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ㆍ인텔ㆍ노키아도 당해

[Science] 특허괴물이 온다
새로운 기술을 개발한 개인이나 기업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자신의 기술에 대한 권리 확보다. 아무리 훌륭한 기술을 확보했다 하더라도 타인이 그 기술을 베껴쓰는 것을 막을 수 없다면 기술을 개발하는 데 들인 노력이 모두 '헛것'이 되기 때문이다.

개발자에 대한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특허다. '이 기술은 OOO에 의해 개발된 것으로 아무나 쓸 수 없다'고 공개적으로 표명하는 제도다. 특허로 보호되는 기술을 사용하려면 출원자에게 적합한 기술료(로열티)를 지급해야 하며 이를 어기고 무단으로 사용하다 적발되면 그동안 내지 않았던 로열티를 한꺼번에 물어내는 것은 물론 경우에 따라 손해배상금 등을 추가로 지급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한 해 동안 출원되는 특허는 23만여건(2006년 기준). 전 세계적으로는 한 해 166만건가량(2005년 기준)이 출원되고 있다. 그러나 이 많은 특허들이 모두 세상의 빛을 보고 상용화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은 사장되고 만다.

그런데 이 사장되는 특허를 가지고 돈을 벌어들이는 기업들도 있다. 특허권을 이용해 타 회사로부터 로열티를 받는 것을 목적으로 특허를 한 해 수백, 수천건씩 확보하는 이 기업들을 '특허 괴물(Patent Troll)'이라고 부른다. 새로운 기술에 대한 수요가 많지만 상용화되는 기술이 극히 적은 정보통신기술 분야가 이들의 주요 타깃이다.

'특허 괴물'들의 사업 전략은 간단하지만 위력적이다. 이들은 중소기업, 폐업한 회사, 개인 발명가 등이 보유하고 있는 '상당한 가치가 있지만 거의 평가 받지 못한 특허'들을 헐값에 대량으로 구입한다. 이 특허는 그들의 공격 무기다. 이들은 노키아 삼성전자 인텔 델 등 '돈 많은 기업'들을 상대로 '당신들의 제품이 우리가 보유한 특허를 침해하고 있으니 그만큼 로열티를 물어내라'고 통보하고,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소송에 나선다. 대표적 특허괴물로 꼽히는 인터디지털은 2005년 세계 1위 휴대폰 제조업체인 핀란드 노키아에 유럽식 이동통신 표준(GSM) 관련 특허 소송을 제기해 2억5000만달러에 이르는 특허료를 받아냈다. 미국 유럽 등 해외시장에 진출해 있는 삼성전자도 인터디지털과의 소송에 패해 670만달러의 로열티를 지급했다. LG전자는 아예 인터디지털과의 싸움에 승산이 없을 것으로 판단, 소송을 포기하고 2006년부터 2008년까지 해마다 9500만달러씩 모두 2억8500만달러의 로열티를 주는 것으로 이야기를 마무리지었다.

[Science] 특허괴물이 온다
특허괴물들의 주된 활동 무대는 그동안 미국이었다. 실제 공격적인 특허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인터디지털 NPT 포젠트네트워크 등은 모두 미국에 본사를 두고 있다. 소송 상대자도 RIM 노키아 다이렉티브이 이베이 등 미국 시장에서 활동 중인 기업으로 제한적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이 기업들이 한국을 주요 활동 무대로 삼을 조짐을 보이고 있어 관련 기업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특허청에 따르면 인터디지털이 국내에 출원한 특허 건수는 현재까지 무려 1092건에 이른다. 이 중 277건이 등록됐다. 인터디지털이 국내에 처음으로 특허를 출원한 것은 1996년. 그러나 2002년까지 국내 특허출원 건수는 한 해 10건 내외에 그쳤다. 별로 신경을 안 썼다는 얘기다. 그런데 2003년(108건)부터 인터디지털의 특허출원 건수는 대폭 증가하기 시작했다. 2005년에는 무려 468건의 특허를 출원했다. 인터디지털이 출원한 대부분의 특허는 무선통신네트워크 코드분할 다중접속 통신방식(CDMA) 안테나 등 무선통신 기술에 집중돼 있어, 향후 이 분야 기업들을 상대로 특허소송이 제기될 수 있음을 예고하고 있다.

특허청 분석에 따르면 전 세계를 무대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8개 특허괴물 중 현재까지 한국에서 특허를 출원한 곳은 인터디지털 뿐이다. 그러나 일부 특허괴물들은 중소기업이나 부도기업, 개인발명가 등으로부터 주요 특허를 매입하는 방식으로 한국 기업 공략을 준비 중일 것으로 특허청은 분석하고 있다. 특허청 관계자는 "그동안 인터디지털의 표적이 됐던 한국 기업은 미국시장에 진출해 있는 삼성전자와 LG전자 정도로 국한됐었다"며 "한국에서 다수의 특허를 출원했다는 건 이제 국내에서 활동하는 기업을 대상으로도 특허 소송을 제기할 수 있음을 뜻한다"고 말했다.

이상은 한국경제신문 기자 se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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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 특허괴물들…특허 헐값에 대량으로 사들여 대기업 위협

◆인터디지털(InterDigital,1972년 설립,미국 펜실베이니아)무선통신 분야에 4200여건의 특허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노키아 인피니언 NEC 샤프 마쓰시타 삼성전자 LG전자 등으로부터 로열티를 받고 있다. 팬택 등 그 외 통신업체들을 대상으로도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NPT(1992년 설립,미국 버지니아)휴대폰으로 이메일을 전송하거나 주파수(RF) 안테나 분야에 수십개의 핵심적인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휴대폰 이메일 기술 분야의 특허로 노키아 굿테크놀러지 RIM 등에서 로열티를 받고 있다.

◆포젠트 네트워크(Forgent Networks,1985년,미국 텍사스)1985년 비디오 텔레콤이라는 이름으로 설립됐으며 2001년 소프트웨어 회사로 업종을 바꾸며 현재의 사명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어도비 시스템즈, 매크로미디어 등 소프트웨어 벤처기업에서 로열티를 받고 있다. 델(DELL)을 포함한 40여개 PC 제조업체를 상대로 미국 샌프란시스코 연방법원에서 소송 중이다.

◆아카시아 리서치(Acacia Research,1995년 설립,미국 로스앤젤레스)바이오 칩 및 생명공학 분야 기술을 개발하는 회사로, 스스로 개발한 기술을 특허 출원하는 것은 물론 47개 주요 기술분야를 선정해 해당분야 특허를 집중적으로 매입하고 있다. NI 노키아 플레이보이 펫코 선글래스헛 월트디즈니 등과 라이선스 협약을 체결해 로열티를 챙기고 있다.

◆인텔렉추얼 벤처스(Intellectual Ventures,2000년 설립,미국)마이크로소프트의 전 최고기술책임자(CTO) 출신 나탄 미어볼드(Nathan Myhrvold)와 최고 소프트웨어 설계자였던 에드워드 정(Edward Jung)이 공동으로 설립한 회사다. 연간 300여개의 특허를 출원하고 있으나 아직 등록된 특허는 많지 않으며, 해마다 3000여건의 특허를 폐업기업이나 개인 발명가로부터 매입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특별한 소송이 발생하지 않았으나 앞으로 수많은 소송을 제기할 것으로 예상되는 회사다.

◆오션 토모(Ocean Tomo,2003년 설립,미국)지난해 4월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제1회 특허경매 이벤트를 주최한 회사. 경매 방식으로 수십건의 특허를 매입했다. 오션 토모 측은 앞으로도 특허경매 행사를 꾸준히 개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