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상식에 끝없이 도전하는 초현실주의 거장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을 감상하며 상상의 날개를 마음껏 펼쳐보세요.'

새해 들어 부모와 자녀가 함께 즐길 수 있는 '르네 마그리트 작품전(4월1일까지)'이 덕수궁 옆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6개 전시실,10개 섹션으로 나눠진 전시장을 따라 '보물섬''신뢰''심금''광활한 바다' 등 마그리트의 시기별 대표작을 보며 그의 생애와 미술사적 의미까지 입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자리다.

특히 대학 논술시험에 대비한 초·중·고등학생들에게 창의성을 키울 수 있어 더욱 인기다.

국내 처음으로 마련된 이번 전시에서는 '빛의 제국''회귀''신뢰' 등 회화 대표작 70여점과 과슈,드로잉,판화 50여점 등 회화 작품 120여점을 비롯해 사진,희귀 영상작업 및 친필 서신 150여점 등 총 270여점을 만날 수 있다.

'괴기스러운 고요함과 긴장감이 화폭 가득 흐른다.

흰옷을 입은 두 남자가 야구하듯 세상을 후려친다.

정원 중앙을 가로지르는 가로수 양편으로 늘어선 신비감이 난간 기둥을 휘돌아 나직하게 이어지고,정체를 알 수 없는 거북이가 관람객에게 이야기를 강요한다.' 르네 마그리트의 1927년 작 '보이지 않는 선수(The secret player·152×195cm)'의 모습이다.

가격이 120억원에 달하는 이 작품은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을 담고 있어 평론가들 사이에서도 해석이 분분하다.

초기작인 데다 동일한 모티브를 이어받은 후속작이 없어 해석에 더 큰 어려움을 겪는다.

구두와 발을 합체시켜 새로운 오브제를 창조한 '붉은 모델(The red model·38×46cm)' 역시 일상의 사물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고 있지만,논리와 상식을 유쾌하게 뒤집으면서 동시에 재미있는 결합을 시도한 명작.마그리트에게 있어 회화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고 오브제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종교적인 주제를 다룬 '심금'은 포도주잔을 통해 대지의 생명이 결국 하늘과 만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신과 인간의 내적 체험을 예술로 승화시켰다는 평가를 받는 작품이다.

양복 입은 신사들을 화면 곳곳에 무중력 상태로 배치한 '골콘드(겨울비)'는 신세계백화점이 로열티 1억원을 지불하고 지난해 말까지 본점 외벽에 확대 설치해 명물이 됐던 걸작. 이번 전시에선 유화 대신 과슈 작품으로 만날 수 있다.

중절모 신사의 코 앞에 파이프가 떠 있는 1965년 작 '신뢰(Good Faith·41×33cm)'는 유니폼과 같은 중절모와 양복,얼굴 전체를 가리지도 않은 파이프를 통해 개성을 표현했다.

시각예술의 수단으로 인식된 회화를 통해 뭔가를 감추고 뭔가를 사라지게 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겨 둔다.

'검은 마술(Black magic·80×60)'은 아름다운 여체를 상·하반신의 서로 다른 색깔로 대비시켰다.

상체는 하늘색으로,하체는 피부색을 그대로 살려 여인의 나체를 하늘로 변화시킨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1943년 독일이 벨기에를 점령할 당시 그린 '수확(The harvest·60×80cm)'은 르노아르의 1890년대 작품 '무제'를 소재로 감각적이고 에로틱하게 그린 작품이다.

군대의 공포감에 '환희'를 대비시켜 히틀러의 야망을 반박하려 한 내용을 담았다.

화려하고 타는 듯한 색채와 우람하고 소용돌이치는 붓놀림은 군국주의에 대한 '저항'을 상징한다.

창밖의 배경과 캔버스 위의 그림을 묘하게 일치시킨 '인간의 조건(The human condition·100×73cm)' 시리즈는 현실의 3차원 공간과 캔버스 위 2차원 공간 사이의 모순에 대한 의문을 관람객들에게 제기한다.

이 밖에 1927년 작 '폴 뉴제의 초상(Portrait of Poul Nouge·95×65cm)'은 자신의 지적 멘토인 초현실주의의 중추적 역할을 한 폴 뉴제를 표현한 작품.실제 연미복을 즐겨 입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진 폴 뉴제에게 격식 있는 의상을 입혀 그의 엄격한 행동양식을 표현했다.

특히 두 개의 초상을 나란히 그린 것은 생화학자라는 브루조아적인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작가였던 뉴제의 양면성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고문당하는 여사제(The torturing of the vestal virgin·97.5×74.5)'는 20세기 초기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조각과 인체 사이에 어디엔가 존재하는 듯한 애매모호한 존재의 등장을 그려냈다.

마그리트 회화의 전형을 보여주는 이 작품은 이해할 수 없는 현실과 평범한 현실을 양립시키기 위해 수수께끼처럼 병치된 오브제와 결합된 혼란스럽고 감정적인 회화법을 보여준다.

이 밖에 벨기에에서 1970,71년 우표로 한정 발매된 '기억(Memory·46.5×37cm)'과 '이렌느 혹은 금지된 책(Irene or forbidden literature·54×73cm)' 등도 눈여겨 볼만한 작품으로 꼽힌다.

김경갑 한국경제신문 문화부 기자 kkk10@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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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그리트의 "말 말 말"

○…나는 나의 과거를 싫어하고 다른 누구의 과거도 싫어한다.

나는 체념,인내,직업적 영웅주의,의무적으로 느끼는 아름다운 감정을 혐오한다.

나는 또한 장식미술,민속학,광고,발표하는 목소리,공기 역학,보이스카우트,방충제 냄새,순간의 사건,술 취한 사람들도 싫어한다.

나는 냉소적인 유머와 주근깨,여자들의 긴 머리와 무릎,자유롭게 뛰노는 아이들의 웃음,골목을 뛰어다니는 어린 소녀들을 좋아한다.

○…나에게 있어 회화는 색채를 병렬하는 예술이다.

이런 방식을 통해 색채는 실제적인 면을 상실하고 대신 영감을 받은 사유를 드러내게 한다.

○…나는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보이지 않는 것의 형체를 그리려 하는 것은 너무 순진하고 어리석은 것이기 때문에 나는 보이는 것만을 그린다.

○…나의 회화에는 상징이 존재하지 않는다.

상징은 시의 신비한 현실에 집착하기 위한 것이며 전통에 매우 충실한 생각에 속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림에 가장 적절한 제목은 시적인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그림을 감상하면서 느끼는 다소 생생한 감정에 비교될 수 있는 것이다.

시적인 제목은 우리에게 뭔가를 가르치려고 하지 않고 우리를 놀라게 하거나 마법에 빠져 들게 한다.

○…나는 우리의 멋진 말들이 목에 걸고 있는 쇠 방울들이 구덩이의 가장자리에서 자라나는 위험한 식물과 같다고 믿는 것을 더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