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고민이 있었다.

사회과 교사로 경력이 쌓여 가면서 학생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가르침을 갈구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감이 사라져갔다.

늘 새로운 것을 원하는 학생들에게 내가 아는 지식만을 전달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 무렵,'베트남 교사 산업연수단에 선정됐다'는 한국경제신문의 연락은 마치 연료전지의 힘이 다해가는 자동차에 충전소같은 신호였다.

사회 교과서는 대부분 지나간 '어제'의 사실로 구성된다. '오늘'을 보고 '내일'을 가르치고 싶은 나는 그래서 늘 갈증을 느끼곤 했다. 떠오르는 경제 현장을 직접 눈으로 보고 '온·오프라인의 생글생글 교수·학습 모델 탐색' 세미나에 참가한다는 생각을 하니 갈증이 절로 풀리는 것 같았다.

1월 16일 20시30분. 베트남 호찌민발 아시아나 비행기는 정비관계로 20분 늦게 인천공항을 이륙했다. 좁은 비행기 안에서 난 설레임으로 가슴이 뛰었다.

비행 고도가 높아질수록 바깥의 온도는 점점 낮아져 영하 54도까지 내려간다고 했다.

영하 54도라니! 이처럼 떨어질 줄이야. 시속 822㎞. 어둠을 뚫고 비행기는 어느새 역동의 도시 베트남 호찌민시 상공을 날고 있었다.

도착 시간은 0시40분.

한참 어둠에 잠들어 있어야 할 공항은 역동의 나라답게 여행객들로 북적였다.

대합실을 나오자 입고 간 겨울 옷이 거추장스럽게 느껴진다. 더운 공기가 갑자기 온 몸을 감싸 안았다.

아하! 여긴 여름이지.아니 여름은 우리 언어이고. 몬순기후 중 건기(乾期)에 속한다.

호텔로 이동하는 차창 밖 거리 풍경이 낯설지 않다.

분명 처음인데…. 난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이유를 알았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우리나라의 1970년대 모습 그대로였던 것이다.

좁은 골목길,도로를 따라서 길게 서 있는 전봇대.그 위로 늘어져 있는 전깃줄.어린시절 우리 동네 바로 그 모습이다.

베트남의 산하도,베트남인의 생김새도 어느새 친근하게 다가온다.

우리의 첫 일정은 '삼성비나일렉트로닉스'와 '한세 베트남' 견학이었다.

전자제품을 생산하는 '삼성비나일렉트로닉스'는 한국 최고 기업의 이미지에 걸맞게 말끔하게 잘 정돈되어 있었다.

공장은 자동화되어 있었고,생산되는 TV와 냉장고는 국내 제품 못지 않게 디자인과 성능이 좋았다. 신문에서 읽던 떠오르는 소비 강국 베트남의 모습을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경제가 발전되어 잘 살게 되면 새로운 기업이 필요하겠구나'하는 생각을 하면서 또 다른 기업체인 '한세베트남'으로 발길을 옮겼다.

우리 기업인이 만든 베트남 최고의 의류 생산업체인 '한세베트남'은 의류를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방식으로 만들어 세계 곳곳으로 수출한단다. 의류하나가 상품으로 나오기까지 많은 공정을 거치고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여러 가지 아이디어들이 공정 곳곳에 숨어 있었다. 그래,해외 시장을 땀흘려 개척하는 우리 기업과 기업인이 있었기에 한국이 세계 10대 무역 강국이 되었구나!

베트남과 우리는 여러 면에서 동질감을 갖고 있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고 있다. 구찌 터널은 그러한 전쟁의 상흔을 아직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베트남전 당시 호찌민 인근 구찌 지역 주민들은 땅굴을 파 놓고 빨치산 활동을 했다. 전쟁의 포화가 그친 지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당시 생활을 체험하기 위해 그 땅굴에 들어가 보니 그들의 삶은 차라리 생존에 대한 몸부림으로 느껴졌다. 어른 한 명이 겨우 지나갈 정도의 좁은 통로를 30분 정도 지나니 허리가 아프고 눈이 침침하고 땀이 줄줄 흐르고…. 정신마저 혼미했다.

'생명이란 이렇게도 모진 것인가?' 10여년간 이러한 고난을 견뎌야 했던 베트남인들. 내 생애 아무리 힘겨운 날들도 이보다 더했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땅굴을 체험했던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나라가 위기에 처하면 국민들의 삶이 얼마나 피폐해질 것인가하는 쪽으로 대화가 모아졌다. 국가를 구하고자하는 국민의 하나됨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느끼게 하는 생생한 역사의 현장이었다.

연수단 교사들은 마지막으로 베트남인들의 교육 현장으로 이동했다.

현대식 학교의 면모를 갖추고 있는 호찌민의 '르 꾸이동'(LE QUY DON) 고교는 130년 전통의 명문 사립고등학교였다.

한 교실의 학생수는 불과 30명으로 여학생이 70%정도로 많아 눈길을 끌었다. 학생들은 아오자이(베트남 전통 옷)를 곱게 차려입은 선생님과 수업을 하고 있었다.

교실과 교정은 쾌적했고 교복을 입은 아이들의 눈망울에서 베트남의 미래를 보았다.

교육에 대한 투자,국민 평균연령 24세,젊은 청년 베트남은 꿈을 향한 열망으로 뜨거워 보였다.

베트남은 끈끈한 가족애,희망을 향한 노력과 부지런함 그리고 '도이모이'10년 정책에 힘입어 새로 태어나고 있다.

꿈과 희망이 있으면 언젠가는 변화하고 발전한다는 진리가 새삼스럽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는 역사,교육,산업현장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호텔로 이동하는 차창 밖에는 어디론가 달리는 오토바이들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가족 또는 연인을 태우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달리는 베트남인들,여기저기 땅이 파헤쳐 새로운 건설을 시도하는 도시의 모습에서 꿈을 향한 베트남인들의 열정을 읽을 수 있었다.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할 작은 메시지를 얻을 수 있는 연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