합성하는데 성공했다.

이렇게 해서 만든 나노다공성 탄소물질에 유 교수는 'CMK'라는 이름을 붙였다.

CMK는 카이스트가 만든 나노 크기의 탄소다공물질이란 뜻.유 교수는 CMK를 "나노물질을 담을 수 있도록 미세한 구멍이 벌집처럼 뚫려 있는 나노 크기의 틀이라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가령 화학반응에 백금을 촉매로 쓴다고 생각해보세요.

같은 1g의 백금도 덩어리채 쓴다면 표면적이 적어 비효율적이지만 백금을 아주 잘게 부수면 표면적이 백배 천배 넓어지니까 경제적으로 훨씬 효율적입니다.

이처럼 효율성이 높은 화학반응 촉매제를 만드는 데 CMK는 유용한 도구죠."

나노다공성 탄소물질은 연료전지 및 슈퍼축전지의 전극 재료 등 차세대 에너지 핵심 소재 개발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학계에서는 평가하고 있다.

유 교수의 연구 결과를 담은 논문은 2000년 세계적인 과학저널 네이처의 표지를 장식했다.

그는 2001년에도 네이처에 또 다른 논문을 실었다.

지금까지 유 교수가 발표한 논문이 인용된 횟수는 7500회 정도에 이른다.

노벨상 수상자의 평균 인용횟수 5000회를 압도하는 수치다.

논문의 인용횟수는 그 논문이 해당 분야에서 얼마만큼의 중요도를 지니는지를 재는 척도다.

국가과학자 선정을 담당한 평가위원들은 "논문 인용횟수가 유 교수의 연구 내용이 세계 최고 수준의 독창성이 있음을 객관적으로 입증하고 있다"며 "나노구조체는 미래 에너지 문제 뿐 아니라 환경문제 해결에 결정적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평가했다.

⊙빈농의 아들에서 국보급 과학자로

올해로 52세인 유 교수는 경기도 화성에서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국유림을 개간해 농사를 짓던 아버지를 도우며 학창 시절을 보냈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어서야 농사일에서 해방돼 공부에 전념할 수 있었다고 한다.

유 교수는 "집안 형편 때문에 대학 진학은 꿈도 못 꾸는 상황이었고 농사일 끝나고 등잔불 밑에서 책을 뒤적였다"며 "보다 밝은 등잔불을 만들기 위해 이리저리 궁리했던 게 연구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어려운 가정 형편이었지만 소년 유룡은 생물학자의 꿈을 키웠다.

그러나 가난해도 자식 교육에 열성적이었던 아버지의 뜻에 따라 서울대 응용화학부에 입학했다.

이후 KAIST에서 석사과정을 밟고,1982년 미국으로 건너가 스탠퍼드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KAIST 교수로 부임한 뒤 연구에 매진,1998년에 나노다공성 탄소물질을 만들어 내면서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수상 경력도 화려하다.

2001년에는 '올해의 KAIST 교수상'을 받았으며,2005년에는 대통령이 수여하는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상'을 수상했다.

올해 5월에는 학술정보전문기관인 톰슨사이언티픽사로부터 '세계수준급 연구영역 개척자'로 뽑히기도 했다.

⊙"과학자는 작가·예술가와 유사"

국가과학자인 유 교수가 생각하는 과학자의 상은 무엇일까.

과학자를 꿈꾸는 자연계 고등학생들이라면 귀담아들을 이야기다.

"연구자 중에는 이미 남들이 개척한 연구영역에 들어가 연구를 잘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새로운 연구영역을 개척해 남들이 따라오게 만드는 사람이 있어요.

앞으로 한국 과학이 발전하려면 남을 따라가는 연구자보다 남을 이끄는 연구자가 많아져야 합니다.

논문도 양보다 질로 평가받는 시대가 돼야 해요."

이런 측면에서 과학자들은 작가나 예술가와 비슷하다는 게 유 교수의 생각이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을 때는 밤을 새워서라도 연구에 몰두해야 하지만 그런 아이디어가 없을 땐 쉬면서 산책도 하고 긴장을 풀어야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옵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너무 일만 하라고 강조하니…."

그는 또 우리나라가 독창적이고 창의적인 과학자를 많이 길러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다양성을 인정하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돼야 한다고 했다.

김동윤 한국경제신문 기자 oasis9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