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 치료법이 암 정복의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유전자 치료로 암 말기 환자를 완치시켰다는 획기적인 연구 성과가 과학 전문지 '사이언스' 최신호를 통해 발표됐기 때문.미국 국립암연구소(NCI)는 사이언스에 실린 논문을 통해 피부암 말기 환자 17명의 백혈구에 면역 기능을 가진 유전자를 주입하는 방법으로 이 가운데 2명을 최근 완치시켰다고 밝혔다.

의학계에서는 유전자 치료가 기존 의료 기술로는 거의 손쓸 방법이 없는 말기 암 환자들을 완치시켰다는 점에서 이번 연구 성과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 CNN 등 미국 언론은 '암 정복에 획기적인 전기가 될 것'이라고 일제히 보도했다.

과연 유전자 치료는 암으로부터 인류를 구해 줄 '메시아'가 될 수 있을까.

골프공 크기 종양이 10분의 1로 줄어

연구팀이 치료 대상으로 삼은 암 환자들은 암세포를 죽이는 면역 세포인 'T세포'가 제대로 활동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T세포는 백혈구의 일종으로 평소에는 활동하지 않다가 암세포가 나타나면 달려들어 죽인다.

그런데 T세포가 암세포를 죽이려면 먼저 암세포를 정상 세포와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역할을 해 주는 것이 바로 'T세포 수용체'다.

17명의 암 환자들은 몸 안에 T세포는 있지만 T세포 수용체가 없어 암세포를 죽이지 못했다.

연구팀은 환자들에게서 T세포를 추출한 후 T세포 수용체를 생산토록 해 주는 유전자를 주입해 다시 몸 안에 넣었다.

유전자를 조작해 환자의 몸이 T세포 수용체를 만들어 낼 수 있도록 바꾼 것.

그 결과 17명 가운데 53세 남성 환자는 겨드랑이의 종양이 눈 녹듯 사라졌고, 간에 있던 골프 공 크기의 종양도 89%가량 줄었다.

의료진으로부터 '폐 한 쪽을 완전히 잘라내야 한다'는 판정을 받았던 41세 남성은 폐에 전이된 종양이 완전히 사라졌다.

두 환자는 시술한 뒤 1년 반이 지난 현재까지 재발 없이 완치 단계에 이르렀다.

부작용 거의 없이 근원적인 치료 가능할 듯

유전자 조작을 이용한 암 치료는 1990년대부터 연구가 본격화됐다.

암세포뿐만 아니라 정상 세포까지 파괴하는 기존 화학 요법과 방사능 요법을 대신할 차세대 치료법으로 전망됐기 때문이다.

유전자 치료에서는 유전자를 조작해 효과를 낼 수 있다면 유전자 하나 하나가 약이 된다고 본다.

암을 유발하는 유전자는 억제하고,암을 제어하는 유전자는 활성화해 암을 치료하는 것.암세포 발생 자체를 막고 몸이 스스로 암을 없애도록 하기 때문에 부작용이 거의 없이 근원적인 치료가 가능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세계 의학계가 유전자 치료에 관심을 갖고 앞다퉈 연구에 뛰어드는 이유다.

유전자 치료 연구가 가속화되면서 2004년에는 중국에서 '젠디신'이라는 최초의 유전자 치료제가 탄생했다.

젠디신은 암세포의 성장을 억제하는 'P53'이라는 유전자를 독성 없는 바이러스에 집어넣어 종양 부위에 전달토록 한 치료제다.

진행성 두경부암(혀나 목 부위에 생기는 암) 환자에게 방사선 치료와 함께 이 치료제를 사용할 경우 종양을 완전히 없애는 확률이 64%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젠디신보다 우수한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되는 다양한 유전자 치료제들이 개발 단계에 있다.

우리나라도 녹십자 뉴젠팜 등 일부 제약사와 바이오 벤처기업들이 유전자 치료를 연구하고 있다.

암 정복까지는 아직 갈 길 멀어

유전자 치료가 암 정복에 이르기까진 아직 갈 길이 먼 상태다.

미국 국립암연구소도 17명의 환자 가운데 2명만을 완치시키는 데 그쳤다.

나머지 15명에게서는 유전자 치료의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연구팀은 이들에게서 효과가 나타나지 않은 것은 유전자 조작으로 교정된 T세포가 당초 예상보다 약하게 기능했거나 체내 다른 수용체와 마찰을 일으켰기 때문으로 분석하고 있다.

또 일각에서는 유전자 치료가 확률은 적지만 부작용을 일으킬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미국 텍사스대의 앤더슨 암센터 관계자는 "T세포가 인체 내 정상적인 세포까지 암세포로 오인해 공격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국립암연구소는 이 치료법의 성공 확률과 안전성을 높이는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다.

임도원 한국경제신문 과학기술부 기자 van769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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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치료 다른 대안은] 표적항암제·면역세포 치료제 등 개발 중


인간의 암 정복 도전은 유전자 치료 외에도 다양한 분야에서 시도되고 있다.

최근 가장 성과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 바로 표적 항암제다.

기존 항암제는 암세포뿐만 아니라 암세포처럼 빠르게 분열하는 조혈 모세포(혈액을 만드는 세포), 모발 세포, 장 점막 세포 등 정상 세포도 함께 죽이는 문제점이 있었다.

표적 항암제는 이와 달리 유도 미사일처럼 타깃인 암세포만을 공격하는 '지능형' 치료제.내년에 우리나라에서 판매될 예정인 독일 바이엘사의 신장암 치료제 '넥사바'가 그 예다.

이 치료제는 암세포만 공격하면서 암 조직에 영양분을 공급하는 혈관 생성도 억제해 부작용이 적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또 인체의 면역 세포를 체외에서 대량으로 배양한 뒤 다시 몸 안에 넣어 암세포를 보다 효과적으로 죽이도록 하는 면역세포 치료제 개발도 활발하다.

면역세포 치료제는 자신의 세포를 사용하기 때문에 부작용이 거의 없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상용화된 면역세포 치료제는 없다.

치료 효과가 완전히 증명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동아제약 크레아젠 등 일부 제약회사와 바이오벤처 기업들이 면역세포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