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꿔왔던 초능력이 현실로

[Science] 생각만으로 물체에 변화를…
#1.
1990년대 말 PC통신에 연재되며 인기를 얻었던 팬터지소설 퇴마록의 주인공 '현암'은 '월향'이라는 예쁜 이름의 귀검을 데리고 다닌다.

가지고 다니는 게 아니고 '데리고' 다니는 이유는 귀검에 한 처녀의 혼이 깃들어 있어 현암의 의지에 칼이 반응하기 때문이다.

'원격 조종'이 가능한 칼의 위력은 대단하다.

현암이 밧줄에 꽁꽁 묶이더라도 머릿속으로 월향에게 '부탁'하면 월향은 칼집에서 스스로 나와 밧줄을 끊어줄 수 있다.

물건을 자신의 분신처럼 부릴 수 있다는 얘기다.

#2. 영화 '스타워즈'의 제다이 기사들은 초록색 광선검을 사용한다.

광선검은 평소에는 막대기에 불과하지만, 제다이들이 강력한 의지로 검을 '작동'시키면 긴 막대형광등처럼 생긴 레이저(?)가 뿜어져 나온다.

물리적인 힘을 직접 가하지 않고 인간의 의지만으로 다른 물체를 움직일 수 있는 힘을 우리는 염력이라고 부른다.

전설적인 초능력자 유리겔러가 숟가락을 구부린 힘도 염력이다.

염력은 인간의 힘을 벗어난 능력이기 때문에 '초능력'으로 분류돼 왔다.

그러나 앞으로는 염력을 초능력이라고 부르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지난달 말 미국 실리콘밸리의 벤처기업 뉴로스카이(www.neurosky.com)는 정신을 집중하면 칼이 빛나는 완구를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스타워즈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 너무나 명백한 이 '장난감'을 이용하려면 다스베이더의 헬멧을 써야 한다.

헬멧 안에 장착된 센서가 사용자의 뇌파를 감지해 무선으로 칼(라이트 세이버)을 밝게 만든다.

사람들이 애초 상상했던 것처럼 '순수한 인간의 정신에너지'만으로 칼이 밝아지는 것은 아니다.

기존에 구성해 놓은 회로가 '켜져라' 신호를 받는 것뿐이다.

그렇지만 인간의 생각이 곧바로 외부 물체에 물리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 이는 꽤 흥미로운 시도로 불릴 만하다.

이 같은 장난감을 만드는 기업은 뉴로스카이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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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실리콘밸리에 있는 이모티브 시스템즈(Emotiv Systems·www.emotiv.com)도 사람의 감정과 생각에 따라 움직이는 가정용 게임기 헤드셋을 연말까지 발매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모티브 시스템즈의 헤드셋을 이용하면 조이스틱이나 마우스,키보드 같은 외부 입력장치를 사용하지 않고 머리에 연결된 센서만을 이용해 격투게임·골프게임 등을 즐길 수 있다고 회사 측은 설명하고 있다.

뉴로스카이와 이모티브 시스템즈가 이같은 '염력(?)' 이용장치를 처음으로 개발한 것은 아니다.

의료 분야에는 이미 뇌파를 측정하는 각종 장치가 개발돼 사용돼 왔다.

뇌의 전기적 활동을 측정하는 EEG(electroencephalography)라는 기술이다.

정신을 얼마나 집중했는지, 불안한지, 긴장했는지 등을 알 수 있다.

(기계를 통해 사람의 정신을 헤집어 볼 수 있는 것은 사랑하고 슬퍼하고 미워하고 기뻐하는 감정이 모두 뇌의 전류활동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센서는 전류활동을 직접 측정하거나 이를 증폭시켜 패턴을 기록할 수 있는 기구다.

마음은 가슴이 아니라 뇌에 있다.

)그러나 이 기술을 병원에서 아픈 사람의 머리를 검사하는 데만 사용하는 것은 아까운 노릇이지 않은가.

두 벤처기업이 뇌파측정기술을 완구에 적용할 수 있었던 것은 고가였던 뇌파를 읽는 센서의 가격이 최근 개당 20달러까지 떨어졌기 때문이다.

더 많은 가능성이 열리게 됐다.

경쟁 관계인 두 회사는 라이트세이버와 게임기용 헤드셋 외에도 다양한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뉴로스카이는 뇌파를 이용해 운동성을 가진 장난감을 원격조종하는 기술을 개발, 내달 말께 일본에서 선보일 예정이다.

이모티브 시스템즈는 뇌활동의 패턴을 구별해 특정 명령어에 대응시킨 제품을 준비하고 있다.

이 제품은 사용자가 헤드셋을 쓰고 컴퓨터 화면상의 물체를 '들어올려야지'라고 생각하면 실제 컴퓨터 프로그램이 이를 수행해준다.

웃음·윙크·흥분한 상태·진정된 상태를 애니메이션 캐릭터로 표현할 수도 있다.

이 회사는 이 기술을 하나의 '키트'로 만들어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에게 넘겨줄 예정이라고 밝혔다.

기존에 나와 있는 프로그램에 더 많이 접목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Science] 생각만으로 물체에 변화를…
알고 있겠지만, 요즘 세상에는 컴퓨터만 작동시킬 수 있으면 못할 것이 없다.

여러분은 학교에 앉아서 단지 생각하는 것만으로 집에 두고 온 강아지에게 밥을 줄 수도 있고, 로봇이 있을 경우 로봇을 통해 강아지와 놀아줄 수도 있다.

스티븐 호킹은 더 이상 손가락 하나를 가지고 세상과 소통할 필요가 없다.

그의 머리에 다스베이더 헬멧을 씌우면 그만이다.

사고로 눈꺼풀을 제외한 모든 신체가 마비돼 눈을 수없이 깜빡여 의사를 전달하던 장 도미니크 보비('잠수부와 나비'라는 책의 주인공이다.

기회가 되면 읽어보기를 권한다)에게 진작 이 기술이 제공됐어야 했다.

기계적인 조작 없이 '생각만으로' 물체에 변화를 주는 기술은 어떻게 현실에 적용될 수 있을까.

휴대폰의 로밍 기술이 결합되면 지구 반대편의 사람과 일종의 '텔레파시'를 주고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굳이 언어나 행동을 사용할 필요가 없어지다 보면 인간의 사회성도 다르게 정의돼야 할 것이다.

기계가 보다 정확하게 생각과 반응을 읽어낼 수 있도록 생각을 '정돈하는' 훈련이 유아교육의 필수요소가 될 수도 있겠다.

반대로, 컴퓨터의 조이스틱·키보드·마우스가 사라지면서 수천년간 음성과 문자에 얽매여 온 인간의 표현방식이 새로운 출구를 찾을지도 모른다.

이거야 원, 상상의 나래가 끝이 없다.

이상은 한국경제신문 과학벤처중기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