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일리노이大 연구원들

금이 간 부분 스스로 치유할 수있는 폴리머 물질 개발

[Science] 플라스틱 스스로 자기몸을 치료하네
우주선이 손상되는 것은 기술자들에게는 무척 골치아픈 일이다. 유인 우주선이라면 우주인이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어떻게 수리라도 해볼 수 있지만,무인 우주선은 그렇게 할 수 없으니 가능한 한 외부의 충격에 강한 재질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만약 우주선이 사람이나 나무와 같이 일부 손상되더라도 자체 치유가 가능하다면 어떨까.

MIT가 발행하는 테크놀로지 리뷰(http://www. technologyreview. com)에 따르면 미국 일리노이 대학교 어배나 섐페인(University of Illinois at Urbana-ChampaignㆍUIUC)의 연구원들은 최근 금이 간 부분을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폴리머 물질을 만들었다. (폴리머란 분자가 기본 단위(모노머)의 반복으로 이뤄진 화합물로 녹말은 천연 폴리머, 나일론은 인공 폴리머에 해당한다) 이 물질은 항공기나 우주선처럼 고장에 즉각 대처하기 어려운 곳에서 움직여야 하는 경우에 아주 유용하다. 또 치과용 임플란트(이를 빼낸 자리에 넣는 인공치아)나 전자회로에 사용된 플라스틱에 생기는 아주 작고 미세한 균열로 인한 문제를 미리 막는 데도 쓰일 수 있다. 이들 제품의 작은 균열은 고장의 주원인이지만 대개의 경우 어느 부위에 균열이 일어났는지 알더라도 수리가 불가능하다. 그런데 스스로 갈라진 틈을 메우는 물질을 이용한다면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자가치유가 가능한 물질을 연구한 사례는 이전에도 있었다. 2003년에는 일리노이대학 베크만연구소의 제프 무어 등이 마이크로 캡슐을 에폭시매트릭스에 넣은 자가치유물질을 선보였다. 균열이 발생하면 주변에 있는 마이크로 캡슐이 터지고, 그 안에 들어 있는 디사이클로펜타디엔(DCDP)이 흘러나와 촉매와 만나 반응하면서 접착제같은 물질을 형성하는 원리다. 또 매사추세츠 대학교와 피츠버그 대학교의 연구원들은 고분자 매트릭스 내의 나노입자들이 균열 부위로 이동하는 것을 발견해 자가치유물질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 물질은 열을 가하거나 압력을 가했을 때만 스스로를 복구하는 것이 단점.

낸시 소토스 일리노이대 재료공학과 교수는 "이번에 만든 물질은 외부에 힘을 가하지 않아도 여러 차례에 걸쳐 복구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마치 플라스틱에 생명을 불어 넣은 것과 비슷하다는 것. 소토스를 비롯한 연구진은 이 물질을 '네이처 머터리얼스'(Nature Materials)에 소개했다.

'폴리머를 이용한 자가치유물질'은 사람의 피부를 모방해 만들었다. 사람의 피부는 표피가 상처를 입었을 때 표피 아래층에 복잡하게 얽혀 있는 모세혈관을 통해 그 부위에 영양분을 한꺼번에 많이 공급한다. 보다 빠르게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다. 연구진이 개발한 이 물질은 에폭시 폴리머가 마이크로채널이 3차원의 네트워크 형태로 얽혀 있는 기질(특정 효소에 반응하는 물질) 위에 층층이 쌓여 있는 형태로 구성됐다.

자가치유 과정은 상처가 난 부위에 딱지가 앉아 굳는 것과 비슷하다. 연구진은 이 물질을 시험하기 위해 자가치유 기능을 가진 폴리머로 코팅된 물체를 구부려서 균열을 냈다. 이 균열은 코팅막 전체로 퍼져나가 외피 아래에 있는 마이크로채널에 도달한다. 마이크로채널은 치유 매개체를 자극해서 매개체가 마이크로채널을 통해 균열 사이로 스며들도록 한다. 치유 매개체는 촉매와 접촉하고 나서 약 10시간 후에 폴리머가 되어 균열을 메운다. 이 시스템은 외부에서 압력을 가해 치유 매개체가 균열 속으로 들어가도록 할 필요가 없다. 가느다란 빨대를 물에 꽂으면 물이 빨대를 따라 올라가듯이 액체가 좁은 마이크로채널 사이로 자동으로 움직여 가기 때문이다. (이 같은 현상을 '모세관현상'이라고 한다. 물을 담은 통에 빨대를 꽂을 경우 물의 응집력으로 인해 빨대 안으로 물이 빨려올라가 빨대 바깥보다 수면이 높아지는 현상이 모세관현상이다. 수은처럼 응집력이 약한 액체는 반대로 빨대 안의 수면이 바깥보다 낮아지는데,이 역시 모세관현상의 일종이다. 욕조물에 수건 끝이 닿을 경우 물에 잠겨있지 않은 부분도 나중에는 축축하게 젖어버리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수건의 섬유가닥들이 모세관 구실을 해서 물을 빨아올리기 때문. 식물의 뿌리가 흡수한 물이나 양분이 식물 전체에 퍼지는 것도 같은 원리다)

[Science] 플라스틱 스스로 자기몸을 치료하네
연구진에 따르면 폴리머를 이용한 자가치유물질은 균열을 만들고 자가치유하는 과정을 7번가량 되풀이할 수 있다. 소토스와 연구진은 훨씬 더 많이 자가치유기능이 작동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균열 속에 치유매개체와 촉매를 함께 삽입하는 시스템을 만들고자 한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또 마이크로채널 네트워크를 작은 저장소들과 연계시켜 치유 능력을 높이는 연구도 진행하고 있다. 폴리머의 촉매나 치유매개체가 다 닳아버렸을 경우 저장소에서 '펌프질'해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이다.

이 물질의 마이크로채널 디자인은 또 마이크로전자 칩에서 생기는 발열 문제를 해소하는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전통적으로 마이크로전자회로 칩은 열을 방출할 수 있도록 설계된 기판 위에 설치되지만, 이것만으로는 열을 충분히 내보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소토스는 "마이크로채널 네트워크를 이용해 열을 식히는 액체가 지나가도록 하면 발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주 작은 열교환기'를 가동하는 것이다.

소토스는 또 다른 폴리머를 형성할 수 있는 수지와 촉매를 결합해 비슷한 네트워크를 구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테크놀로지 리뷰는 이 같은 시스템을 응용할 수 있는 방법이 굉장히 많다면서 수년 내로 치과용 임플란트나 보철물에 자가치유물질을 사용한 제품이 나올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영국 브리스톨 대학의 이안 본드 교수는 이 물질에 대해 "초기에는 가격이 비싸서 항공기나 우주선과 같이 고부가가치 산업에만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텍사스 오스틴 대학의 크리스 비엘롭스키 교수는 "앞으로 홈데포 같은 가정용 건자재 유통업체에서 싼 값에 이 물질을 구할 수 있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상은 한국경제신문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