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첨단 과학기술을 어떻게 인간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활용할 것인가란 문제는 과학자뿐 아니라 많은 이들의 고민거리 중 하나다.
또 고도의 전문성이란 '철옹성'으로 둘러싸인 과학을 어떻게 하면 일반 사람들도 쉽게 이해하게 만들까 하는 점도 영원한 숙제다.
과학은 물론 소수 과학자들의 창의성에 의해 발전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대중의 폭넓은 이해와 지지라는 '토양'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과학자들이 짜낸 아이디어 중 하나가 '과학상점(Science Shop)'이다.
이번주에는 과학상점을 통해 과학과 대중의 관계에 대해 알아보자.
◆"과학을 상점에서 판다고?"
과학상점이란 대학 내의 실험실이나 연구소 중 지역주민들의 수요와 요구에 기초한 연구개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일종의 매개점 역할을 하는 곳을 말한다.
과학상점은 주로 재정능력이 낮은 시민단체나 여성단체 또는 노동조합 등으로부터 과학기술 분야에 대한 연구 의뢰를 받으면 각 대학 및 연구소의 전문 연구자들이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연구서비스를 제공한다.
과학상점의 탄생은 1970년대 베트남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서구 지식인들은 과학기술이 베트남전에서 인명을 대량으로 살상하는 군사무기를 만드는 데 쓰이는 것을 지켜보면서 충격을 받았다.
때문에 과학기술을 좀 더 평화적으로 발전시키고,일반시민들에게 개방하자는 의견이 광범위하게 형성됐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바로 과학상점이다.
최초의 과학상점은 네덜란드의 위트레히트 대학 내에 1974년에 설립됐다.
'상점'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동네 구멍가게처럼 지역주민이면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에서였다고 한다.
때문에 '과학상점'이라고 해서 통상적인 상품 거래가 이뤄지는 것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과학상점은 지역주민 누구에게나 개방되지만 이용에 아무런 제약이 없는 것은 아니다.
과학상점에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서는 그 집단이나 개인이 연구에 대한 대가를 지불할 재정능력이 없어야 하고,아무런 상업적 목적을 가지고 있지 않아야 한다.
때문에 '산학협력' 형태로 대학이나 연구소를 활용하고 있는 기업들은 과학상점을 이용할 수 없다.
◆선진국은 활성화,한국은 걸음마 단계
네덜란드의 경우 거의 모든 대학에 과학상점이 설립돼 있다.
매년 총 2000여건의 연구 요청이 들어올 정도로 과학상점 이용도 활성화 돼 있다.
이 중 53%는 환경단체와 같은 비영리 사회단체에서 의뢰한 것이고,10%는 노동조합,그리고 22%는 개인이 요청한 것들이다.
미국에서는 1990년대 시민사회 주도로 '지역기반연구'라는 이름으로 네덜란드식 과학상점을 다수의 지역에 설립했다.
이를 통해 과학지식의 공공성 회복을 위한 기반을 확대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이들을 서로 연계하는 '지역연구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이 밖에 독일 벨기에 덴마크 영국 아일랜드 이스라엘 루마니아 캐나다 등지에도 과학상점이 설립돼 있다.
과학상점이 과학이라는 무기를 이용해 지역사회의 문제 해결에 기여한 사례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네덜란드의 한 과학상점에는 집집마다 가솔린 냄새가 심하게 나는 문제에 대한 원인과 해결방안을 찾아달라는 지역주민들의 요청이 들어왔다.
학생 자원봉사자와 석·박사 과정 학생들은 즉각 팀을 이뤄 연구조사에 나선 결과,한 오래된 주유소 지하탱크에서 가솔린이 새나와 하수관을 타고 흘러든 것을 밝혀낸 사례가 있다.
북아일랜드에 있는 한 과학상점에서는 이전에 가스저장소가 있었던 지역에 주택단지를 개발하려고 하는데 그 지역 토양이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해 연구해줄 것을 요청받고 이 문제를 해결해줬다.
한국에서는 1990년대 말 서울대 이공계신문사에서 석·박사 과정 학생들이 주축이 돼 과학상점을 개설했었고,이 무렵 전북대에서도 학교 차원에서 과학상점을 열었으나 둘다 현재는 활동이 중단됐다.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는 곳은 대덕연구단지의 젊은 과학자들이 2004년 만든 '시민참여연구센터'가 유일할 정도로 과학센터는 활성화돼 있지 못하다.
향후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 과학상점을 설립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나 성사 여부는 불투명한 상태다.
◆과학과 사회를 잇는 가교
과학상점은 무엇보다 과학기술과 사회를 잇는 가교역할을 한다.
우선 과학자 입장에서는 정말로 사회적으로 필요한 연구가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반대로 지역 주민 입장에서는 과학상점을 통해 지역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할 수 있다.
또 과학상점은 과학에 대한 시민들의 접근을 용이하게 함으로써 과학에 대한 대중의 이해를 제고하는 효과를 거두기도 한다.
그러나 정부가 통상적으로 추진하는 기존의 '과학의 대중화'와는 구별된다.
즉 기존의 과학 대중화 정책은 "일반 대중은 과학기술에 대해 무지몽매하므로 과학기술 전문가들이 대중을 계몽해 과학기술의 합리성과 효율성 가치를 체득하게 함으로써 정부가 추진하는 과학기술 정책을 대중이 잘 수용하도록 하겠다"는 우월적 인식을 전제로 하고 있었다.
반면 과학상점은 기본적으로 정말 과학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쉽게 과학에 접근할 수 있는 실질적 기회를 제공하고,주입과 교육이 아니라 자신의 필요에 의해 적극적으로 과학에 대해 학습한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김동윤 한국경제신문 과기벤처중기부 기자 oasis93@hankyung.com
▶도움말: 이영희 가톨릭대 사회학과 교수
또 고도의 전문성이란 '철옹성'으로 둘러싸인 과학을 어떻게 하면 일반 사람들도 쉽게 이해하게 만들까 하는 점도 영원한 숙제다.
과학은 물론 소수 과학자들의 창의성에 의해 발전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대중의 폭넓은 이해와 지지라는 '토양'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과학자들이 짜낸 아이디어 중 하나가 '과학상점(Science Shop)'이다.
이번주에는 과학상점을 통해 과학과 대중의 관계에 대해 알아보자.
◆"과학을 상점에서 판다고?"
과학상점이란 대학 내의 실험실이나 연구소 중 지역주민들의 수요와 요구에 기초한 연구개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일종의 매개점 역할을 하는 곳을 말한다.
과학상점은 주로 재정능력이 낮은 시민단체나 여성단체 또는 노동조합 등으로부터 과학기술 분야에 대한 연구 의뢰를 받으면 각 대학 및 연구소의 전문 연구자들이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연구서비스를 제공한다.
과학상점의 탄생은 1970년대 베트남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서구 지식인들은 과학기술이 베트남전에서 인명을 대량으로 살상하는 군사무기를 만드는 데 쓰이는 것을 지켜보면서 충격을 받았다.
때문에 과학기술을 좀 더 평화적으로 발전시키고,일반시민들에게 개방하자는 의견이 광범위하게 형성됐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바로 과학상점이다.
최초의 과학상점은 네덜란드의 위트레히트 대학 내에 1974년에 설립됐다.
'상점'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동네 구멍가게처럼 지역주민이면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에서였다고 한다.
때문에 '과학상점'이라고 해서 통상적인 상품 거래가 이뤄지는 것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과학상점은 지역주민 누구에게나 개방되지만 이용에 아무런 제약이 없는 것은 아니다.
과학상점에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서는 그 집단이나 개인이 연구에 대한 대가를 지불할 재정능력이 없어야 하고,아무런 상업적 목적을 가지고 있지 않아야 한다.
때문에 '산학협력' 형태로 대학이나 연구소를 활용하고 있는 기업들은 과학상점을 이용할 수 없다.
◆선진국은 활성화,한국은 걸음마 단계
네덜란드의 경우 거의 모든 대학에 과학상점이 설립돼 있다.
매년 총 2000여건의 연구 요청이 들어올 정도로 과학상점 이용도 활성화 돼 있다.
이 중 53%는 환경단체와 같은 비영리 사회단체에서 의뢰한 것이고,10%는 노동조합,그리고 22%는 개인이 요청한 것들이다.
미국에서는 1990년대 시민사회 주도로 '지역기반연구'라는 이름으로 네덜란드식 과학상점을 다수의 지역에 설립했다.
이를 통해 과학지식의 공공성 회복을 위한 기반을 확대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이들을 서로 연계하는 '지역연구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이 밖에 독일 벨기에 덴마크 영국 아일랜드 이스라엘 루마니아 캐나다 등지에도 과학상점이 설립돼 있다.
과학상점이 과학이라는 무기를 이용해 지역사회의 문제 해결에 기여한 사례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네덜란드의 한 과학상점에는 집집마다 가솔린 냄새가 심하게 나는 문제에 대한 원인과 해결방안을 찾아달라는 지역주민들의 요청이 들어왔다.
학생 자원봉사자와 석·박사 과정 학생들은 즉각 팀을 이뤄 연구조사에 나선 결과,한 오래된 주유소 지하탱크에서 가솔린이 새나와 하수관을 타고 흘러든 것을 밝혀낸 사례가 있다.
북아일랜드에 있는 한 과학상점에서는 이전에 가스저장소가 있었던 지역에 주택단지를 개발하려고 하는데 그 지역 토양이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해 연구해줄 것을 요청받고 이 문제를 해결해줬다.
한국에서는 1990년대 말 서울대 이공계신문사에서 석·박사 과정 학생들이 주축이 돼 과학상점을 개설했었고,이 무렵 전북대에서도 학교 차원에서 과학상점을 열었으나 둘다 현재는 활동이 중단됐다.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는 곳은 대덕연구단지의 젊은 과학자들이 2004년 만든 '시민참여연구센터'가 유일할 정도로 과학센터는 활성화돼 있지 못하다.
향후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 과학상점을 설립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나 성사 여부는 불투명한 상태다.
◆과학과 사회를 잇는 가교
과학상점은 무엇보다 과학기술과 사회를 잇는 가교역할을 한다.
우선 과학자 입장에서는 정말로 사회적으로 필요한 연구가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반대로 지역 주민 입장에서는 과학상점을 통해 지역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할 수 있다.
또 과학상점은 과학에 대한 시민들의 접근을 용이하게 함으로써 과학에 대한 대중의 이해를 제고하는 효과를 거두기도 한다.
그러나 정부가 통상적으로 추진하는 기존의 '과학의 대중화'와는 구별된다.
즉 기존의 과학 대중화 정책은 "일반 대중은 과학기술에 대해 무지몽매하므로 과학기술 전문가들이 대중을 계몽해 과학기술의 합리성과 효율성 가치를 체득하게 함으로써 정부가 추진하는 과학기술 정책을 대중이 잘 수용하도록 하겠다"는 우월적 인식을 전제로 하고 있었다.
반면 과학상점은 기본적으로 정말 과학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쉽게 과학에 접근할 수 있는 실질적 기회를 제공하고,주입과 교육이 아니라 자신의 필요에 의해 적극적으로 과학에 대해 학습한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김동윤 한국경제신문 과기벤처중기부 기자 oasis93@hankyung.com
▶도움말: 이영희 가톨릭대 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