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화 시대에는 종이를 사용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는 예견은 틀렸다. 사람들이 점점 더 많은 정보를 주고받게 되면서 종이의 사용량은 오히려 늘어나는 추세다.
종이를 만들려면 펄프가 필요하다. 중국의 채륜이 종이를 발명한 이후로 지금까지 2000년 동안 인류는 나무를 잘라 펄프 원료를 구했다. 그러나 20세기 들어 세계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종이 사용량이 급증하면서 삼림 훼손도 늘었다. '세계의 허파'로 불리는 아마존의 숲은 2050년까지 40%가량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특히 중국·인도 등 후발 경제주자들의 경제 규모가 커지고 삶의 질이 높아지면서 이 같은 현상은 가속화하고 있다. 현재 69위에 머물러 있는 중국의 1인당 지류 소비량이 20위권 안에 진입할 정도로 늘어나면 전 세계 펄프 수요는 현재의 두 배로 증가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을 정도다.
이 같은 가운데 국내 연구진이 '바다에서 나는 펄프'를 개발해 주목받고 있다. 서영범 충남대 환경임산자원학부 교수팀은 최근 목재 펄프를 대체할 홍조류 펄프 생산 기술을 개발해 우리나라를 포함,세계 45개국에 특허를 출원했다고 발표했다. 홍조류는 붉은 색 계통의 해조류로 김·우뭇가사리 등이 여기 속한다. 서 교수팀에 따르면 홍조류에는 종이를 만들 수 있는 가늘고 긴 섬유가 많이 들어 있어 이를 이용해 고급 인쇄용지 등을 생산할 수 있다. 서 교수팀은 벤처기업 페가서스인터내셔널(대표 박준혁)과 함께 우뭇가사리를 이용해 홍조류 펄프를 대량 생산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고 있다.
◆육지식물보다 성장률 훨씬 높아
서 교수팀에 따르면 홍조류 펄프는 목재 펄프를 대체할 수 있는 여러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선 섬유가 가늘고 균일하며 구조가 치밀하고 질기다. 이를 이용해 종이를 만들면 일반 목재 펄프보다 평평하고 매끄러운 종이를 만들 수 있다고 연구팀은 전했다. 종이가 평평하고 매끄러우면 인쇄가 잘 되기 때문에 고급용지로 이용할 수 있다.
게다가 해조류의 성장 속도는 나무보다 훨씬 빠르다. 우리나라의 자연산 우뭇가사리는 식감이 좋지만 크기가 작고 우리나라 바다에서는 1년에 한 번밖에 수확하지 못해 펄프로서는 경제적이지 못하다. 그러나 대량 양식이 가능한 열대산 개우무의 한 종류는 길이가 60cm까지 자라고 하루에 5% 이상 자라나,70일 만에 네 배로 커진다. 이런 종류를 이용할 경우 목재 펄프보다 더 싼값에 생산이 가능하다는 것이 연구팀의 분석이다.
우뭇가사리를 포함한 홍조류는 또 세계 대부분의 바다 0.5~10m 깊이에서 잘 자란다. 북위 15도에서 남위 15도 사이의 열대 바다에서는 홍조류 바다식물이 연중 내내 성장을 계속하기 때문에 일년 동안 5~6차례 수확할 수 있어 생산성이 특히 높다.1헥타르에서 연간 60t이 넘는 우뭇가사리를 양식할 수 있다는 것. 이에 따라 연구팀은 지난해 8월부터 베트남과 인도네시아에서 시험 양식을 시작했으며,인도네시아 해양수산부의 협조로 500헥타르의 양식장 면적을 우선 확보했다고 전했다.
바다식물이 육지식물보다 빨리 자라는 것은 뿌리로 영양분을 흡수하지 않고 몸 전체로 흡수하기 때문이다. 많이 먹고 많이 내보내는 과정에서 영양분이 빠르게 축적된다. 또 육지식물은 뿌리의 영양분을 토대로 줄기를 키워올려 잎을 내고 이를 통해 광합성을 하지만,바다식물은 몸 전체로 광합성을 할 수 있다. 육지의 다양한 환경에 견디기 위해 땅속 깊이 뿌리를 박아넣는 데 에너지를 소비해야 하는 육지식물과 달리 바다식물의 뿌리는 조류에 떠내려가지 않게 바위 등에 붙어 있는 역할만 하므로 로프로 엮어 인공양식을 하기에도 적합하다.
◆생산과정도 친환경적
홍조류 펄프는 또 생산 과정이 훨씬 친환경적이라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나무에서 펄프를 생산할 때는 펄프를 구성하는 셀룰로오스를 단단하게 만드는 리그닌이라는 물질을 높은 온도에서 강한 압력을 가해 빼내는 과정이 필요하다. 리그닌은 쓸모가 없는 물질로 나중에 태워 없애야 한다. 또 섬유의 색깔이 누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선호하는 백색을 만들기 위해서 독성이 강한 표백제를 대량으로 사용해야 한다.
그러나 홍조류에서는 80~100℃ 정도의 낮은 온도에서 섬유가 나오기 때문에 생산 공정이 간단하다. 목재섬유와 달리 홍조류 펄프는 색깔이 흰색이어서 독성이 강한 표백제를 사용하지 않고 과산화수소 등 상대적으로 환경 피해가 덜한 약품을 사용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이 같은 제조 과정에서 나온 부산물인 우무는 식용 재료나 의약품의 재료로 사용된다. 우무의 성분인 한천은 녹말과 비슷한 성질을 가지고 있어 젤리 푸딩 등 음식의 재료로 사용될 수 있다. 연고와 같은 의약품의 원료로도 이용 가능하다. 이를 정제하면 박테리아를 키울 수 있는 특수지 등으로 만들 수도 있다. 페가서스는 우무를 발효시켜 메탄가스와 에틸알코올을 생산하는 실험에 성공해 산업화를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천연섬유 신시장 열릴까
홍조류의 섬유는 종이 외에도 다양한 곳에 사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자동차나 휴대폰의 외장재로 쓰일 수도 있으며 주택의 건축자재인 유리섬유(그래스울) 등에 적용될 수도 있다.
홍조류 대량 생산이 지구 온난화 문제 해결에 일조할 수 있을지도 관심사다. 홍조류는 이산화탄소 흡수 능력이 육지식물보다 훨씬 뛰어나기 때문이다. 열대우림 1㎡는 이산화탄소를 해마다 15~20t가량 흡수하지만 같은 면적의 홍조류는 30~40t을 흡수한다. 물론 홍조류를 대량 양식했을 때 바다 생태계에 예상치 못한 피해가 올 가능성도 있어 연구가 더 필요한 상황이다.
이상은 한국경제 기자 selee@hankyung.com
종이를 만들려면 펄프가 필요하다. 중국의 채륜이 종이를 발명한 이후로 지금까지 2000년 동안 인류는 나무를 잘라 펄프 원료를 구했다. 그러나 20세기 들어 세계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종이 사용량이 급증하면서 삼림 훼손도 늘었다. '세계의 허파'로 불리는 아마존의 숲은 2050년까지 40%가량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특히 중국·인도 등 후발 경제주자들의 경제 규모가 커지고 삶의 질이 높아지면서 이 같은 현상은 가속화하고 있다. 현재 69위에 머물러 있는 중국의 1인당 지류 소비량이 20위권 안에 진입할 정도로 늘어나면 전 세계 펄프 수요는 현재의 두 배로 증가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을 정도다.
이 같은 가운데 국내 연구진이 '바다에서 나는 펄프'를 개발해 주목받고 있다. 서영범 충남대 환경임산자원학부 교수팀은 최근 목재 펄프를 대체할 홍조류 펄프 생산 기술을 개발해 우리나라를 포함,세계 45개국에 특허를 출원했다고 발표했다. 홍조류는 붉은 색 계통의 해조류로 김·우뭇가사리 등이 여기 속한다. 서 교수팀에 따르면 홍조류에는 종이를 만들 수 있는 가늘고 긴 섬유가 많이 들어 있어 이를 이용해 고급 인쇄용지 등을 생산할 수 있다. 서 교수팀은 벤처기업 페가서스인터내셔널(대표 박준혁)과 함께 우뭇가사리를 이용해 홍조류 펄프를 대량 생산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고 있다.
◆육지식물보다 성장률 훨씬 높아
서 교수팀에 따르면 홍조류 펄프는 목재 펄프를 대체할 수 있는 여러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선 섬유가 가늘고 균일하며 구조가 치밀하고 질기다. 이를 이용해 종이를 만들면 일반 목재 펄프보다 평평하고 매끄러운 종이를 만들 수 있다고 연구팀은 전했다. 종이가 평평하고 매끄러우면 인쇄가 잘 되기 때문에 고급용지로 이용할 수 있다.
게다가 해조류의 성장 속도는 나무보다 훨씬 빠르다. 우리나라의 자연산 우뭇가사리는 식감이 좋지만 크기가 작고 우리나라 바다에서는 1년에 한 번밖에 수확하지 못해 펄프로서는 경제적이지 못하다. 그러나 대량 양식이 가능한 열대산 개우무의 한 종류는 길이가 60cm까지 자라고 하루에 5% 이상 자라나,70일 만에 네 배로 커진다. 이런 종류를 이용할 경우 목재 펄프보다 더 싼값에 생산이 가능하다는 것이 연구팀의 분석이다.
우뭇가사리를 포함한 홍조류는 또 세계 대부분의 바다 0.5~10m 깊이에서 잘 자란다. 북위 15도에서 남위 15도 사이의 열대 바다에서는 홍조류 바다식물이 연중 내내 성장을 계속하기 때문에 일년 동안 5~6차례 수확할 수 있어 생산성이 특히 높다.1헥타르에서 연간 60t이 넘는 우뭇가사리를 양식할 수 있다는 것. 이에 따라 연구팀은 지난해 8월부터 베트남과 인도네시아에서 시험 양식을 시작했으며,인도네시아 해양수산부의 협조로 500헥타르의 양식장 면적을 우선 확보했다고 전했다.
바다식물이 육지식물보다 빨리 자라는 것은 뿌리로 영양분을 흡수하지 않고 몸 전체로 흡수하기 때문이다. 많이 먹고 많이 내보내는 과정에서 영양분이 빠르게 축적된다. 또 육지식물은 뿌리의 영양분을 토대로 줄기를 키워올려 잎을 내고 이를 통해 광합성을 하지만,바다식물은 몸 전체로 광합성을 할 수 있다. 육지의 다양한 환경에 견디기 위해 땅속 깊이 뿌리를 박아넣는 데 에너지를 소비해야 하는 육지식물과 달리 바다식물의 뿌리는 조류에 떠내려가지 않게 바위 등에 붙어 있는 역할만 하므로 로프로 엮어 인공양식을 하기에도 적합하다.
◆생산과정도 친환경적
홍조류 펄프는 또 생산 과정이 훨씬 친환경적이라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나무에서 펄프를 생산할 때는 펄프를 구성하는 셀룰로오스를 단단하게 만드는 리그닌이라는 물질을 높은 온도에서 강한 압력을 가해 빼내는 과정이 필요하다. 리그닌은 쓸모가 없는 물질로 나중에 태워 없애야 한다. 또 섬유의 색깔이 누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선호하는 백색을 만들기 위해서 독성이 강한 표백제를 대량으로 사용해야 한다.
그러나 홍조류에서는 80~100℃ 정도의 낮은 온도에서 섬유가 나오기 때문에 생산 공정이 간단하다. 목재섬유와 달리 홍조류 펄프는 색깔이 흰색이어서 독성이 강한 표백제를 사용하지 않고 과산화수소 등 상대적으로 환경 피해가 덜한 약품을 사용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이 같은 제조 과정에서 나온 부산물인 우무는 식용 재료나 의약품의 재료로 사용된다. 우무의 성분인 한천은 녹말과 비슷한 성질을 가지고 있어 젤리 푸딩 등 음식의 재료로 사용될 수 있다. 연고와 같은 의약품의 원료로도 이용 가능하다. 이를 정제하면 박테리아를 키울 수 있는 특수지 등으로 만들 수도 있다. 페가서스는 우무를 발효시켜 메탄가스와 에틸알코올을 생산하는 실험에 성공해 산업화를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천연섬유 신시장 열릴까
홍조류의 섬유는 종이 외에도 다양한 곳에 사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자동차나 휴대폰의 외장재로 쓰일 수도 있으며 주택의 건축자재인 유리섬유(그래스울) 등에 적용될 수도 있다.
홍조류 대량 생산이 지구 온난화 문제 해결에 일조할 수 있을지도 관심사다. 홍조류는 이산화탄소 흡수 능력이 육지식물보다 훨씬 뛰어나기 때문이다. 열대우림 1㎡는 이산화탄소를 해마다 15~20t가량 흡수하지만 같은 면적의 홍조류는 30~40t을 흡수한다. 물론 홍조류를 대량 양식했을 때 바다 생태계에 예상치 못한 피해가 올 가능성도 있어 연구가 더 필요한 상황이다.
이상은 한국경제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