퀄컴 피했더니 이번엔 자바에 발목 잡혀
1996년 대전 전자통신연구원(ETRI)은 국내 기업들과 손잡고 세계 최초로 2세대 이동통신 표준 CDMA기술을 상용화했다.
'자랑스러운 IT 강국'의 사례로 늘 소개되곤 하는 이 기술은 사실 100% 우리 것이 아니다.
CDMA의 원천기술을 개발한 것은 미국 퀄컴사다.
CDMA는 199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아직 검증되지 않은 기술이었다.
이 기술을 개발한 퀄컴사는 직원 5명으로 시작한 벤처기업이었다.
구멍가게 같던 이 회사는 지금 세계 통신시장의 공룡으로 거듭났다.
세계 CDMA 시장 규모는 단말기와 시스템을 포함해 30조원을 훌쩍 넘어서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시장의 절반가량은 우리나라가 점유하고 있으니,공생이라면 공생관계다.
그러나 원천기술을 보유하지 않은 대가는 생각보다 컸다.
삼성전자가 애니콜 휴대폰 1대를 30만원에 팔면,이 중 5%인 1만5000원은 퀄컴 몫이다.
퀄컴은 가만히 앉아서 삼성전자·LG전자 등이 파는 휴대폰 매출액의 5%를 가져가며,지금까지 이렇게 챙긴 돈이 3조4000억원(1995~2006년)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반적으로 제조업체들의 마진율(영업이익률)이 3~7% 안팎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매출액의 5%는 어마어마한 돈이다.
한국이 아니었으면 빛을 보지 못하고 사라졌을지도 모르는 중소업체 퀄컴과 계약하며 5% 로열티에 합의한 것은 지금까지도 '최악의 협상'으로 국내 업계에 기억되고 있다.
CDMA로 세계에 'IT 코리아'를 각인시켰지만 우리나라의 입안이 쓸 수밖에 없는 이유다.
⊙'퀄컴에 안 당한다'…위피 개발
원천기술과 로열티의 힘을 알게 된 우리나라는 2001년 '우리 기술로 만든' 무선인터넷 표준 '위피(WIPI)'를 개발했다.
위피는 휴대폰용 무선인터넷 플랫폼(mobile platform)이다.
위피의 경쟁자로는 퀄컴이 만든 '브루(BREW)'가 꼽힌다.
말이 어려우니 잠깐 설명하고 넘어가자면,휴대폰용 무선인터넷 플랫폼이란 여러분이 휴대폰으로 온라인에 접속해서 게임 프로그램을 내려받고 이걸 플레이할 때,이 과정을 통제하는 운영체제(OS)다.
운영체제가 서로 다른 프로그램들은 호환이 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집을 짓는 데 사각형 땅(플랫폼)에 짓는 집하고 원형 땅에 짓는 집은 형태가 다를 수밖에 없다.
두 집이 같은 기능(고스톱 게임)을 갖고 있고 구조 면에서 전체적으로 비슷하다고 하더라도 내부의 계단이나 방의 형태,사용 언어가 다르다.
이 때문에 사각형 집에 살던 사람(고스톱 게임 콘텐츠)이 원형 집에 가면 마음대로 활동할 수 없게 된다.)
정보통신부는 위피 개발에 성공하자마자 '퀄컴에 앉아서 로열티를 퍼줬던 CDMA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며 앞으로 파는 휴대폰에는 무선인터넷 플랫폼으로 무조건 위피를 쓰도록 이동통신 3사에 요구했다(2002년 12월 위피 탑재 의무화 방침 결정,2005년 4월 의무화 실행).
'퀄컴의 플랫폼 독점을 막는다'는 명분이었다.
이동통신 3사가 같은 플랫폼을 도입하면 무선 인터넷 콘텐츠가 서로 호환되니까 더 빠르게 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복안도 있었다.
지난 3월 말 위피 휴대폰 누적 보급 대수는 1000만대를 넘었으며 올해 말까지 1500만대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기술 획일화의 함정
그런데 여기 또 복병이 있었다.
이번에는 위피에 쓰인 프로그래밍 언어 '자바(JAVA)'의 지식재산권에 대한 로열티가 문제가 됐다.
자바를 개발한 미국의 썬마이크로시스템즈사는 최근 KTF에 자바 사용료를 종전의 2배로 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한국경제신문 10월30일자 1·4면 참조).
썬은 또 3년마다 한 차례씩 사용기간을 연장하던 계약 관행도 앞으로 해마다 하는 것으로 바꾸자고 요구했다.
주도권을 가지고 있는 쪽은 협상을 자주 할수록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킬 기회가 더 많이 생기기 때문이다.
물론 썬의 자바 로열티는 금액 면에서 퀄컴 CDMA 로열티의 30분의 1에 불과하다.
휴대폰 1대당 200~400원 수준이다.
그러나 의무화 조항 때문에 우리 업체들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 보니 앞으로 썬이 이보다 훨씬 많은 금액을 요구하더라도 들어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결국 정부가 나서서 '토종 기술로의 획일화'를 주도한 것이 부작용으로 나타난 셈이다.
이동통신사들이 애초 다른 선택지를 가지고 있었다면 '로열티 자꾸 더 달라고 하면 딴 거 쓴다'고 으름장이라도 놓을 수 있을 텐데 선택권이 없으니 일방적으로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
실제 자바를 무선인터넷 국가 표준으로 정하고 모든 휴대폰에 탑재하도록 의무화한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지만 썬은 오히려 국내 이동통신사로부터 더 많은 로열티를 받아 가고 있는 실정이다.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
퀄컴에 무지막대한 로열티를 내는 것이 아까워 서둘러 자급자족용 기술을 개발해 의무화한 정책은 퀄컴의 독점(브루의 독점)은 막았을지 몰라도,새로운 범(썬마이크로시스템즈)을 불러들였다.
업계는 정부가 위피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의무화'를 택한 것이 성급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GSM과 CDMA처럼 경쟁하는 표준으로 놓아두었어도 충분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계란은 여러 바구니에 나눠 담아야 한다는 서양 격언이 떠오른다.
이상은 한국경제신문 기자 selee@hankyung.com
1996년 대전 전자통신연구원(ETRI)은 국내 기업들과 손잡고 세계 최초로 2세대 이동통신 표준 CDMA기술을 상용화했다.
'자랑스러운 IT 강국'의 사례로 늘 소개되곤 하는 이 기술은 사실 100% 우리 것이 아니다.
CDMA의 원천기술을 개발한 것은 미국 퀄컴사다.
CDMA는 199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아직 검증되지 않은 기술이었다.
이 기술을 개발한 퀄컴사는 직원 5명으로 시작한 벤처기업이었다.
구멍가게 같던 이 회사는 지금 세계 통신시장의 공룡으로 거듭났다.
세계 CDMA 시장 규모는 단말기와 시스템을 포함해 30조원을 훌쩍 넘어서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시장의 절반가량은 우리나라가 점유하고 있으니,공생이라면 공생관계다.
그러나 원천기술을 보유하지 않은 대가는 생각보다 컸다.
삼성전자가 애니콜 휴대폰 1대를 30만원에 팔면,이 중 5%인 1만5000원은 퀄컴 몫이다.
퀄컴은 가만히 앉아서 삼성전자·LG전자 등이 파는 휴대폰 매출액의 5%를 가져가며,지금까지 이렇게 챙긴 돈이 3조4000억원(1995~2006년)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반적으로 제조업체들의 마진율(영업이익률)이 3~7% 안팎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매출액의 5%는 어마어마한 돈이다.
한국이 아니었으면 빛을 보지 못하고 사라졌을지도 모르는 중소업체 퀄컴과 계약하며 5% 로열티에 합의한 것은 지금까지도 '최악의 협상'으로 국내 업계에 기억되고 있다.
CDMA로 세계에 'IT 코리아'를 각인시켰지만 우리나라의 입안이 쓸 수밖에 없는 이유다.
⊙'퀄컴에 안 당한다'…위피 개발
원천기술과 로열티의 힘을 알게 된 우리나라는 2001년 '우리 기술로 만든' 무선인터넷 표준 '위피(WIPI)'를 개발했다.
위피는 휴대폰용 무선인터넷 플랫폼(mobile platform)이다.
위피의 경쟁자로는 퀄컴이 만든 '브루(BREW)'가 꼽힌다.
말이 어려우니 잠깐 설명하고 넘어가자면,휴대폰용 무선인터넷 플랫폼이란 여러분이 휴대폰으로 온라인에 접속해서 게임 프로그램을 내려받고 이걸 플레이할 때,이 과정을 통제하는 운영체제(OS)다.
운영체제가 서로 다른 프로그램들은 호환이 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집을 짓는 데 사각형 땅(플랫폼)에 짓는 집하고 원형 땅에 짓는 집은 형태가 다를 수밖에 없다.
두 집이 같은 기능(고스톱 게임)을 갖고 있고 구조 면에서 전체적으로 비슷하다고 하더라도 내부의 계단이나 방의 형태,사용 언어가 다르다.
이 때문에 사각형 집에 살던 사람(고스톱 게임 콘텐츠)이 원형 집에 가면 마음대로 활동할 수 없게 된다.)
정보통신부는 위피 개발에 성공하자마자 '퀄컴에 앉아서 로열티를 퍼줬던 CDMA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며 앞으로 파는 휴대폰에는 무선인터넷 플랫폼으로 무조건 위피를 쓰도록 이동통신 3사에 요구했다(2002년 12월 위피 탑재 의무화 방침 결정,2005년 4월 의무화 실행).
'퀄컴의 플랫폼 독점을 막는다'는 명분이었다.
이동통신 3사가 같은 플랫폼을 도입하면 무선 인터넷 콘텐츠가 서로 호환되니까 더 빠르게 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복안도 있었다.
지난 3월 말 위피 휴대폰 누적 보급 대수는 1000만대를 넘었으며 올해 말까지 1500만대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기술 획일화의 함정
그런데 여기 또 복병이 있었다.
이번에는 위피에 쓰인 프로그래밍 언어 '자바(JAVA)'의 지식재산권에 대한 로열티가 문제가 됐다.
자바를 개발한 미국의 썬마이크로시스템즈사는 최근 KTF에 자바 사용료를 종전의 2배로 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한국경제신문 10월30일자 1·4면 참조).
썬은 또 3년마다 한 차례씩 사용기간을 연장하던 계약 관행도 앞으로 해마다 하는 것으로 바꾸자고 요구했다.
주도권을 가지고 있는 쪽은 협상을 자주 할수록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킬 기회가 더 많이 생기기 때문이다.
물론 썬의 자바 로열티는 금액 면에서 퀄컴 CDMA 로열티의 30분의 1에 불과하다.
휴대폰 1대당 200~400원 수준이다.
그러나 의무화 조항 때문에 우리 업체들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 보니 앞으로 썬이 이보다 훨씬 많은 금액을 요구하더라도 들어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결국 정부가 나서서 '토종 기술로의 획일화'를 주도한 것이 부작용으로 나타난 셈이다.
이동통신사들이 애초 다른 선택지를 가지고 있었다면 '로열티 자꾸 더 달라고 하면 딴 거 쓴다'고 으름장이라도 놓을 수 있을 텐데 선택권이 없으니 일방적으로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
실제 자바를 무선인터넷 국가 표준으로 정하고 모든 휴대폰에 탑재하도록 의무화한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지만 썬은 오히려 국내 이동통신사로부터 더 많은 로열티를 받아 가고 있는 실정이다.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
퀄컴에 무지막대한 로열티를 내는 것이 아까워 서둘러 자급자족용 기술을 개발해 의무화한 정책은 퀄컴의 독점(브루의 독점)은 막았을지 몰라도,새로운 범(썬마이크로시스템즈)을 불러들였다.
업계는 정부가 위피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의무화'를 택한 것이 성급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GSM과 CDMA처럼 경쟁하는 표준으로 놓아두었어도 충분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계란은 여러 바구니에 나눠 담아야 한다는 서양 격언이 떠오른다.
이상은 한국경제신문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