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ience] 임신부 양수에도 줄기세포 존재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의 논문 조작 사건을 계기로 줄기세포 연구에 관한 국민의 관심은 일단 사그라들었다.

줄기세포 연구를 바라보는 시각은 ‘무관심’을 넘어 ‘불신’ 쪽에 훨씬 가깝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전 세계 과학자들은 지금도 줄기세포에 대한 연구를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황 전 교수 파동과는 별개로 줄기세포는 각종 난치병 치료에 활용될 수 있는 가능성이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엔 임신부의 뱃속에 들어 있는 양수에 다양한 조직세포로 분화가 가능한 줄기세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국내외 연구진이 잇달아 규명,관심을 끌고 있다.


◆임신부 양수에도 줄기세포 존재한다

임신부의 양수 속에 줄기세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최초로 밝혀낸 것은 미국 연구진이다.

미 웨이크포리스트대학 의대 유재철 박사(미국명 제임스 유)는 앤서니 애털라 교수팀과 공동으로 양수의 1%가량이 여러 형태의 세포로 분화할 수 있는 줄기세포라는 사실을 규명했다고 최근 밝혔다.

연구 결과는 영국의 과학저널 '네이처' 자매지인 '네이처 바이오테크놀러지' 1월8일자에 발표됐다.

유 박사 팀은 임신한 여성들이 기증한 양수에서 채취한 줄기세포를 신경세포로 분화시켜 퇴행성 뇌질환을 유발한 쥐에 주입한 결과 뇌의 병변 부위에 신경세포가 재생되었으며,뼈세포로 만들어 쥐에 주입했을 때는 골성조직으로 자라난 사실을 확인했다.

연구팀은 또 이 줄기세포가 배아줄기세포와 성체줄기세포의 중간에 해당하는 줄기세포로 다른 줄기세포처럼 36시간에 한 번씩 두 배로 증식했지만 다른 줄기세포와 달리 종양을 형성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 연구 결과에 대해 줄기세포 연구 기업인 어드밴스트 셀 테크놀로지(ACT)의 로버트 랜저 연구실장은 "양수 줄기세포가 배아줄기세포와 같은 만능세포는 못 되더라도 상당히 폭넓은 형태의 세포로 분화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은 줄기세포 연구에 커다란 진보"라고 논평했다.

이어 최근에는 국내 연구진도 비슷한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김해권 서울여대 생명공학과 교수팀은 태아를 보호하는 양수에 들어있는 줄기세포가 전능성 줄기세포(지방세포,골세포,연골세포,신경세포 등으로 분화 가능한 줄기세포)라는 것을 확인했다고 지난 13일 밝혔다.

연구 결과는 과학저널인 '세포증식(Cell Proliferation)' 최근호에 게재됐다.

이 논문에 따르면 연구팀은 양수 속에 들어있는 상피타입 세포,양수특이세포,섬유아세포타입 등 세 가지 세포가 골수에서 채취한 '중간엽 줄기세포'와 비슷한 특성을 갖고 있는 것을 밝혀냈다.

줄기세포의 한 종류인 중간엽 줄기세포는 뇌 근육 뼈 지방 혈관 신경 간 등 다양한 조직으로 분화가 가능하다.


◆윤리논쟁에서 자유로운 성체줄기세포 원천 얻었다

임신부의 양수에 줄기세포가 존재한다는 게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질까.

줄기세포는 크게 배아줄기세포와 성체줄기세포로 나뉜다.

배아줄기세포란 난자와 정자가 결합해 생긴 수정란인 배아가 세포 분열을 통해 발전한 배반포에서 세포를 분리,특정 환경에서 배양해 더 이상 분화는 일어나지 않지만 분화할 수 있는 능력은 가지고 있는 상태의 세포로 만든 것을 말한다.

배아줄기세포는 모든 조직의 세포로 분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이론상으로는 무한정 세포분열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배아줄기세포의 결정적 단점은 배아도 하나의 독립적인 생명체로 봐야 하기 때문에 배아줄기세포를 활용하는 것은 생명윤리에 위배될 수 있다는 반론이 만만치 않게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전 세계 줄기세포 연구자들의 모임인 국제줄기세포학회(ISSCR)에서 배아 줄기세포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가이드라인은 인간복제와 같이 과학적 근거가 없고 심각한 윤리적 논란을 제기할 연구와 동물세포와 인간 생식세포의 이종(異種) 교배를 금지했다.

또 인간 배아가 형성된 후 14일 이전까지의 배양과 연구는 허용하되 14일 이후의 배양은 금지했다.

반면 성체줄기세포는 탯줄이나 골수 등 인간의 신체에서 얻어낸 줄기세포다.

배아줄기세포와 비교할 때 성체줄기세포는 다양한 조직의 세포로 분화할 수 있는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성체줄기세포는 환자로부터 직접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배아줄기세포에 비해 생명윤리상의 문제가 적다는 장점이 있다.

임신부의 양수에서 줄기세포가 존재한다는 점을 밝혀냈다는 것은 생명윤리 논쟁으로부터 자유로운 성체 줄기세포를 안정적으로 얻을 수 있는 출처를 또 하나 확보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평가다.

애털라 교수는 "양수에서 얻은 줄기세포는 임신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출산 직후까지 어느 때라도 태아나 모체에 해를 끼치지 않고 채취해 쓸 수 있다"며 "윤리논쟁이 끊이지 않는 배아줄기세포 대신 당뇨병,척추 손상,뇌졸중,알츠하이머병 등 각종 질병의 세포치료법 연구에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해권 교수도 "이번에 발견된 양수 줄기세포는 세포의 면역학적 특징과 유전자 발현 측면에서는 골수에서 채취한 줄기세포보다 세포치료 소재로서 잠재성이 더 크다"고 설명했다


◆지나친 기대는 경계해야

과학계 일각에서는 양수 줄기세포의 활용 가능성에 대해 지나친 기대를 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미 유전학정책연구소 헤로드 박사는 최근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양수에도 줄기세포가 존재한다는 걸 발견한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양수 줄기세포를 의학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지 여부를 판단하기엔 시기상조"라고 지적했다.

과거에도 사람들은 새로운 형태의 세포가 출현하면 흥분하고 열광하다가 곧 낙심하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양수 줄기세포도 이 같은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게 헤로드 박사의 견해다.

따라서 그는 양수 줄기세포가 실체적 존재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많은 실험과 독립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동윤 한국경제신문 과학벤처중기부 기자 oasis9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